make the remarks in an article.
About Us
Since 1 June 2022
Vol. 40
가격문의
박준수
아트페어 일을 10여 년 넘게 해오며 시장의 흐름을 읽는 감은 어느 정도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세계 미술 시장의 전체적 흐름을 온전히 꿰뚫기란 여전히 어렵다. 영화 <관상>의 대사처럼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다”는 말이 종종 떠오른다. 매번 미술계의 핫한 이슈에는 반응하지만, 그 바람의 방향, 즉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흐름을 어렴풋이나마 읽기 위해서는 현재 ‘컨템포러리 아트’와 그 시장이 어떤 역사를 거쳐 형성되어 왔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의 기원은 흔히 제2차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사고의 붕괴 시점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인간 중심의 합리와 과학적 사고를 열어젖혔다면, 두 차례 세계대전은 그 낙관의 종말을 고했다. 과학 문명에 대한 절대적 신뢰, 인간 이성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전쟁의 비극과 대량 살상 앞에서 산산이 무너졌다⋯
김영기
가로로 길게 네모지고, 넙데데한 표면 곳곳이 험하며 꾸덕한 ‘물건’이 벽에 걸렸다. 색색들이 박힌 물감 덩어리는, 곳곳 푸른 방수 도막이 벗겨진 어느 건물 옥상을 무척 닮았다. 왕년의 옥탑방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딱 그림 속 시선 높이로 쭈그려 앉아 별을 세곤 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면, 그림은 다시 네모난 ‘물건’이다.
저 글씨는 아버지의 글씨이고 저 옥상은 아버지가 세월을 잡숫던 옥상인지 외우지 않아도 좋다. 그건 그림보단 수사보고서로 쓰면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다. 그림이라 부르는 그의 ‘물건’을 마주하면 이미지, 내러티브, 상상, 메시지 등의 ‘작용’이 알아서 들어와 박힌다. 해독의 노동에서 해방하는, 독립선언문 같은 그림. 글이든 그림이든 몰입에 노력이 들지 않는 걸 으뜸으로 치는 나에게 김지원은 복덩이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방사성 물질을 닮았다. 가까이서 쬐면 끝. 헤치고 캘 것 없이 알아서 온다. 차이라면 방사선은 많이 쬐면 사나운 몰골로 죽겠지만, 그의 그림은 쬘수록 눈과 속이 살찌는 것⋯
박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요량에 『즐거운 학문』을 펼쳤으나, 내용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이 명랑한 제목의 뒷면에는 인간이 얼마나 근본적인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가는지를 폭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유쾌하지도, 상쾌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빛이 있으라"라는 선언으로 태어난 빛이 자신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었던 것처럼 웃음은 기쁨만이 아닌 허무와 같은 네거티브한 감정을 견디기 위한 경련에 가까운 부분도 존재한다. 이 역설적인 명랑함은 오늘의 세계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웃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안을 은폐하기 위해 그 웃음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불안은 언제나 활기라는 외피를 입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공포를 잊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웃고 노래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공포는 그것을 부정하려는 과장된 에너지를 동원하게 한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은 희망이나 기쁨과 같은 요소보다도 절망과 공포가 더 앞서있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생은 곧 피로의 다른 이름이며 쾌활함은 절망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은 '유쾌하지 않은 유쾌함'은 불안한 인간의 생존방식이다⋯
정희라
우리가 손모아의 작업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있었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어쩌면 도달해야 한다고 믿는, 그러나 늘 어긋난 채 남아 있는 ‘있어야 할 세계’다. 그림 속에서 분절되어 나타나는 휴양지의 풍경 조각 조각들은 실제의 모습 이전에 매체 속에서 살아난 환상에 가깝다. 여행을 가야 한다고 속삭이는 광고와 잡지, 브로슈어와 포스터, 그리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SNS의 이미지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관습적 풍경을 미리 완성하곤 한다. 손모아가 매년 여행을 통해 수집하는 장면들은 이러한 관습적인 기억을 토대로 재조합된 유토피아적인 풍경의 한 단면이다. 그의 그림은 그래서 ‘기록’이라기보다 ‘회상’이고, ‘실재’라기보다 이미지의 습성이 드러나는 ‘환상’이다. 그의 회화는 바로 이 환상이 움직이는 방식을 포착한다.
한눈에 평평함이 먼저 들어오는 단색의 면, 소위 ‘면치기’라 불리는 기법에 의해 잘려 나간 표면이 화면을 과감하게 가른다. 이 면은 벽처럼 돌연히 나타나 시야를 차단하고, 깊이를 압착하여 풍경의 연속을 절단한다. 이러한 공간은 잘린 공백이라기보다 기호들이 떠오르는 스크린이다. 이 단색의 스크린 곁에는 표상들이 스치듯 지나가고, 어떤 것은 오래 정지해 있다. 풍경과 색 면 사이에 작은 물결과 같은 움직임이 유쾌하게 가로지르기도 한다. 이 동적인 장식이 색 면과 풍경-두 세계를 하나로 묶어, 동떨어진 세계가 아님을 암시한다⋯
김미혜
1.
In the first place, there is nothing external you can bring forth or prove as the basis for calling yourself “I”. It consists of what we can collectively refer to as the “inner world”, such as thoughts and memories drifting through our minds, or elusive emotions. The irony is that these unprovable experiences are precisely what constitute our sense of self. What’s even more absurd is that we try to communicate with others using this uncertain internal information. Yet, regrettably, this inner information is never transmitted to others in its pure, unaltered form. Even in the moment we utter “mom”—the most universal word—the warmth of the memories contained in that word inevitably differs from person to person. At this point, we are confronted with one of humanity’s oldest questions: Can language ever assure the transmission of truth? And it is precisely this inevitable failure—this condition of “the imperfection of transmission”—that Eun-mi Ryu takes as the premise of her work⋯
안재우
내 은은함도 빛나기 위해태양과 네 목소리는잠시나마, 잊지는 않을 테니, 여행을 떠나주렴.
밤하늘의 별들이 그 특유의 미학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일까. 상식적인 것들을 먼저 떠올려 본다. 우선 말 그대로 여러 천체 가운데 ‘별’이어야 할 것이다. 즉 엄청나게 강한 빛을 발산할 수 있기에 우리와 상당히 멀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광채가 가시적인 존재여야 한다. 또한 우리와 너무 멀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태양처럼 가까우면 강렬한 햇빛만 줄 수 있을 뿐, 은은한 별빛은 주지 못하니. 그리고 밤하늘이 충분히 어둡고 맑아야 할 것이다: 대낮에 은하수를 본 적이 있는가.
멀지만 너무 멀지 않은 것들. 햇빛 없는 새벽처럼 우리 일상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어떤 힘이 잠시 그 자리를 비울 때, 그들은 그 존재를 알릴 때가 있다. 당신과 내가 각자 품고 사는 반딧불들이다. 어느 날의 퇴근길, 저절로 찾게 되는 그 노래. 힘들었던 한 주의 주말, 오랜만에 책장을 떠나는 그 시집. 어느 특별한 날이 떠오르는 순간, 그날의 더욱 또렷한 기억을 위해 펼쳐보는 일기. 자신을 평소에 지배하는 힘들의 폭정은 잠시 물러나고, 부드러운 온정의 통치에 잠시나마 자신을 맡겨본다⋯
김지원, 무제 Untitled_oil on linen_194×259㎝_2024
ACK vol.40
2025년 11월호가 발행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ll text
Inside and outside.
Inside and out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