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김윤섭 개인전
2021/09/03 – 2021/09/25
오뉴월 이주헌
정희라
한옥 기둥 너머 보이는 그림이 마치 살아있는 유물과도 같다. 오뉴월 이주헌의 중앙을 선점한 200호 작품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는 전시 구성에서 도입부로 기능하고 있다. 김윤섭은 실제 갤러리 기둥과 장난감을 그림에 재현하고, 동시에 보도록 유도하여 사건과 공간의 확장을 꾀하였다. 실재하는 것과 만들어진 것을 함께 제시함으로, 그 차이를 역설하고 캔버스의 제한된 표면과 움직임을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의 환영성과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회화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다. 김윤섭은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이와는 동떨어진 존재인 양 끝없이 캔버스와 물감을 다루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언급한다.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서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에 뚝 떨어진 것에 빗대었는데, 그 접근이 유쾌하다. 명제 속의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작가 본인이고, ‘정보화 세계’는 현실이라 이해된다.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과 세계와의 접점을 표하고자 디지털에 관한 시대적 내용을 회화 작업에 끌어들였다. 이를 위해 모니터와 캔버스 사이의 대조적인 질감에 대해 말하고, 자신이 손에 잡히는 물질을 다루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윤섭은 사회에 수용되는 예술 형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현된 이후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배경을 가진 회화 작가로서 여러 매체를 충돌시키고 혼합하기도 한다.
김윤섭은 역사 속 회화 작가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위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왔다. 2016년 전시 <순례자-순교자, 이세상은 너무 오래돼서 새로운 게 없어요>에서는 현대의 회화 작가를 순례자로 부르고 그 상징적 인물들을 선택하여 평면드로잉과 회화 작품으로 재해석하였다. 화가의 이미지가 유령처럼 죽지 않고 소비된다는 점과 회화라는 장르가 시대와 상관없이 무한히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와 같은 회화 작가의 지위나 평가에 대한 통찰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자를 쓴 인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9년 전시 <모자의 형식>은 선적인 드로잉과 면적인 회화 간에 존재하였던(혹은 지금도 존재하는) 권위의 차이에 대해 반기를 들며 풀어내었다. 모자는 사람의 머리에 얹어짐으로써 그 역할을 하며 직위나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엉뚱하고 엇갈린 조합으로도 존재하기에 모자의 형식이 회화의 그것과도 같다고 주장하였다.
김윤섭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단어는 ‘마계(魔界)’이다. 2009년의 첫 번째 개인전 <마계, 근방위>부터 지난해 전시 <마계인>에 이르기까지, 삼매경이 아니라 마계에 빠지기를 자처하는 그의 태도는 하나의 작업 세계에 천착하지 않으려 다양한 표현 양식과 내용을 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윤섭이 <사람들은, 이런 걸 소설이라고 한단다>, <변하는 얼굴>, <올드 스쿨>, <유령의 구조> 등의 전시에서 선보인 텍스트, 드로잉, 설치, 회화 작업은 하나의 줄기로 엮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예술 형식 연구’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한결같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형식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관람자가 그림 앞에 놓인 레고 장난감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비추어 보면 그 그림을 배경으로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 형태를 한 애니메이션처럼 그림 안에서 움직임을 만들고 화면을 확장하여 새로이 작동하는 예술 형식에 대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한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이 어느 일정한 형식이나 매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 장르의 구분이 가지는 가능성과 한계를 짚으며 장르에 따른 권위가 과거와 다르게 역전되기도 하는 세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2021년 11월 월간미술 크리틱에 게재된 글입니다.)

김윤섭,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194-259cm, oil on canvas, 2021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김윤섭 개인전
2021/09/03 – 2021/09/25
오뉴월 이주헌
정희라
한옥 기둥 너머 보이는 그림이 마치 살아있는 유물과도 같다. 오뉴월 이주헌의 중앙을 선점한 200호 작품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는 전시 구성에서 도입부로 기능하고 있다. 김윤섭은 실제 갤러리 기둥과 장난감을 그림에 재현하고, 동시에 보도록 유도하여 사건과 공간의 확장을 꾀하였다. 실재하는 것과 만들어진 것을 함께 제시함으로, 그 차이를 역설하고 캔버스의 제한된 표면과 움직임을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의 환영성과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회화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다. 김윤섭은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이와는 동떨어진 존재인 양 끝없이 캔버스와 물감을 다루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언급한다.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서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에 뚝 떨어진 것에 빗대었는데, 그 접근이 유쾌하다. 명제 속의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작가 본인이고, ‘정보화 세계’는 현실이라 이해된다.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과 세계와의 접점을 표하고자 디지털에 관한 시대적 내용을 회화 작업에 끌어들였다. 이를 위해 모니터와 캔버스 사이의 대조적인 질감에 대해 말하고, 자신이 손에 잡히는 물질을 다루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윤섭은 사회에 수용되는 예술 형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현된 이후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배경을 가진 회화 작가로서 여러 매체를 충돌시키고 혼합하기도 한다.
김윤섭은 역사 속 회화 작가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위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왔다. 2016년 전시 <순례자-순교자, 이세상은 너무 오래돼서 새로운 게 없어요>에서는 현대의 회화 작가를 순례자로 부르고 그 상징적 인물들을 선택하여 평면드로잉과 회화 작품으로 재해석하였다. 화가의 이미지가 유령처럼 죽지 않고 소비된다는 점과 회화라는 장르가 시대와 상관없이 무한히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와 같은 회화 작가의 지위나 평가에 대한 통찰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자를 쓴 인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9년 전시 <모자의 형식>은 선적인 드로잉과 면적인 회화 간에 존재하였던(혹은 지금도 존재하는) 권위의 차이에 대해 반기를 들며 풀어내었다. 모자는 사람의 머리에 얹어짐으로써 그 역할을 하며 직위나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엉뚱하고 엇갈린 조합으로도 존재하기에 모자의 형식이 회화의 그것과도 같다고 주장하였다.
김윤섭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단어는 ‘마계(魔界)’이다. 2009년의 첫 번째 개인전 <마계, 근방위>부터 지난해 전시 <마계인>에 이르기까지, 삼매경이 아니라 마계에 빠지기를 자처하는 그의 태도는 하나의 작업 세계에 천착하지 않으려 다양한 표현 양식과 내용을 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윤섭이 <사람들은, 이런 걸 소설이라고 한단다>, <변하는 얼굴>, <올드 스쿨>, <유령의 구조> 등의 전시에서 선보인 텍스트, 드로잉, 설치, 회화 작업은 하나의 줄기로 엮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예술 형식 연구’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한결같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형식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관람자가 그림 앞에 놓인 레고 장난감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비추어 보면 그 그림을 배경으로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 형태를 한 애니메이션처럼 그림 안에서 움직임을 만들고 화면을 확장하여 새로이 작동하는 예술 형식에 대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한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이 어느 일정한 형식이나 매체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 장르의 구분이 가지는 가능성과 한계를 짚으며 장르에 따른 권위가 과거와 다르게 역전되기도 하는 세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2021년 11월 월간미술 크리틱에 게재된 글입니다.)

김윤섭, 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보화 세계에 떨어진 건에 대하여 About a person who thinks with stomach and intestines fell into the information world, 194-259cm, oil on canva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