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미술 글쓰기 연습
한승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최근 두 번의 전시를 통해 ‘쉬운 글(Easy Read) 해설’ 제공을 시작했다. 발달 장애인과 정보 약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작품 설명 글을 다시 쓴 것이다. 이 작업은 장애인을 위한 쉬운 해설 제작 프로젝트를 이어온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과 함께 진행하였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 텍스트를 쉬운 언어로 바꾸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쉬운 정보를 만들기 위해 작품이 가진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 국제박물관협회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뮤지엄의 정의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존의 정의가 오늘날 뮤지엄의 확장된 역할을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9년에 새롭게 제안된 정의에는 ’뮤지엄은 민주적이고 포용적이며 다성적인 공간이다.’, ‘뮤지엄은 참여적이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의 평등, 안녕에 기여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뮤지엄이 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앞장서서 취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해 쉬운 글 해설을 제공하는 정책은 이와 같은 뮤지엄의 새로운 정의에 부합한다.
사실 뮤지엄의 정의와 역할까지 거창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로서 현장에서 일하며 관람객에게 보다 쉬운 글쓰기를 제공하고 싶다는 고민은 늘 있었다. 전시 작품을 설명하는 글은 전시를 보러 오는 다성의 관람객이 전시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해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시 후기로 “현대미술은 어렵고, 텍스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서울시립미술관의 시도가 아주 반갑게 다가왔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글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미술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 글쓰기를 위해서는 우선 시각적인 것을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작품에 담긴 맥락을 해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동시대 철학과 사상, 문화적 배경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아주 다르다. 나름대로 쉽게 쓴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필자도 항상 글을 쓸 때면 미술 지식이 많은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 사이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쉬운 글쓰기 연습을 시도함으로써 앞으로의 글 쓰는 방향을 점검해 보려 한다. 미술 전시를 찾는 다성의 관람객을 위해서 말이다.

세화미술관 《팬텀시티 Phantom City》전시 도록 삽입글, 2019
* 아래는 과거 한 전시에서 필자가 썼던, 다소 어렵고 추상적으로 쓰인 작품 설명 글을 다듬어 좀 더 쉽게 정리해 본 글이다.
최성록
이번 전시에 출품된 〈스크롤 다운[2] 여행 Scroll Down Journey(2015〉는 컴퓨터로 그린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다. 작가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의 도시를 그리기 위해 위성사진과 드론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모아 작업했다. 납작하고 긴 그림의 중앙에 길이 나 있고, 그 위로 하얀 자동차 한대가 위쪽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리는 구성의 작품이다. 사막 풍경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숲을 지나 비닐하우스, 발전소 풍경을 거쳐 점차 복잡한 도심 속으로 들어간다. 자세히 살펴보면 도시 풍경 속에서 사고 이전의 세월호가 한강 위에 떠 있기도 하고, 실제 세빛섬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위로 달리는 것 같이 보이는 차는 사실 화면 중앙에 고정되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할 때 화면의 아래에 있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 다운’ 하듯이 주변 풍경 그림을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 고정되어 있는 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눈’으로 보는 풍경의 변화를 담아내고자 했다.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드론을 일반인들도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하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화면에 익숙해졌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게임 화면을 통해서 납작해진 세계에 익숙해져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익숙해진 눈으로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여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눈으로 하는 경험이 어디까지 확장되어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1] 이 작업 과정에 대한 고민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emacoral.org/features/myungheeju-easy-read-museum
[2]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한 화면에 담기지 않는 내용들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볼 수 있다.
2022.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쉬운 미술 글쓰기 연습
한승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최근 두 번의 전시를 통해 ‘쉬운 글(Easy Read) 해설’ 제공을 시작했다. 발달 장애인과 정보 약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작품 설명 글을 다시 쓴 것이다. 이 작업은 장애인을 위한 쉬운 해설 제작 프로젝트를 이어온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과 함께 진행하였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 텍스트를 쉬운 언어로 바꾸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쉬운 정보를 만들기 위해 작품이 가진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 국제박물관협회의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뮤지엄의 정의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존의 정의가 오늘날 뮤지엄의 확장된 역할을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9년에 새롭게 제안된 정의에는 ’뮤지엄은 민주적이고 포용적이며 다성적인 공간이다.’, ‘뮤지엄은 참여적이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의 평등, 안녕에 기여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뮤지엄이 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앞장서서 취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해 쉬운 글 해설을 제공하는 정책은 이와 같은 뮤지엄의 새로운 정의에 부합한다.
사실 뮤지엄의 정의와 역할까지 거창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로서 현장에서 일하며 관람객에게 보다 쉬운 글쓰기를 제공하고 싶다는 고민은 늘 있었다. 전시 작품을 설명하는 글은 전시를 보러 오는 다성의 관람객이 전시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해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시 후기로 “현대미술은 어렵고, 텍스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서울시립미술관의 시도가 아주 반갑게 다가왔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글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미술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 글쓰기를 위해서는 우선 시각적인 것을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작품에 담긴 맥락을 해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동시대 철학과 사상, 문화적 배경을 꿰뚫어 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아주 다르다. 나름대로 쉽게 쓴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필자도 항상 글을 쓸 때면 미술 지식이 많은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 사이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쉬운 글쓰기 연습을 시도함으로써 앞으로의 글 쓰는 방향을 점검해 보려 한다. 미술 전시를 찾는 다성의 관람객을 위해서 말이다.

세화미술관 《팬텀시티 Phantom City》전시 도록 삽입글, 2019
* 아래는 과거 한 전시에서 필자가 썼던, 다소 어렵고 추상적으로 쓰인 작품 설명 글을 다듬어 좀 더 쉽게 정리해 본 글이다.
최성록
이번 전시에 출품된 〈스크롤 다운[2] 여행 Scroll Down Journey(2015〉는 컴퓨터로 그린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다. 작가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점의 도시를 그리기 위해 위성사진과 드론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모아 작업했다. 납작하고 긴 그림의 중앙에 길이 나 있고, 그 위로 하얀 자동차 한대가 위쪽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리는 구성의 작품이다. 사막 풍경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숲을 지나 비닐하우스, 발전소 풍경을 거쳐 점차 복잡한 도심 속으로 들어간다. 자세히 살펴보면 도시 풍경 속에서 사고 이전의 세월호가 한강 위에 떠 있기도 하고, 실제 세빛섬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위로 달리는 것 같이 보이는 차는 사실 화면 중앙에 고정되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할 때 화면의 아래에 있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 다운’ 하듯이 주변 풍경 그림을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 고정되어 있는 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눈’으로 보는 풍경의 변화를 담아내고자 했다.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드론을 일반인들도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하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화면에 익숙해졌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게임 화면을 통해서 납작해진 세계에 익숙해져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익숙해진 눈으로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여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눈으로 하는 경험이 어디까지 확장되어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1] 이 작업 과정에 대한 고민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emacoral.org/features/myungheeju-easy-read-museum
[2]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한 화면에 담기지 않는 내용들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볼 수 있다.
2022.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