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미술에 있어 ‘본다’는 것의 의미
젤라씨
미술관은 시각 문화와 이에 관련된 자료를 다루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미술관의 접근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이동성을 떠올린다. 최근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하여 다양한 미술관의 노력이 있었다. 휠체어 접근성이 고려된 미술관 건축이라든지, 휠체어 동선을 생각한 작품과 캡션 디스플레이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발달 장애인을 위한 이지 리드(easy-read) 텍스트 설명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등이 종종 미술관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해 미술관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시각 자료를 다루는 미술관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술관의 관람객,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본다’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미술관에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말로 그들이 미술관의 주요 관람객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미술 작품을 통해 이 작품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감각되는지, 시각이 우리의 신체와 인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왔다. 이러한 긴 미술의 역사에서 시각장애인이 배제되어야만 한다면, 일상과 예술의 격차를 줄여오려고 했던 아방가르드 미술의 움직임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일상과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미술을 느껴보았다면 비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까지 이 미술의 힘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미술관은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에 대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본다’라는 것의 의미에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에 그 어떤 곳보다 적합한 장소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쓰이는 색깔, 텍스쳐, 재료, 매체에 다층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 의미들은 볼 수 없다면 휘발되는 것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동일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자료로는 크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가이드 투어(관람 동선 안내), 점자 텍스트, 그리고 대체 텍스트를 들 수 있다. 가이드 투어와 점자 텍스트는 준비를 통해 마련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대체 텍스트는 시각 자료를 다루는 미술관에서 까다로운 면이 있다. 특히, 동시대 미술에서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이 모든 의미를 다 설명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그리고 단순히 그 형태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작품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사과가 있는 그림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빨간 사과이다”라는 사실 기반의 설명만 봐서는 이 사과가 그림에서 지닌 맥락이나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나아가, 사과가 빨간색임을 본 적이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들에게 빨강의 대체 설명은 무엇인지 우리는 색깔의 인지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본다’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은 경우 전시 기획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다’는 감각이 어려운 이들에게 시각이 아닌 촉각, 청각, 후각 등의 자료를 제공해 미술관은 어둠에 빛을 비춰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미술관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보는’ 행위를 기본으로 하는 미술관에서 ‘본다’는 의미에 대해 질문해보는 계기와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본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식과 태도가 변해야 하는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2022.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시각미술에 있어 ‘본다’는 것의 의미
젤라씨
미술관은 시각 문화와 이에 관련된 자료를 다루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미술관의 접근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이동성을 떠올린다. 최근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하여 다양한 미술관의 노력이 있었다. 휠체어 접근성이 고려된 미술관 건축이라든지, 휠체어 동선을 생각한 작품과 캡션 디스플레이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발달 장애인을 위한 이지 리드(easy-read) 텍스트 설명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등이 종종 미술관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해 미술관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시각 자료를 다루는 미술관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술관의 관람객,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본다’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미술관에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말로 그들이 미술관의 주요 관람객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미술 작품을 통해 이 작품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감각되는지, 시각이 우리의 신체와 인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왔다. 이러한 긴 미술의 역사에서 시각장애인이 배제되어야만 한다면, 일상과 예술의 격차를 줄여오려고 했던 아방가르드 미술의 움직임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일상과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미술을 느껴보았다면 비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까지 이 미술의 힘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미술관은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에 대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본다’라는 것의 의미에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에 그 어떤 곳보다 적합한 장소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쓰이는 색깔, 텍스쳐, 재료, 매체에 다층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 의미들은 볼 수 없다면 휘발되는 것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동일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자료로는 크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가이드 투어(관람 동선 안내), 점자 텍스트, 그리고 대체 텍스트를 들 수 있다. 가이드 투어와 점자 텍스트는 준비를 통해 마련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대체 텍스트는 시각 자료를 다루는 미술관에서 까다로운 면이 있다. 특히, 동시대 미술에서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이 모든 의미를 다 설명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그리고 단순히 그 형태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작품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사과가 있는 그림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빨간 사과이다”라는 사실 기반의 설명만 봐서는 이 사과가 그림에서 지닌 맥락이나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나아가, 사과가 빨간색임을 본 적이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들에게 빨강의 대체 설명은 무엇인지 우리는 색깔의 인지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본다’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은 경우 전시 기획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다’는 감각이 어려운 이들에게 시각이 아닌 촉각, 청각, 후각 등의 자료를 제공해 미술관은 어둠에 빛을 비춰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미술관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보는’ 행위를 기본으로 하는 미술관에서 ‘본다’는 의미에 대해 질문해보는 계기와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본다’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식과 태도가 변해야 하는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2022.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