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Love, 여름의 끝자락에서
한승주

송은 Summer Love 2022 전시전경
유난히 흐린 날이 많던 습한 여름도 어느새 끝자락에 와 있다. 시원하게 식은 바람이 불어오자 반가움과 동시에 불현듯 지나가버린 그 여름날들이 아쉬워진다. 가을이 온다는 건 즉 한 해가 마지막을 향해 다다르고 있다는 뜻이니까.
여름의 끝 무렵 송은에서 《Summer Love》 전시가 열렸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송은 아트큐브 공모에 당선되어 개인전을 가졌던 작가 13명과 제21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자 권아람, 그리고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의 신작까지 선보이는 전시이다. 여름, 그 젊고 찬란한 한 시절의 뜨거운 사랑처럼, 열정을 가득 담은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송은이 새로 건물을 올린 지 어느새 1년이 되었다고 한다.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설계로 탄생한 이 건물은 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 둔 것처럼 보인다. 깎아 놓은 듯 날카로운 외관과 달리 내부는 작가들이 욕심을 마음껏 낼 수 있는 공간이 조목조목 섬세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큰 구조를 노출하며 생겨난 창의적인 공간들 적재적소에 작품이 들어앉았다.
건물 하단부 일부를 쑥 잘라 들어낸 것처럼 조성된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권아람의 작품을 만난다. 통 유리창 덕분에 내외부의 경계가 얇아졌고, 덕분에 그의 작품 〈매스〉와 〈플랫 월스〉는 서로의 이미지를 반영하며 대화를 나눈다. 스크린 속 환영의 이미지가 거울, 유리창, 스크린 표면에 각각 맺히며 그 앞에 선 우리에게 물어온다. ‘당신이 진짜로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하나의 독특한 구조와 마주친다. 계단 구조를 활용하여 반대쪽 벽면을 대형 스크린으로 활용한 공간이다. 계단 한편에 앉아 때마침 상영을 시작한 김민정의 〈골목길로 난 창〉을 본다. 화면과 스크린 아래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번갈아 쳐다보며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때때로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골목길로 난 창문 너머의 세계와 소통해야만 한다.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송은의 전시실은 단아하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신발이 닿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고, 가지런히 정렬된 등이 전시실을 차분히 밝히고 있다. 2층 전시실 초입에서는 주로 도시 풍경 사진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조문희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안쪽 공간에는 특유의 오브제 작업을 확장한 이미정의 설치 작품 〈SET: the fire scene〉이, 그 너머로는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수를 실험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오연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이동하려면 창문 쪽으로 조성된 복도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복도 기능을 겸하는 이 공간은 전시실보다는 좁지만 작품을 설치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한편에는 강민숙의 〈식물 인간〉이 상영되고 있다. 구불구불한 비정형의 형태로 단을 약간 높인 바닥 위 방석에 편히 앉아 작품을 본다. 거리에 버려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돌보는 여정이 왜인지 슬프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조경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나무들이 보이고, 그 위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복도의 반대편, 자연물의 유연한 힘을 표현한 현정윤의 실리콘 조각을 지나 3층에 다다른다. 회화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 지나 왔는데도, 작가들이 탐구하는 회화는 늘 새롭다. 허우중은 한정된 캔버스 화면 위에서 격자와 패턴을 활용하여 질서를 탐구한다. 한성우의 화면에는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몽글몽글한 기억이 재편되고, 나오미의 화면에는 구체적인 내러티브가 담겼다. 김하나는 회화가 놓인 물리적 조건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회화 사이사이에는 공간을 점유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우한나의 패브릭 작품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3D 조형물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 사진으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사유를 불러오는 정영호의 작품, 그리고 기성의 오브제를 전혀 다른 물성으로 제작하여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박지혜의 설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Summer Love》의 마지막은 이건용과 함께였다. 그가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외치며 걸음을 옮기는 바로 그 박자에 맞추어 걸으며 지하 2층에 마련된 작품들을 한동안 감상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램프 모양 그대로 노출된 독특한 공간에서 그렇게 뜨겁고 습했던 여름날을 마무리한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더위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은 찰나와 같아 눈을 감았다 뜨면 우리는 어느새 한 해의 끝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불쑥 든다. 올해의 《Summer Love 2022》는 마지막으로 열린 송은 아트큐브 그룹전이라고 한다. 전시는 마지막을 이야기하지만, 빠르게 흘러온 그 시간들 속에 분명히 담겨있을 열정적인 사랑의 결과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다음 해에, 또 그다음 해에, 계속해서 돌아올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며 유난히 덥고 습했던 올 여름의 끝을 놓아 준다.



송은 Summer Love 2022 전시전경
2022.0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Summer Love, 여름의 끝자락에서
한승주

송은 Summer Love 2022 전시전경
유난히 흐린 날이 많던 습한 여름도 어느새 끝자락에 와 있다. 시원하게 식은 바람이 불어오자 반가움과 동시에 불현듯 지나가버린 그 여름날들이 아쉬워진다. 가을이 온다는 건 즉 한 해가 마지막을 향해 다다르고 있다는 뜻이니까.
여름의 끝 무렵 송은에서 《Summer Love》 전시가 열렸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송은 아트큐브 공모에 당선되어 개인전을 가졌던 작가 13명과 제21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자 권아람, 그리고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의 신작까지 선보이는 전시이다. 여름, 그 젊고 찬란한 한 시절의 뜨거운 사랑처럼, 열정을 가득 담은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송은이 새로 건물을 올린 지 어느새 1년이 되었다고 한다.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설계로 탄생한 이 건물은 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 둔 것처럼 보인다. 깎아 놓은 듯 날카로운 외관과 달리 내부는 작가들이 욕심을 마음껏 낼 수 있는 공간이 조목조목 섬세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의 큰 구조를 노출하며 생겨난 창의적인 공간들 적재적소에 작품이 들어앉았다.
건물 하단부 일부를 쑥 잘라 들어낸 것처럼 조성된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권아람의 작품을 만난다. 통 유리창 덕분에 내외부의 경계가 얇아졌고, 덕분에 그의 작품 〈매스〉와 〈플랫 월스〉는 서로의 이미지를 반영하며 대화를 나눈다. 스크린 속 환영의 이미지가 거울, 유리창, 스크린 표면에 각각 맺히며 그 앞에 선 우리에게 물어온다. ‘당신이 진짜로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하나의 독특한 구조와 마주친다. 계단 구조를 활용하여 반대쪽 벽면을 대형 스크린으로 활용한 공간이다. 계단 한편에 앉아 때마침 상영을 시작한 김민정의 〈골목길로 난 창〉을 본다. 화면과 스크린 아래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번갈아 쳐다보며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때때로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골목길로 난 창문 너머의 세계와 소통해야만 한다.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송은의 전시실은 단아하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신발이 닿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고, 가지런히 정렬된 등이 전시실을 차분히 밝히고 있다. 2층 전시실 초입에서는 주로 도시 풍경 사진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조문희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안쪽 공간에는 특유의 오브제 작업을 확장한 이미정의 설치 작품 〈SET: the fire scene〉이, 그 너머로는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수를 실험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오연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이동하려면 창문 쪽으로 조성된 복도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복도 기능을 겸하는 이 공간은 전시실보다는 좁지만 작품을 설치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한편에는 강민숙의 〈식물 인간〉이 상영되고 있다. 구불구불한 비정형의 형태로 단을 약간 높인 바닥 위 방석에 편히 앉아 작품을 본다. 거리에 버려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돌보는 여정이 왜인지 슬프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조경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나무들이 보이고, 그 위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복도의 반대편, 자연물의 유연한 힘을 표현한 현정윤의 실리콘 조각을 지나 3층에 다다른다. 회화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 지나 왔는데도, 작가들이 탐구하는 회화는 늘 새롭다. 허우중은 한정된 캔버스 화면 위에서 격자와 패턴을 활용하여 질서를 탐구한다. 한성우의 화면에는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몽글몽글한 기억이 재편되고, 나오미의 화면에는 구체적인 내러티브가 담겼다. 김하나는 회화가 놓인 물리적 조건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회화 사이사이에는 공간을 점유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우한나의 패브릭 작품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3D 조형물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한 사진으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사유를 불러오는 정영호의 작품, 그리고 기성의 오브제를 전혀 다른 물성으로 제작하여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박지혜의 설치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Summer Love》의 마지막은 이건용과 함께였다. 그가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외치며 걸음을 옮기는 바로 그 박자에 맞추어 걸으며 지하 2층에 마련된 작품들을 한동안 감상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램프 모양 그대로 노출된 독특한 공간에서 그렇게 뜨겁고 습했던 여름날을 마무리한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더위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은 찰나와 같아 눈을 감았다 뜨면 우리는 어느새 한 해의 끝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불쑥 든다. 올해의 《Summer Love 2022》는 마지막으로 열린 송은 아트큐브 그룹전이라고 한다. 전시는 마지막을 이야기하지만, 빠르게 흘러온 그 시간들 속에 분명히 담겨있을 열정적인 사랑의 결과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다음 해에, 또 그다음 해에, 계속해서 돌아올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며 유난히 덥고 습했던 올 여름의 끝을 놓아 준다.



송은 Summer Love 2022 전시전경
2022.0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