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고른 장소
정희라
장소는 시간을 기억하고 폐허는 그 시간을 저장한다. 우리의 시간이 장소에 묻어날 때 그 장소는 시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기억이 된다. 이설의 그림에는 효용을 상실한 장소들이 가지는 적막이 가득하다. 목욕탕, 놀이공원, 놀이터. 이곳들은 사람들이 간혹 오가던 장소가 아닌 특정적인 목적이 있어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을 장소들이다. 이설이 제안하는 장면들은 우리의 사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촉발하는 장소들로 특정된다. 무엇이 남을 것인지는 시간이 가려낸다는 독일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말을 ‘장소’에 적용해 본다면 이설은 시간이 고른 장소를 보물찾기하듯 발견하는 여정 가운데 있다.

이설, 그 자리 그대로, 2022, 장지에 과슈, 130×162cm
시간의 틈, 층위의 흔적 오려내기
이 여정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세계와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세계가 모두 담겨있어, 시간의 틈 사이에 존재하는 두 세계 간의 간극에 주목하게 한다. 이설이 다시 찾아간 장소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잘라낸 것처럼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번 개인전에서 이설이 선보이는 <오리기> 기법은 이런 경험에서 출발한다. 마치 유쾌한 놀이와도 같이 ‘시간의 틈’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이설은 <Cut_out 4-1>(2022)에서 사물을 오려낸 것처럼 하얗게 지웠다. 정확히는 하얗게 지워짐을 ‘묘사한다’. <그 자리 그대로>(2022) 작품 속 낡은 농구 골대의 주변은 마치 오려내었다가 다시 붙인 것처럼 ‘그려냈다’. 농구 골대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인지,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인지, 존재하고 사라진 두 세계가 겹쳐진 모양새이다. 결과적으로 그 두 세계 사이의 ‘틈’을 오리고 겹쳐낸 것으로 표현한다.
두 세계 모두를 드러냄으로써 강조하는 것은 시간과 기억이다. 사람은 기억으로 존재한다. 시간에 따라 켜켜이 쌓이는 기억의 흔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때로 그 층위의 하나를 들추어본다. 텅 빈 폐허에서 서사가 생기는 것은 그 장소에 머물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기억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설은 사적인 시간이 쌓였을 장소가 아닌 비교적 공공의 성격의 장소를 찾아 선택하는데 개인적인 서사를 공공의 역사로 확장하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든다. 그리하여 그 장소와 사물에서 느낀 감정보다 그의 그림에서 느끼는 우리의 감정을 앞세워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넘나드는 영역으로 넓혀간다. 이설이 폐허가 된 놀이터에 방문하는 것 역시 그곳에 저장된 시간의 흔적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의 시선은 사물에 머물고 사물은 이야기를 건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의자는 그 의자에 앉았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가 지나온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의자를 기억하게 한다.

이설, 브라운관, 2022, 장지에 과슈, 72.7×72.7cm

이설, 손잡이, 2022, 장지에 과슈, 65×53cm
뚜렷한 존재들
공간을 넘나드는 개념처럼 이설은 색과 붓으로 그림의 공간을 다루는 데 있어 과감하다. 강한 색과 망설임 없는 터치로 출발하기에 붓의 지나간 흔적들은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다. 붓의 ‘성격’은 투명하지만 장지에 스며든 과슈의 ‘색’은 불투명하다. 진하면서도 포근한 과슈의 색들은 이설이 장소에서 선택한 사물 하나하나를 분명히 짚어가듯이 뚜렷하다.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뽐내는 그림 속 사물들은 보는 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문고리의 문양, 뜯어진 비닐지붕, 무성한 잡초와 같은 것들이 죽어있듯 삭막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듯 느껴진다. 우리가 시선을 거두면 움직이기라도 할 것처럼.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간이 상실감이 가득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서 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이제는 과거에만 갇혀 있는 것이 적당히 시릴 뿐이다. 폐허를 바라보는 이설의 시선이 자신의 따뜻했던 기억의 조각을 꺼내어보듯 달콤하기에 우리에게 제시된 그 장면의 분위기 또한 그러하다.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라진 곳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이 공간의 마지막 방문자라면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이설은 아무 방해 없이 그 공간을 차지하며 맘껏 누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이설의 개인전은 시간이 선택하여 남겨진 공간에서 이설이 선택하여 살아난 사물들을 지켜보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설, 멈춘 튜브, 2022, 장지에 과슈, 116×90.5cm
2022.0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시간이 고른 장소
정희라
장소는 시간을 기억하고 폐허는 그 시간을 저장한다. 우리의 시간이 장소에 묻어날 때 그 장소는 시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기억이 된다. 이설의 그림에는 효용을 상실한 장소들이 가지는 적막이 가득하다. 목욕탕, 놀이공원, 놀이터. 이곳들은 사람들이 간혹 오가던 장소가 아닌 특정적인 목적이 있어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을 장소들이다. 이설이 제안하는 장면들은 우리의 사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촉발하는 장소들로 특정된다. 무엇이 남을 것인지는 시간이 가려낸다는 독일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말을 ‘장소’에 적용해 본다면 이설은 시간이 고른 장소를 보물찾기하듯 발견하는 여정 가운데 있다.

이설, 그 자리 그대로, 2022, 장지에 과슈, 130×162cm
시간의 틈, 층위의 흔적 오려내기
이 여정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세계와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세계가 모두 담겨있어, 시간의 틈 사이에 존재하는 두 세계 간의 간극에 주목하게 한다. 이설이 다시 찾아간 장소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잘라낸 것처럼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번 개인전에서 이설이 선보이는 <오리기> 기법은 이런 경험에서 출발한다. 마치 유쾌한 놀이와도 같이 ‘시간의 틈’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이설은 <Cut_out 4-1>(2022)에서 사물을 오려낸 것처럼 하얗게 지웠다. 정확히는 하얗게 지워짐을 ‘묘사한다’. <그 자리 그대로>(2022) 작품 속 낡은 농구 골대의 주변은 마치 오려내었다가 다시 붙인 것처럼 ‘그려냈다’. 농구 골대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인지,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인지, 존재하고 사라진 두 세계가 겹쳐진 모양새이다. 결과적으로 그 두 세계 사이의 ‘틈’을 오리고 겹쳐낸 것으로 표현한다.
두 세계 모두를 드러냄으로써 강조하는 것은 시간과 기억이다. 사람은 기억으로 존재한다. 시간에 따라 켜켜이 쌓이는 기억의 흔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때로 그 층위의 하나를 들추어본다. 텅 빈 폐허에서 서사가 생기는 것은 그 장소에 머물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기억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설은 사적인 시간이 쌓였을 장소가 아닌 비교적 공공의 성격의 장소를 찾아 선택하는데 개인적인 서사를 공공의 역사로 확장하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든다. 그리하여 그 장소와 사물에서 느낀 감정보다 그의 그림에서 느끼는 우리의 감정을 앞세워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넘나드는 영역으로 넓혀간다. 이설이 폐허가 된 놀이터에 방문하는 것 역시 그곳에 저장된 시간의 흔적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의 시선은 사물에 머물고 사물은 이야기를 건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의자는 그 의자에 앉았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가 지나온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의자를 기억하게 한다.

이설, 브라운관, 2022, 장지에 과슈, 72.7×72.7cm

이설, 손잡이, 2022, 장지에 과슈, 65×53cm
뚜렷한 존재들
공간을 넘나드는 개념처럼 이설은 색과 붓으로 그림의 공간을 다루는 데 있어 과감하다. 강한 색과 망설임 없는 터치로 출발하기에 붓의 지나간 흔적들은 고스란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다. 붓의 ‘성격’은 투명하지만 장지에 스며든 과슈의 ‘색’은 불투명하다. 진하면서도 포근한 과슈의 색들은 이설이 장소에서 선택한 사물 하나하나를 분명히 짚어가듯이 뚜렷하다.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뽐내는 그림 속 사물들은 보는 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문고리의 문양, 뜯어진 비닐지붕, 무성한 잡초와 같은 것들이 죽어있듯 삭막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듯 느껴진다. 우리가 시선을 거두면 움직이기라도 할 것처럼.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간이 상실감이 가득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서 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이제는 과거에만 갇혀 있는 것이 적당히 시릴 뿐이다. 폐허를 바라보는 이설의 시선이 자신의 따뜻했던 기억의 조각을 꺼내어보듯 달콤하기에 우리에게 제시된 그 장면의 분위기 또한 그러하다.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라진 곳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이 공간의 마지막 방문자라면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이설은 아무 방해 없이 그 공간을 차지하며 맘껏 누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이설의 개인전은 시간이 선택하여 남겨진 공간에서 이설이 선택하여 살아난 사물들을 지켜보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설, 멈춘 튜브, 2022, 장지에 과슈, 116×90.5cm
2022.09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