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모든 시간-고사리
한승주
어둑어둑한 전시장 안에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무엇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 자세히 보면 반짝이는 별들은 다름 아닌 고추, 배추, 무청, 콩깍지 등 각종 식물과 농작물을 말린 것들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조성된 벽면에는 동그란 해와 주기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달이 서로 마주보며 천천히 움직이고, 귓가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바로 고사리 작가의 작품 〈해와 달〉, 〈땅의 별〉이다.


고사리, 해와 달/땅의 별, 2022, 미디어 설치, 사운드, 가변크기, 예술의전당 《영원의 시작: ZERO》 전시전경
작가는 몇 년 전, 자급자족의 꿈을 안고 서울 외곽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마을 공동 텃밭의 일부를 일구며 한 생명이 언 땅에서 싹을 틔워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다시 떨어지는 순환의 과정을 몸소 경험했다. 모든 과정이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가 가장 마음을 빼앗긴 것은 다름 아닌 시들어 땅에 떨어진 것들이었다. 마치 생을 다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다음 생의 시간을 남겨놓은 생명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거두어 깨끗이 씻고 말려 천장에 걸고 ‘땅의 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주었다.
작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들을 해오고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주로 주변의 버려지고 방치되어온 사물과 공간들이었다. 생활 속에서 매일 나오는 쓰레기를 기록해 일기를 쓰는가 하면, 오랜 시간 비어있던 주택을 비닐로 감싸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비닐에 숨을 담아 묶어 본을 뜨거나 공기를 담은 비닐 수 개로 담을 쌓기도 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곧 사라지고 말 것들을 잠시 붙잡아 시간을 유예하는 작업들이었다. 그리고 이 관심사는 농사를 짓고 있는 현재로 이어져 온다. 이제 그는 직접 생명을 키우며 자연의 순환주기를 이해하고,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성격도, 작업 방식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마저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바쁜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들을 작가는 알아보고, 귀히 여기며, 그 아름다움을 가장 잘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참 따뜻하고, 때때로 공허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 버려지고 사라진, 생명을 꽃피우고 남은 것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모든 시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삶의 찬란한 빛이 아직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22.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시간-고사리
한승주
어둑어둑한 전시장 안에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무엇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 자세히 보면 반짝이는 별들은 다름 아닌 고추, 배추, 무청, 콩깍지 등 각종 식물과 농작물을 말린 것들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조성된 벽면에는 동그란 해와 주기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달이 서로 마주보며 천천히 움직이고, 귓가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바로 고사리 작가의 작품 〈해와 달〉, 〈땅의 별〉이다.


고사리, 해와 달/땅의 별, 2022, 미디어 설치, 사운드, 가변크기, 예술의전당 《영원의 시작: ZERO》 전시전경
작가는 몇 년 전, 자급자족의 꿈을 안고 서울 외곽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마을 공동 텃밭의 일부를 일구며 한 생명이 언 땅에서 싹을 틔워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다시 떨어지는 순환의 과정을 몸소 경험했다. 모든 과정이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가 가장 마음을 빼앗긴 것은 다름 아닌 시들어 땅에 떨어진 것들이었다. 마치 생을 다해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다음 생의 시간을 남겨놓은 생명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거두어 깨끗이 씻고 말려 천장에 걸고 ‘땅의 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주었다.
작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들을 해오고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주로 주변의 버려지고 방치되어온 사물과 공간들이었다. 생활 속에서 매일 나오는 쓰레기를 기록해 일기를 쓰는가 하면, 오랜 시간 비어있던 주택을 비닐로 감싸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비닐에 숨을 담아 묶어 본을 뜨거나 공기를 담은 비닐 수 개로 담을 쌓기도 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곧 사라지고 말 것들을 잠시 붙잡아 시간을 유예하는 작업들이었다. 그리고 이 관심사는 농사를 짓고 있는 현재로 이어져 온다. 이제 그는 직접 생명을 키우며 자연의 순환주기를 이해하고,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성격도, 작업 방식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마저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바쁜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들을 작가는 알아보고, 귀히 여기며, 그 아름다움을 가장 잘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참 따뜻하고, 때때로 공허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 버려지고 사라진, 생명을 꽃피우고 남은 것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모든 시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삶의 찬란한 빛이 아직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22.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