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없이 생긴 서사
정희라
<허수영 개인전> 전시 전경
별다른 부제 없이 ‘허수영 개인전’이라 명명된 전시가 개최되었다.[1] 전시 오픈 후, <노동집약>에 포커스를 맞춘 전시 리뷰와 기사가 이어졌다. 허수영 작가의 작업은 전시장 입구 전면에 걸린 대형 작품에서부터 그 응축된 시간과 물질이 뚜렷이 보인다. 전시는 캔버스 속에서 켜켜이 느껴지는 레이어와 물감뿐 아니라 화면에 쌓인 수많은 소재에 시선을 빼앗겨 작품 제목을 찾아보는 것도 잊게 하였다.[2] 같이 선보인 다른 작품들 역시 제목이 없었는데,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감상하는 데에 충분했던 걸까?
대부분의 작품이 무제[3]라는, 관람이 끝나고 알아차린 사실이 오히려 전시의 극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자연스레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구상을 넘어 추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이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 본다. 전시 제목과 작품명에 의지하지 않고 전시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4]은 작품 자체로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 화면에는 이야기로 구성된 일종의 드라마와 같은 내러티브는 없다. 소재의 나열과 그 표현방식이 주는 압박감이 다른 유형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데, 그림 안에 작가가 설정한 서사가 아닌 그림 밖에서 보는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서사에 가깝다. 여기에서의 서사는 소설과 같은 문학이 가지는 시간, 공간, 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뜻하고,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하여 방향을 달리했을 때는 '기록/기술하다'의 서사까지도 아우르며 ‘허수영의 재현과 창조’에 대한 해석까지 흘러갈 수도 있겠다.
소재 면에서도 의미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캔버스 화면의 공간space이 우주space로 채워진 것을 보며 기이한 느낌을 받는 것은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유한한 캔버스로 끌어왔기 때문이려나. 깨알 같은 행성들이 모래알처럼 쌓여있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다워 바라보다가 제멋대로 작게 쪼개진 조개껍데기들 같아 새삼스럽다. 4미터가 넘는 캔버스에 10센티미터 정도의 우주 행성들을 가득 그려 넣으면서 그 색과 모양이 한 번이라도 겹치지 않게 다르게 표현하다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작가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나 잘 느껴져, 그림의 소리를 무던히 넘길 재간이 없다.
<허수영 개인전> 전시 전경
허수영은 중복되는 이미지들에 개별적인 고유성을 부여하여 단순 나열과 중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화면 가득 채워진 이미지들에 아득해지다가 차별화된 모양새에 이끌려 어느새 하나하나 뜯어보게 한다. 꽃이구나 하고 보다가 별임을 깨닫고, 숲이구나 하다가 버섯을 따라 걷게 한다. 그리고는 디테일한 표현에 혼이 빠질 때쯤 모든 것이 뒤섞인 공간을 내보인다. 이렇게 보는 이들을 이끌어 무한한 우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꽉 찬 것으로 텅 빈 것을 이야기하고, 수많은 것으로 셀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HEO Suyoung, Space 03, Oil on Korean paper, 162.1x227.3cm, 2022
Photo by Jang Hwal Lim
HEO Suyoung, Untitled 09, Oil on canvas, 117x91cm, 2018
Photo by Jang Hwal Lim
[1] <허수영 개인전>은 2022년 10월 14일부터 11월 19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최.
[2] 전시서문과 전시정보는 QR코드로 제공되었으며, QR코드 사용이 쉽지 않은 관람객은 종이 핸드 아웃 요청이 가능.
[3] 무제인 작품이 많았으나, 정확히는 Untitled 02, 03, 04, 09,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Space 01, 03, 04, Grass 04, 05, Taipei 01, Yangsandong 05, Fungi.
[4] 혹은 작가의 자신감?!
Within his work of art, we cannot see any narrative composed of stories, which can be called as a sort of drama. The arrangement of the subjects and the pressure from the way of expression create a different type of narrative, which is closer to the narrative created by the observers themselves from the outside of the picture, rather than the internal narrative set by the artist himself. This narrative apparently means a story led by time, space, and events from the literature such as novels. But once its meaning is slightly more expanded with different angle, it may even encompass the meaning of transcription or description, and then, furthermore, it may be even led to an interpretation of ‘the reproduction and creation by Heo Suyoung’.
We can also interpret this work of art in various ways by expanding the meaning boundary in terms of subject as well. Is it because a subject of the universe that is considered to be infinite has been brought into a finite canvas, when we feel bizarre seeing that the canvas space is filled with cosmic space? Once we gaze the minute-sized planets being piled up like grains of sand as they look so beautiful like jewels, and then so suddenly, we realize anew that they look like cluttered small pieces of broken seashells. How could he represent each of planets in all different ways without repeating any identical colors or shapes ever, while fully filling the over 4-meter-wide canvas with about 10 centimeters-large space planets? In such way, we can truly feel the artist's attitude toward the painting, without a word of explanation. Therefore, there is no way to go through the message from the painting without difficulties.
Heo Suyoung is deviating from simple arrangement and superposition by giving individual uniqueness to repeated images. Images filling up the screen let you feel lost in a distant space, but soon after, the differentiated shapes attract you and make you observe them thoroughly one by one. Once you think it's a flower, and then you realize it's a star, and once you think it's a forest, and then you walk along the mushroom. After that, by the time you are infatuated with the detailed expression and representation, a space where everything is mixed up comes out. In this way, it guides the viewers into the infinite universe. Being full indicates being empty, and being numerous conveys being innumerable.
Translated by Meehye Kim
2022.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서사 없이 생긴 서사
정희라
<허수영 개인전> 전시 전경
별다른 부제 없이 ‘허수영 개인전’이라 명명된 전시가 개최되었다.[1] 전시 오픈 후, <노동집약>에 포커스를 맞춘 전시 리뷰와 기사가 이어졌다. 허수영 작가의 작업은 전시장 입구 전면에 걸린 대형 작품에서부터 그 응축된 시간과 물질이 뚜렷이 보인다. 전시는 캔버스 속에서 켜켜이 느껴지는 레이어와 물감뿐 아니라 화면에 쌓인 수많은 소재에 시선을 빼앗겨 작품 제목을 찾아보는 것도 잊게 하였다.[2] 같이 선보인 다른 작품들 역시 제목이 없었는데,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감상하는 데에 충분했던 걸까?
대부분의 작품이 무제[3]라는, 관람이 끝나고 알아차린 사실이 오히려 전시의 극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자연스레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구상을 넘어 추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이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 본다. 전시 제목과 작품명에 의지하지 않고 전시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4]은 작품 자체로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 화면에는 이야기로 구성된 일종의 드라마와 같은 내러티브는 없다. 소재의 나열과 그 표현방식이 주는 압박감이 다른 유형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데, 그림 안에 작가가 설정한 서사가 아닌 그림 밖에서 보는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서사에 가깝다. 여기에서의 서사는 소설과 같은 문학이 가지는 시간, 공간, 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뜻하고, 조금 더 의미를 확장하여 방향을 달리했을 때는 '기록/기술하다'의 서사까지도 아우르며 ‘허수영의 재현과 창조’에 대한 해석까지 흘러갈 수도 있겠다.
소재 면에서도 의미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캔버스 화면의 공간space이 우주space로 채워진 것을 보며 기이한 느낌을 받는 것은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여겨지는 주제를 유한한 캔버스로 끌어왔기 때문이려나. 깨알 같은 행성들이 모래알처럼 쌓여있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다워 바라보다가 제멋대로 작게 쪼개진 조개껍데기들 같아 새삼스럽다. 4미터가 넘는 캔버스에 10센티미터 정도의 우주 행성들을 가득 그려 넣으면서 그 색과 모양이 한 번이라도 겹치지 않게 다르게 표현하다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작가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나 잘 느껴져, 그림의 소리를 무던히 넘길 재간이 없다.
<허수영 개인전> 전시 전경
허수영은 중복되는 이미지들에 개별적인 고유성을 부여하여 단순 나열과 중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화면 가득 채워진 이미지들에 아득해지다가 차별화된 모양새에 이끌려 어느새 하나하나 뜯어보게 한다. 꽃이구나 하고 보다가 별임을 깨닫고, 숲이구나 하다가 버섯을 따라 걷게 한다. 그리고는 디테일한 표현에 혼이 빠질 때쯤 모든 것이 뒤섞인 공간을 내보인다. 이렇게 보는 이들을 이끌어 무한한 우주로 들어가는 것이다. 꽉 찬 것으로 텅 빈 것을 이야기하고, 수많은 것으로 셀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HEO Suyoung, Space 03, Oil on Korean paper, 162.1x227.3cm, 2022
Photo by Jang Hwal Lim
HEO Suyoung, Untitled 09, Oil on canvas, 117x91cm, 2018
Photo by Jang Hwal Lim
[1] <허수영 개인전>은 2022년 10월 14일부터 11월 19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최.
[2] 전시서문과 전시정보는 QR코드로 제공되었으며, QR코드 사용이 쉽지 않은 관람객은 종이 핸드 아웃 요청이 가능.
[3] 무제인 작품이 많았으나, 정확히는 Untitled 02, 03, 04, 09,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Space 01, 03, 04, Grass 04, 05, Taipei 01, Yangsandong 05, Fungi.
[4] 혹은 작가의 자신감?!
Within his work of art, we cannot see any narrative composed of stories, which can be called as a sort of drama. The arrangement of the subjects and the pressure from the way of expression create a different type of narrative, which is closer to the narrative created by the observers themselves from the outside of the picture, rather than the internal narrative set by the artist himself. This narrative apparently means a story led by time, space, and events from the literature such as novels. But once its meaning is slightly more expanded with different angle, it may even encompass the meaning of transcription or description, and then, furthermore, it may be even led to an interpretation of ‘the reproduction and creation by Heo Suyoung’.
We can also interpret this work of art in various ways by expanding the meaning boundary in terms of subject as well. Is it because a subject of the universe that is considered to be infinite has been brought into a finite canvas, when we feel bizarre seeing that the canvas space is filled with cosmic space? Once we gaze the minute-sized planets being piled up like grains of sand as they look so beautiful like jewels, and then so suddenly, we realize anew that they look like cluttered small pieces of broken seashells. How could he represent each of planets in all different ways without repeating any identical colors or shapes ever, while fully filling the over 4-meter-wide canvas with about 10 centimeters-large space planets? In such way, we can truly feel the artist's attitude toward the painting, without a word of explanation. Therefore, there is no way to go through the message from the painting without difficulties.
Heo Suyoung is deviating from simple arrangement and superposition by giving individual uniqueness to repeated images. Images filling up the screen let you feel lost in a distant space, but soon after, the differentiated shapes attract you and make you observe them thoroughly one by one. Once you think it's a flower, and then you realize it's a star, and once you think it's a forest, and then you walk along the mushroom. After that, by the time you are infatuated with the detailed expression and representation, a space where everything is mixed up comes out. In this way, it guides the viewers into the infinite universe. Being full indicates being empty, and being numerous conveys being innumerable.
Translated by Meehye Kim
2022.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