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의 구조, 시선 해체의 장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두 세계가 마주 닿는 경계인 창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고 연결한다. 장하윤의 창은 그 주변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주변부뿐 아니라 창 속에도 구체적인 풍경이 없어 서사의 단서를 찾을 수 없다. 그의 창문을 향해 서 있는 우리는 창 안의 세상에 놓인 것일까, 창밖의 세상에 놓인 것일까.
내면과 외면, 두 세계가 합하여진 듯한 그의 창과 창 주변 공간은 화가의 창이 대개 그러하듯 우리의 심리적 풍경을 드러내는 듯하다. 창문이 불러일으키는 상념들은 개방된 세계에 대한 동경, 소통의 욕구, 그저 내면에 머무르고자 하는 관조 사이를 오간다. 이 창은 형상의 묘사로 보이는 것이 아닌, 색의 빛으로 떠오른다. 색의 레이어가 쌓인 주변부는 형태가 아닌 빛의 조각들이 부유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유일한 형상인 네모꼴만이 드러난다.
이 레이어를 페이지로 본다면, 창 안은 빈 페이지이며, 창 주변은 포개진 페이지들이다. 색으로 빚어진 빛은 화면 너머를 바라보고, 형상의 내면을 환기하며 시간을 머무르게 하는데, 그 무엇도 확실치 않아 무엇보다 사물의 부재를 강조한다. 이 부재로 인해 우리의 시선은 화면 위 어디에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맴돌게 된다. 이렇게 단박에 포착할 수 없는 이 주변부의 공간은 명확한 이미지도, 이야기의 출발도 없이 다만 서서히 감각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투명하게 겹친 붓질,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사각의 형상들, 그리고 그 위에 내려앉은 시간의 여운들이 분위기(atmosphere)를 형성한다. 특정한 냄새, 습기, 햇빛의 각도, 바람 소리의 흔적 같은 감각의 파편들이 무의식에 숨어 있던 보이지 않는 장소를 불러낸다.
회화사에서 창문은 신화를 위한 빛의 표현 수단에서 공간 확장을 위한 오브제로, 그리고 독립된 주제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가 변화 되어왔다. 개방과 확장, 팽창, 그리고 폐쇄까지 창은 화가들에게 그의 심리적 광경을 표현하기 좋은 수단이 된다. 열린 창 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닫친 창이 만들어 내는 어둠의 순간들이 대표적이다.
이와 다르게 장하윤의 창이 특별한 이유는 일반적인 창문을 벗어난 창이기 때문이다. 그의 창은 열려있기도 하며 닫혀 있기도 하다. 빛나기 때문에 열려있고, 플랫(flat)하기 때문에 닫혀 있다. 그리고 비어 있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백이다. 그러다 보니 프레임만 남았다. 프레임 안과는 달리 프레임 밖은 풍성하다. 물기를 머금은 물감층이 두터워 여러 색이 겹쳐 보인다. 투명하나 진하다. 점성이 옅어서 불투명하지 않다.
개방과 폐쇄 사이에 깊은 투명함이 맴돈다. 이 무한한 사면체들은 과연 창문일 뿐일까. 현실감을 초월한 무한대의 단순한 프레임들은 우리가 접하는 야경의 화려한 불빛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존재로, 여기저기의 눈으로, 작가의 입으로, 결국에는 우리의 마음으로 보인다. 실재하는 풍경임을 암시하는 구조적 장치들은 규격화된 건물들 사이로 반사되는 빛처럼 반복되는 형태들이다. 그 사이를 스쳐 지나는 빗질과 같은 층들은 바람의 모양, 그 세기로 표현되어 있다. 변화하는 바람의 흔적. 이것이 신화도 아닌, 일상도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초월적인 광경임을 표현한다. 빛과 공기가 반복되지만 바람이 불규칙하여 세 요소는 제 의지로 살아 움직인다.
지금껏 살펴보았듯, 장하윤의 회화에서 창문은 구체적인 건축 요소로 제시되지 않는다. 이때의 창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형상 이전의 감정이 서식하는 여백이 된다. 강조하자면, 작가는 창을 그리기보다는 창이 있었던 자리를 드러낸다. 초기 작업에서 장하윤은 비교적 구체적인 실내 공간을 그렸다. 가구가 있는 공간은 그곳이 누군가의 내밀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 순간에도 창의 실물은 보이지 않는다. 창의 그림자뿐이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드러날 뿐, 미루어 짐작건대 커다란 창은 보이지 않는 곳에 비켜 있다. 그의 작업에서 그러한 실내의 커다란 하나의 창은 점차 밖에서 바라본 수많은 작은 창들로 바뀌어 갔다. 안에서 바라본 창에서, 밖에서 바라본 창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한대의 창들이 그 위치가 전복되며 함께 등장한다.
여기서 건축적 요소가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건축적 구조를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표현은 매우 구조적이다. 작가는 과거 설치 작업에서 창문을 보다 물리적인 구조물로 표현하였다. 공간을 가르는 창, 빛이 반사되거나 굴절되는 표면은 체험되는 분위기를 생성하였다. 관람자는 그 창문 구조 사이를 시각적으로나마 다가가며, 그 사이를 통과하고 빛과 그림자의 틈을 직접적으로 만났다.
‘틀’과 같은 프레임은 평면 작업으로 옮겨가며 더욱 강조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창문은 도상(icon)에 그치지 않고, ‘이차 프레임(secondary frame)’으로서도 기능하게 되었다. 창문은 하나의 형상으로서 화면 안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의 경계를 만드는 장치, 즉 보는 이의 시선을 재조직하는 프레임 속 프레임이 된다. 이는 이미지 내부에 또 하나의, 혹은 수많은 틀을 삽입함으로써 시선을 분절하거나 유도하면서도, 동시에 관람자의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그 창은 사라진 공간이 머물렀던 자리를 감각하게 하며, 잊힌 시간의 빛이 다시 떠오르는 감정의 입구로 기능한다. 이에 대한 해석을 정동(affect) 개념에 비춰본다면, 밀도 높은 원초적인 감각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그의 창문은 시간 속의 감정이 응결된 감각의 표면이다. 그림 속 화면들은 정동이 남긴 궤적처럼 다층적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장하윤의 작업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를 묻는 중첩된 프레임을 제안한다. 공간을 가르는 창들은 장소성과 비장소성 사이, 내부와 외부의 경계, 몸의 위치와 심리적 틈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당신이 빛의 구조에 다가가는 방식을 묻는다. 반복되는 프레임과 주변부의 불규칙성은 그림자의 떨림, 온도의 흐름, 바람의 강도와 위치처럼 분위기(atmosphere)의 비언어적 요소들을 느끼게 한다. 이 창문들은 시선의 방향을 끊임없이 흔드는 다중 프레임으로 놓인다. 장하윤은 이 프레임을 회화와 설치(화면을 세우는 형식까지 포함한)라는 두 매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빛의 여운을 공간 속에 흔들리는 구조로 새기면서.
2025.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ugust.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프레임의 구조, 시선 해체의 장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두 세계가 마주 닿는 경계인 창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고 연결한다. 장하윤의 창은 그 주변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주변부뿐 아니라 창 속에도 구체적인 풍경이 없어 서사의 단서를 찾을 수 없다. 그의 창문을 향해 서 있는 우리는 창 안의 세상에 놓인 것일까, 창밖의 세상에 놓인 것일까.
내면과 외면, 두 세계가 합하여진 듯한 그의 창과 창 주변 공간은 화가의 창이 대개 그러하듯 우리의 심리적 풍경을 드러내는 듯하다. 창문이 불러일으키는 상념들은 개방된 세계에 대한 동경, 소통의 욕구, 그저 내면에 머무르고자 하는 관조 사이를 오간다. 이 창은 형상의 묘사로 보이는 것이 아닌, 색의 빛으로 떠오른다. 색의 레이어가 쌓인 주변부는 형태가 아닌 빛의 조각들이 부유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유일한 형상인 네모꼴만이 드러난다.
이 레이어를 페이지로 본다면, 창 안은 빈 페이지이며, 창 주변은 포개진 페이지들이다. 색으로 빚어진 빛은 화면 너머를 바라보고, 형상의 내면을 환기하며 시간을 머무르게 하는데, 그 무엇도 확실치 않아 무엇보다 사물의 부재를 강조한다. 이 부재로 인해 우리의 시선은 화면 위 어디에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맴돌게 된다. 이렇게 단박에 포착할 수 없는 이 주변부의 공간은 명확한 이미지도, 이야기의 출발도 없이 다만 서서히 감각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투명하게 겹친 붓질,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사각의 형상들, 그리고 그 위에 내려앉은 시간의 여운들이 분위기(atmosphere)를 형성한다. 특정한 냄새, 습기, 햇빛의 각도, 바람 소리의 흔적 같은 감각의 파편들이 무의식에 숨어 있던 보이지 않는 장소를 불러낸다.
회화사에서 창문은 신화를 위한 빛의 표현 수단에서 공간 확장을 위한 오브제로, 그리고 독립된 주제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가 변화 되어왔다. 개방과 확장, 팽창, 그리고 폐쇄까지 창은 화가들에게 그의 심리적 광경을 표현하기 좋은 수단이 된다. 열린 창 사이로 비추는 햇살과 닫친 창이 만들어 내는 어둠의 순간들이 대표적이다.
이와 다르게 장하윤의 창이 특별한 이유는 일반적인 창문을 벗어난 창이기 때문이다. 그의 창은 열려있기도 하며 닫혀 있기도 하다. 빛나기 때문에 열려있고, 플랫(flat)하기 때문에 닫혀 있다. 그리고 비어 있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백이다. 그러다 보니 프레임만 남았다. 프레임 안과는 달리 프레임 밖은 풍성하다. 물기를 머금은 물감층이 두터워 여러 색이 겹쳐 보인다. 투명하나 진하다. 점성이 옅어서 불투명하지 않다.
개방과 폐쇄 사이에 깊은 투명함이 맴돈다. 이 무한한 사면체들은 과연 창문일 뿐일까. 현실감을 초월한 무한대의 단순한 프레임들은 우리가 접하는 야경의 화려한 불빛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존재로, 여기저기의 눈으로, 작가의 입으로, 결국에는 우리의 마음으로 보인다. 실재하는 풍경임을 암시하는 구조적 장치들은 규격화된 건물들 사이로 반사되는 빛처럼 반복되는 형태들이다. 그 사이를 스쳐 지나는 빗질과 같은 층들은 바람의 모양, 그 세기로 표현되어 있다. 변화하는 바람의 흔적. 이것이 신화도 아닌, 일상도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초월적인 광경임을 표현한다. 빛과 공기가 반복되지만 바람이 불규칙하여 세 요소는 제 의지로 살아 움직인다.
지금껏 살펴보았듯, 장하윤의 회화에서 창문은 구체적인 건축 요소로 제시되지 않는다. 이때의 창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형상 이전의 감정이 서식하는 여백이 된다. 강조하자면, 작가는 창을 그리기보다는 창이 있었던 자리를 드러낸다. 초기 작업에서 장하윤은 비교적 구체적인 실내 공간을 그렸다. 가구가 있는 공간은 그곳이 누군가의 내밀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 순간에도 창의 실물은 보이지 않는다. 창의 그림자뿐이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드러날 뿐, 미루어 짐작건대 커다란 창은 보이지 않는 곳에 비켜 있다. 그의 작업에서 그러한 실내의 커다란 하나의 창은 점차 밖에서 바라본 수많은 작은 창들로 바뀌어 갔다. 안에서 바라본 창에서, 밖에서 바라본 창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한대의 창들이 그 위치가 전복되며 함께 등장한다.
여기서 건축적 요소가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건축적 구조를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표현은 매우 구조적이다. 작가는 과거 설치 작업에서 창문을 보다 물리적인 구조물로 표현하였다. 공간을 가르는 창, 빛이 반사되거나 굴절되는 표면은 체험되는 분위기를 생성하였다. 관람자는 그 창문 구조 사이를 시각적으로나마 다가가며, 그 사이를 통과하고 빛과 그림자의 틈을 직접적으로 만났다.
‘틀’과 같은 프레임은 평면 작업으로 옮겨가며 더욱 강조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창문은 도상(icon)에 그치지 않고, ‘이차 프레임(secondary frame)’으로서도 기능하게 되었다. 창문은 하나의 형상으로서 화면 안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의 경계를 만드는 장치, 즉 보는 이의 시선을 재조직하는 프레임 속 프레임이 된다. 이는 이미지 내부에 또 하나의, 혹은 수많은 틀을 삽입함으로써 시선을 분절하거나 유도하면서도, 동시에 관람자의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그 창은 사라진 공간이 머물렀던 자리를 감각하게 하며, 잊힌 시간의 빛이 다시 떠오르는 감정의 입구로 기능한다. 이에 대한 해석을 정동(affect) 개념에 비춰본다면, 밀도 높은 원초적인 감각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그의 창문은 시간 속의 감정이 응결된 감각의 표면이다. 그림 속 화면들은 정동이 남긴 궤적처럼 다층적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장하윤의 작업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를 묻는 중첩된 프레임을 제안한다. 공간을 가르는 창들은 장소성과 비장소성 사이, 내부와 외부의 경계, 몸의 위치와 심리적 틈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당신이 빛의 구조에 다가가는 방식을 묻는다. 반복되는 프레임과 주변부의 불규칙성은 그림자의 떨림, 온도의 흐름, 바람의 강도와 위치처럼 분위기(atmosphere)의 비언어적 요소들을 느끼게 한다. 이 창문들은 시선의 방향을 끊임없이 흔드는 다중 프레임으로 놓인다. 장하윤은 이 프레임을 회화와 설치(화면을 세우는 형식까지 포함한)라는 두 매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빛의 여운을 공간 속에 흔들리는 구조로 새기면서.
2025.08.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ugust.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