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되지 않는 존재, 응답 되지 않는 말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송석우의 사진 속 인물들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숙이고, 혹은 눈을 감는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지도, 관객에게 응답하지도 않는다. 송석우는 언어에 앞선 감정을 사진이라는 무대 위에 올려놓고, 자신과 사회, 그리고 응시 되지 않는 존재들의 얼굴을 비로소 들여다보게 한다. 그 얼굴들은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가장 깊은 언어로 읽힌다.
그의 대표작 <Wandering, Wondering> 역시 완결되지 않은 장면들로 낮은 침묵을 시각화한다. 도시와 자연 속에 홀로 서 있는 인물,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놓인 정렬된 군중, 서로 맞대고는 있지만 경직된 신체는 길을 잃은 존재, 혹은 의도적으로 길을 벗어난 존재처럼 보인다. 함께 있음에도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 장면, 반으로 갈라진 화면, 낱장의 천이 시야를 가린 구도,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 놓인 인물들의 병치는 상징적인 기호가 된다. 이 기호들은 직접적으로 사회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구조적 단면을 절묘하게 환기한다. 고립이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함께 있어도 감정이 닿지 않는 상태임을 그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송석우의 사진은 이렇게 활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장면화한다. 무언가 불편하지만 단정할 수는 없는 감각. 이 감각의 기원은 작가가 겪은(혹은 우리가 겪은) 제도적/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경험이다. 말했으나 전달되지 않는 발언들, 소속되어 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들은 그에게 시선과 언어의 불일치를 깊이 각인시켰다. 그는 이 불일치를 인물들의 몸짓과 시선, 거리감의 배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끄집어낸다. 사진 속 존재들은 제스처로 발화하고, 응시의 방향으로 거리를 드러낸다.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영역을 사진은 고스란히 붙잡는다. 이 지점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 장치를 넘어서 무대가 된다. 송석우의 사진은 퍼포먼스의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연출한다. 사진은 배우와 관객, 무대와 조명의 경계를 교란하는 장치이다. 송석우에 의해 인물들은 연기하고, 그들의 배치는 계산되고, 혼돈의 상황은 단색의 오브제로 포장된다. 사진 속 행위는 연속적이기보다 단적으로 남겨져 미완의 상태다. 이렇게 송석우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감정의 상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여 무대 위에 은유적으로 올려놓는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선보이는 〈No Dress Code〉 작업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작업 속 인물들은 분절된 자아의 단면처럼 등장한다. 절제된 의상과 제스처는 사회적 규범이 요구하는 정체성의 틀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드레스 코드가 없다는 말은 곧 ‘정답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일치하지 않는, 그러나 그럼에도 존재하는 방식들을 탐색하는 시도다. 사진 속 인물들은 끝내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러한 회피는 자기 보호의 몸짓이기도 하고, 사회적 규범에 응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들은 드러내되 드러내지 않고, 존재하지만 결코 온전히 응시 되지 않는다. 이 회피의 태도는 결국 사회적 응시 체계에 대한 저항이다. 이 코드 없는 상태는 무규정성, 무질서, 그리고 숨겨진 가능성을 동시에 품는다. 송석우는 이를 통해 사회적인 주체성과 정체성을 단일한 고정값이 아니라, 새로운 층위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과정으로 보여준다.
<A crowd within a crowd>(2024), <Passive plant>(2024)과 같은 최근작들은 이러한 맥락을 더욱 확장한다. 뜬금없는 배경과 함께 놓인 존재들은 통제된 프레임 안에서도 움직이는 생명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창틀 모양의 프레임 곁에 놓인 화분, 식물의 일부 잎사귀가 벽을 뚫고 바깥으로 뻗어 나오는 장면은 작가가 만든 상징적 제스처다. 이는 규율화된 프레임을 밀어내는 생명성의 발현이며, 경계를 뚫고 나오는 정서의 돌출이다. 불편한 돌출은 제도의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대로 살지 않는, 살 수 없는 존재의 꿈틀대는 움직임이다. 이는 곧 〈No Dress Code〉 연작의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시선을 피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상응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수행하는 척하면서도 끝내 유예하는 태도, 그 틀을 벗어나려는 작은 몸짓은 결국 존재의 강력한 선언으로 비추어진다. <Practice for independence>(2024) 또한 주목할 만하다. 풀밭 위에 놓인 랜턴은 누군가를 비추기 위한 기능적 조명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발광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은유이자, 응시 되지 않는 존재가 어떻게 감각적 장면으로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발광하는 오브제와 침묵하는 신체가 교차하는 전시 설치 장면은, 결국 말해지지 않은 감정과 불가능한 소통을 상징한다. 그는 관객에게 답이 있는 서사를 제공하지 않고, 진행 중인 감정의 상태를 머물게 한다. 해석되지 않고, 미결 상태로 남는 감각. 이것이 그의 사진이 요청하는 감응의 방식이다. 송석우의 전시는 설치 단계에서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낸다. 프레임이 겹치고, 사진과 설치물이 동시에 관객을 둘러싼다. 하나의 장면이 다른 장면과 겹쳐지며, 관객은 완결된 이야기를 따라가는 대신 다양한 균열과 충돌 속에 머물게 된다. 그는 작품이 하나의 해석으로 봉합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병치와 중첩을 활용한다.

《질문의 책》 전시전경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4)

《지금껏 이름이 없던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서》 전시전경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4)

송석우, A crowd within a crowd, 75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4

송석우, Passive plant, 108x81cm, Archival Pigment Print, 2024
전체적으로 그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장면으로 남긴다. 제스처 하나, 응시의 방향 하나, 오브제의 위치 하나가 상징적인 상태를 드러낸다. 그의 인물, 오브제, 움직임들은 혼자이면서도 함께 있고, 드러나면서도 숨는다. 이 이중적인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감내하는 관계의 방식과 닮아있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응시 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더 선명히 드러낸다. 그의 사진은 응시 되지 않는 존재들을 호출하며, 응답 되지 않는 말의 진실을 시각화한다. 단단하고 분명한, 고요하지만 오래 남는 이미지. 그것이 송석우가 구축한 장면의 힘이다.
결국 송석우의 사진은 ‘응시 되지 않음’과 ‘응답 되지 않음’ 사이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업은 존재의 조건에 관한 질문 앞에 놓여 있다. 응시 되지 않으면서도 존재할 수 있는가, 응답 되지 않으면서도 말을 건넬 수 있는가. 존재는 사회적 규범이나 정체성의 고정된 이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송석우가 포착한 것은 결코 개인의 균열이 아닌 공통의 균열인 셈이다. 그의 사진은 바로 이 지점을 붙잡는다.
2025.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응시 되지 않는 존재, 응답 되지 않는 말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송석우의 사진 속 인물들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숙이고, 혹은 눈을 감는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지도, 관객에게 응답하지도 않는다. 송석우는 언어에 앞선 감정을 사진이라는 무대 위에 올려놓고, 자신과 사회, 그리고 응시 되지 않는 존재들의 얼굴을 비로소 들여다보게 한다. 그 얼굴들은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가장 깊은 언어로 읽힌다.
그의 대표작 <Wandering, Wondering> 역시 완결되지 않은 장면들로 낮은 침묵을 시각화한다. 도시와 자연 속에 홀로 서 있는 인물,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놓인 정렬된 군중, 서로 맞대고는 있지만 경직된 신체는 길을 잃은 존재, 혹은 의도적으로 길을 벗어난 존재처럼 보인다. 함께 있음에도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 장면, 반으로 갈라진 화면, 낱장의 천이 시야를 가린 구도,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 놓인 인물들의 병치는 상징적인 기호가 된다. 이 기호들은 직접적으로 사회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구조적 단면을 절묘하게 환기한다. 고립이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함께 있어도 감정이 닿지 않는 상태임을 그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송석우의 사진은 이렇게 활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장면화한다. 무언가 불편하지만 단정할 수는 없는 감각. 이 감각의 기원은 작가가 겪은(혹은 우리가 겪은) 제도적/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경험이다. 말했으나 전달되지 않는 발언들, 소속되어 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들은 그에게 시선과 언어의 불일치를 깊이 각인시켰다. 그는 이 불일치를 인물들의 몸짓과 시선, 거리감의 배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끄집어낸다. 사진 속 존재들은 제스처로 발화하고, 응시의 방향으로 거리를 드러낸다.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영역을 사진은 고스란히 붙잡는다. 이 지점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 장치를 넘어서 무대가 된다. 송석우의 사진은 퍼포먼스의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연출한다. 사진은 배우와 관객, 무대와 조명의 경계를 교란하는 장치이다. 송석우에 의해 인물들은 연기하고, 그들의 배치는 계산되고, 혼돈의 상황은 단색의 오브제로 포장된다. 사진 속 행위는 연속적이기보다 단적으로 남겨져 미완의 상태다. 이렇게 송석우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감정의 상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여 무대 위에 은유적으로 올려놓는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선보이는 〈No Dress Code〉 작업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작업 속 인물들은 분절된 자아의 단면처럼 등장한다. 절제된 의상과 제스처는 사회적 규범이 요구하는 정체성의 틀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드레스 코드가 없다는 말은 곧 ‘정답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일치하지 않는, 그러나 그럼에도 존재하는 방식들을 탐색하는 시도다. 사진 속 인물들은 끝내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러한 회피는 자기 보호의 몸짓이기도 하고, 사회적 규범에 응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들은 드러내되 드러내지 않고, 존재하지만 결코 온전히 응시 되지 않는다. 이 회피의 태도는 결국 사회적 응시 체계에 대한 저항이다. 이 코드 없는 상태는 무규정성, 무질서, 그리고 숨겨진 가능성을 동시에 품는다. 송석우는 이를 통해 사회적인 주체성과 정체성을 단일한 고정값이 아니라, 새로운 층위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과정으로 보여준다.
<A crowd within a crowd>(2024), <Passive plant>(2024)과 같은 최근작들은 이러한 맥락을 더욱 확장한다. 뜬금없는 배경과 함께 놓인 존재들은 통제된 프레임 안에서도 움직이는 생명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창틀 모양의 프레임 곁에 놓인 화분, 식물의 일부 잎사귀가 벽을 뚫고 바깥으로 뻗어 나오는 장면은 작가가 만든 상징적 제스처다. 이는 규율화된 프레임을 밀어내는 생명성의 발현이며, 경계를 뚫고 나오는 정서의 돌출이다. 불편한 돌출은 제도의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대로 살지 않는, 살 수 없는 존재의 꿈틀대는 움직임이다. 이는 곧 〈No Dress Code〉 연작의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시선을 피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상응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수행하는 척하면서도 끝내 유예하는 태도, 그 틀을 벗어나려는 작은 몸짓은 결국 존재의 강력한 선언으로 비추어진다. <Practice for independence>(2024) 또한 주목할 만하다. 풀밭 위에 놓인 랜턴은 누군가를 비추기 위한 기능적 조명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발광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은유이자, 응시 되지 않는 존재가 어떻게 감각적 장면으로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발광하는 오브제와 침묵하는 신체가 교차하는 전시 설치 장면은, 결국 말해지지 않은 감정과 불가능한 소통을 상징한다. 그는 관객에게 답이 있는 서사를 제공하지 않고, 진행 중인 감정의 상태를 머물게 한다. 해석되지 않고, 미결 상태로 남는 감각. 이것이 그의 사진이 요청하는 감응의 방식이다. 송석우의 전시는 설치 단계에서 또 다른 층위를 만들어낸다. 프레임이 겹치고, 사진과 설치물이 동시에 관객을 둘러싼다. 하나의 장면이 다른 장면과 겹쳐지며, 관객은 완결된 이야기를 따라가는 대신 다양한 균열과 충돌 속에 머물게 된다. 그는 작품이 하나의 해석으로 봉합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병치와 중첩을 활용한다.

《질문의 책》 전시전경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4)

《지금껏 이름이 없던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서》 전시전경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4)

송석우, A crowd within a crowd, 75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4

송석우, Passive plant, 108x81cm, Archival Pigment Print, 2024
전체적으로 그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장면으로 남긴다. 제스처 하나, 응시의 방향 하나, 오브제의 위치 하나가 상징적인 상태를 드러낸다. 그의 인물, 오브제, 움직임들은 혼자이면서도 함께 있고, 드러나면서도 숨는다. 이 이중적인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감내하는 관계의 방식과 닮아있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응시 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더 선명히 드러낸다. 그의 사진은 응시 되지 않는 존재들을 호출하며, 응답 되지 않는 말의 진실을 시각화한다. 단단하고 분명한, 고요하지만 오래 남는 이미지. 그것이 송석우가 구축한 장면의 힘이다.
결국 송석우의 사진은 ‘응시 되지 않음’과 ‘응답 되지 않음’ 사이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업은 존재의 조건에 관한 질문 앞에 놓여 있다. 응시 되지 않으면서도 존재할 수 있는가, 응답 되지 않으면서도 말을 건넬 수 있는가. 존재는 사회적 규범이나 정체성의 고정된 이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송석우가 포착한 것은 결코 개인의 균열이 아닌 공통의 균열인 셈이다. 그의 사진은 바로 이 지점을 붙잡는다.
2025.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