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으로 가는 길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권태경 개인전 <피안> 전시 전경
권태경의 개인전 《피안彼岸》은 우리를 물가에 세운다. 차안과 피안,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그의 그림은 죽음 이후를 단순히 내세로 단정하지 않으며, 세계의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피안은 저 너머의 언덕을 의미하며, 번뇌와 집착을 벗어난 해탈의 상태를 가리킨다. 불교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가 차안(此岸)이라면, 그 너머의 세계인 피안은 깨달음의 공간이다. 두 세계를 잇는 통로는 물, 그리고 물을 건너는 행위는 곧 해탈을 향한 수행자의 여정을 은유한다. 수행자의 여정은 경계를 넘는 근원적 경험이며, 그 길의 끝은 물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권태경의 그림에 드러나는 물–결은 바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불안을 담아낸다. 물은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면서도, 언제나 경계를 상징하는 표면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의 화면은 물결의 상태이며, 그 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저편으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실존적 매개가 된다.
수없이 많은 선의 흔적으로 쌓아 올린 그의 색면은 마치 흔들리는 물의 표면과도 같다. 표면의 진동하는 듯한 리듬은 차안과 피안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길을 시각적으로 피어나게 한다. 물 위를 스치는 결은 생의 파문처럼, 화면에 남은 붓의 흐름은 죽음 이후에도 소멸하지 않는 감각의 연속성처럼 시선을 이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물 위에 새겨진 길을 더듬어가듯, 작가의 물결을 통해 자신 내면의 형상과 죽음을 넘어서는 상상적 지평을 마주한다. 이렇게 권태경은 그림의 표면, 그 결을 통해 죽음 너머를 향한 통로를 그려낸다. 색채는 흐르고 번지며, 형태는 응고되지 않은 채 사라짐과 남음 사이를 은은히 부유한다. 그 모호한 경계의 면면은 우리에게 기억의 표현이자 기도의 한 방식이며, 동시에 애도의 형식이 된다.
쉼 없는 표면의 움직임은 저 너머의 세계를 ‘종착점’이 아니라 ‘흐름’으로,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제시한다. 화면 속에 처연히 남아 있는 빛줄기는 우리를 피안으로 인도한다. 그림 속 장소는 삶과 죽음, 현실과 환영이 겹치는 경계의 공간이다. 이 세계는 작가의 사유를 기록한 동시에, 남겨진 자의 그리움과 아직 건너지 못한 자의 그림자를 불러내는 장이 된다. 수많은 흔적이 오가는 과정 속에서 권태경의 회화는 명상의 순간과 교차한다. 피어오름을 보며 가라앉는 상태를 거치며,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과 예술에서 피안은 자주 죽음 이후의 공간에 빗대어졌다. 한용운의 시가 보여주듯, 피안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의 그리움이 투영된 이상향이다. 권태경의 작품 속 소재들은 그러한 죽음 이후의 평온을 환기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건넌다’는 행위의 의미를 되묻는다. 피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멀리 도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그의 물은 멈추지 않고, 결은 묶이지 않는다.


권태경 개인전 <피안> 전시 전경
권태경의 작업은 두터운 장지를 통한다. 이 부드러우며 단단한 종이에 스민, 안료를 머금은 물의 결은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섬세하게 드러난다. 그의 화면에 단단히 새겨진 ‘결’은 내면적 질서가 외부로 표출되는 무늬로서 작동한다. 장지 안과 밖의 수많은 겹(layer)의 리듬은 작가와 관람자의 감각을 동시에 일깨우며, 물–결의 흔적은 종교적·철학적 울림을 지닌 채 현재의 시각성으로 소환된다. 피어오르는 향, 흐릿한 인물의 형상, 빛의 실 같은 흔적들은 모두 ‘건넘’의 과정에 머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이쪽에서 저쪽을 향하며, 저편에 닿았으면서도 이쪽 언덕을 바라본다. 그림 속에서 삶과 죽음은 둘로 나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서 알 수 없는 강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발아래는 차안, 눈앞에는 피안, 그 사이를 가르는 것은 엷고도 깊은 권태경의 물줄기다. 그러나 모두가 저마다의 피안에 닿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수행의 토대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너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 강가에 머물며,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빛을 느끼고 호흡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결처럼 번지는 붓질과 결의 리듬은 우리로 하여금 그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게 하며, 그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 지나간 숨결, 말해지지 못한 감정을 다시금 떠올려 한 번 더 가라앉히게 한다. 결국 그의 그림은 존재의 지속을 증명하는 빛으로 읽힌다.
피안은 도착의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
권태경의 그림은 지금 여기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바람이 스치고, 물이 흔들리고, 향이 번져가는 그 찰나마다 우리는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 그 여정은 조용히 번지는 물결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작가는 피안을 말하는 불교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 자체가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제안한다. 종교적 개념을 빌려와 그것을 현대의 삶의 태도로 변환하는 것이 그의 회화적 전략이다. 즉, 작품 속 물과 결은 불교적 피안의 사유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차안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동시에 피안으로 향하는 여정을 체험하게 된다. 물 위에 그어진 결은 결국 피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의 지도처럼 펼쳐지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권태경의 작업은 피안을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안과 피안의 경계, 그 사이에 머무는 불확실한 떨림을 그린다. 화면 위의 색채는 흐르고 사라지며, 형태는 응고되기보다 흩어진다. 그것은 존재가 다른 형태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권태경의 물–결은 그 전이의 방향을 드러내는 안내서이다. 우리는 그 안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지금 여기’의 차안을 딛고 ‘저 너머’ 피안의 기운을 마주한다.
이처럼 권태경의 회화는 두 세계를 통합하고자 한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그 사이의 감각적 틈을 희미하게 한다. 발아래의 차안은 여전히 무겁고 실질적이지만, 눈앞의 피안은 연기처럼 아련하며 투명하다. 그것은 물 위에 비친 빛처럼 가까이 있으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다. 현실과 초월의 경계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의 그림은 피안을 향한 바람이자, 차안을 떠날 수 없는 인간의 슬픔을 음미한다. 권태경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딛고 선 이 차안 속에서도 이미 피안의 빛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피안으로 가는 길이, 어느새 우리 곁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권태경 개인전 <피안> 전시 전경
2025.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피안으로 가는 길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권태경 개인전 <피안> 전시 전경
권태경의 개인전 《피안彼岸》은 우리를 물가에 세운다. 차안과 피안,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그의 그림은 죽음 이후를 단순히 내세로 단정하지 않으며, 세계의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피안은 저 너머의 언덕을 의미하며, 번뇌와 집착을 벗어난 해탈의 상태를 가리킨다. 불교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가 차안(此岸)이라면, 그 너머의 세계인 피안은 깨달음의 공간이다. 두 세계를 잇는 통로는 물, 그리고 물을 건너는 행위는 곧 해탈을 향한 수행자의 여정을 은유한다. 수행자의 여정은 경계를 넘는 근원적 경험이며, 그 길의 끝은 물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권태경의 그림에 드러나는 물–결은 바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불안을 담아낸다. 물은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면서도, 언제나 경계를 상징하는 표면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의 화면은 물결의 상태이며, 그 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저편으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실존적 매개가 된다.
수없이 많은 선의 흔적으로 쌓아 올린 그의 색면은 마치 흔들리는 물의 표면과도 같다. 표면의 진동하는 듯한 리듬은 차안과 피안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길을 시각적으로 피어나게 한다. 물 위를 스치는 결은 생의 파문처럼, 화면에 남은 붓의 흐름은 죽음 이후에도 소멸하지 않는 감각의 연속성처럼 시선을 이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물 위에 새겨진 길을 더듬어가듯, 작가의 물결을 통해 자신 내면의 형상과 죽음을 넘어서는 상상적 지평을 마주한다. 이렇게 권태경은 그림의 표면, 그 결을 통해 죽음 너머를 향한 통로를 그려낸다. 색채는 흐르고 번지며, 형태는 응고되지 않은 채 사라짐과 남음 사이를 은은히 부유한다. 그 모호한 경계의 면면은 우리에게 기억의 표현이자 기도의 한 방식이며, 동시에 애도의 형식이 된다.
쉼 없는 표면의 움직임은 저 너머의 세계를 ‘종착점’이 아니라 ‘흐름’으로,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제시한다. 화면 속에 처연히 남아 있는 빛줄기는 우리를 피안으로 인도한다. 그림 속 장소는 삶과 죽음, 현실과 환영이 겹치는 경계의 공간이다. 이 세계는 작가의 사유를 기록한 동시에, 남겨진 자의 그리움과 아직 건너지 못한 자의 그림자를 불러내는 장이 된다. 수많은 흔적이 오가는 과정 속에서 권태경의 회화는 명상의 순간과 교차한다. 피어오름을 보며 가라앉는 상태를 거치며,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과 예술에서 피안은 자주 죽음 이후의 공간에 빗대어졌다. 한용운의 시가 보여주듯, 피안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의 그리움이 투영된 이상향이다. 권태경의 작품 속 소재들은 그러한 죽음 이후의 평온을 환기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건넌다’는 행위의 의미를 되묻는다. 피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멀리 도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그의 물은 멈추지 않고, 결은 묶이지 않는다.


권태경 개인전 <피안> 전시 전경
권태경의 작업은 두터운 장지를 통한다. 이 부드러우며 단단한 종이에 스민, 안료를 머금은 물의 결은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섬세하게 드러난다. 그의 화면에 단단히 새겨진 ‘결’은 내면적 질서가 외부로 표출되는 무늬로서 작동한다. 장지 안과 밖의 수많은 겹(layer)의 리듬은 작가와 관람자의 감각을 동시에 일깨우며, 물–결의 흔적은 종교적·철학적 울림을 지닌 채 현재의 시각성으로 소환된다. 피어오르는 향, 흐릿한 인물의 형상, 빛의 실 같은 흔적들은 모두 ‘건넘’의 과정에 머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이쪽에서 저쪽을 향하며, 저편에 닿았으면서도 이쪽 언덕을 바라본다. 그림 속에서 삶과 죽음은 둘로 나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서 알 수 없는 강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발아래는 차안, 눈앞에는 피안, 그 사이를 가르는 것은 엷고도 깊은 권태경의 물줄기다. 그러나 모두가 저마다의 피안에 닿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수행의 토대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너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 강가에 머물며,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빛을 느끼고 호흡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결처럼 번지는 붓질과 결의 리듬은 우리로 하여금 그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게 하며, 그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 지나간 숨결, 말해지지 못한 감정을 다시금 떠올려 한 번 더 가라앉히게 한다. 결국 그의 그림은 존재의 지속을 증명하는 빛으로 읽힌다.
피안은 도착의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
권태경의 그림은 지금 여기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바람이 스치고, 물이 흔들리고, 향이 번져가는 그 찰나마다 우리는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 그 여정은 조용히 번지는 물결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작가는 피안을 말하는 불교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 자체가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제안한다. 종교적 개념을 빌려와 그것을 현대의 삶의 태도로 변환하는 것이 그의 회화적 전략이다. 즉, 작품 속 물과 결은 불교적 피안의 사유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차안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동시에 피안으로 향하는 여정을 체험하게 된다. 물 위에 그어진 결은 결국 피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의 지도처럼 펼쳐지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권태경의 작업은 피안을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안과 피안의 경계, 그 사이에 머무는 불확실한 떨림을 그린다. 화면 위의 색채는 흐르고 사라지며, 형태는 응고되기보다 흩어진다. 그것은 존재가 다른 형태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권태경의 물–결은 그 전이의 방향을 드러내는 안내서이다. 우리는 그 안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지금 여기’의 차안을 딛고 ‘저 너머’ 피안의 기운을 마주한다.
이처럼 권태경의 회화는 두 세계를 통합하고자 한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그 사이의 감각적 틈을 희미하게 한다. 발아래의 차안은 여전히 무겁고 실질적이지만, 눈앞의 피안은 연기처럼 아련하며 투명하다. 그것은 물 위에 비친 빛처럼 가까이 있으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다. 현실과 초월의 경계에서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의 그림은 피안을 향한 바람이자, 차안을 떠날 수 없는 인간의 슬픔을 음미한다. 권태경의 작업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딛고 선 이 차안 속에서도 이미 피안의 빛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피안으로 가는 길이, 어느새 우리 곁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권태경 개인전 <피안> 전시 전경
2025.1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December.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