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얼 만들기
박준수

도록은 어떻게든 만들었지만, 메뉴얼은 만들지 않았지.
ACK 필진이 모였을 때 특집 주제로 이야기했던 메타비평 관련하여 OCI미술관 김영기 부관장이 필진에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공통 주제를 던졌다. 조금은 낯간지러운 질문이지만, 내가 왜 이 미술판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를 남기려는 행위인데, 내가 쓰는 글의 목적은 무엇인지 오래간만에 자문하게 된다.

1970년에 오픈한 아트바젤.
아트페어는 진화하고 있지만, 업무 메뉴얼이나 전공 같은 것이 없다.
아트페어 오거나이저라는 직업으로 10년을 보냈다. 이 업계는, 특히 아트페어라고 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트바젤로부터 계산하면 50년이 훌쩍 넘었고, 키아프만 해도 어느새 25년이 되었지만, 체계적인 교육 과정도, 정식 매뉴얼도 없다. ‘누가 어떻게 하는지’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스스로 뛰어들어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넘어졌고, 부딪쳤고, 때로는 높은 장애물 앞에서 멈춰 서기도 했다. 그 과정을 지나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생각이 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글로 남겨놓는다면, 누군가는 같은 벽에 부딪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트페어는 5일 행사를 위해 360일을 갈아넣는다. 아트페어를 해본 사람은 이 말이 와닿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진땀이 흐른다. 처음 아트페어를 하던 해에는 오프닝 직전까지도 가벽과 조명이 완료되지 않아, 3단 사다리를 직접 들고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은 80m 세워둔 가벽이 규정에 어긋났다며 4m 정도를 통째로 옮겨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규정과 메뉴얼만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었다면 도면에서 이런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벽체를 분해해서 다시 세울수는 없으니 전시장 안에 있는 모든 인원이 달라붙어 밀었다. 다행히 가벽은 갤러리들이 전시장에 들어와 작품을 걸기 전에 수습했지만, 정말 진땀 나는 일이었다. 전시장 규정, 플로어플랜을 그릴 때 주의할 사항들이 인수인계가 잘 되었다면 이런 일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어디에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다음 사람은 또 똑같이 고생할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이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오늘의 미술판에서 아트페어는 단순한 ‘시장’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의 예술 인프라를 확장하는 플랫폼이자, 새로운 관람자를 유입시키는 통로이며, 예술을 생활권으로 끌어오는 장치이다. 점방이 모여 오일장이 되고, 오일장이 커져 상설시장이 되듯, 아트페어 역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고급스러운 백화점처럼 ‘모듈화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일을 하는 사람이 직접 남길 수밖에 없다.
한국화랑협회에서 일하던 시절, 키아프가 끝나면 매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꼭 메뉴얼을 만들자.” 담당했던 직원들에게 행사 때 생겼던 사소한 문제나, 행사를 하며 생겨난 노하우를 정리해달라고 하고, 내가 직접 겪었던 문제와 해결 과정을 적어두려고도 했다. 하지만 매년 결과는 미완에 그쳤다.

늘 분주한 아트페어 사무국 풍경
왜냐하면 키아프가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협회에는 화랑미술제, 회원화랑의 밤, 송년회와 총회, 미술품 감정 업무, 정부 지원 사업, 정기 감사를 비롯한 미뤄두었던 행사와 행정 업무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숨 한번 돌리기 전에 다음 일이 이미 대기 중이었다.
당장 급하지 않은 메뉴얼은 또다시 뒤로 밀렸다.
그렇게 제대로 된 메뉴얼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지내다 결국 협회를 떠나게 되었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쉬어도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름의 안식년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미국으로 가면서 조금 더 멀리, 조용히, 이전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메뉴얼 작업을 다시 펼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막상 책상 앞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니 손이 익숙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뛰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던 과정들이 글줄로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매뉴얼 초안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첫 초안이 한경 아르떼의 연재, 「박준수의 아트페어 길라잡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ACK 필진으로 합류하는 기회도 생겼다.
글을 꾸준히 남기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아트페어 오거나이저’로만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전시 기획이나 전시 소개글 같은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영상 콘텐츠 기획 같은 새로운 일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키아프, 그리고 미술판이 나를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이자 기여로 시작한 일이, 오히려 더 많은 기회와 인연을 가져다주었다.
메뉴얼, 그리고 요즘에는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글을 남기고 있다. 글을 쓸 때 거창한 원칙은 없지만, 적어도 세 가지는 늘 마음에 둔다.
첫째, 지금 미술판에 필요한 이야기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다. 대부분 직접 경험한 일을 기본으로 쓰지만, 너무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라, 지금 현시점에 맞지 않는 일은 걷어내려고 한다. 실무자들이 보고 바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둘째, 불필요하게 어려운 단어와 ‘미술판 보그어’는 과감히 덜어낸다. 더러 일부러 어려운 단어만을 골라 쓰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입에는 ‘미학’을 달고 지내며,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나 복잡한 이론을 인용하며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했다. 지나고보니 그런 말과 글이 내 지식을 자랑하는 일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헛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남기려고 한다.
셋째, 감성만 가득한 글은 피한다. 한밤중에 써버린 연애편지 같은 글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기 어렵다. 그런 글은 개인SNS용으로 빼버린다. 여러 사람이 보는 플랫폼에는 독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업무에서 헤맬 때 힌트라도 제시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내가 남기는 글들을 통해 누군가가 미술판이라는, 규정하기 어려운 세계를 조금 더 명확하고 친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더 나아가 이 업을 선택할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메뉴얼은 결국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도움의 손길. 그것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2026.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anuar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메뉴얼 만들기
박준수

도록은 어떻게든 만들었지만, 메뉴얼은 만들지 않았지.
ACK 필진이 모였을 때 특집 주제로 이야기했던 메타비평 관련하여 OCI미술관 김영기 부관장이 필진에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공통 주제를 던졌다. 조금은 낯간지러운 질문이지만, 내가 왜 이 미술판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를 남기려는 행위인데, 내가 쓰는 글의 목적은 무엇인지 오래간만에 자문하게 된다.

1970년에 오픈한 아트바젤.
아트페어는 진화하고 있지만, 업무 메뉴얼이나 전공 같은 것이 없다.
아트페어 오거나이저라는 직업으로 10년을 보냈다. 이 업계는, 특히 아트페어라고 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트바젤로부터 계산하면 50년이 훌쩍 넘었고, 키아프만 해도 어느새 25년이 되었지만, 체계적인 교육 과정도, 정식 매뉴얼도 없다. ‘누가 어떻게 하는지’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스스로 뛰어들어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넘어졌고, 부딪쳤고, 때로는 높은 장애물 앞에서 멈춰 서기도 했다. 그 과정을 지나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생각이 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글로 남겨놓는다면, 누군가는 같은 벽에 부딪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트페어는 5일 행사를 위해 360일을 갈아넣는다. 아트페어를 해본 사람은 이 말이 와닿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진땀이 흐른다. 처음 아트페어를 하던 해에는 오프닝 직전까지도 가벽과 조명이 완료되지 않아, 3단 사다리를 직접 들고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은 80m 세워둔 가벽이 규정에 어긋났다며 4m 정도를 통째로 옮겨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규정과 메뉴얼만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었다면 도면에서 이런 실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벽체를 분해해서 다시 세울수는 없으니 전시장 안에 있는 모든 인원이 달라붙어 밀었다. 다행히 가벽은 갤러리들이 전시장에 들어와 작품을 걸기 전에 수습했지만, 정말 진땀 나는 일이었다. 전시장 규정, 플로어플랜을 그릴 때 주의할 사항들이 인수인계가 잘 되었다면 이런 일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어디에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다음 사람은 또 똑같이 고생할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이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오늘의 미술판에서 아트페어는 단순한 ‘시장’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의 예술 인프라를 확장하는 플랫폼이자, 새로운 관람자를 유입시키는 통로이며, 예술을 생활권으로 끌어오는 장치이다. 점방이 모여 오일장이 되고, 오일장이 커져 상설시장이 되듯, 아트페어 역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고급스러운 백화점처럼 ‘모듈화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일을 하는 사람이 직접 남길 수밖에 없다.
한국화랑협회에서 일하던 시절, 키아프가 끝나면 매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꼭 메뉴얼을 만들자.” 담당했던 직원들에게 행사 때 생겼던 사소한 문제나, 행사를 하며 생겨난 노하우를 정리해달라고 하고, 내가 직접 겪었던 문제와 해결 과정을 적어두려고도 했다. 하지만 매년 결과는 미완에 그쳤다.

늘 분주한 아트페어 사무국 풍경
왜냐하면 키아프가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협회에는 화랑미술제, 회원화랑의 밤, 송년회와 총회, 미술품 감정 업무, 정부 지원 사업, 정기 감사를 비롯한 미뤄두었던 행사와 행정 업무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숨 한번 돌리기 전에 다음 일이 이미 대기 중이었다.
당장 급하지 않은 메뉴얼은 또다시 뒤로 밀렸다.
그렇게 제대로 된 메뉴얼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지내다 결국 협회를 떠나게 되었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쉬어도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름의 안식년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미국으로 가면서 조금 더 멀리, 조용히, 이전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메뉴얼 작업을 다시 펼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막상 책상 앞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니 손이 익숙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뛰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던 과정들이 글줄로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매뉴얼 초안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첫 초안이 한경 아르떼의 연재, 「박준수의 아트페어 길라잡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ACK 필진으로 합류하는 기회도 생겼다.
글을 꾸준히 남기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아트페어 오거나이저’로만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전시 기획이나 전시 소개글 같은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영상 콘텐츠 기획 같은 새로운 일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키아프, 그리고 미술판이 나를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이자 기여로 시작한 일이, 오히려 더 많은 기회와 인연을 가져다주었다.
메뉴얼, 그리고 요즘에는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글을 남기고 있다. 글을 쓸 때 거창한 원칙은 없지만, 적어도 세 가지는 늘 마음에 둔다.
첫째, 지금 미술판에 필요한 이야기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다. 대부분 직접 경험한 일을 기본으로 쓰지만, 너무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라, 지금 현시점에 맞지 않는 일은 걷어내려고 한다. 실무자들이 보고 바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둘째, 불필요하게 어려운 단어와 ‘미술판 보그어’는 과감히 덜어낸다. 더러 일부러 어려운 단어만을 골라 쓰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입에는 ‘미학’을 달고 지내며,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나 복잡한 이론을 인용하며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했다. 지나고보니 그런 말과 글이 내 지식을 자랑하는 일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헛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남기려고 한다.
셋째, 감성만 가득한 글은 피한다. 한밤중에 써버린 연애편지 같은 글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기 어렵다. 그런 글은 개인SNS용으로 빼버린다. 여러 사람이 보는 플랫폼에는 독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업무에서 헤맬 때 힌트라도 제시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내가 남기는 글들을 통해 누군가가 미술판이라는, 규정하기 어려운 세계를 조금 더 명확하고 친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더 나아가 이 업을 선택할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메뉴얼은 결국 사람을 위해 쓰는 글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도움의 손길. 그것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2026.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anuar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