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5년 9월 10일부터 11월 12일까지 BAXTER ST at CCNY에서 열린 오가영, 이주연의 2인전 〈Through Fragility _ Juyon Lee, Kai Oh〉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의 축약본은 『퍼블릭아트』 2025년 11월 호에 게재되었다.
축적된 경험, 견고한 장면들
정재연, 독립큐레이터
여기, 닳아버린 유리 조각을 주운 사람이 있다. 무디어진 조각 끝을 매만지면서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한다. 그 가능성은 지나치게 희망적이지 않아도 어느 선 아래로는 빠지지 않는 자신의 견고한 힘을 믿는 것이다. 결국 꾸준히 남긴 것들, 아직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러니까 그 자리 자체가 기억이다. 두 눈과 기억, 그리고 렌즈를 통해 보는 시선과 기록. 내 것이고, 내 기억이며, 내가 남기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여기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비영리 공간인 BAXTER ST at CCNY(Camery Club of New York)1)에서 오가영, 이주연 작가의 2인전 《Through Fragility》가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제목 그대로 ‘연약함(fragility’)2)을 응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파손, 결핍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단단함과 강인함이 남기는 연결의 힘을 보여준다. 아시아 여성, 이주자, 예술가, 사유자로서 이들이 공통으로 지닌 정체성 안에서 서로 다른 물질인 종이와 유리의 접근을 ‘연약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시로 통해 제시한다. 과연 가장 연약한 존재가 되어 서로의 몸에 미끄러지는 일,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취약함을 들춰내는 일에 대하여, 각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Through Fragility_installation view ⒸLloyd McCullough
익숙한 풍경을 찾거나,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는 카메라를 든다. 카메라를 덮고 있는 유리는 빛을 굴절시키고, 초점을 형성하면서 현실을 담는 기능을 수행한다. 유리와 사진의 관계는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지며, 스마트폰의 스크린 역시 우리가 다른 세계를 감각하는 포털 이자 수많은 이미지가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통로가 된다. 렌즈로 통하는 시선. 빛을 모으는 렌즈의 섬세한 곡면과 투명성은 쉽게 손상될 수 있는 위태로움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시 제목 〈Through Fragility〉가 담고 있는 ‘취약함’ 속에서, 이 전시는 유리라는 물질적 계보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본다. 더 나아가 ‘연약함’이라는 감각이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 제작 속에서 어떻게 반향을 일으키는지 조망한다. 뉴욕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오가영 그리고 브루클린을 거점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주연. 이 두 사람은 위에서 언급했듯 아시아 여성, 이주자, 예술가란 가까운 공통점을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공통점으로 이 둘을 묶었지만, 두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형태 그리고 내면의 근거는 다르다. 오가영, 이주연 두 사람의 작업은 단순히 개인이나 사물이 가진 물리적 연약함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맺는 혹은 개인과 작업 속 관계와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상호 의존성을 강조한다. 결국 타자와 나 이외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한다.
곡선이 없는 높다란 천장의 Baxter St Camera Club 전시 공간은 전형적인 하얀 큐브 형태로 다소 딱딱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공간 안에서 오가영의 종이가 만들어내는 굴곡진 흐름과 이주연의 다듬어진 유리 곡선은 부드럽고 끊어짐 없이 이어지며, 동시에 견고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재료에서 비롯된 이 유연함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의 대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비록 ‘유리’라는 공통된 재료가 사용되지만, 그 접근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오가영은 유리를 단순히 사진을 지지하는 물리적 기반으로 다루지 않고, 이미지 구성의 적극적인 일부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에서 이미지를 담은 프린트가 중심이 된다면, 오가영은 그 사진을 감싸는 액자와 프레임, 즉 이미지를 둘러싼 구조 자체를 다시 사유한다. 유리가 사진을 보호하는 목적을 벗어나, 프레임 밖으로 나와 직접 자르고 조각을 내어 작업 위에 붙인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납작한 유리에서 어느 정도 직접 자르고 붙일 수 있는 수준의 개입이다. 신작 <Double Glass Series - Midnight in Midtown>(2025)을 살펴보면 자른 유리와 본인이 수집하고 촬영한 이미지가 겹쳐 있다. 빛의 굴절이 일어난 것처럼 유리 자른 유리 위의 이미지는 더 선명하다. 이미지에서 보이는 프렛젤(pretzel)과 선인장, 아무 상관 없는 두 이미지의 대비는 우리를 아무 의심 없게 바라보게 한다. 사진은 완전하냐는 질문은 유리와 이미지 사이 균열을 통해서만 비로소 설득력이 있다. 옆을 살짝 도는 순간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종이가 벽에 붙어있다.



오가영, Vulnerable and Naked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오가영, Vulnerable and Naked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오가영, Double Glass Series - Midnight in Midtown,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 유리, 아카이벌 테이프, 무반사 유리, 알루미늄 프레임, 89 × 107 × 4 cm, 2025 ⒸLloyd McCullough
<Vulnerable and Naked>(2025)는 말 그대로 “아무 방어 없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를 뜻한다. 작가의 말을 빌려 보면, ‘완전한 무방비 상태’라는 뜻으로 문학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온라인상 알고리즘에 얽힌 그의 상태에 대한, 몇 년 동안의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한 도피를 생각한다. 자본주의 알고리즘에 질려버려서 이제 보고 듣는 것은 좀 쉬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작가가 직접 시라큐스의 Light Work 레지던시를 지낼 때, 모은 이미지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인쇄된 종이 뭉치들은 그대로 둘둘 말려 있고, 느슨한 상태의 종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종이의 미세한 관성이 직접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밀도가 눈으로 느껴졌다. 미술을 전공했거나 입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필 소묘에 익숙하다. 가장 기본적인 훈련이자, 동시에 가장 친근한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작가 오가영에게도 드로잉은 단순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 이미지를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는 사진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화면에는 추상적인 드로잉이 더해진다. 물방울인지, 공기 입자인지, 반복된 원과 음영을 주고 있는 연필 선의 투박한 교차가 종이 위를 이리저리 유영하듯 흐르다 보면 다시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을 만난다. 공기 흐름이나 습도에 따라 변형되는 종이에 집중하다 다시 또 쌓인 음영 처리가 된 이미지들을 만난다. 쌓인 이미지 예를 들어 귤 껍질, 먹다 만 케이크, 뇌 사진, 색이 고운 꽃 등 예고 없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내 신경을 건드리고, 일치하지 않은 기억을 꺼내고, 넘기고, 들여다보며 내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불완전하고 비완성적인 형태가 견고해져 오히려 설득력을 강화한다.
이주연, Woven Bodies Travels I (his body) shrouded in hanji, light coming into studio), 성형 유리에 손으로 직조한 사진 전사지, 22 × 33 × 6 cm, 2025 ⒸLloyd McCullough
반면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물결 위에서 투명한 무언가 미묘하게 반짝인다. 이주연은 유리를 직접 제작하는 작업 방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직접 만든 안구 형태의 유리 렌즈를 사용해 사진을 촬영한다. 액체 상태의 유리를 기다란 봉에 묻혀 끊임없이 회전시키며 형태를 만들고, 표면이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불규칙한 렌즈를 카메라 렌즈 앞에 두어 이미지를 포착한다. 이후 촬영된 사진은 프린트되어 잘리고, 손으로 엮이는 과정을 거치며 또 다른 실험으로 확장된다. 할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신작 〈Bodiless Travels〉(2025)와, 할머니와의 텔레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친밀감과 거리감을 스크린 안에서 연결하고자 했던 〈Parabolic Traces〉(2025)는 애도와 상실, 그리고 부재의 감각을 다룬다. 이 작품들은 개방성과 감수성, 그리고 소유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정서를 환기한다. 인간이란 끝없이 경계가 열려 있는 관계 속에서 타인과 얽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상기시킨다. 작품 속에는 익숙한 휴대전화 영상통화 화면이 등장하고, 그 옆에는 비행기 좌석 앞 모니터에서 볼 수 있는 이동 거리와 남은 시간, 현재 위치를 안내하는 화면이 병치된다. 화면 중앙에는 네온사인처럼 이어진 선이 시선을 잇는다. 유리의 물성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곡면의 변형은, 의도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구름과 바다 사이의 산등성 같은 지형을 연상시킨다. 물리적 거리를 자신의 작업 안으로 끌어와 감각적으로 좁히려는 작가의 의도가 이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애착 대상에 대한 좋은 시선.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전시장과 천장을 수직으로 나누고 있는 네온사인이 공간의 축처럼 솟아 있다. <Weighing of the Light>(2025)에서는 디지털화 된 사진은 무게가 없는 반면, 작가가 그리워하는 가족들은 실체, 결국 존재하는 것들의 무게를 사진으로는 어림짐작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빛은 질량이 없고, 디지털화 된 이미지들은 화면 안 속에 갇혀 실체 없이 떠돌아다닌다. 떠돌아다니는 듯한, 일시적으로 연결되는 순간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 들에 몸을 부여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각기 다른 시간에 발생한 행위와 경험이 반복과 침전, 응축이 얽혀 드러나는 지점이 시간과 기억, 유리와 빛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업을 뚫고 흐르는 물을 지나가는 네온사인과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은 여러 방향으로 모이고 흩어져 찰랑거린다. 기억의 멈춤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형태를 만들어 가며 작업의 몸체를 만든다. 다른 장소와 시간을 담은 사진들을 출력해 얇게 자른 후, 위빙 기법3)으로 엮는다. 작가는 현존했던 것들을 기억과 상상, 투영 속에서 작업처럼 엮어 끊어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끊어지고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겠지만 이어져 있다는 안도감이 그를 존재케 한다.


이주연, Parabolic Traces1, 5, 성형 유리에 디지털 합성 사진 전사, 50 × 32 × 6 cm, 2025 ⒸLloyd McCullough
이주연, Weighing of the Light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이주연, Weighing of the Light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오가영의 유리는 잘려 있으며, 날카롭고 날이 서 있다. 반면 이주연의 유리는 정반대의 인상을 준다. 손으로 만져도 결코 다칠 것 같지 않은, 오래 닳아버린 유리 조각처럼 보인다. 유리는 쉽게 깨질 수 있는 재료이지만, 동시에 시야를 투과시키고 반사하며 보호하고 격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종이 역시 쉽게 구겨지는 물성을 지니지만, 그 위에 축적된 드로잉과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제도적 환경은 오히려 강력한 기억을 생성한다. 오가영과 이주연의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변형이 감지된다. 오가영이 유리를 사진의 단순한 지지체가 아닌 이미지의 일부로 확장한다면, 이주연은 사진 이미지를 인쇄하고 자른 뒤 손으로 엮고, 다시 가마에 구워 유리로 변형시키는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다. 두 작가 모두 사진과 이미지 수집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렌즈를 통해 특정 기억을 붙잡아 두고자 하는 욕망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기억을 완전히 고정하려는 시도라기보다, 사라짐과 변형의 가능성을 감내한 채 잠시 머물게 하려는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참고 김정현, Through Fragility, STHSTH.org, 2025.
1) 1884년 설립된 BAXTER ST at the Camera Club of New York은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아티스트 런 비영리 공간 중 하나로 렌즈 기반 예술을 지원한다. 현재는 신진 렌즈 기반 작가들의 데뷔를 돕는 예술 인큐베이터로 전시뿐 아니라 레지던시·비평 그룹·공개 강연·워크숍 등을 운영한다. 문화, 인관 환경, 평등에 관한 글로벌 담론과 연계된 다양한 작가를 발굴·지원하며, 아이디어와 자원을 공유해 조직과 커뮤니티에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BAXTER ST at CCNY 2024–2025 큐레토리얼 오픈콜에 선정된 한국인 큐레이터 김정현이 기획했다. (https://www.baxterst.org/)
2) Fragility 는 ‘깨지기 쉬움’, ‘연약함’, ‘불안정함’, ‘취약함’, ‘섬세함’, ‘위태로움’ 등 여러 의미를 포괄하는 영어 표현이다.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단일한 한국어 단어가 없어 기획자 의도에 가장 가까운 표현인 ‘취약함’으로 번역하고 사용한다. 김정현, Through Fragility, STHSTH.org, 2025. 참고
3) 날실(세로실)과 씨실(가로실)을 교차하여 직물을 짜는 직조 방법
2026.0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Februar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 이 글은 2025년 9월 10일부터 11월 12일까지 BAXTER ST at CCNY에서 열린 오가영, 이주연의 2인전 〈Through Fragility _ Juyon Lee, Kai Oh〉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의 축약본은 『퍼블릭아트』 2025년 11월 호에 게재되었다.
축적된 경험, 견고한 장면들
정재연, 독립큐레이터
여기, 닳아버린 유리 조각을 주운 사람이 있다. 무디어진 조각 끝을 매만지면서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한다. 그 가능성은 지나치게 희망적이지 않아도 어느 선 아래로는 빠지지 않는 자신의 견고한 힘을 믿는 것이다. 결국 꾸준히 남긴 것들, 아직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러니까 그 자리 자체가 기억이다. 두 눈과 기억, 그리고 렌즈를 통해 보는 시선과 기록. 내 것이고, 내 기억이며, 내가 남기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여기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비영리 공간인 BAXTER ST at CCNY(Camery Club of New York)1)에서 오가영, 이주연 작가의 2인전 《Through Fragility》가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제목 그대로 ‘연약함(fragility’)2)을 응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파손, 결핍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단단함과 강인함이 남기는 연결의 힘을 보여준다. 아시아 여성, 이주자, 예술가, 사유자로서 이들이 공통으로 지닌 정체성 안에서 서로 다른 물질인 종이와 유리의 접근을 ‘연약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시로 통해 제시한다. 과연 가장 연약한 존재가 되어 서로의 몸에 미끄러지는 일,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취약함을 들춰내는 일에 대하여, 각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Through Fragility_installation view ⒸLloyd McCullough
익숙한 풍경을 찾거나,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는 카메라를 든다. 카메라를 덮고 있는 유리는 빛을 굴절시키고, 초점을 형성하면서 현실을 담는 기능을 수행한다. 유리와 사진의 관계는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지며, 스마트폰의 스크린 역시 우리가 다른 세계를 감각하는 포털 이자 수많은 이미지가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통로가 된다. 렌즈로 통하는 시선. 빛을 모으는 렌즈의 섬세한 곡면과 투명성은 쉽게 손상될 수 있는 위태로움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시 제목 〈Through Fragility〉가 담고 있는 ‘취약함’ 속에서, 이 전시는 유리라는 물질적 계보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본다. 더 나아가 ‘연약함’이라는 감각이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 제작 속에서 어떻게 반향을 일으키는지 조망한다. 뉴욕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오가영 그리고 브루클린을 거점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주연. 이 두 사람은 위에서 언급했듯 아시아 여성, 이주자, 예술가란 가까운 공통점을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공통점으로 이 둘을 묶었지만, 두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형태 그리고 내면의 근거는 다르다. 오가영, 이주연 두 사람의 작업은 단순히 개인이나 사물이 가진 물리적 연약함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맺는 혹은 개인과 작업 속 관계와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상호 의존성을 강조한다. 결국 타자와 나 이외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한다.
곡선이 없는 높다란 천장의 Baxter St Camera Club 전시 공간은 전형적인 하얀 큐브 형태로 다소 딱딱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공간 안에서 오가영의 종이가 만들어내는 굴곡진 흐름과 이주연의 다듬어진 유리 곡선은 부드럽고 끊어짐 없이 이어지며, 동시에 견고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재료에서 비롯된 이 유연함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의 대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비록 ‘유리’라는 공통된 재료가 사용되지만, 그 접근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오가영은 유리를 단순히 사진을 지지하는 물리적 기반으로 다루지 않고, 이미지 구성의 적극적인 일부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에서 이미지를 담은 프린트가 중심이 된다면, 오가영은 그 사진을 감싸는 액자와 프레임, 즉 이미지를 둘러싼 구조 자체를 다시 사유한다. 유리가 사진을 보호하는 목적을 벗어나, 프레임 밖으로 나와 직접 자르고 조각을 내어 작업 위에 붙인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납작한 유리에서 어느 정도 직접 자르고 붙일 수 있는 수준의 개입이다. 신작 <Double Glass Series - Midnight in Midtown>(2025)을 살펴보면 자른 유리와 본인이 수집하고 촬영한 이미지가 겹쳐 있다. 빛의 굴절이 일어난 것처럼 유리 자른 유리 위의 이미지는 더 선명하다. 이미지에서 보이는 프렛젤(pretzel)과 선인장, 아무 상관 없는 두 이미지의 대비는 우리를 아무 의심 없게 바라보게 한다. 사진은 완전하냐는 질문은 유리와 이미지 사이 균열을 통해서만 비로소 설득력이 있다. 옆을 살짝 도는 순간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종이가 벽에 붙어있다.



오가영, Vulnerable and Naked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오가영, Vulnerable and Naked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오가영, Double Glass Series - Midnight in Midtown,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 유리, 아카이벌 테이프, 무반사 유리, 알루미늄 프레임, 89 × 107 × 4 cm, 2025 ⒸLloyd McCullough
<Vulnerable and Naked>(2025)는 말 그대로 “아무 방어 없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를 뜻한다. 작가의 말을 빌려 보면, ‘완전한 무방비 상태’라는 뜻으로 문학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온라인상 알고리즘에 얽힌 그의 상태에 대한, 몇 년 동안의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한 도피를 생각한다. 자본주의 알고리즘에 질려버려서 이제 보고 듣는 것은 좀 쉬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작가가 직접 시라큐스의 Light Work 레지던시를 지낼 때, 모은 이미지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인쇄된 종이 뭉치들은 그대로 둘둘 말려 있고, 느슨한 상태의 종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종이의 미세한 관성이 직접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밀도가 눈으로 느껴졌다. 미술을 전공했거나 입시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필 소묘에 익숙하다. 가장 기본적인 훈련이자, 동시에 가장 친근한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작가 오가영에게도 드로잉은 단순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 이미지를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는 사진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화면에는 추상적인 드로잉이 더해진다. 물방울인지, 공기 입자인지, 반복된 원과 음영을 주고 있는 연필 선의 투박한 교차가 종이 위를 이리저리 유영하듯 흐르다 보면 다시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을 만난다. 공기 흐름이나 습도에 따라 변형되는 종이에 집중하다 다시 또 쌓인 음영 처리가 된 이미지들을 만난다. 쌓인 이미지 예를 들어 귤 껍질, 먹다 만 케이크, 뇌 사진, 색이 고운 꽃 등 예고 없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내 신경을 건드리고, 일치하지 않은 기억을 꺼내고, 넘기고, 들여다보며 내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불완전하고 비완성적인 형태가 견고해져 오히려 설득력을 강화한다.
이주연, Woven Bodies Travels I (his body) shrouded in hanji, light coming into studio), 성형 유리에 손으로 직조한 사진 전사지, 22 × 33 × 6 cm, 2025 ⒸLloyd McCullough
반면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물결 위에서 투명한 무언가 미묘하게 반짝인다. 이주연은 유리를 직접 제작하는 작업 방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직접 만든 안구 형태의 유리 렌즈를 사용해 사진을 촬영한다. 액체 상태의 유리를 기다란 봉에 묻혀 끊임없이 회전시키며 형태를 만들고, 표면이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불규칙한 렌즈를 카메라 렌즈 앞에 두어 이미지를 포착한다. 이후 촬영된 사진은 프린트되어 잘리고, 손으로 엮이는 과정을 거치며 또 다른 실험으로 확장된다. 할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신작 〈Bodiless Travels〉(2025)와, 할머니와의 텔레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친밀감과 거리감을 스크린 안에서 연결하고자 했던 〈Parabolic Traces〉(2025)는 애도와 상실, 그리고 부재의 감각을 다룬다. 이 작품들은 개방성과 감수성, 그리고 소유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정서를 환기한다. 인간이란 끝없이 경계가 열려 있는 관계 속에서 타인과 얽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상기시킨다. 작품 속에는 익숙한 휴대전화 영상통화 화면이 등장하고, 그 옆에는 비행기 좌석 앞 모니터에서 볼 수 있는 이동 거리와 남은 시간, 현재 위치를 안내하는 화면이 병치된다. 화면 중앙에는 네온사인처럼 이어진 선이 시선을 잇는다. 유리의 물성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곡면의 변형은, 의도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구름과 바다 사이의 산등성 같은 지형을 연상시킨다. 물리적 거리를 자신의 작업 안으로 끌어와 감각적으로 좁히려는 작가의 의도가 이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애착 대상에 대한 좋은 시선.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전시장과 천장을 수직으로 나누고 있는 네온사인이 공간의 축처럼 솟아 있다. <Weighing of the Light>(2025)에서는 디지털화 된 사진은 무게가 없는 반면, 작가가 그리워하는 가족들은 실체, 결국 존재하는 것들의 무게를 사진으로는 어림짐작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빛은 질량이 없고, 디지털화 된 이미지들은 화면 안 속에 갇혀 실체 없이 떠돌아다닌다. 떠돌아다니는 듯한, 일시적으로 연결되는 순간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 들에 몸을 부여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각기 다른 시간에 발생한 행위와 경험이 반복과 침전, 응축이 얽혀 드러나는 지점이 시간과 기억, 유리와 빛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업을 뚫고 흐르는 물을 지나가는 네온사인과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은 여러 방향으로 모이고 흩어져 찰랑거린다. 기억의 멈춤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형태를 만들어 가며 작업의 몸체를 만든다. 다른 장소와 시간을 담은 사진들을 출력해 얇게 자른 후, 위빙 기법3)으로 엮는다. 작가는 현존했던 것들을 기억과 상상, 투영 속에서 작업처럼 엮어 끊어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끊어지고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겠지만 이어져 있다는 안도감이 그를 존재케 한다.


이주연, Parabolic Traces1, 5, 성형 유리에 디지털 합성 사진 전사, 50 × 32 × 6 cm, 2025 ⒸLloyd McCullough
이주연, Weighing of the Light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이주연, Weighing of the Light (detail), 2025 ⒸLloyd McCullough
오가영의 유리는 잘려 있으며, 날카롭고 날이 서 있다. 반면 이주연의 유리는 정반대의 인상을 준다. 손으로 만져도 결코 다칠 것 같지 않은, 오래 닳아버린 유리 조각처럼 보인다. 유리는 쉽게 깨질 수 있는 재료이지만, 동시에 시야를 투과시키고 반사하며 보호하고 격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종이 역시 쉽게 구겨지는 물성을 지니지만, 그 위에 축적된 드로잉과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제도적 환경은 오히려 강력한 기억을 생성한다. 오가영과 이주연의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변형이 감지된다. 오가영이 유리를 사진의 단순한 지지체가 아닌 이미지의 일부로 확장한다면, 이주연은 사진 이미지를 인쇄하고 자른 뒤 손으로 엮고, 다시 가마에 구워 유리로 변형시키는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다. 두 작가 모두 사진과 이미지 수집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렌즈를 통해 특정 기억을 붙잡아 두고자 하는 욕망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기억을 완전히 고정하려는 시도라기보다, 사라짐과 변형의 가능성을 감내한 채 잠시 머물게 하려는 제스처가 아니었을까.
참고 김정현, Through Fragility, STHSTH.org, 2025.
1) 1884년 설립된 BAXTER ST at the Camera Club of New York은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아티스트 런 비영리 공간 중 하나로 렌즈 기반 예술을 지원한다. 현재는 신진 렌즈 기반 작가들의 데뷔를 돕는 예술 인큐베이터로 전시뿐 아니라 레지던시·비평 그룹·공개 강연·워크숍 등을 운영한다. 문화, 인관 환경, 평등에 관한 글로벌 담론과 연계된 다양한 작가를 발굴·지원하며, 아이디어와 자원을 공유해 조직과 커뮤니티에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BAXTER ST at CCNY 2024–2025 큐레토리얼 오픈콜에 선정된 한국인 큐레이터 김정현이 기획했다. (https://www.baxterst.org/)
2) Fragility 는 ‘깨지기 쉬움’, ‘연약함’, ‘불안정함’, ‘취약함’, ‘섬세함’, ‘위태로움’ 등 여러 의미를 포괄하는 영어 표현이다.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단일한 한국어 단어가 없어 기획자 의도에 가장 가까운 표현인 ‘취약함’으로 번역하고 사용한다. 김정현, Through Fragility, STHSTH.org, 2025. 참고
3) 날실(세로실)과 씨실(가로실)을 교차하여 직물을 짜는 직조 방법
2026.0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Februar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