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지워진 자리에, 이름
문소영(독립기획자)
2008년 발매된 이소라 7집에는 제목이 붙여지지 않은 열세 곡의 노래가 들어있다. 앨범 중 가장 유명한 Track 8도 사실 제목이 아니라 곡을 식별하기 위한 순번이다. 이소라는 노래들에 단어로 된 제목을 붙이는 대신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러니까, 제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자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고1), 그것에 단어를 붙여 넣는 것은 앨범을 소유한 청자의 몫이 된다. 앨범 속에는 작가의 스케치북 같은 가사집이 들어있다. 제목 대신, 곡을 만들며 떠오른 듯한 짧은 노트들과 함께 손톱처럼 작은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음반의 물리적인 제약상 순번이 붙기는 했지만, 곡들은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때로는 여러 곡이 한 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티스트의 노트와 가사를 읽고 나면 몇 가지 색깔의 빈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노래에 공감하는 순간 7집의 이야기는 청자의 이야기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이름은 꼭 단어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이름을 둘러싼 기억과 감각들이 그것을 완전하게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시간마다 다르게 읽히는 것처럼.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이 얽혀있는 시간과 감정의 정수에 이름을 붙이는 일보다 아득한 고민이 있을까? 작업이나 전시의 제목을 정할 때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제목을 정해버리면, 그 단어에 달라붙지 못하고 떨어지는 단상들이 아쉬워서, 그리고 한참을 곱씹다가 용기 내어 터놓은 말들이 어디에도 닿지 못하진 않을까 싶어서. 길고 긴 이야기를 어떻게 한두 마디 단어 속에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절묘한 한 문장을 찾을 수 있다면 행운이고,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아쉽지 않을 말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긴 문장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제목은 일종의 번역문이다. 번역은 창작물에 대해 이해한 바를 나만의 언어로 온전히 소화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라 7집 앨범 속 실험은 사려 깊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슬픔과 고독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가시 없이 전달할 방법을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듯하다2). 온 마음을 담아 전하되, 마음이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 답을 정해두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느껴지는 그대로, 각자의 방법으로 곡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보면 제목을 ‘다는’ 것과 이름을 ‘아는’ 것은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 제목은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요약하여 전달하기 위해 붙여진다. 하지만 이름은 설명 없이도 알거나 깨우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봄’이라고 말했을 때, 그 단어 자체가 아닌 그 단어에 딸려오는 체득된 기억과 심상들이다. 제목이 고명처럼 얹혀지는 표식이라면, 이름은 감각을 형성하거나 심상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제목은 상황을 설명하고, 이름은 그 대상을 고유하게 한다.
이름은 단어가 아니라 피부 아래 머무는 감각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미헬 파베르(Michel Faber)의 소설을 영화화한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의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은 원작의 설정들을 친절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글레이저는 소설과의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그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연출을 고심하다가, 직접적인 각색 대신 모호함으로 남겨두기를 택한다. 이야기를 미상의 사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이방인(외계인)으로서의 긴장감과 낯선 시간, 그리고 대상이 품고 있는 미묘한 감각들을 부각한다3).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 관객은 영문도 모른 채 이끌려 이방인이자 감시자로서 서사에 가담하게 된다. 글레이저의 연출은 영상 매체가 지닌 시간성을 통한 맥락 설명의 장점을 일부러 뒤로한 채, 이야기가 하나의 풍경으로 현상하기를 택한다. 말이 지워진 자리에는 정처 없이 이동하는 인물과 그 움직임을 감시하듯 따라붙는 시선, 절제되어 오히려 강렬하게 다가오는 색채의 조화, 그리고 배우의 시선과 몸짓을 안무처럼 바라보게 하는 음악이 남겨진다4). 미지의 존재가 생경하게 드러날 때, 때로는 너무 오랜 시간 함께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차릴 때. 어떤 것들은 깨달은 그 상태 그대로 이름이 되어버린다. 굳이 단어를 입히지 않아도, 억지로 압축하지 않아도, 그 아득한 상태 그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들처럼 말이다.

이름이 없는 것들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이름을 붙이면 부서질까 봐서, 흐느적거리는 대로 붙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그것을 뭉치고 굴린 사유들. 글에 담으면 어긋나고, 말로 뱉으면 엉겨버리는 심상들. 하지만 그것들에게 정말 이름이 없을까? 수식하는 글자는 없지만, 느껴지고 떠오르는 그 자체가 이름이 될 수는 없을까. 한마디로, 한 매체로 설명할 수 없는 길고 깊은 감정들은 들풀처럼 발견되고 보여진 그 순간을 이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 선택과 우연히 부딪힌 자리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 사건으로부터 태어나 기억되는 잔상도 이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오랜 시간 다듬어 그려낸 회화 한 점은,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식별된다.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좋든 싫든 의미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짓지 않은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1) 「이소라 “노래에 제목을 달아주세요”」, 스포츠동아, 2017.11.13.,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020/0002013673
2) “가끔 그는 관객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너무 오래 단둘이 있지 않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때 그는 자신의 고통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의 고통은 수다스럽지 않다.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신형철, 「문학으로서의 이소라」,『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산문집』中, 2018, 한겨레출판.
3) 조나단 글레이저와 Film4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했다. <Jonathan Glazer on Under The Skin, Film4 Interview Special>, YouTube, 2014. 3. 18. (https://www.youtube.com/watch?v=hZUvIfXKVVc)
4) 처음에는 실제 상황에 가까운 연출을 위해 음악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후에는 음악을 서사를 이끄는 하나의 재료로 보고 다른 요소들과 구분하지 않은 채 긴밀하게 엮어 사용하는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2026.4.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pril.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글자가 지워진 자리에, 이름
문소영(독립기획자)
2008년 발매된 이소라 7집에는 제목이 붙여지지 않은 열세 곡의 노래가 들어있다. 앨범 중 가장 유명한 Track 8도 사실 제목이 아니라 곡을 식별하기 위한 순번이다. 이소라는 노래들에 단어로 된 제목을 붙이는 대신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러니까, 제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자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고1), 그것에 단어를 붙여 넣는 것은 앨범을 소유한 청자의 몫이 된다. 앨범 속에는 작가의 스케치북 같은 가사집이 들어있다. 제목 대신, 곡을 만들며 떠오른 듯한 짧은 노트들과 함께 손톱처럼 작은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음반의 물리적인 제약상 순번이 붙기는 했지만, 곡들은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때로는 여러 곡이 한 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티스트의 노트와 가사를 읽고 나면 몇 가지 색깔의 빈 페이지들이 이어진다. 노래에 공감하는 순간 7집의 이야기는 청자의 이야기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이름은 꼭 단어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이름을 둘러싼 기억과 감각들이 그것을 완전하게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람마다 시간마다 다르게 읽히는 것처럼.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이 얽혀있는 시간과 감정의 정수에 이름을 붙이는 일보다 아득한 고민이 있을까? 작업이나 전시의 제목을 정할 때도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제목을 정해버리면, 그 단어에 달라붙지 못하고 떨어지는 단상들이 아쉬워서, 그리고 한참을 곱씹다가 용기 내어 터놓은 말들이 어디에도 닿지 못하진 않을까 싶어서. 길고 긴 이야기를 어떻게 한두 마디 단어 속에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절묘한 한 문장을 찾을 수 있다면 행운이고,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아쉽지 않을 말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긴 문장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제목은 일종의 번역문이다. 번역은 창작물에 대해 이해한 바를 나만의 언어로 온전히 소화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라 7집 앨범 속 실험은 사려 깊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슬픔과 고독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가시 없이 전달할 방법을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듯하다2). 온 마음을 담아 전하되, 마음이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 답을 정해두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느껴지는 그대로, 각자의 방법으로 곡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보면 제목을 ‘다는’ 것과 이름을 ‘아는’ 것은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 제목은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요약하여 전달하기 위해 붙여진다. 하지만 이름은 설명 없이도 알거나 깨우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봄’이라고 말했을 때, 그 단어 자체가 아닌 그 단어에 딸려오는 체득된 기억과 심상들이다. 제목이 고명처럼 얹혀지는 표식이라면, 이름은 감각을 형성하거나 심상을 끌어오는 방식이다. 제목은 상황을 설명하고, 이름은 그 대상을 고유하게 한다.
이름은 단어가 아니라 피부 아래 머무는 감각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미헬 파베르(Michel Faber)의 소설을 영화화한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의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은 원작의 설정들을 친절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글레이저는 소설과의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그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연출을 고심하다가, 직접적인 각색 대신 모호함으로 남겨두기를 택한다. 이야기를 미상의 사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이방인(외계인)으로서의 긴장감과 낯선 시간, 그리고 대상이 품고 있는 미묘한 감각들을 부각한다3).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 관객은 영문도 모른 채 이끌려 이방인이자 감시자로서 서사에 가담하게 된다. 글레이저의 연출은 영상 매체가 지닌 시간성을 통한 맥락 설명의 장점을 일부러 뒤로한 채, 이야기가 하나의 풍경으로 현상하기를 택한다. 말이 지워진 자리에는 정처 없이 이동하는 인물과 그 움직임을 감시하듯 따라붙는 시선, 절제되어 오히려 강렬하게 다가오는 색채의 조화, 그리고 배우의 시선과 몸짓을 안무처럼 바라보게 하는 음악이 남겨진다4). 미지의 존재가 생경하게 드러날 때, 때로는 너무 오랜 시간 함께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차릴 때. 어떤 것들은 깨달은 그 상태 그대로 이름이 되어버린다. 굳이 단어를 입히지 않아도, 억지로 압축하지 않아도, 그 아득한 상태 그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들처럼 말이다.

이름이 없는 것들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이름을 붙이면 부서질까 봐서, 흐느적거리는 대로 붙잡고 있는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그것을 뭉치고 굴린 사유들. 글에 담으면 어긋나고, 말로 뱉으면 엉겨버리는 심상들. 하지만 그것들에게 정말 이름이 없을까? 수식하는 글자는 없지만, 느껴지고 떠오르는 그 자체가 이름이 될 수는 없을까. 한마디로, 한 매체로 설명할 수 없는 길고 깊은 감정들은 들풀처럼 발견되고 보여진 그 순간을 이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 선택과 우연히 부딪힌 자리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 사건으로부터 태어나 기억되는 잔상도 이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오랜 시간 다듬어 그려낸 회화 한 점은,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식별된다.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좋든 싫든 의미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짓지 않은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1) 「이소라 “노래에 제목을 달아주세요”」, 스포츠동아, 2017.11.13.,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020/0002013673
2) “가끔 그는 관객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너무 오래 단둘이 있지 않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때 그는 자신의 고통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의 고통은 수다스럽지 않다.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신형철, 「문학으로서의 이소라」,『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산문집』中, 2018, 한겨레출판.
3) 조나단 글레이저와 Film4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했다. <Jonathan Glazer on Under The Skin, Film4 Interview Special>, YouTube, 2014. 3. 18. (https://www.youtube.com/watch?v=hZUvIfXKVVc)
4) 처음에는 실제 상황에 가까운 연출을 위해 음악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후에는 음악을 서사를 이끄는 하나의 재료로 보고 다른 요소들과 구분하지 않은 채 긴밀하게 엮어 사용하는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2026.4.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pril.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