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박준수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A.I 생성 이미지
최근 한 강의를 위한 자료를 만들며, 189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대미술시장의 형성 과정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정리하다보니 다시금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그려보았다.
1890년대 전통적인 방식의 왕실과 귀족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던 근대적인 미술시장이 현대적인 미술시장으로 변화한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생겨난 브루주아들은 미술 작품을 수집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 투자 개념의 작품 수집이라는 시초를 만들었다.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럽의 미술시장은 사실상 붕괴했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수많은 작가, 딜러, 컬렉터는 생존을 위해 대거 미국으로 이동했다.이런 망명과 같은 이동은 단순한 피난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인해 시장이 재구성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Castelli in 1960 with works by Frank Stella, Jasper Johns, Lee Bontecou, Edward Higgins, and Robert Rauschenberg.Photograph by Eliot Elisofon / Time & Life Pictures / Getty
이탈리아 유대계였던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는 이 틈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 역시 전쟁의 포화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으나, 그에게는 이미 파리에서부터 형성한 인맥이 있었다. 이를 통해 유럽에서 이주한 작가들과 미국의 컬렉터를 연결하며 뉴욕 미술시장의 중심을 선점했다. 그의 갤러리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갤러리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는 현대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위기는 시장을 죽이지 않는다. 위기를 피해 지리적 중심을 바꿀 뿐이다.
최근의 중동 정세는 이런 사실을 상기시킨다. 만약 이란 공습이 없었다면, 아트바젤과 프리즈가 모두 중동 진출을 선언한 상황에서 현대미술의 중심이 서서히 중동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이란 공습 직전, 아트바젤 카타르는 다행히 문을 열었지만, 올해 하반기 예정이던 프리즈 아부다비는 기약 없는 연기를 하였다. 이로 인해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공습 이후 미술 시장의 거래는 중단되었고, 작품의 이동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중동의 컬렉터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바쁘게 주요 작품들을 미국과 유럽으로 재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어려운 일인 것이, 얼마전 아트바젤 홍콩에서 만난 한 갤러리는 도하에서 출발한 작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해 우회 운송을 하느라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동의 위기는 다른 지역에게는 또다른 기회일지도 모른다.
1970년대 일어난 오일쇼크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1950-60년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열강들이 석유 가격을 통제하였으나, 1970년대가 되며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이 자원 주권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간의 전쟁이 촉발한다. 1973년에 일어난 중동 전쟁이다. 이로 인해 생산량은 감소되고, 유가는 폭등하였으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기존 금융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흔히 경제가 좋아지면 가장 나중에 좋아지는게 미술시장이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어려워지는게 미술시장이라는 말을 하는데, 당연히 당시 미술시장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매의 낙찰율은 현저히 떨어졌고, 작품 가격은 폭락한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나마드(Nahmad) 가문이다. 그들은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피카소, 모네와 같은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경매를 통해 대량으로 매입했다. 이 전략은 단순한 투자 성공을 넘어 시장의 회복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다. 유동성이 사라진 시장에서 작품을 흡수하는 존재가 등장하자, 시장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나마드 효과(Nahmad effect)라고 부른다.
이후 Nahmad 가문의 컬렉션은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하나의 상징이 된다. 지난 해 Art Basel Paris에서 부스를 가득 채운 피카소 작품들은 이 시기의 전략적 매집을 증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서 시장은 붕괴하지 않는다.

Pablo Picasso, Trois Femmes à la Fontaine, Nahmad Contemporary, ART BASEL PARIS
사진 출처 : 박준수
내가 기억하는 미술 시장의 어려움은 9.11 테러이다. 고3 시절, 미술학원을 마치고 마을버스 정류장 옆 작은 점포에서 할머니가 보던 TV 화면으로 그 장면을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그 충격의 규모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뉴욕 미술시장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거래는 급감했고, 시장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때 등장한 또 하나의 방식이 있다. 연대다. 당시 오픈한지 10년도 안된 데이비드 쯔워너(David Zwirner, 1993년 오픈)는 갤러리, 작가들과 함께 자선 경매를 조직했다. 이는 단일 이벤트가 아니라 뉴욕 전역 15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확장되었고, 수익금은 Robin Hood Relief Fund를 통해 피해 복구에 사용되었다.
이 연대의 방식은 이후 더 확장된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쯔워너는 다시 한번 경매를 조직한다.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작가들이 참여한 대형 이벤트로 발전했고, 약 1,366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이 외부의 위기에 아무리 어려워져도, 그들의 연대, 네트워크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관계가 시장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2001년 10월 19일에서 11월 3일까지 열린 데이비드 쯔워너 I ♥ NY - Art Benefit 전시전경 사진출처 : 데이비드 쯔워너 홈페이지
반만년의 세월동안 외세의 침략과 환난을 극복해온 역사를 가진 한국 미술 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리만 사태 이후 한국 미술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거래는 줄어들었고, 가격은 조정되었으며, 갤러리와 작가 모두 생존의 압박에 놓였다. 06년 졸업한 선배들은 졸업작품도 걸어놓기 무섭게 팔렸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08년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침략도 극복하고, 일제강점기도극복하고, IMF도 극복한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2010년대를 지나며 단색화가 재조명 되며, 차츰 한국 미술 시장을 호황기로 이끈다.
1970년대에 형성된 단색화는 오랫동안 국내 미술사 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위기 이후 한국 미술계는 이를 다시 재조명한다. 단색화는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는 서사로 재구성되었고, 해외 시장과 연결되며 새로운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침체된 시장이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평론가, 미술관, 갤러리스트, 컬렉터, 그리고 관계된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값진 성과였다. 그 결과, 한국 미술시장은 단순히 회복하는 것을 넘어 점차 국제 무대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모든 사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침체기를 지나고 있다. 거래는 줄어들고, 가격은 조정되며, 시장은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러나 돌이켜 역사를 보면, 이 순간은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다.
누군가는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기회에 용감한 선택들이 다음 시장을 만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지만, 역사를 아는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살아남아 왔는지를.
2026.4.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pril.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박준수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A.I 생성 이미지
최근 한 강의를 위한 자료를 만들며, 189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대미술시장의 형성 과정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정리하다보니 다시금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그려보았다.
1890년대 전통적인 방식의 왕실과 귀족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던 근대적인 미술시장이 현대적인 미술시장으로 변화한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생겨난 브루주아들은 미술 작품을 수집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 투자 개념의 작품 수집이라는 시초를 만들었다.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럽의 미술시장은 사실상 붕괴했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수많은 작가, 딜러, 컬렉터는 생존을 위해 대거 미국으로 이동했다.이런 망명과 같은 이동은 단순한 피난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인해 시장이 재구성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Castelli in 1960 with works by Frank Stella, Jasper Johns, Lee Bontecou, Edward Higgins, and Robert Rauschenberg.Photograph by Eliot Elisofon / Time & Life Pictures / Getty
이탈리아 유대계였던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는 이 틈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 역시 전쟁의 포화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으나, 그에게는 이미 파리에서부터 형성한 인맥이 있었다. 이를 통해 유럽에서 이주한 작가들과 미국의 컬렉터를 연결하며 뉴욕 미술시장의 중심을 선점했다. 그의 갤러리는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갤러리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는 현대미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위기는 시장을 죽이지 않는다. 위기를 피해 지리적 중심을 바꿀 뿐이다.
최근의 중동 정세는 이런 사실을 상기시킨다. 만약 이란 공습이 없었다면, 아트바젤과 프리즈가 모두 중동 진출을 선언한 상황에서 현대미술의 중심이 서서히 중동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이란 공습 직전, 아트바젤 카타르는 다행히 문을 열었지만, 올해 하반기 예정이던 프리즈 아부다비는 기약 없는 연기를 하였다. 이로 인해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공습 이후 미술 시장의 거래는 중단되었고, 작품의 이동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중동의 컬렉터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바쁘게 주요 작품들을 미국과 유럽으로 재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어려운 일인 것이, 얼마전 아트바젤 홍콩에서 만난 한 갤러리는 도하에서 출발한 작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해 우회 운송을 하느라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동의 위기는 다른 지역에게는 또다른 기회일지도 모른다.
1970년대 일어난 오일쇼크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1950-60년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열강들이 석유 가격을 통제하였으나, 1970년대가 되며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이 자원 주권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간의 전쟁이 촉발한다. 1973년에 일어난 중동 전쟁이다. 이로 인해 생산량은 감소되고, 유가는 폭등하였으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기존 금융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흔히 경제가 좋아지면 가장 나중에 좋아지는게 미술시장이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어려워지는게 미술시장이라는 말을 하는데, 당연히 당시 미술시장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매의 낙찰율은 현저히 떨어졌고, 작품 가격은 폭락한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나마드(Nahmad) 가문이다. 그들은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피카소, 모네와 같은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경매를 통해 대량으로 매입했다. 이 전략은 단순한 투자 성공을 넘어 시장의 회복 메커니즘을 만들어냈다. 유동성이 사라진 시장에서 작품을 흡수하는 존재가 등장하자, 시장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나마드 효과(Nahmad effect)라고 부른다.
이후 Nahmad 가문의 컬렉션은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하나의 상징이 된다. 지난 해 Art Basel Paris에서 부스를 가득 채운 피카소 작품들은 이 시기의 전략적 매집을 증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서 시장은 붕괴하지 않는다.

Pablo Picasso, Trois Femmes à la Fontaine, Nahmad Contemporary, ART BASEL PARIS
사진 출처 : 박준수
내가 기억하는 미술 시장의 어려움은 9.11 테러이다. 고3 시절, 미술학원을 마치고 마을버스 정류장 옆 작은 점포에서 할머니가 보던 TV 화면으로 그 장면을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그 충격의 규모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뉴욕 미술시장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거래는 급감했고, 시장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때 등장한 또 하나의 방식이 있다. 연대다. 당시 오픈한지 10년도 안된 데이비드 쯔워너(David Zwirner, 1993년 오픈)는 갤러리, 작가들과 함께 자선 경매를 조직했다. 이는 단일 이벤트가 아니라 뉴욕 전역 150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확장되었고, 수익금은 Robin Hood Relief Fund를 통해 피해 복구에 사용되었다.
이 연대의 방식은 이후 더 확장된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쯔워너는 다시 한번 경매를 조직한다.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작가들이 참여한 대형 이벤트로 발전했고, 약 1,366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이 외부의 위기에 아무리 어려워져도, 그들의 연대, 네트워크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관계가 시장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2001년 10월 19일에서 11월 3일까지 열린 데이비드 쯔워너 I ♥ NY - Art Benefit 전시전경 사진출처 : 데이비드 쯔워너 홈페이지
반만년의 세월동안 외세의 침략과 환난을 극복해온 역사를 가진 한국 미술 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리만 사태 이후 한국 미술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거래는 줄어들었고, 가격은 조정되었으며, 갤러리와 작가 모두 생존의 압박에 놓였다. 06년 졸업한 선배들은 졸업작품도 걸어놓기 무섭게 팔렸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08년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침략도 극복하고, 일제강점기도극복하고, IMF도 극복한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2010년대를 지나며 단색화가 재조명 되며, 차츰 한국 미술 시장을 호황기로 이끈다.
1970년대에 형성된 단색화는 오랫동안 국내 미술사 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위기 이후 한국 미술계는 이를 다시 재조명한다. 단색화는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는 서사로 재구성되었고, 해외 시장과 연결되며 새로운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침체된 시장이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평론가, 미술관, 갤러리스트, 컬렉터, 그리고 관계된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값진 성과였다. 그 결과, 한국 미술시장은 단순히 회복하는 것을 넘어 점차 국제 무대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모든 사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침체기를 지나고 있다. 거래는 줄어들고, 가격은 조정되며, 시장은 불확실성 속에 있다. 그러나 돌이켜 역사를 보면, 이 순간은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다.
누군가는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기회에 용감한 선택들이 다음 시장을 만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지만, 역사를 아는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살아남아 왔는지를.
2026.4.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April.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