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와 말차: 우리는 예술로 흥할 수 있을까
정희라, 큐레이터/미술평론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팀장)
벚꽃 시즌이 지나면 상록의 계절이 온다고 했다. 반드시 올 것이다. 어김없는 일이니까. 상록의 계절이 기대된다고 생각하니, 바로 옆 데스크 동료들의 녹색 취향이 눈에 들어온다. 말차와 올리브. 책상 위 사물들이 온통 민트색, 연두색, 녹두색이다. 이 녹색들을 보고 있자니, 푸르른 젊음, 싱그러운 날씨, 막 나기 시작한 새순이 함께 보인다.
생동하는 계절이다.
얼어붙은 모든 것이 녹는 이 계절에, 생동하는 녹음을 보며 세상 모든 긍정적인 것들을 일부러 떠올려 본다. 그런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세상에 나쁜 건 없나? 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다 보니 무엇이 나쁜지 모르겠다. 물론 전쟁 같은 이슈 말고, 잔잔바리 세상사 말이다.
말차와 올리브에서 웬 나쁜 개 이야기냐 하면, 말차와 올리브가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색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해서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여전히 궁금한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바 있다. 예술의 순기능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일깨우는 것.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일 것이다. 한때는 먹고사는 것에 치여 무슨 예술 따위 이야기를 하느냐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다. 왜인지 그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봄이 오면 꽃 사진을 찍는다. 왜? 예뻐서. 예뻐서 마음이 좋아져서. 예쁜 것을 보면 사람이 말랑해진다.
그 살아 있는 아름다움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
다시 오늘 이야기의 시작, 말차와 올리브로 돌아가자.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 바라만 봐도 건강해지는 기분. 예술로 건강해질 수 있을까.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롭게 곁에 둔다면. 예술을 어떻게 이롭게 곁에 둘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로 흥할 수 있을까. 예술이 나들이 가서 만난 꽃처럼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끔 한다면, 그 예술은 꽃이 되어 우리를 흥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예술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이로움이란,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남은 숙제는 명확해진다. 어떻게 그 예술을 사람들의 눈앞에 다정하게 놓아줄 것인가. 거창한 담론이나 난해한 해설로 무장한 예술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마음을 끄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언어로 꺼내지 못했던 일상의 따스한 파편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것. 어느샌가 반짝이며 곁에 스며들어 있는 것.
책상 위의 말차와 올리브색 사물들이 아무런 강요 없이 동료들의 마음에 싱그러움을 주었듯, 예술도 그렇게 곁에 머물게 해야 한다. 굳이 치열하게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스치듯 바라본 순간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게 만드는 것. 그런 잔잔하고 다정한 아름다움이 일상 곳곳에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분명 예술로 흥할 수 있을 것이다.
벚꽃이 지고 상록의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오듯, 예술이 건네는 이로운 기운도 우리 삶에 푸르게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2026.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올리브와 말차: 우리는 예술로 흥할 수 있을까
정희라, 큐레이터/미술평론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팀장)
벚꽃 시즌이 지나면 상록의 계절이 온다고 했다. 반드시 올 것이다. 어김없는 일이니까. 상록의 계절이 기대된다고 생각하니, 바로 옆 데스크 동료들의 녹색 취향이 눈에 들어온다. 말차와 올리브. 책상 위 사물들이 온통 민트색, 연두색, 녹두색이다. 이 녹색들을 보고 있자니, 푸르른 젊음, 싱그러운 날씨, 막 나기 시작한 새순이 함께 보인다.
생동하는 계절이다.
얼어붙은 모든 것이 녹는 이 계절에, 생동하는 녹음을 보며 세상 모든 긍정적인 것들을 일부러 떠올려 본다. 그런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세상에 나쁜 건 없나? 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다 보니 무엇이 나쁜지 모르겠다. 물론 전쟁 같은 이슈 말고, 잔잔바리 세상사 말이다.
말차와 올리브에서 웬 나쁜 개 이야기냐 하면, 말차와 올리브가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색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해서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여전히 궁금한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바 있다. 예술의 순기능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일깨우는 것.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일 것이다. 한때는 먹고사는 것에 치여 무슨 예술 따위 이야기를 하느냐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다. 왜인지 그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봄이 오면 꽃 사진을 찍는다. 왜? 예뻐서. 예뻐서 마음이 좋아져서. 예쁜 것을 보면 사람이 말랑해진다.
그 살아 있는 아름다움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
다시 오늘 이야기의 시작, 말차와 올리브로 돌아가자.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 바라만 봐도 건강해지는 기분. 예술로 건강해질 수 있을까.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롭게 곁에 둔다면. 예술을 어떻게 이롭게 곁에 둘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로 흥할 수 있을까. 예술이 나들이 가서 만난 꽃처럼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끔 한다면, 그 예술은 꽃이 되어 우리를 흥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예술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이로움이란,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남은 숙제는 명확해진다. 어떻게 그 예술을 사람들의 눈앞에 다정하게 놓아줄 것인가. 거창한 담론이나 난해한 해설로 무장한 예술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마음을 끄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언어로 꺼내지 못했던 일상의 따스한 파편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것. 어느샌가 반짝이며 곁에 스며들어 있는 것.
책상 위의 말차와 올리브색 사물들이 아무런 강요 없이 동료들의 마음에 싱그러움을 주었듯, 예술도 그렇게 곁에 머물게 해야 한다. 굳이 치열하게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스치듯 바라본 순간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게 만드는 것. 그런 잔잔하고 다정한 아름다움이 일상 곳곳에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분명 예술로 흥할 수 있을 것이다.
벚꽃이 지고 상록의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오듯, 예술이 건네는 이로운 기운도 우리 삶에 푸르게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2026.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