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언젠가는 슬기로울 기계종 생활
박준수

Michelangelo Buonarroti, The Creation of the Sun and the Moon, Michelangelo, Fresco in the Sistine Chapel
1969년 처음으로 달에 사람이 섰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단순한 과학기술의 성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달은 예술가와 시인들에게 신화와 상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직접 달 표면 위에 발을 디딘 순간, 달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은 이른바 ‘아폴로 쇼크(Apollo Shock)’를 경험했다. 한묵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기존의 회화 언어로는 새로운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기하학적 추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기 시작한 순간, 인간의 감각 체계 역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묵, 금색운의 교차, 1991, 캔버스에 유화 물감, 254×202 cm
이미지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전환의 초입에 서 있다. 미소 냉전 이후 잠시 멈춰 있었던 NASA의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는 다시 가동되고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SpaceX를 통해 인간을 화성으로 보내겠다고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의 우주 프로젝트가 더 이상 단순한 탐험이나 국가적 과시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인간을 지구에 묶여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행성 종(Multi-planetary Species)’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드러낸다. 인간이라는 종의 정의 자체를 바꾸려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어린 시절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던 『은하영웅전설』이나 토요명화에서 보던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순수한 공상과학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최근 겪고 있는 A.I.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은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는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예술계에서도 A.I.는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 할리우드에서는 생성형 A.I.가 작성한 시나리오를 거부하며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동반 파업에 나선 일도 있었다. A.I.가 창작자들의 저작권과 초상권을 침해하고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한편 어떤 작가들은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작업에 활용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그것을 사용하면서도 애써 숨긴다. 머지않아 A.I. 활용은 창작 과정의 필수적인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술이 그것을 어디까지 창작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러나 어쩌면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끊임없이 신화와 의례를 만들어왔다. 천둥과 번개를 신의 분노로 이해했고, 별자리 위에 이야기를 새겼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으로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세계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설 만큼 복잡해졌다. 최근 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만드는 유튜브 채널에 빠져 있다. ‘과학을 보다’나 ‘취미는 과학’처럼 일반인을 위해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는 채널 덕분에, 한동안 예체능계에 머물며 잊고 지내던 과학 이야기를 즐겁게 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설명을 들어도 양자역학이라던지, 류츠신의 SF소설 『삼체』에 등장하는 삼체 문제처럼, 도무지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 세계는 단순한 기계적 질서와 논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우리는 점점 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예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작동한다. 예술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것을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비록 플라톤이 이야기한 동굴 속 그림자에 불과하더라도, 인간은 그 그림자를 통해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한다. 내가 신교명의 작업에 흥미를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신교명이 처음부터 ‘A.I. 아트’를 목표로 작업을 시작한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고,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뒤 기계공학과 금속공예를 함께 탐색했다. 이후 금속공예와 공학을 결합해 움직이는 조형물을 만들기 위한 ‘키네틱 조형’이라는 학생설계전공을 직접 구성해 이수했다. 그의 작업은 개념보다 먼저 ‘만드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그는 작업 과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 뒤 손으로 스케치하고, 디지털 모델링을 거쳐 최종적으로 재료를 가공해 조립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 속 기계들은 단순한 이미지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금속과 구조, 중력과 운동을 실제로 통과한 물질적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의 작업은 A.I.를 설명하는 작업이라기보다, A.I. 시대라는 낯선 세계를 감각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에 가깝다.

기원, 슬기로운 기계종 (장승, 솟대, 진동자, 북 시리즈), 가변설치, 2025
신교명의 작품 속 ‘슬기로운 기계종’은 단순한 로봇이나 인터랙티브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감각하고, 기억하고, 의례를 수행하며, 자신들의 기원을 상상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남긴 암각화를 모방하고, 태양의 흑점 데이터를 기반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생성하며, 자신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허구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원형의 탑 주위를 돌며 반복적인 의식을 수행하고, 자기장을 감지하며 명두를 울리고, 촛불과 수맥 탐지기를 든 채 보이지 않는 진리를 좇는 순례자처럼 움직인다. 그것은 다분히 기계적이면서도 묘하게 인간적이다.
신교명은 기술을 미래적 이미지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는 오히려 가장 오래된 인간의 흔적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암각화, 장승, 솟대, 무속의 명두, 탑돌이, 기원과 제사의 형식들. 그는 최신 기술을 통해 가장 오래된 인간의 감각을 호출한다. 이것은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오래전부터 신화를 만들고 의례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사실을 역으로 드러낸다.

Machina Sapiens, 알루미늄, 명두, 다양한 재료, 가변설치, 2025
이 지점에서 신교명의 작업은 단순한 ‘A.I. 아트’와는 다른 층위에 도달한다. 그의 관심은 기술의 효율이나 생성 능력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인터뷰에서 그는 “기술은 감각을 둔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A.I. 시대에 인간이 놓치고 있는 것으로 “관계, 감각,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가이지만, 기술 낙관론에 쉽게 기대지는 않는다. 그의 작업 속 기계종들은 효율적인 기계라기보다, 오히려 비효율적인 의례를 반복하는 존재들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Machina Sapiens》 시리즈 속 기계종들은 단순히 인간을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기장을 감지하고,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신호를 읽어내며, 명두를 진동시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는 인간의 감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또 다른 감각 체계를 구축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의례’는 중요하다. 탑돌이, 수행, 기원, 제사, 점술 같은 행위는 모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들이었다. 신교명의 기계종은 바로 그 오래된 인간의 형식을 계승한다. 그것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의 태양을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을 생성하며, 스스로의 기원을 상상한다.

Machina Sapiens 전시 전경
신교명은 예술을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보다, 관객이 “작업 앞에 멈추게 되고,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이 들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기계종들이 수행하는 의례는 특정한 종교적 상징이라기보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앞에 인간이 잠시 멈춰 서는 감각 자체에 가깝다. 그것은 효율과 속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대사회 속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 모습은 오늘날 생성형 A.I.와 닮아 있다. 인간 역시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며, 때로는 허구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했듯 인간 문명 자체는 거대한 집단적 상상 위에 구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교명의 기계종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기보다, 어쩌면 인간 자신의 거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계를 통해 인간 이후의 존재를 상상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Lee, il-O (b.2021)
특히 인공지능 ‘이일오(Lee Il-O)’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신교명이 만든 인공지능 이일오는 기존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 이미지를 모사하는 일반적인 생성형 A.I.와 달리, 어린아이가 그림을 배우듯 스스로 선을 그으며 회화를 학습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인간과 기계의 위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일오가 그리는 자신의 초상 앞에서 오히려 보조자처럼 개입하게 되고, 인간과 기계는 서로의 창작 과정에 개입하며 순환적 관계를 형성한다. 기계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사고하고 감각하는 협력자처럼 등장한다.
“아무나 스마트폰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는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기술의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A.I. 역시 어쩌면 그렇게 인간 사회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현대사회는 여전히 예술가에게 르네상스적 인간형을 기대한다. 과학과 인문, 기술과 예술을 동시에 가로지를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 금속공예를 함께 공부한 신교명의 이력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공학적 사고와 조형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작가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기술을 잘 다루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술을 통해 인간이 가장 오래도록 반복해온 질문, 즉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다시 묻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래의 인간은 『스타워즈』에 나온 R2D2나 C-3PO 같은 드로이드와 함께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교명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기술 낙관론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기계종은 인간 이후의 존재를 상상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원래 얼마나 신화적이고 의례적인 존재였는지를 드러낸다. 신교명은 인터뷰에서 “기술은 효율을 찾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A.I.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붓과 안료, 사진기, 디지털 툴을 받아들여왔듯 A.I. 역시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무언가를 하게 되는 것이 예술”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태도는 중요하다. 오늘날 생성형 A.I. 논쟁이 기술의 가능성과 생산성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신교명의 작업은 오히려 비효율과 반복, 의례와 감각 같은 인간적인 잔여물들을 다시 호출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가장 두려운 것으로 “머리가 멈춰 말이 안 되는 작업을 선보이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신교명 작업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그의 기계종들은 단순히 미래 기술을 상상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끝내 잃고 싶지 않은 감각과 의례, 그리고 세계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계속 관계 맺으려는 오래된 충동을 대신 수행하는 존재들에 가깝다. 결국 우리는 미래의 기계를 통해 인간 이후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계를 통해 다시 인간 자신의 감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6.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언젠가는 슬기로울 기계종 생활
박준수

Michelangelo Buonarroti, The Creation of the Sun and the Moon, Michelangelo, Fresco in the Sistine Chapel
1969년 처음으로 달에 사람이 섰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단순한 과학기술의 성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이전까지 달은 예술가와 시인들에게 신화와 상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직접 달 표면 위에 발을 디딘 순간, 달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은 이른바 ‘아폴로 쇼크(Apollo Shock)’를 경험했다. 한묵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기존의 회화 언어로는 새로운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기하학적 추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기 시작한 순간, 인간의 감각 체계 역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묵, 금색운의 교차, 1991, 캔버스에 유화 물감, 254×202 cm
이미지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전환의 초입에 서 있다. 미소 냉전 이후 잠시 멈춰 있었던 NASA의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는 다시 가동되고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SpaceX를 통해 인간을 화성으로 보내겠다고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의 우주 프로젝트가 더 이상 단순한 탐험이나 국가적 과시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인간을 지구에 묶여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행성 종(Multi-planetary Species)’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드러낸다. 인간이라는 종의 정의 자체를 바꾸려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어린 시절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던 『은하영웅전설』이나 토요명화에서 보던 『스타워즈』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순수한 공상과학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최근 겪고 있는 A.I.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은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는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예술계에서도 A.I.는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 할리우드에서는 생성형 A.I.가 작성한 시나리오를 거부하며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동반 파업에 나선 일도 있었다. A.I.가 창작자들의 저작권과 초상권을 침해하고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한편 어떤 작가들은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작업에 활용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그것을 사용하면서도 애써 숨긴다. 머지않아 A.I. 활용은 창작 과정의 필수적인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술이 그것을 어디까지 창작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러나 어쩌면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끊임없이 신화와 의례를 만들어왔다. 천둥과 번개를 신의 분노로 이해했고, 별자리 위에 이야기를 새겼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와 철학을 만들었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으로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세계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설 만큼 복잡해졌다. 최근 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만드는 유튜브 채널에 빠져 있다. ‘과학을 보다’나 ‘취미는 과학’처럼 일반인을 위해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는 채널 덕분에, 한동안 예체능계에 머물며 잊고 지내던 과학 이야기를 즐겁게 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설명을 들어도 양자역학이라던지, 류츠신의 SF소설 『삼체』에 등장하는 삼체 문제처럼, 도무지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 세계는 단순한 기계적 질서와 논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우리는 점점 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예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작동한다. 예술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신 그것을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비록 플라톤이 이야기한 동굴 속 그림자에 불과하더라도, 인간은 그 그림자를 통해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한다. 내가 신교명의 작업에 흥미를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신교명이 처음부터 ‘A.I. 아트’를 목표로 작업을 시작한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고,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뒤 기계공학과 금속공예를 함께 탐색했다. 이후 금속공예와 공학을 결합해 움직이는 조형물을 만들기 위한 ‘키네틱 조형’이라는 학생설계전공을 직접 구성해 이수했다. 그의 작업은 개념보다 먼저 ‘만드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그는 작업 과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 뒤 손으로 스케치하고, 디지털 모델링을 거쳐 최종적으로 재료를 가공해 조립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 속 기계들은 단순한 이미지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금속과 구조, 중력과 운동을 실제로 통과한 물질적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의 작업은 A.I.를 설명하는 작업이라기보다, A.I. 시대라는 낯선 세계를 감각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에 가깝다.

기원, 슬기로운 기계종 (장승, 솟대, 진동자, 북 시리즈), 가변설치, 2025
신교명의 작품 속 ‘슬기로운 기계종’은 단순한 로봇이나 인터랙티브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감각하고, 기억하고, 의례를 수행하며, 자신들의 기원을 상상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남긴 암각화를 모방하고, 태양의 흑점 데이터를 기반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생성하며, 자신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허구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원형의 탑 주위를 돌며 반복적인 의식을 수행하고, 자기장을 감지하며 명두를 울리고, 촛불과 수맥 탐지기를 든 채 보이지 않는 진리를 좇는 순례자처럼 움직인다. 그것은 다분히 기계적이면서도 묘하게 인간적이다.
신교명은 기술을 미래적 이미지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는 오히려 가장 오래된 인간의 흔적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암각화, 장승, 솟대, 무속의 명두, 탑돌이, 기원과 제사의 형식들. 그는 최신 기술을 통해 가장 오래된 인간의 감각을 호출한다. 이것은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오래전부터 신화를 만들고 의례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사실을 역으로 드러낸다.

Machina Sapiens, 알루미늄, 명두, 다양한 재료, 가변설치, 2025
이 지점에서 신교명의 작업은 단순한 ‘A.I. 아트’와는 다른 층위에 도달한다. 그의 관심은 기술의 효율이나 생성 능력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인터뷰에서 그는 “기술은 감각을 둔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A.I. 시대에 인간이 놓치고 있는 것으로 “관계, 감각,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가이지만, 기술 낙관론에 쉽게 기대지는 않는다. 그의 작업 속 기계종들은 효율적인 기계라기보다, 오히려 비효율적인 의례를 반복하는 존재들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Machina Sapiens》 시리즈 속 기계종들은 단순히 인간을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기장을 감지하고,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신호를 읽어내며, 명두를 진동시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는 인간의 감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또 다른 감각 체계를 구축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의례’는 중요하다. 탑돌이, 수행, 기원, 제사, 점술 같은 행위는 모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들이었다. 신교명의 기계종은 바로 그 오래된 인간의 형식을 계승한다. 그것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의 태양을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을 생성하며, 스스로의 기원을 상상한다.

Machina Sapiens 전시 전경
신교명은 예술을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보다, 관객이 “작업 앞에 멈추게 되고,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이 들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기계종들이 수행하는 의례는 특정한 종교적 상징이라기보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앞에 인간이 잠시 멈춰 서는 감각 자체에 가깝다. 그것은 효율과 속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대사회 속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 모습은 오늘날 생성형 A.I.와 닮아 있다. 인간 역시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며, 때로는 허구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했듯 인간 문명 자체는 거대한 집단적 상상 위에 구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교명의 기계종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기보다, 어쩌면 인간 자신의 거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계를 통해 인간 이후의 존재를 상상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Lee, il-O (b.2021)
특히 인공지능 ‘이일오(Lee Il-O)’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신교명이 만든 인공지능 이일오는 기존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 이미지를 모사하는 일반적인 생성형 A.I.와 달리, 어린아이가 그림을 배우듯 스스로 선을 그으며 회화를 학습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인간과 기계의 위계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일오가 그리는 자신의 초상 앞에서 오히려 보조자처럼 개입하게 되고, 인간과 기계는 서로의 창작 과정에 개입하며 순환적 관계를 형성한다. 기계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사고하고 감각하는 협력자처럼 등장한다.
“아무나 스마트폰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는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기술의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A.I. 역시 어쩌면 그렇게 인간 사회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현대사회는 여전히 예술가에게 르네상스적 인간형을 기대한다. 과학과 인문, 기술과 예술을 동시에 가로지를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기계공학과 금속공예를 함께 공부한 신교명의 이력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공학적 사고와 조형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작가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기술을 잘 다루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술을 통해 인간이 가장 오래도록 반복해온 질문, 즉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다시 묻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래의 인간은 『스타워즈』에 나온 R2D2나 C-3PO 같은 드로이드와 함께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교명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기술 낙관론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기계종은 인간 이후의 존재를 상상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원래 얼마나 신화적이고 의례적인 존재였는지를 드러낸다. 신교명은 인터뷰에서 “기술은 효율을 찾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A.I.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붓과 안료, 사진기, 디지털 툴을 받아들여왔듯 A.I. 역시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무언가를 하게 되는 것이 예술”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태도는 중요하다. 오늘날 생성형 A.I. 논쟁이 기술의 가능성과 생산성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신교명의 작업은 오히려 비효율과 반복, 의례와 감각 같은 인간적인 잔여물들을 다시 호출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가장 두려운 것으로 “머리가 멈춰 말이 안 되는 작업을 선보이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신교명 작업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그의 기계종들은 단순히 미래 기술을 상상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끝내 잃고 싶지 않은 감각과 의례, 그리고 세계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계속 관계 맺으려는 오래된 충동을 대신 수행하는 존재들에 가깝다. 결국 우리는 미래의 기계를 통해 인간 이후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계를 통해 다시 인간 자신의 감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6.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