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언제나 투명하게, 노골적으로, 불변의 ‘나’1)
정재연
한동안 괜찮았던 피부가 엉망이다. 뉴욕의 봄은 날씨가 건조해 기침을 달고 살고, 온몸 구석구석이 가려워 정신이 없다. 아! 내 손톱. 또 부서졌네. 그냥 툭 책상 위에 던져버린다. 손톱이 떨어져 나간 모서리 부분이 피부에 닿아 영 거슬린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은 쉽게 느끼면서도, 정작 떨어져 나간 손톱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 박정은(b. 1999)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촉감과 감각, 몸에서 떨어져 나온 흔적들, 그리고 매일 보고 만지고 느끼지만 쉽게 지나치거나 간과되는 것들에 주목한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을 유리와 세라믹이라는 물질로 전환하여, 고정된 형태로 남는 조형 언어를 구축한다. 작가는 특히 우리가 평소 인지하면서도 외면하는 신체와 생명의 흔적을 변하지 않는 유리의 물성에 결합해, 그것을 성찰적 오브제로 제시한다. 박정은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촉감과 감각, 예를 들어 반지를 끼고 빼거나 굴리고 쥐는 행위와 같은 반복적인 몸의 경험이 감각, 태도, 행위가 결합한 하나의 예술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이는 ‘일상의 물건이나 물질에는 예술적 가치가 없다 ’라는 통념을 전환하려는 그의 창작 태도와 맞닿아 있다. 또한 작가는 신체로부터 분리되지만, 여전히 생물학적 흔적을 지닌 물질들—머리카락, 탯줄, 사랑니, 태반, 눈물, 생리혈 등을 탐구하며 이를 다시 시각적 대상으로 호출한다. 이러한 작업은 몸의 내부를 표본처럼 응고시킨 듯한 매끈한 표면으로 구현되며, 유리라는 물질의 특성을 통해 생명과 신체의 흔적을 고정된 형상으로 전환한다. 작가 노트에서도 ‘나는 일상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몸에 대한 장면들; 날달걀 속 핏덩이, 죽은 쥐, 곪은 발은 저는 비둘기, 우리의 모공 속에 사는 진드기 등 하루에도 내 시선과 생각과 발걸음을 멈추는 불편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기억한다.’ 라고 소개한다.2)
박정은은 생명체를 인간 중심으로 한 위계 속에 두지 않고, 동물 역시 동등한 생명적 존재로서 확장한다. 뉴욕에서 흔히 마주치는 쥐와 비둘기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도시의 계급 구조, 생존 조건, 그리고 혐오의 감정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로 읽힌다. 특히 이들은 낙후된 도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은 비가시적인 존재이자, 통제되지 않고 배제된 도시의 음지의 생명체로 인식된다. 작품 <푸른 죽음(Blue Death)>(2024)은 마른 흙 위에 놓인 죽은 쥐의 형상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문 앞에서 발견한 죽은 쥐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부패 과정에서 드러나는 푸른빛의 살과 털의 변화는 혐오와 생명, 죽음의 경계를 동시에 환기하며, 이를 유리라는 가장 정제된 물질로 재구성한다. 불쾌한 이미지가 유리라는 매끈하고 투명한 물질로 전환되는 순간, 그것은 시각적 혐오를 제거하면서도 오히려 더 복합적인 감각을 생성한다.


<푸른 죽음(Blue Death)>, 2024, 유리, 흙, 크레용, 15 x 5.6 x 4.3 cm
이 작업은 도시 환경 속에서 인간과 함께 생존하지만 끝내 배제되는 존재들에 대한 은유이자, 도시의 또 다른 ‘동반자’로서의 생명을 호출한다. 동시에 유리라는 물질의 높은 밀도와 화학적 안정성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멸하는 생명력을 역설적으로 고정하며, 통제되지 않는 생의 에너지를 하나의 조형적 상태로 붙잡아 둔다. 이때 생명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처럼, 조개의 생식소나 달걀 속 노른자, 쌀알 안에 잠든 배아처럼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응축되어 있다. <쌀(Rice)>(2025)은 이러한 상태를 가장 미시적인 단위에서 확장한 작업이다. 작가는 작은 쌀 한 톨을 확대하여, 그 내부의 ‘쌀눈(embryo)’을 함께 재구성한다. 쌀눈은 쌀알 안에서 새로운 싹으로 발아하는 부분으로, 생물학적으로는 새로운 생명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배아 조직이다. 이는 이미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잠재적 상태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 쌀눈의 구조를 생명체가 태어나기 전 세포 분화의 초기 단계로 치환하며,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일상의 식재료 속에도 생명의 잠재적 구조가 내재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유는 여성 신체에 대한 관찰로 확장된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해부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밀하게 응시하며, 생식 기관과 같이 사회적으로 기능이 부여되거나 혹은 그 기능이 온전히 수행되지 못한 신체 일부들을 주요한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여성의 몸은 생명을 생성하는 리듬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고통과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로 존재한다. <The Fish (decidual cast)>(2025)는 이러한 신체 경험에서 출발한다. 생리혈 속에서 발견되는 자궁 내막의 덩어리는 실제로 물고기와 유사한 형상을 띠며, 작가는 이를 조형적으로 재구성한다. 자궁 양쪽에 있는 나팔관의 형태는 금붕어 꼬리의 분지 구조로 전환된다. 이 작업은 생리라는 현상을 단순한 생물학적 배출이 아니라, 생성과 해체가 반복되는 생명의 리듬으로 다시 읽어낸다.


<쌀>, 2025, 유리, 12 x 13.5 x 30 cm

<The Fish (decidual cast), 2025, 유리,17.0 × 13.7 × 3.6 cm

자궁 내막 해부학 모식도

<태반((Placenta)>, 2025, 도자(라쿠 소성), 26.7 x 25.9 x 4.8 cm
여성의 몸은 생명을 생성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는 동시에, 일상에서 제약과 불편을 동반하는 조건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러한 신체의 상태를 단순한 결핍이나 상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생성 가능성으로 전환한다. 이때 몸에서 분리된 물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상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의 구조로 남는다. <태반(Placenta)>(2025)은 태아와 임산부의 자궁내막을 연결하고 있는 기관인 태반을 똑같이 재현한 작품이다. 태반은 임산부의 자궁내막을 연결하여 엄마에게 받은 산소와 영양분을 태아에게 공급하고, 태아를 보호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관이다. 태반은 엄마인 산모가 만드는 것이 아닌 뱃속 안 태아가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태반은 아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이미 임무를 마치고 떨어져 나가는 기관이다. 가장 없어서 안 될 중요한 기관이었다가 갈 곳을 잃어버리고 부산물이 돼버리는 존재. 작가는 태반을 직접 관찰하고 의료 서적을 탐색하며 생명 탄생의 과정을 추적한다. 적나라한 붉은 핏덩이와 혈관처럼 뻗은 구조는 생물학적 사실성에 기반하면서도, 동시에 신체 내부의 경이로운 장면을 조형적으로 환기한다. 이 작업은 라쿠 소성(Raku firing) 방식으로 제작된다. 고온에서 꺼낸 세라믹을 저온에서 급랭시키는 과정에서 표면에는 불규칙한 균열과 그을림이 생성되며, 연기와 열의 흔적이 물질 내부에 스며든다. 이러한 물성적 변화는 통제되지 않는 생명 과정의 불안정성과 긴장감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태반과 체내 점막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잎맥이 선명하게 드러난 배춧잎을 사용했다. 동시에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 에서도 지속적으로 변주되는 색과 형태의 비정형성을 드러낸다. 매끈하면서도 생경한 표면을 가진 태반은 생명을 유지하고 순환시키는 기관으로 존재하며, 태아와 태반을 연결하는 탯줄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두 몸의 가장 원초적인 결합 구조를 상기시킨다.


<탯줄(Umbilical Cord)>, 2025, 유리, 28.2 x 2.3 x 3.6 cm

탯줄 실물 사진과 조직 단면도
<탯줄(Umbilical Cord)>(2025)은 작가가 엄마와 함께 발견한 본인의 탯줄을 찾은 경험으로부터 탄생한 작품이다. 발견 당시의 탯줄은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나 마른 멸치처럼 누렇게 꼬부라져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조금은 슬펐다고 하는데, 이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유리로 탄생의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탯줄을 제작한다. 사라진 생명을 다시 구원이라도 한 듯. 한편 그는 탯줄의 단면에서 우연히 얼굴처럼 읽히는 형상을 언급하는데, 이는 생명의 기원적 구조가 가진 익명성과 동시에 인간이 그 구조를 즉각적으로 ‘얼굴화’ 하는 인식의 습관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생명 유지의 시스템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형상들은 그의 작업 속에서 유리와 도자로 재구성되며, 몸의 내부와 외부, 제거와 생성 사이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유리 탯줄은 마르거나 썩지 않아 우리의 기억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는 우리들의 처음은 분리가 아닐까 싶다. 박정은은 작업물들은 신체 물질에 질서와 생명을 유지하는 작용에 공유되는 것들을 더 나아가 여성의 삶을 관리하는 형태의 힘으로 적용한다. 박정은은 여성의 신체가 ‘가임력(Fertility)’이라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끊임없이 평가되고 구획되는 방식에 주목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의 몸 특히 생산성과 기능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잔여적 신체를 통해 그 구조의 바깥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나이에 따른 임신 가능성의 감소, 경력 단절, 출산에 대한 압박이 미래의 가능성과 실패 가능성을 재단하고 있다. 실제 임신 여부와 관계없이 드러나는 “임신 가능한 몸”이라는 사실 자체가 지속적인 시간 압박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도시 시스템은 생명 유지의 물질적 과정(maintenance of life)을 외부화하고 비가시화하는 구조이다. 그러니 우리의 몸은 여전히 동물적이고 물질적이지만, 사회는 그 물질성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그러니 여성의 가임력은 단순한 생물학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특정 방식으로 가치화되는 구조 안에 놓인다. 이러한 구조는 도시 시스템과도 연결되는데 가령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과정인 -먹고, 배설하고, 돌보고, 죽고, 탄생하는 등의 일들을 점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예전에는 분뇨를 처리하는 과정이나 동물을 도축하는 현장, 아이가 태어나는 현장이 삶의 일부로 드러나 있었다. 헌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공장과 시스템 안으로 숨겨진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모른 채 살아가지만, 사실 몸은 여전히 그 모든 과정을 필요이 있어야 하는 동물적 존재이기도 하다.

<Snail>, 2022, 유리, 13x21x22cm


<Find Your Shell>, 2022, 유리, 도자, 25x30x12.5cm


<모낭충>, 2025, 헌 면 베갯잇, 면 실, 솜, 3D 프린팅 한 작은 인간 손, 109 x 29 x 16 cm
박정은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몸을 세심히 관찰한다. 그러므로 이후에 실험하고 있는 혹은 작업은 몸을 다루는 방식을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한 생물들의 움직임을 패턴화하고 그들의 몸에 장착하고 있는 신체 기관 -개인적으로 도구라 부르고 싶다- 의 다양성을 탐구한다. <Snail>(2022)은 유리로 달팽이를 재현한다. 달팽이의 움직임은 속도라는 개념보다는 공간을 ‘지나가고’, ‘남긴다’는 의미가 크다. 몸 전체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며, 바닥과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액을 분비하는 과정은 사실 ‘이동’이라기보다 흔적을 생산하는 행위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소라게를 재현한 <Find Your Shell>(2022)은 달팽이와는 다르게 몸 밖에 집을 가진 존재로 소라게의 껍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체되는 임시 구조물이다.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만들지 못해 버려진 조개껍데기를 빌려 몸을 보호하며 살아간다. 불안정한 적응의 연속이다. 몸이 커지면 집이 더이상 맞지 않게 되는데, 그 순간 기존의 보호는 곧 불편함이 된다. 정착이 목표가 아닌 이동이 생존의 기본 리듬이다. 달팽이와 소라게는 같은 껍질을 짊어지지만, 이동과 공간 소비는 서로 다르다. 또한 의도치 않게 자신 혹은 다른 생물들의 주거 공간을 정리하기도 하지만, 흔적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생존한다. <모낭충>(2025)은 작가가 중고가게에 가서 직접 산 베갯잇의 천으로 만든 작업이다. 모낭충의 작은 손가락은 직접 3D 프린팅 했다. 인간의 얼굴 피부에 함께 붙어 사는 기생충.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래서 생과 생을 잇는다.
박정은의 작업은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고정된 정체성에 귀속되기보다, 무엇보다도 ‘몸’ 자체에 대한 모든 감각에서 출발한다. 피의 색, 탯줄, 태반처럼 인종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작동하는 생물학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공통된 조건을 드러내며, 범인간적인 존재성을 사유한다. 박정은은 유리와 천 같은 물질을 통해 혐오와 불안의 대상을 오히려 표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그것을 깨끗하고 안전한 형태로 응시할 수 있게 만드는 역설에 주목한다. 특히 유리는 취약함의 상징이라기보다, 오히려 반응하지 않고 부식되지 않는 가장 안전한 물질로서 기능하며, 동시에 긴장을 동반한 물질이다. 박정은의 이러한 관심은 동물의 이동 패턴과 생존 루틴으로 확장되며, 결국 몸과 움직임, 그리고 관계 맺기의 방식 자체를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애초에 인간과 분리된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1) 제목으로 쓰인 일부의 문장은 조앤 디디온의 The White Album 에 실린 에세이 「On Keeping a Notebook」에서 온 것이다. 일부 번역본마다 표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노트는 객관적 기록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장치’가 핵심이다. 박정은의 작업에서 유리를 통해 보는 바깥 세계는 결국 반복해서 드러내는 자신의 시선과 집착이 연결되어 제목을 빌린다.
2) 작가 인터뷰 당시 박정은은 사랑니를 뽑은 이후의 감각을 이야기하며, “빼고 나니 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랑니를 제거한 뒤 찾아오는 안도감은, 통증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몸이 다시 기능하기 시작하는 감각에 가깝다. 그는 이러한 감각이 생리의 경험과도 닮아 있다고 말한다. 고통이 극에 달한 이후 무언가 몸 밖으로 배출되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통을 유발한다는 이유만으로 제거되는 것들이 과연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었는지 되묻는다. 그의 작업은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들, 배출되고 제거된 것들에 대한 감각을 통해, 우리가 불편함과 통증이라는 이유로 쉽게 밀어내거나 비가시화해 온 신체 일부들을 다시 응시하게 만든다.
2026.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언제나 투명하게, 노골적으로, 불변의 ‘나’1)
정재연
한동안 괜찮았던 피부가 엉망이다. 뉴욕의 봄은 날씨가 건조해 기침을 달고 살고, 온몸 구석구석이 가려워 정신이 없다. 아! 내 손톱. 또 부서졌네. 그냥 툭 책상 위에 던져버린다. 손톱이 떨어져 나간 모서리 부분이 피부에 닿아 영 거슬린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은 쉽게 느끼면서도, 정작 떨어져 나간 손톱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 박정은(b. 1999)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촉감과 감각, 몸에서 떨어져 나온 흔적들, 그리고 매일 보고 만지고 느끼지만 쉽게 지나치거나 간과되는 것들에 주목한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을 유리와 세라믹이라는 물질로 전환하여, 고정된 형태로 남는 조형 언어를 구축한다. 작가는 특히 우리가 평소 인지하면서도 외면하는 신체와 생명의 흔적을 변하지 않는 유리의 물성에 결합해, 그것을 성찰적 오브제로 제시한다. 박정은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촉감과 감각, 예를 들어 반지를 끼고 빼거나 굴리고 쥐는 행위와 같은 반복적인 몸의 경험이 감각, 태도, 행위가 결합한 하나의 예술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이는 ‘일상의 물건이나 물질에는 예술적 가치가 없다 ’라는 통념을 전환하려는 그의 창작 태도와 맞닿아 있다. 또한 작가는 신체로부터 분리되지만, 여전히 생물학적 흔적을 지닌 물질들—머리카락, 탯줄, 사랑니, 태반, 눈물, 생리혈 등을 탐구하며 이를 다시 시각적 대상으로 호출한다. 이러한 작업은 몸의 내부를 표본처럼 응고시킨 듯한 매끈한 표면으로 구현되며, 유리라는 물질의 특성을 통해 생명과 신체의 흔적을 고정된 형상으로 전환한다. 작가 노트에서도 ‘나는 일상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몸에 대한 장면들; 날달걀 속 핏덩이, 죽은 쥐, 곪은 발은 저는 비둘기, 우리의 모공 속에 사는 진드기 등 하루에도 내 시선과 생각과 발걸음을 멈추는 불편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기억한다.’ 라고 소개한다.2)
박정은은 생명체를 인간 중심으로 한 위계 속에 두지 않고, 동물 역시 동등한 생명적 존재로서 확장한다. 뉴욕에서 흔히 마주치는 쥐와 비둘기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도시의 계급 구조, 생존 조건, 그리고 혐오의 감정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로 읽힌다. 특히 이들은 낙후된 도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은 비가시적인 존재이자, 통제되지 않고 배제된 도시의 음지의 생명체로 인식된다. 작품 <푸른 죽음(Blue Death)>(2024)은 마른 흙 위에 놓인 죽은 쥐의 형상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문 앞에서 발견한 죽은 쥐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부패 과정에서 드러나는 푸른빛의 살과 털의 변화는 혐오와 생명, 죽음의 경계를 동시에 환기하며, 이를 유리라는 가장 정제된 물질로 재구성한다. 불쾌한 이미지가 유리라는 매끈하고 투명한 물질로 전환되는 순간, 그것은 시각적 혐오를 제거하면서도 오히려 더 복합적인 감각을 생성한다.


<푸른 죽음(Blue Death)>, 2024, 유리, 흙, 크레용, 15 x 5.6 x 4.3 cm
이 작업은 도시 환경 속에서 인간과 함께 생존하지만 끝내 배제되는 존재들에 대한 은유이자, 도시의 또 다른 ‘동반자’로서의 생명을 호출한다. 동시에 유리라는 물질의 높은 밀도와 화학적 안정성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멸하는 생명력을 역설적으로 고정하며, 통제되지 않는 생의 에너지를 하나의 조형적 상태로 붙잡아 둔다. 이때 생명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처럼, 조개의 생식소나 달걀 속 노른자, 쌀알 안에 잠든 배아처럼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응축되어 있다. <쌀(Rice)>(2025)은 이러한 상태를 가장 미시적인 단위에서 확장한 작업이다. 작가는 작은 쌀 한 톨을 확대하여, 그 내부의 ‘쌀눈(embryo)’을 함께 재구성한다. 쌀눈은 쌀알 안에서 새로운 싹으로 발아하는 부분으로, 생물학적으로는 새로운 생명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배아 조직이다. 이는 이미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잠재적 상태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 쌀눈의 구조를 생명체가 태어나기 전 세포 분화의 초기 단계로 치환하며,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일상의 식재료 속에도 생명의 잠재적 구조가 내재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유는 여성 신체에 대한 관찰로 확장된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해부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밀하게 응시하며, 생식 기관과 같이 사회적으로 기능이 부여되거나 혹은 그 기능이 온전히 수행되지 못한 신체 일부들을 주요한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여성의 몸은 생명을 생성하는 리듬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고통과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로 존재한다. <The Fish (decidual cast)>(2025)는 이러한 신체 경험에서 출발한다. 생리혈 속에서 발견되는 자궁 내막의 덩어리는 실제로 물고기와 유사한 형상을 띠며, 작가는 이를 조형적으로 재구성한다. 자궁 양쪽에 있는 나팔관의 형태는 금붕어 꼬리의 분지 구조로 전환된다. 이 작업은 생리라는 현상을 단순한 생물학적 배출이 아니라, 생성과 해체가 반복되는 생명의 리듬으로 다시 읽어낸다.


<쌀>, 2025, 유리, 12 x 13.5 x 30 cm

<The Fish (decidual cast), 2025, 유리,17.0 × 13.7 × 3.6 cm

자궁 내막 해부학 모식도

<태반((Placenta)>, 2025, 도자(라쿠 소성), 26.7 x 25.9 x 4.8 cm
여성의 몸은 생명을 생성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는 동시에, 일상에서 제약과 불편을 동반하는 조건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이러한 신체의 상태를 단순한 결핍이나 상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생성 가능성으로 전환한다. 이때 몸에서 분리된 물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상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의 구조로 남는다. <태반(Placenta)>(2025)은 태아와 임산부의 자궁내막을 연결하고 있는 기관인 태반을 똑같이 재현한 작품이다. 태반은 임산부의 자궁내막을 연결하여 엄마에게 받은 산소와 영양분을 태아에게 공급하고, 태아를 보호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관이다. 태반은 엄마인 산모가 만드는 것이 아닌 뱃속 안 태아가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태반은 아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이미 임무를 마치고 떨어져 나가는 기관이다. 가장 없어서 안 될 중요한 기관이었다가 갈 곳을 잃어버리고 부산물이 돼버리는 존재. 작가는 태반을 직접 관찰하고 의료 서적을 탐색하며 생명 탄생의 과정을 추적한다. 적나라한 붉은 핏덩이와 혈관처럼 뻗은 구조는 생물학적 사실성에 기반하면서도, 동시에 신체 내부의 경이로운 장면을 조형적으로 환기한다. 이 작업은 라쿠 소성(Raku firing) 방식으로 제작된다. 고온에서 꺼낸 세라믹을 저온에서 급랭시키는 과정에서 표면에는 불규칙한 균열과 그을림이 생성되며, 연기와 열의 흔적이 물질 내부에 스며든다. 이러한 물성적 변화는 통제되지 않는 생명 과정의 불안정성과 긴장감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태반과 체내 점막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잎맥이 선명하게 드러난 배춧잎을 사용했다. 동시에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 에서도 지속적으로 변주되는 색과 형태의 비정형성을 드러낸다. 매끈하면서도 생경한 표면을 가진 태반은 생명을 유지하고 순환시키는 기관으로 존재하며, 태아와 태반을 연결하는 탯줄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두 몸의 가장 원초적인 결합 구조를 상기시킨다.


<탯줄(Umbilical Cord)>, 2025, 유리, 28.2 x 2.3 x 3.6 cm

탯줄 실물 사진과 조직 단면도
<탯줄(Umbilical Cord)>(2025)은 작가가 엄마와 함께 발견한 본인의 탯줄을 찾은 경험으로부터 탄생한 작품이다. 발견 당시의 탯줄은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나 마른 멸치처럼 누렇게 꼬부라져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조금은 슬펐다고 하는데, 이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유리로 탄생의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탯줄을 제작한다. 사라진 생명을 다시 구원이라도 한 듯. 한편 그는 탯줄의 단면에서 우연히 얼굴처럼 읽히는 형상을 언급하는데, 이는 생명의 기원적 구조가 가진 익명성과 동시에 인간이 그 구조를 즉각적으로 ‘얼굴화’ 하는 인식의 습관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생명 유지의 시스템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형상들은 그의 작업 속에서 유리와 도자로 재구성되며, 몸의 내부와 외부, 제거와 생성 사이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유리 탯줄은 마르거나 썩지 않아 우리의 기억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는 우리들의 처음은 분리가 아닐까 싶다. 박정은은 작업물들은 신체 물질에 질서와 생명을 유지하는 작용에 공유되는 것들을 더 나아가 여성의 삶을 관리하는 형태의 힘으로 적용한다. 박정은은 여성의 신체가 ‘가임력(Fertility)’이라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끊임없이 평가되고 구획되는 방식에 주목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의 몸 특히 생산성과 기능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잔여적 신체를 통해 그 구조의 바깥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나이에 따른 임신 가능성의 감소, 경력 단절, 출산에 대한 압박이 미래의 가능성과 실패 가능성을 재단하고 있다. 실제 임신 여부와 관계없이 드러나는 “임신 가능한 몸”이라는 사실 자체가 지속적인 시간 압박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도시 시스템은 생명 유지의 물질적 과정(maintenance of life)을 외부화하고 비가시화하는 구조이다. 그러니 우리의 몸은 여전히 동물적이고 물질적이지만, 사회는 그 물질성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그러니 여성의 가임력은 단순한 생물학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특정 방식으로 가치화되는 구조 안에 놓인다. 이러한 구조는 도시 시스템과도 연결되는데 가령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적 과정인 -먹고, 배설하고, 돌보고, 죽고, 탄생하는 등의 일들을 점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예전에는 분뇨를 처리하는 과정이나 동물을 도축하는 현장, 아이가 태어나는 현장이 삶의 일부로 드러나 있었다. 헌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공장과 시스템 안으로 숨겨진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모른 채 살아가지만, 사실 몸은 여전히 그 모든 과정을 필요이 있어야 하는 동물적 존재이기도 하다.

<Snail>, 2022, 유리, 13x21x22cm


<Find Your Shell>, 2022, 유리, 도자, 25x30x12.5cm


<모낭충>, 2025, 헌 면 베갯잇, 면 실, 솜, 3D 프린팅 한 작은 인간 손, 109 x 29 x 16 cm
박정은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몸을 세심히 관찰한다. 그러므로 이후에 실험하고 있는 혹은 작업은 몸을 다루는 방식을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한 생물들의 움직임을 패턴화하고 그들의 몸에 장착하고 있는 신체 기관 -개인적으로 도구라 부르고 싶다- 의 다양성을 탐구한다. <Snail>(2022)은 유리로 달팽이를 재현한다. 달팽이의 움직임은 속도라는 개념보다는 공간을 ‘지나가고’, ‘남긴다’는 의미가 크다. 몸 전체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며, 바닥과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액을 분비하는 과정은 사실 ‘이동’이라기보다 흔적을 생산하는 행위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소라게를 재현한 <Find Your Shell>(2022)은 달팽이와는 다르게 몸 밖에 집을 가진 존재로 소라게의 껍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체되는 임시 구조물이다.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만들지 못해 버려진 조개껍데기를 빌려 몸을 보호하며 살아간다. 불안정한 적응의 연속이다. 몸이 커지면 집이 더이상 맞지 않게 되는데, 그 순간 기존의 보호는 곧 불편함이 된다. 정착이 목표가 아닌 이동이 생존의 기본 리듬이다. 달팽이와 소라게는 같은 껍질을 짊어지지만, 이동과 공간 소비는 서로 다르다. 또한 의도치 않게 자신 혹은 다른 생물들의 주거 공간을 정리하기도 하지만, 흔적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생존한다. <모낭충>(2025)은 작가가 중고가게에 가서 직접 산 베갯잇의 천으로 만든 작업이다. 모낭충의 작은 손가락은 직접 3D 프린팅 했다. 인간의 얼굴 피부에 함께 붙어 사는 기생충.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래서 생과 생을 잇는다.
박정은의 작업은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고정된 정체성에 귀속되기보다, 무엇보다도 ‘몸’ 자체에 대한 모든 감각에서 출발한다. 피의 색, 탯줄, 태반처럼 인종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작동하는 생물학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공통된 조건을 드러내며, 범인간적인 존재성을 사유한다. 박정은은 유리와 천 같은 물질을 통해 혐오와 불안의 대상을 오히려 표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그것을 깨끗하고 안전한 형태로 응시할 수 있게 만드는 역설에 주목한다. 특히 유리는 취약함의 상징이라기보다, 오히려 반응하지 않고 부식되지 않는 가장 안전한 물질로서 기능하며, 동시에 긴장을 동반한 물질이다. 박정은의 이러한 관심은 동물의 이동 패턴과 생존 루틴으로 확장되며, 결국 몸과 움직임, 그리고 관계 맺기의 방식 자체를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애초에 인간과 분리된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1) 제목으로 쓰인 일부의 문장은 조앤 디디온의 The White Album 에 실린 에세이 「On Keeping a Notebook」에서 온 것이다. 일부 번역본마다 표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노트는 객관적 기록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장치’가 핵심이다. 박정은의 작업에서 유리를 통해 보는 바깥 세계는 결국 반복해서 드러내는 자신의 시선과 집착이 연결되어 제목을 빌린다.
2) 작가 인터뷰 당시 박정은은 사랑니를 뽑은 이후의 감각을 이야기하며, “빼고 나니 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랑니를 제거한 뒤 찾아오는 안도감은, 통증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몸이 다시 기능하기 시작하는 감각에 가깝다. 그는 이러한 감각이 생리의 경험과도 닮아 있다고 말한다. 고통이 극에 달한 이후 무언가 몸 밖으로 배출되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통을 유발한다는 이유만으로 제거되는 것들이 과연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었는지 되묻는다. 그의 작업은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들, 배출되고 제거된 것들에 대한 감각을 통해, 우리가 불편함과 통증이라는 이유로 쉽게 밀어내거나 비가시화해 온 신체 일부들을 다시 응시하게 만든다.
2026.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