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그날의 소리가 내게 머물 때
정희라, 미술평론/미술사 (화이트블럭 학예팀장)

최서희, <닮은 숲>, 2025, 자작나무에 음각, 페인트, 가변크기
소리는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날의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완결이 유예된 소리
사건을 읊는 목소리가 제각각이다. 톤도, 내용도 다르다. 작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다. 사람의 소리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살아 있는 소리라는 말이다. 그러하니 이 소리에는 숨이 붙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숨소리. 숨이 신체 안으로 들어가 성대를 치며 나오는 소리. 그것을 녹음했더니 마치 기계음 같다. 생명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생명이 사라진 소리는 시간이 흘러버린 사건과 닮아 있다. 순간의 생생함은 시간이 지나며 눅눅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하는 자의 감각이 사실과 혼합된다. 감각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상관없다. 기억을 타자화하는 최서희의 작업은 객관적인 기억을 실험한다고 볼 수 있다.

최서희, <Complete the sentence- ...- Describe the circumstances 1>, 2026, 나무에 페인트, 148×26×144cm, 103×6×130cm, 스피커, 사운드 22분 23초 (반복재생)

최서희, <Complete the sentence- ...- Describe the circumstances 2>, 2026, 나무에 페인트, 고무판에 실크스크린, 86×205×65cm
이 실험적 작업은 문장에서 시작해 형태를 얻고, 형태에서 입체가 나온 뒤 다시 그 입체에 문장이 겹쳐 올려지고, 그 문장들이 음향이 되는 과정을 거쳤다. 결과적으로 전시장의 공기를 가장 크게 점유하는 사운드 작업은 <Complete the sentence - ... - Describe the circumstances 1>에서 흘러나오는 22분 23초의 음성이다. 소리는 전시장의 빈 공간을 채우는 건축적 구조에 놓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이리저리 부유하는 배경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유기적인 온기 없이 건조한 기계음으로 치환된 목소리는, 위에서 아래로 혀처럼 길게 늘어진 <Complete the sentence - ... - Describe the circumstances 2>의 검은 고무판과 상자의 무게감과 더불어 전시장 전체를 팽팽한 심리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관객의 시선과 발걸음이 바닥에 깔린 물질의 양감에 이끌려 아래로 향할 때, 형체 없는 소리는 중력에서 벗어나 전시장 위쪽 공기를 휘감으며 공간 곳곳에 일시-정지된 사물들에까지 얽혀든다. 이와 유사하게 접착제 역할을 하는 유연한 나무 기둥과 흘러내린 실타래는 전시장에 파편화되어 흩어진 이질적인 토막들을 하나의 거대한 기억의 풍경으로 묶어낸다.
관객은 완결되지 않는 시각적 텍스트의 불완전성과 공간 전체를 유영하는 소리의 반복 사이에서 간극을 체감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완결되지 않은 지대에서 거리감에 대한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
최서희의 작업은 단순한 정보나 추상적 관념이 아닌, 누군가의 구체적인 시공간과 감각이 얽혀 있는 '일화' 자체를 질료로 삼는다. 작품의 물리적 현상과 감상자의 내면이 교차하는 이 미온한(전시 제목이 미온한 그레이이다) 회색 지대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가 공간 속에 흩뿌려둔 기억의 근원적인 속성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일화 기억이란 시공간의 맥락이 포함된 자전적 사건에 대한 장기 기억의 한 형태로, '삽화 기억'이라고도 한다. 이는 입력되고 유지되어 회상 과정을 거쳐 나온 기억으로, 일반적인 지식의 출력과는 다른 과정을 거친다. 기억은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의 모음으로 스스로에 기인하지만, 관찰자와 같은 관점 또한 내포한다. 이러한 기억은 특정 시간과 장소의 여러 요소가 혼합되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일화 기억은 특정 시간과 장소가 주요 요소이며, 그 과정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건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이를 이미지화하여 저장한다. 회상의 이미지는 문자가 아닌 시각적인 장면이 된다.
최서희의 작업에는 이러한 시각적 장면을 문자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포함된다. 시각적 이미지가 문자의 배열로 치환되는 순간, 머릿속에서 생동하던 유동적인 기억은 텍스트라는 건조한 기호의 틀에 갇히게 된다. 무겁고 짙은 검은색 매트 위로 흰색 텍스트들이 파편처럼 흩뿌려져 바닥으로 밀려 나온다.
"I don't quite remember"와 같이 맥락 없이 파편화된 문장들은, 앞서 언급한 생명력을 잃고 박제된 기억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한때 누군가의 내면에서 온도와 숨결을 지닌 채 박동했을 시각적 일화들은 이제 납작한 문자로 치환되어 차가운 전시장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관객은 전시 공간에 생긴 길을 따라, 사적 기억의 물성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최서희, <Complete the sentence- ...- Describe the circumstances 1>, 2026, 나무에 페인트, 148×26×144cm, 103×6×130cm, 스피커, 사운드 22분 23초 (반복재생)
관객은 전경에 세워진 흰색 마감의 나무 기둥들을 가로지르게 된다. 이 나무 기둥들은 마치 기억의 경계선이나 질문의 시작처럼 작동한다. 그 너머로 비스듬히 기댄 두 개의 검은색 패널을 마주하게 되는데, 뒤쪽 패널에 새겨진 텍스트 "Complete the sentence"는 앞 패널에 의해 부분적으로 가려져 있다. 이 가려진 지시는 맞은편 작품의 아래에 새겨졌던 "I don't quite remember"와 대조를 이룬다.
"I don't quite remember"가 기억의 실패에 대한 수동적인 기록이라면, "Complete the sentence"는 기억의 완성을 요구하는 능동적인 명령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헤아리면, 가려진 텍스트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을 상징하며, 기억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 작업은 이 폭력적인 명령의 아이러니를 증폭시킨다. 작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일화를 기록하고, 그것을 소리로 발화했다. '완성하라'는 지시 곁에서 반복 재생되는 목소리는 어떻게 해도 결코 완성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곁들인 건조한 읊조림으로 들린다.
이러한 작품들 사이의 끊김, 미완성의 맥락들이 가득한 작품들 사이의 거리감은 기억과 감각의 틈새를 벌려놓는 매개인 셈이다. 관객은 의도된 결핍의 공간 속에서, 불완전한 텍스트와 반복되는 기계음 사이를 거닐며 자신의 기억을 다시 직조해 내는 새로운 형태의 ‘일화 기억’을 가늠하게 된다.
비선형적 서사의 물질화
최서희의 작업은 단일한 매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촉각적 성질을 지닌 조각들을 교차시키며 작품이 놓인 공간 전체의 감각을 확장한다. 이는 기억의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닥에 놓인 실타래는 기억의 끄나풀이자, 어떻게든 이어지는 머릿속 뉴런 같다. 벽에 기대어 놓인 얇은 나무 기둥과 검은색의 세로 기둥 조각들은 세워져 있으나 공간에 위협적이지 않게 살포시 뉘어 있다. 우리 안, 어딘가에 있는 기억과 기억 사이의 비스듬한 틈처럼.
바닥에 툭 놓인 꽁꽁 묶인 검은 스펀지 덩어리는 뭉쳐놓은 감정일까, 아니면 기억일까, 아니면 시간일까. 혹은 잊혔으나 묵직하게 존재하는 중요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최서희, <스슥 푸흐툭>, 2025, 상세이미지

최서희, <Sign of the Crab 2>, 2026, 스펀지, 스웨이드에 실크스크린, 끈, 마감캡, 44×22.5×27.5cm

최서희, <Sign of the Crab 1>, 2026, 스펀지, 스웨이드에 실크스크린, 끈, 마감캡, 172×13×13cm
이처럼 사물로 번역된 기억의 물성들은 〈Sign of the Crab 1, 2〉에서 더욱 선명한 촉각적 긴장감을 가져온다. 부드럽고 푹신한 스펀지와 스웨이드 표면 위로 실크스크린 된 문장들이 지나가고, 그것을 검은 끈으로 동여맨 형태는 외부에 발화되지 못하고 억압된 내면의 덩어리를 시각화한 듯하다.
만지면 변형되지만, 결코 완전히 훼손할 수 없는 스펀지의 탄성은, 상처 입은 사적 기억이 지닌 끈질긴 복원력과 닮았다.
여기에 나무의 표면에 문자들을 새긴 〈닮은 숲〉과 〈숲〉 연작이 더해지면서 자연물에 상처를 내며 새겨진 텍스트는 기억이라는 것의 속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기억이 기호화 되는 이러한 장면들은 가공되고 통제된 기억의 구조적 속성을 그리며, 전시장 내부에 세워지기도, 구석에 놓이기도, 전면 중앙을 차지하기도 한다.

최서희, <닿아있는 테두리>, 2026, 유리와 벽에 프린트, 가변크기

최서희, <닿아있는 테두리>, 2026, 유리와 벽에 프린트, 가변크기

최서희, <닿아있는 테두리>, 2026, 유리와 벽에 프린트, 가변크기
매체의 양감으로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춘 이 기억의 조각들은 내면에 꼭꼭 숨어 닫힌 경계를 허무는 단계로 나아간다.
전시장 전경의 흰 벽면과 투명한 유리창을 동시에 가로지르는 〈닿아있는 테두리〉는 가변 크기의 흑백 그라데이션을 통해 안과 밖의 시각적 경계를 지워낸다.
창밖으로 보이는 외부의 계단 풍경과 일상의 도로가 전시장 내부의 단단한 바닥, 고무 매트의 서사와 중첩되는 순간, 작가가 연출한 ‘미온한 그레이(The Gray Between)’의 지대는 비로소 공간 전체의 서사로 완성된다.
그것은 사적인 트라우마나 은폐된 사건의 기억이 제한된 공간 속에 갇힌 환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 안전해야 할 공간의 테두리에도 언제나 존재함을 상징한다.
이처럼 사물과 소리, 그리고 공간의 모서리까지 소재로 삼은 최서희의 비선형적 서사는, 유동적인 거리로 서로 밀착하며 떨어지는 조각들로 서로 간에 매개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결국 《미온한 그레이》의 공간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완성된 서사가 아니라, 기억이 해체되며 객관화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시각이 문자로, 문자가 다시 미온적인 소리와 묵직한 사물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간극 속에서, 관객은 해방감을 얻는다. 생생한 육체를 잃고 유령처럼 부유하는 소리의 비물질성과 바닥에 웅크린 물질의 중력이 자아내는 인지적 유예는, 정답이 사라진 빈칸 위에 우리 각자의 흩어진 ‘일화 기억’을 스스로 다시 직조해 낼 수 있는 자유, 꼭 완성되지 않아도 되는, 그레이 톤의 답이어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된다.

최서희 개인전, 《미온한그레이》, 2026, 전경
2026.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그날의 소리가 내게 머물 때
정희라, 미술평론/미술사 (화이트블럭 학예팀장)

최서희, <닮은 숲>, 2025, 자작나무에 음각, 페인트, 가변크기
소리는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날의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완결이 유예된 소리
사건을 읊는 목소리가 제각각이다. 톤도, 내용도 다르다. 작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다. 사람의 소리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살아 있는 소리라는 말이다. 그러하니 이 소리에는 숨이 붙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숨소리. 숨이 신체 안으로 들어가 성대를 치며 나오는 소리. 그것을 녹음했더니 마치 기계음 같다. 생명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생명이 사라진 소리는 시간이 흘러버린 사건과 닮아 있다. 순간의 생생함은 시간이 지나며 눅눅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하는 자의 감각이 사실과 혼합된다. 감각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상관없다. 기억을 타자화하는 최서희의 작업은 객관적인 기억을 실험한다고 볼 수 있다.

최서희, <Complete the sentence- ...- Describe the circumstances 1>, 2026, 나무에 페인트, 148×26×144cm, 103×6×130cm, 스피커, 사운드 22분 23초 (반복재생)

최서희, <Complete the sentence- ...- Describe the circumstances 2>, 2026, 나무에 페인트, 고무판에 실크스크린, 86×205×65cm
이 실험적 작업은 문장에서 시작해 형태를 얻고, 형태에서 입체가 나온 뒤 다시 그 입체에 문장이 겹쳐 올려지고, 그 문장들이 음향이 되는 과정을 거쳤다. 결과적으로 전시장의 공기를 가장 크게 점유하는 사운드 작업은 <Complete the sentence - ... - Describe the circumstances 1>에서 흘러나오는 22분 23초의 음성이다. 소리는 전시장의 빈 공간을 채우는 건축적 구조에 놓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이리저리 부유하는 배경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유기적인 온기 없이 건조한 기계음으로 치환된 목소리는, 위에서 아래로 혀처럼 길게 늘어진 <Complete the sentence - ... - Describe the circumstances 2>의 검은 고무판과 상자의 무게감과 더불어 전시장 전체를 팽팽한 심리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관객의 시선과 발걸음이 바닥에 깔린 물질의 양감에 이끌려 아래로 향할 때, 형체 없는 소리는 중력에서 벗어나 전시장 위쪽 공기를 휘감으며 공간 곳곳에 일시-정지된 사물들에까지 얽혀든다. 이와 유사하게 접착제 역할을 하는 유연한 나무 기둥과 흘러내린 실타래는 전시장에 파편화되어 흩어진 이질적인 토막들을 하나의 거대한 기억의 풍경으로 묶어낸다.
관객은 완결되지 않는 시각적 텍스트의 불완전성과 공간 전체를 유영하는 소리의 반복 사이에서 간극을 체감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완결되지 않은 지대에서 거리감에 대한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
최서희의 작업은 단순한 정보나 추상적 관념이 아닌, 누군가의 구체적인 시공간과 감각이 얽혀 있는 '일화' 자체를 질료로 삼는다. 작품의 물리적 현상과 감상자의 내면이 교차하는 이 미온한(전시 제목이 미온한 그레이이다) 회색 지대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가 공간 속에 흩뿌려둔 기억의 근원적인 속성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일화 기억이란 시공간의 맥락이 포함된 자전적 사건에 대한 장기 기억의 한 형태로, '삽화 기억'이라고도 한다. 이는 입력되고 유지되어 회상 과정을 거쳐 나온 기억으로, 일반적인 지식의 출력과는 다른 과정을 거친다. 기억은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의 모음으로 스스로에 기인하지만, 관찰자와 같은 관점 또한 내포한다. 이러한 기억은 특정 시간과 장소의 여러 요소가 혼합되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일화 기억은 특정 시간과 장소가 주요 요소이며, 그 과정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건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이를 이미지화하여 저장한다. 회상의 이미지는 문자가 아닌 시각적인 장면이 된다.
최서희의 작업에는 이러한 시각적 장면을 문자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포함된다. 시각적 이미지가 문자의 배열로 치환되는 순간, 머릿속에서 생동하던 유동적인 기억은 텍스트라는 건조한 기호의 틀에 갇히게 된다. 무겁고 짙은 검은색 매트 위로 흰색 텍스트들이 파편처럼 흩뿌려져 바닥으로 밀려 나온다.
"I don't quite remember"와 같이 맥락 없이 파편화된 문장들은, 앞서 언급한 생명력을 잃고 박제된 기억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한때 누군가의 내면에서 온도와 숨결을 지닌 채 박동했을 시각적 일화들은 이제 납작한 문자로 치환되어 차가운 전시장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관객은 전시 공간에 생긴 길을 따라, 사적 기억의 물성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최서희, <Complete the sentence- ...- Describe the circumstances 1>, 2026, 나무에 페인트, 148×26×144cm, 103×6×130cm, 스피커, 사운드 22분 23초 (반복재생)
관객은 전경에 세워진 흰색 마감의 나무 기둥들을 가로지르게 된다. 이 나무 기둥들은 마치 기억의 경계선이나 질문의 시작처럼 작동한다. 그 너머로 비스듬히 기댄 두 개의 검은색 패널을 마주하게 되는데, 뒤쪽 패널에 새겨진 텍스트 "Complete the sentence"는 앞 패널에 의해 부분적으로 가려져 있다. 이 가려진 지시는 맞은편 작품의 아래에 새겨졌던 "I don't quite remember"와 대조를 이룬다.
"I don't quite remember"가 기억의 실패에 대한 수동적인 기록이라면, "Complete the sentence"는 기억의 완성을 요구하는 능동적인 명령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헤아리면, 가려진 텍스트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을 상징하며, 기억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 작업은 이 폭력적인 명령의 아이러니를 증폭시킨다. 작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일화를 기록하고, 그것을 소리로 발화했다. '완성하라'는 지시 곁에서 반복 재생되는 목소리는 어떻게 해도 결코 완성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곁들인 건조한 읊조림으로 들린다.
이러한 작품들 사이의 끊김, 미완성의 맥락들이 가득한 작품들 사이의 거리감은 기억과 감각의 틈새를 벌려놓는 매개인 셈이다. 관객은 의도된 결핍의 공간 속에서, 불완전한 텍스트와 반복되는 기계음 사이를 거닐며 자신의 기억을 다시 직조해 내는 새로운 형태의 ‘일화 기억’을 가늠하게 된다.
비선형적 서사의 물질화
최서희의 작업은 단일한 매체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촉각적 성질을 지닌 조각들을 교차시키며 작품이 놓인 공간 전체의 감각을 확장한다. 이는 기억의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닥에 놓인 실타래는 기억의 끄나풀이자, 어떻게든 이어지는 머릿속 뉴런 같다. 벽에 기대어 놓인 얇은 나무 기둥과 검은색의 세로 기둥 조각들은 세워져 있으나 공간에 위협적이지 않게 살포시 뉘어 있다. 우리 안, 어딘가에 있는 기억과 기억 사이의 비스듬한 틈처럼.
바닥에 툭 놓인 꽁꽁 묶인 검은 스펀지 덩어리는 뭉쳐놓은 감정일까, 아니면 기억일까, 아니면 시간일까. 혹은 잊혔으나 묵직하게 존재하는 중요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최서희, <스슥 푸흐툭>, 2025, 상세이미지

최서희, <Sign of the Crab 2>, 2026, 스펀지, 스웨이드에 실크스크린, 끈, 마감캡, 44×22.5×27.5cm

최서희, <Sign of the Crab 1>, 2026, 스펀지, 스웨이드에 실크스크린, 끈, 마감캡, 172×13×13cm
이처럼 사물로 번역된 기억의 물성들은 〈Sign of the Crab 1, 2〉에서 더욱 선명한 촉각적 긴장감을 가져온다. 부드럽고 푹신한 스펀지와 스웨이드 표면 위로 실크스크린 된 문장들이 지나가고, 그것을 검은 끈으로 동여맨 형태는 외부에 발화되지 못하고 억압된 내면의 덩어리를 시각화한 듯하다.
만지면 변형되지만, 결코 완전히 훼손할 수 없는 스펀지의 탄성은, 상처 입은 사적 기억이 지닌 끈질긴 복원력과 닮았다.
여기에 나무의 표면에 문자들을 새긴 〈닮은 숲〉과 〈숲〉 연작이 더해지면서 자연물에 상처를 내며 새겨진 텍스트는 기억이라는 것의 속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기억이 기호화 되는 이러한 장면들은 가공되고 통제된 기억의 구조적 속성을 그리며, 전시장 내부에 세워지기도, 구석에 놓이기도, 전면 중앙을 차지하기도 한다.

최서희, <닿아있는 테두리>, 2026, 유리와 벽에 프린트, 가변크기

최서희, <닿아있는 테두리>, 2026, 유리와 벽에 프린트, 가변크기

최서희, <닿아있는 테두리>, 2026, 유리와 벽에 프린트, 가변크기
매체의 양감으로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춘 이 기억의 조각들은 내면에 꼭꼭 숨어 닫힌 경계를 허무는 단계로 나아간다.
전시장 전경의 흰 벽면과 투명한 유리창을 동시에 가로지르는 〈닿아있는 테두리〉는 가변 크기의 흑백 그라데이션을 통해 안과 밖의 시각적 경계를 지워낸다.
창밖으로 보이는 외부의 계단 풍경과 일상의 도로가 전시장 내부의 단단한 바닥, 고무 매트의 서사와 중첩되는 순간, 작가가 연출한 ‘미온한 그레이(The Gray Between)’의 지대는 비로소 공간 전체의 서사로 완성된다.
그것은 사적인 트라우마나 은폐된 사건의 기억이 제한된 공간 속에 갇힌 환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 안전해야 할 공간의 테두리에도 언제나 존재함을 상징한다.
이처럼 사물과 소리, 그리고 공간의 모서리까지 소재로 삼은 최서희의 비선형적 서사는, 유동적인 거리로 서로 밀착하며 떨어지는 조각들로 서로 간에 매개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결국 《미온한 그레이》의 공간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완성된 서사가 아니라, 기억이 해체되며 객관화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시각이 문자로, 문자가 다시 미온적인 소리와 묵직한 사물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간극 속에서, 관객은 해방감을 얻는다. 생생한 육체를 잃고 유령처럼 부유하는 소리의 비물질성과 바닥에 웅크린 물질의 중력이 자아내는 인지적 유예는, 정답이 사라진 빈칸 위에 우리 각자의 흩어진 ‘일화 기억’을 스스로 다시 직조해 낼 수 있는 자유, 꼭 완성되지 않아도 되는, 그레이 톤의 답이어도 되는 자유를 얻게 된다.

최서희 개인전, 《미온한그레이》, 2026, 전경
2026.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