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신화, 뉴욕 닉스
정재연
요즘 뉴욕은 스포츠로 들썩인다. 뉴욕 닉스(New York Knicks)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결과를 넘어서, 도시 전체의 감정 온도를 바꿔버리는 하나의 문화 사건처럼 느껴진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이어진 플레이오프 진출과 홈 경기에서의 연속적인 승리들은 MSG(Madison Square Garden)를 다시 완전한 에너지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그 장면 자체가 이미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소비되고 있다. 특히 디펜스 중심의 끈질긴 경기 운영, 젊은 선수들의 성장, 그리고 홈 관중의 폭발적인 반응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리듬과 정확히 겹쳐진다. 닉스의 승리는 이제 단순한 스포츠 기록이 아니라, “뉴욕이 다시 스포츠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적인 신호처럼 읽힌다.
뉴욕 닉스의 최근 상승세를 보면, 이건 전술의 변화라기보다 도시 서사의 복귀에 가깝다. 한동안 뉴욕은 스포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과거의 영광’을 반복해서 호출하는 도시처럼 보였는데, 지금의 분위기는 그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리듬이다. 경기장에서 터지는 소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팬들의 유니폼,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하이라이트 클립들은 하나의 집단적 이미지로 축적된다. 뉴욕은 원래 이미지의 도시지만, 지금은 그 이미지가 더 직접적으로 “몸”을 갖고 움직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닉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최근 몇 년간의 상승세 때문만은 아니다. 닉스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하나의 신화에 가깝다. 마지막 우승은 1973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시즌이 지나갔고,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팀을 거쳐 갔지만 우승 트로피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떠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닉스를 응원하는 방식이 단순한 팬덤을 넘어 세대를 잇는 기억의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찾았고, 이제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같은 경기장을 찾는다. 우승 장면을 직접 본 적 없는 팬들조차도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기억 속에서 팀을 사랑한다. 닉스는 하나의 스포츠 팀이라기보다 가족 안에서 전승되는 도시의 전설에 가깝다.
그래서 최근의 플레이오프 열기는 단순히 승리를 향한 기대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어쩌면 50년 넘게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서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감각에 가깝다. 뉴욕 시민들은 단지 농구 경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이야기가 마침내 완성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신화는 언제나 승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긴 기다림과 반복된 실패, 그리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닉스는 이미 하나의 신화다. 우승 여부와 상관없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충성심과 기억, 그리고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애정은 이 팀을 단순한 스포츠 클럽이 아닌 뉴욕이라는 도시의 집단적 서사로 만들었다.
이런 흐름을 미술적으로 보면, 스포츠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미지 생산 시스템’이었다. 특히 스포츠를 예술로 끌어온 작가들은 경기의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몸의 긴장, 반복, 감정의 폭발을 다뤄왔다. 예를 들어 Ernie Barnes는 농구 코트 위의 움직임을 거의 추상적 리듬처럼 그려냈고, 선수들의 몸을 길게 늘어진 곡선으로 표현하면서 스포츠를 하나의 무용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그림에서 농구는 경기라기보다 “흐름”에 가깝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행크 윌리스 토마스(Hank Willis Thomas)는 스포츠 이미지를 소비 구조와 연결시킨다. 그는 경기 자체보다 스포츠가 어떻게 광고, 브랜드, 인종, 자본과 얽히는지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보는 스포츠’가 얼마나 정치적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지점에서 스포츠는 더 이상 순수한 게임이 아니라 이미지 시스템이 된다. 스포츠는 오랫동안 단순한 오락이나 경쟁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지만, 사실상 인종, 계급, 자본, 국가 정체성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무대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경기장 안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는 종종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시각 언어로 기능해 왔다. 선수의 몸은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인 동시에 인종적 편견과 기대, 성공 신화와 좌절의 역사를 동시에 담아내는 장소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 사진을 넘어 사회적 기억을 생산하는 장치로 읽힌다. 경기장의 환호와 승리의 순간은 공동체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역사적 긴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뉴욕과 같은 도시에서 스포츠는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드문 공간으로 작동하며, 도시의 정체성과 집단적 감정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Hank Willis Thomas, No. 13, 2021, mixed media including NBA jerseys, 281.9 × 141 cm. © Hank Willis Thomas.

Hank Willis Thomas, Branded Head, 2003, digital C-print.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 Hank Willis Thomas.

Hank Willis Thomas, Strange Fruit, 2011, digital C-print, sizes vary.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 Hank Willis Thomas.
오늘날 닉스를 둘러싼 열광 역시 단순히 팀의 성적 향상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스포츠가 생산하는 이미지와 기억,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인종적·문화적 경험들이 다시 한번 도시의 중심으로 소환되고 있는 현상에 가깝다. 이때 스포츠는 더 이상 경기 결과에 머물지 않고, 도시와 공동체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된다.

그리고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역시 농구와 도시 리듬을 회화 안으로 끌어들인 작가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작업 속 왕관, 숫자, 신체적 에너지들은 경기장의 속도감과 닮아 있고, 특히 뉴욕이라는 도시의 압축된 에너지가 캔버스 위에서 폭발하는 방식은 닉스의 홈 경기 분위기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행크 윌리스 토마스가 스포츠 이미지를 통해 인종과 권력의 구조를 드러낸다면, 장 미셸 바스키아는 선수의 몸 자체를 하나의 역사적 텍스트로 읽어낸다. 바스키아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나 오락이 아니라 흑인 신체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영웅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였다. 실제로 바스키아는 복서, 야구 선수, 농구 선수 등 흑인 운동선수들을 반복적으로 작업 속에 등장시켰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승패나 기록이 아니라, 흑인 운동선수들이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모순적인 위치였다. 그들은 대중의 환호를 받는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인종적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을 경험하는 존재였다. 바스키아는 이러한 긴장을 왕관(crown), 숫자, 신체의 단편적 이미지, 해부학적 드로잉 등을 통해 시각화했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왕관은 단순한 성공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지워지고 주변화되었던 흑인 인물들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명예 훈장이자 상징적 복권에 가깝다. 바스키아가 운동선수들을 그릴 때, 그는 단순히 스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흑인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쓰고 있었다. 그의 회화 속 신체는 강인하면서도 불안정하고, 영웅적이면서도 상처 입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농구는 바스키아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적 이미지로 읽힌다. 농구 코트는 흑인 공동체가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꿈꾸는 공간인 동시에, 자본과 미디어가 신체를 상품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스키아는 그 이중성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포착했다. 그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속도감 있는 선, 겹쳐지는 텍스트, 폭발하는 색채는 농구 경기의 리듬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긴장과 에너지를 반영한다.
이 지점에서 바스키아는 행크 윌리스 토마스와 만난다. 토마스가 스포츠 이미지를 통해 인종과 자본, 소비 구조를 분석한다면, 바스키아는 그 구조 속에 놓인 신체의 감각과 욕망, 그리고 상처를 드러낸다. 두 작가 모두 스포츠를 단순한 경기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미국 사회의 인종 정치학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시각 문화이며, 동시에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이 생산되는 장소다.
오늘날 뉴욕 닉스를 둘러싼 열광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어볼 수 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의 함성, 선수들의 몸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움직임, 그리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경기 장면들은 단순한 스포츠 콘텐츠를 넘어선다. 그것은 도시가 스스로를 상상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며, 바스키아가 포착했던 뉴욕의 압축된 에너지가 동시대의 이미지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 뉴욕에서 일어나는 “닉스 붐”은 단순한 스포츠 인기 상승이 아니라, 도시가 다시 자기 이미지를 생산하기 시작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경기장은 하나의 전시장처럼 작동하고, 관중은 관객이자 참여자가 되며, 선수들의 몸은 조각처럼 읽힌다.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로만 존재하지 않고, 도시 전체의 감각 구조를 재조립하는 하나의 예술 언어가 된다. 그래서 지금의 닉스는 이기는 팀이라기보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다시 자신을 “보이게 만드는 방식”에 더 가깝다. 닉스의 최근 상승세는 흥미롭게도 동시대 미술 시장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스포츠와 미술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둘 다 기대와 실망, 열광과 냉소, 투기와 헌신이 반복되는 집단적 감정의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한 시즌의 승리로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것처럼, 미술 시장 역시 특정 작가나 장르, 혹은 하나의 담론이 급격한 주목을 받으며 순식간에 열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열기는 언제나 지속되지 않는다. 닉스가 긴 침체기를 겪었던 것처럼, 미술계 역시 반복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경험해 왔다. 어떤 작가는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가 잊히고, 어떤 담론은 시대를 대표하는 언어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힘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경기장을 찾고, 전시장을 찾는다. 그것은 결과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승리나 성공보다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집단적 에너지와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그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포츠 팬이 팀의 성적과 상관없이 응원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팀이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미술 또한 마찬가지다. 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해서 예술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기에 남는 것은 가격이나 유행이 아니라 작품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관계, 그리고 예술이 여전히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고 세계를 다르게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지금 뉴욕의 닉스 붐은 단순히 승리하는 팀을 향한 환호라기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공동체가 다시 한번 자신들의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한 순간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미술을 지지하는 행위와도 닮아 있다. 시장은 오르고 내리지만, 예술과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공동체는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상승 곡선에 올라타는 일이 아니라, 침체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가치와 가능성을 믿고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닉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매 시즌 다시 경기장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미술이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뿐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에도 예술을 지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을 함께 기다리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닉스는 단지 농구팀이 아니라, 호황과 침체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집단적 상상력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2026.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도시의 신화, 뉴욕 닉스
정재연
요즘 뉴욕은 스포츠로 들썩인다. 뉴욕 닉스(New York Knicks)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결과를 넘어서, 도시 전체의 감정 온도를 바꿔버리는 하나의 문화 사건처럼 느껴진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이어진 플레이오프 진출과 홈 경기에서의 연속적인 승리들은 MSG(Madison Square Garden)를 다시 완전한 에너지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그 장면 자체가 이미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소비되고 있다. 특히 디펜스 중심의 끈질긴 경기 운영, 젊은 선수들의 성장, 그리고 홈 관중의 폭발적인 반응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리듬과 정확히 겹쳐진다. 닉스의 승리는 이제 단순한 스포츠 기록이 아니라, “뉴욕이 다시 스포츠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적인 신호처럼 읽힌다.
뉴욕 닉스의 최근 상승세를 보면, 이건 전술의 변화라기보다 도시 서사의 복귀에 가깝다. 한동안 뉴욕은 스포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과거의 영광’을 반복해서 호출하는 도시처럼 보였는데, 지금의 분위기는 그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리듬이다. 경기장에서 터지는 소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팬들의 유니폼,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하이라이트 클립들은 하나의 집단적 이미지로 축적된다. 뉴욕은 원래 이미지의 도시지만, 지금은 그 이미지가 더 직접적으로 “몸”을 갖고 움직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닉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최근 몇 년간의 상승세 때문만은 아니다. 닉스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하나의 신화에 가깝다. 마지막 우승은 1973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시즌이 지나갔고,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팀을 거쳐 갔지만 우승 트로피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떠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닉스를 응원하는 방식이 단순한 팬덤을 넘어 세대를 잇는 기억의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찾았고, 이제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같은 경기장을 찾는다. 우승 장면을 직접 본 적 없는 팬들조차도 부모 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기억 속에서 팀을 사랑한다. 닉스는 하나의 스포츠 팀이라기보다 가족 안에서 전승되는 도시의 전설에 가깝다.
그래서 최근의 플레이오프 열기는 단순히 승리를 향한 기대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어쩌면 50년 넘게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서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감각에 가깝다. 뉴욕 시민들은 단지 농구 경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이야기가 마침내 완성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신화는 언제나 승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긴 기다림과 반복된 실패, 그리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닉스는 이미 하나의 신화다. 우승 여부와 상관없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충성심과 기억, 그리고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애정은 이 팀을 단순한 스포츠 클럽이 아닌 뉴욕이라는 도시의 집단적 서사로 만들었다.
이런 흐름을 미술적으로 보면, 스포츠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미지 생산 시스템’이었다. 특히 스포츠를 예술로 끌어온 작가들은 경기의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몸의 긴장, 반복, 감정의 폭발을 다뤄왔다. 예를 들어 Ernie Barnes는 농구 코트 위의 움직임을 거의 추상적 리듬처럼 그려냈고, 선수들의 몸을 길게 늘어진 곡선으로 표현하면서 스포츠를 하나의 무용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그림에서 농구는 경기라기보다 “흐름”에 가깝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행크 윌리스 토마스(Hank Willis Thomas)는 스포츠 이미지를 소비 구조와 연결시킨다. 그는 경기 자체보다 스포츠가 어떻게 광고, 브랜드, 인종, 자본과 얽히는지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보는 스포츠’가 얼마나 정치적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지점에서 스포츠는 더 이상 순수한 게임이 아니라 이미지 시스템이 된다. 스포츠는 오랫동안 단순한 오락이나 경쟁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지만, 사실상 인종, 계급, 자본, 국가 정체성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무대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경기장 안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는 종종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시각 언어로 기능해 왔다. 선수의 몸은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인 동시에 인종적 편견과 기대, 성공 신화와 좌절의 역사를 동시에 담아내는 장소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포츠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 사진을 넘어 사회적 기억을 생산하는 장치로 읽힌다. 경기장의 환호와 승리의 순간은 공동체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역사적 긴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뉴욕과 같은 도시에서 스포츠는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드문 공간으로 작동하며, 도시의 정체성과 집단적 감정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Hank Willis Thomas, No. 13, 2021, mixed media including NBA jerseys, 281.9 × 141 cm. © Hank Willis Thomas.

Hank Willis Thomas, Branded Head, 2003, digital C-print.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 Hank Willis Thomas.

Hank Willis Thomas, Strange Fruit, 2011, digital C-print, sizes vary.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 Hank Willis Thomas.
오늘날 닉스를 둘러싼 열광 역시 단순히 팀의 성적 향상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스포츠가 생산하는 이미지와 기억,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인종적·문화적 경험들이 다시 한번 도시의 중심으로 소환되고 있는 현상에 가깝다. 이때 스포츠는 더 이상 경기 결과에 머물지 않고, 도시와 공동체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된다.

그리고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역시 농구와 도시 리듬을 회화 안으로 끌어들인 작가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작업 속 왕관, 숫자, 신체적 에너지들은 경기장의 속도감과 닮아 있고, 특히 뉴욕이라는 도시의 압축된 에너지가 캔버스 위에서 폭발하는 방식은 닉스의 홈 경기 분위기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행크 윌리스 토마스가 스포츠 이미지를 통해 인종과 권력의 구조를 드러낸다면, 장 미셸 바스키아는 선수의 몸 자체를 하나의 역사적 텍스트로 읽어낸다. 바스키아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나 오락이 아니라 흑인 신체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영웅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였다. 실제로 바스키아는 복서, 야구 선수, 농구 선수 등 흑인 운동선수들을 반복적으로 작업 속에 등장시켰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승패나 기록이 아니라, 흑인 운동선수들이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모순적인 위치였다. 그들은 대중의 환호를 받는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인종적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을 경험하는 존재였다. 바스키아는 이러한 긴장을 왕관(crown), 숫자, 신체의 단편적 이미지, 해부학적 드로잉 등을 통해 시각화했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왕관은 단순한 성공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지워지고 주변화되었던 흑인 인물들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명예 훈장이자 상징적 복권에 가깝다. 바스키아가 운동선수들을 그릴 때, 그는 단순히 스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흑인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쓰고 있었다. 그의 회화 속 신체는 강인하면서도 불안정하고, 영웅적이면서도 상처 입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농구는 바스키아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적 이미지로 읽힌다. 농구 코트는 흑인 공동체가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꿈꾸는 공간인 동시에, 자본과 미디어가 신체를 상품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스키아는 그 이중성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포착했다. 그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속도감 있는 선, 겹쳐지는 텍스트, 폭발하는 색채는 농구 경기의 리듬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긴장과 에너지를 반영한다.
이 지점에서 바스키아는 행크 윌리스 토마스와 만난다. 토마스가 스포츠 이미지를 통해 인종과 자본, 소비 구조를 분석한다면, 바스키아는 그 구조 속에 놓인 신체의 감각과 욕망, 그리고 상처를 드러낸다. 두 작가 모두 스포츠를 단순한 경기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스포츠는 미국 사회의 인종 정치학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시각 문화이며, 동시에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이 생산되는 장소다.
오늘날 뉴욕 닉스를 둘러싼 열광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읽어볼 수 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의 함성, 선수들의 몸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움직임, 그리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경기 장면들은 단순한 스포츠 콘텐츠를 넘어선다. 그것은 도시가 스스로를 상상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며, 바스키아가 포착했던 뉴욕의 압축된 에너지가 동시대의 이미지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 뉴욕에서 일어나는 “닉스 붐”은 단순한 스포츠 인기 상승이 아니라, 도시가 다시 자기 이미지를 생산하기 시작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경기장은 하나의 전시장처럼 작동하고, 관중은 관객이자 참여자가 되며, 선수들의 몸은 조각처럼 읽힌다. 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로만 존재하지 않고, 도시 전체의 감각 구조를 재조립하는 하나의 예술 언어가 된다. 그래서 지금의 닉스는 이기는 팀이라기보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다시 자신을 “보이게 만드는 방식”에 더 가깝다. 닉스의 최근 상승세는 흥미롭게도 동시대 미술 시장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스포츠와 미술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둘 다 기대와 실망, 열광과 냉소, 투기와 헌신이 반복되는 집단적 감정의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한 시즌의 승리로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것처럼, 미술 시장 역시 특정 작가나 장르, 혹은 하나의 담론이 급격한 주목을 받으며 순식간에 열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열기는 언제나 지속되지 않는다. 닉스가 긴 침체기를 겪었던 것처럼, 미술계 역시 반복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경험해 왔다. 어떤 작가는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가 잊히고, 어떤 담론은 시대를 대표하는 언어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힘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경기장을 찾고, 전시장을 찾는다. 그것은 결과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승리나 성공보다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집단적 에너지와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그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포츠 팬이 팀의 성적과 상관없이 응원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팀이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미술 또한 마찬가지다. 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해서 예술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기에 남는 것은 가격이나 유행이 아니라 작품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관계, 그리고 예술이 여전히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고 세계를 다르게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지금 뉴욕의 닉스 붐은 단순히 승리하는 팀을 향한 환호라기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공동체가 다시 한번 자신들의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한 순간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미술을 지지하는 행위와도 닮아 있다. 시장은 오르고 내리지만, 예술과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공동체는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상승 곡선에 올라타는 일이 아니라, 침체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가치와 가능성을 믿고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닉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매 시즌 다시 경기장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미술이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뿐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에도 예술을 지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을 함께 기다리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닉스는 단지 농구팀이 아니라, 호황과 침체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집단적 상상력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2026.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