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기 연습
문소영(독립 큐레이터)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 거뭇하게 산등성이가 보였다. 거리가 멀다 보니 작은 별처럼 보이는 조명들을 머리핀처럼 달고 있는 까만 산.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산 위에 누군가 서있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주 긴 거리이지만 마주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 까만 밤에 저 깊은 산에 누가 있겠어. 하지만 이렇게 내가 깨어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저 산을 헤매고 있진 않을까. 인사를 하면 어떨까? 산 위로 저무는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낮에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지루했다. 창문으로 지난밤에 보았던 그 산이 빼꼼 보였다. 어두울 땐 보이지 않던 등산로가 보였고, 양 갈래머리를 한 아이의 가르마 같았다. 무지 큰 산일 텐데, 이렇게 보니 참 작고 귀엽네. 얼마 전 본 까맣고 아득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창틀과 같이 보니까 꼭 그림 같기도 하고. 지루한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산을 계속 바라보았다.
지도를 펼치고 그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얼추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산이 있었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산길이나 정상에서 찍은 사진만 있어서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과 같은 산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긴, 보통은 너를 오르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일은 잘 없겠구나. 그리고 아마 내가 그 산을 오를 일도 없을 것이다. 가본 적 없는 산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 풍경은 보여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늘어지는 시간을 한없이 감고 감아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도 종종 창밖의 산은 늘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은 곰처럼 생긴 구름이 산에 잠시 기대었다 사라지기도 하고, 안개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뿌연 형체로만 남았다가, 날씨가 맑은 날에는 쨍하게 가르마를 드러냈다. 계절에 따라 푸르렀다가, 개나리와 철쭉에 둘러싸이기도, 혹은 돌과 흙빛이 되기를 반복했다. 무언가의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도 있구나. 아름다움은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는 사건이구나.
언젠가 야외 수영장 물 위에 떠서, 파란 하늘에 구름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모두가 실내에 머무는 동안 밤 하늘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진다. 자연이 벌이는 모든 일은 아주 천천히 희한하게 벌어지지만, 그 무엇도 구구절절하지 않다. 이런 기척 없는 우연을 발견해, 더 고요한 그림 속에 담는 일이 부드럽고 사려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오래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개운해졌던 것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건 마음속에 있는 절실한 무언가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는 마음을 상상하기 위해 진득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본다:
겨울 산을 보면서, 산을 쓰다듬으면 손바닥으로 짧은 솔을 훑는 느낌이 나겠지 생각했다. 나무는 앙상해지면 다 같은 모양일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아도 제각각인 것이 보였다. 빗살처럼 곧게 서있는 나무 사이로 꽃송이처럼 풍성한 나무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에 그쳤지만….
2026.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산 그리기 연습
문소영(독립 큐레이터)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 거뭇하게 산등성이가 보였다. 거리가 멀다 보니 작은 별처럼 보이는 조명들을 머리핀처럼 달고 있는 까만 산.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산 위에 누군가 서있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주 긴 거리이지만 마주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 까만 밤에 저 깊은 산에 누가 있겠어. 하지만 이렇게 내가 깨어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저 산을 헤매고 있진 않을까. 인사를 하면 어떨까? 산 위로 저무는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낮에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지루했다. 창문으로 지난밤에 보았던 그 산이 빼꼼 보였다. 어두울 땐 보이지 않던 등산로가 보였고, 양 갈래머리를 한 아이의 가르마 같았다. 무지 큰 산일 텐데, 이렇게 보니 참 작고 귀엽네. 얼마 전 본 까맣고 아득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창틀과 같이 보니까 꼭 그림 같기도 하고. 지루한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산을 계속 바라보았다.
지도를 펼치고 그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얼추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산이 있었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산길이나 정상에서 찍은 사진만 있어서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과 같은 산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긴, 보통은 너를 오르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일은 잘 없겠구나. 그리고 아마 내가 그 산을 오를 일도 없을 것이다. 가본 적 없는 산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 풍경은 보여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늘어지는 시간을 한없이 감고 감아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도 종종 창밖의 산은 늘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은 곰처럼 생긴 구름이 산에 잠시 기대었다 사라지기도 하고, 안개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뿌연 형체로만 남았다가, 날씨가 맑은 날에는 쨍하게 가르마를 드러냈다. 계절에 따라 푸르렀다가, 개나리와 철쭉에 둘러싸이기도, 혹은 돌과 흙빛이 되기를 반복했다. 무언가의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도 있구나. 아름다움은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는 사건이구나.
언젠가 야외 수영장 물 위에 떠서, 파란 하늘에 구름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모두가 실내에 머무는 동안 밤 하늘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진다. 자연이 벌이는 모든 일은 아주 천천히 희한하게 벌어지지만, 그 무엇도 구구절절하지 않다. 이런 기척 없는 우연을 발견해, 더 고요한 그림 속에 담는 일이 부드럽고 사려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오래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개운해졌던 것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건 마음속에 있는 절실한 무언가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는 마음을 상상하기 위해 진득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본다:
겨울 산을 보면서, 산을 쓰다듬으면 손바닥으로 짧은 솔을 훑는 느낌이 나겠지 생각했다. 나무는 앙상해지면 다 같은 모양일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아도 제각각인 것이 보였다. 빗살처럼 곧게 서있는 나무 사이로 꽃송이처럼 풍성한 나무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에 그쳤지만….
2026.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