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언젠가는 슬기로울 기계종 생활
박준수
![취재진 질문 답하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https://cdn.imweb.me/upload/S202204293a6eb15f078f5/f8acff109d161.png)
자진 사퇴 발표하는 홍명보 감독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보며 노심초사 기다리던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결국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텍스트힙’ 열풍으로 15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쾌거를 올렸지만, 시작 전부터 주요 출판사들의 보이콧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상반기 미술시장에서는 수많은 아트페어가 열렸지만, 아트페어를 둘러싼 피로감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언뜻 보면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이야기다. 하나는 스포츠이고, 하나는 출판이며, 또 하나는 예술시장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세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한축구협회, 대한출판문화협회, 그리고 아트페어를 만드는 여러 조직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현장에서 찾는다. 선수들의 경기력, 일부 출판사들의 단독행동, 경기 침체에 따른 갤러리의 판매 부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장은 언제나 마지막 결과일 뿐이다.
실패는 훨씬 이전, 조직의 리더십과 의사결정 구조에서 시작된다.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책임보다 자리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전문성보다 친분과 관계가 우선되며, 견제보다 침묵이 조직의 문화가 되는 순간 경쟁력은 서서히 무너진다. 외부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내부는 변하지 않는다. 실패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건강한 조직은 실력 있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오른다. 반대로 병든 조직은 가까운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오른다. 전문성보다 인맥이, 공공성보다 이해관계가, 미래보다 현재의 기득권이 우선되는 순간 조직은 혁신을 멈춘다. 반대 의견은 조직을 위한 충언이 아니라 불편한 목소리로 취급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방해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결국 조직은 스스로를 평가하지 못하는 집단이 된다.
이번 월드컵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계 축구는 이미 데이터 분석, 스포츠 과학, 유소년 육성, 지도자 시스템까지 경쟁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리더십이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선수들의 헌신만으로는 그 격차를 메울 수 없다.
2002년 월드컵의 영웅이었던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자산이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이 있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반복되어 온 폐쇄적인 인사 구조와 ‘고대라인’으로 비판받고 있는 학연 중심의 문화는 결국 홍명보 개인뿐 아니라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광마저 빛이 바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드러난 결과는 국가대표 감독 홍명보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서울국제도서전
사진 출처 : 뉴시스
성황리에 마친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안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행사 전부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보였던 일부 출판사와 서점의 보이콧은 단순한 참가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출판계 안에서는 오래전부터 도서전이라는 공적 플랫폼이 특정 운영 주체와 제한된 이해관계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누적되었고, 그 불신이 결국 보이콧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특정 협회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부 지원, 출판사들의 참여, 독자들의 신뢰, 저자들의 노동이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낸 출판계의 공공 자산이다. 그런데 그 운영 구조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소수의 손 안에서 반복된다면 도서전은 더 이상 ‘국제’도, ‘축제’도 아닌 폐쇄적 권력의 행사장이 된다.
실제로 출판계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연대’가 등장했고, 도서전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문제, 공공성의 훼손, 출협 중심의 폐쇄적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논란은 2025년에 본격화되었고, 2026년에도 부스 부족과 공공성 회복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보이콧은 그래서 거부가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대로는 함께할 수 없다는 마지막 신호다. 공적 행사를 사적 네트워크가 장악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행사의 품격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신뢰다. 그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행사 규모와 관람객 숫자는 유지될 수 있어도 축제로서의 의미는 사라진다.
아트페어 역시 다르지 않다.
상반기에 열린 여러 아트페어에서는 개막 직후임에도 관람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풍경이다.
아트페어가 너무 많아져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지만, 문제는 아트페어의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신생 아트페어인 ‘하이브 아트페어’가 이러한 구조를 바꿔보겠다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를 했지만, 하나의 행사가 시장의 관성을 단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마누라 자식빼고 다 바꿔라
사진출처 : 조선일보
많은 갤러리들은 현재의 운영 방식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계속 오르는 참가비, 비슷한 시기에 겹쳐 열리는 일정, 차별화되지 않는 행사, 그리고 참가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의사결정 구조….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갤러리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다시 참가 신청서를 낸다.
아트페어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컬렉터를 만나야 하고, 작가를 소개해야 하며,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갤러리에게 아트페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만들어진다. 모두가 문제를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주최 측은 참가 갤러리 수와 관람객 수를 성공의 지표로 내세우고, 갤러리는 생존을 위해 다시 참가한다. 숫자는 유지되지만 만족도는 떨어지고, 부스는 가득 차지만 신뢰는 비어간다. 겉으로는 성장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피로가 누적된다.
운영 주체가 참가자들의 목소리보다 조직 내부의 논리를 우선하고, 다양한 의견보다 학연·혈연·지연 같은 인맥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반복된다면 아트페어는 시장을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갤러리는 주최 측의 고객이면서도 동시에 그 구조를 유지하는 구성원이 된다. 불만은 있지만 떠날 수 없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타계하기 위해 ‘유명한 사람’을 예술 감독으로 세우기도 한다. 구조가 변하지 않는데, 감독만 세우면 결국 홍명보 꼴을 면하기 어렵다.
세 사례는 모두 같은 사실을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손흥민과 이강인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있고, 서울국제도서전을 사랑하는 독자와 출판사도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와 그들을 발굴하는 갤러리도 있다.
부족한 것은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조직이며, 사익 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이다.
조직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권력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이다. 건강한 조직은 스스로를 의심한다. 병든 조직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순간, 조직은 더 이상 구성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조직이 된다.
리더십은 유명한 누군가를 세워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한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책임지는 능력이며, 공익을 위해 사익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다.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대한축구협회, 대한출판문화협회, 그리고… 그 조직은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2026.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6 ACK 앜앜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언젠가는 슬기로울 기계종 생활
박준수
![취재진 질문 답하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https://cdn.imweb.me/upload/S202204293a6eb15f078f5/f8acff109d161.png)
자진 사퇴 발표하는 홍명보 감독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보며 노심초사 기다리던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결국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텍스트힙’ 열풍으로 15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쾌거를 올렸지만, 시작 전부터 주요 출판사들의 보이콧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상반기 미술시장에서는 수많은 아트페어가 열렸지만, 아트페어를 둘러싼 피로감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언뜻 보면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이야기다. 하나는 스포츠이고, 하나는 출판이며, 또 하나는 예술시장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세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대한축구협회, 대한출판문화협회, 그리고 아트페어를 만드는 여러 조직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현장에서 찾는다. 선수들의 경기력, 일부 출판사들의 단독행동, 경기 침체에 따른 갤러리의 판매 부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장은 언제나 마지막 결과일 뿐이다.
실패는 훨씬 이전, 조직의 리더십과 의사결정 구조에서 시작된다.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책임보다 자리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전문성보다 친분과 관계가 우선되며, 견제보다 침묵이 조직의 문화가 되는 순간 경쟁력은 서서히 무너진다. 외부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내부는 변하지 않는다. 실패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건강한 조직은 실력 있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오른다. 반대로 병든 조직은 가까운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오른다. 전문성보다 인맥이, 공공성보다 이해관계가, 미래보다 현재의 기득권이 우선되는 순간 조직은 혁신을 멈춘다. 반대 의견은 조직을 위한 충언이 아니라 불편한 목소리로 취급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방해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결국 조직은 스스로를 평가하지 못하는 집단이 된다.
이번 월드컵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계 축구는 이미 데이터 분석, 스포츠 과학, 유소년 육성, 지도자 시스템까지 경쟁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리더십이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선수들의 헌신만으로는 그 격차를 메울 수 없다.
2002년 월드컵의 영웅이었던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자산이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이 있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반복되어 온 폐쇄적인 인사 구조와 ‘고대라인’으로 비판받고 있는 학연 중심의 문화는 결국 홍명보 개인뿐 아니라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광마저 빛이 바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드러난 결과는 국가대표 감독 홍명보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서울국제도서전
사진 출처 : 뉴시스
성황리에 마친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안을 들여다보면 비슷하다.
행사 전부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보였던 일부 출판사와 서점의 보이콧은 단순한 참가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출판계 안에서는 오래전부터 도서전이라는 공적 플랫폼이 특정 운영 주체와 제한된 이해관계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누적되었고, 그 불신이 결국 보이콧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특정 협회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부 지원, 출판사들의 참여, 독자들의 신뢰, 저자들의 노동이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낸 출판계의 공공 자산이다. 그런데 그 운영 구조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소수의 손 안에서 반복된다면 도서전은 더 이상 ‘국제’도, ‘축제’도 아닌 폐쇄적 권력의 행사장이 된다.
실제로 출판계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연대’가 등장했고, 도서전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문제, 공공성의 훼손, 출협 중심의 폐쇄적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논란은 2025년에 본격화되었고, 2026년에도 부스 부족과 공공성 회복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보이콧은 그래서 거부가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대로는 함께할 수 없다는 마지막 신호다. 공적 행사를 사적 네트워크가 장악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행사의 품격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신뢰다. 그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행사 규모와 관람객 숫자는 유지될 수 있어도 축제로서의 의미는 사라진다.
아트페어 역시 다르지 않다.
상반기에 열린 여러 아트페어에서는 개막 직후임에도 관람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풍경이다.
아트페어가 너무 많아져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지만, 문제는 아트페어의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신생 아트페어인 ‘하이브 아트페어’가 이러한 구조를 바꿔보겠다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를 했지만, 하나의 행사가 시장의 관성을 단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마누라 자식빼고 다 바꿔라
사진출처 : 조선일보
많은 갤러리들은 현재의 운영 방식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계속 오르는 참가비, 비슷한 시기에 겹쳐 열리는 일정, 차별화되지 않는 행사, 그리고 참가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의사결정 구조….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갤러리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다시 참가 신청서를 낸다.
아트페어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컬렉터를 만나야 하고, 작가를 소개해야 하며,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갤러리에게 아트페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만들어진다. 모두가 문제를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주최 측은 참가 갤러리 수와 관람객 수를 성공의 지표로 내세우고, 갤러리는 생존을 위해 다시 참가한다. 숫자는 유지되지만 만족도는 떨어지고, 부스는 가득 차지만 신뢰는 비어간다. 겉으로는 성장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피로가 누적된다.
운영 주체가 참가자들의 목소리보다 조직 내부의 논리를 우선하고, 다양한 의견보다 학연·혈연·지연 같은 인맥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반복된다면 아트페어는 시장을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갤러리는 주최 측의 고객이면서도 동시에 그 구조를 유지하는 구성원이 된다. 불만은 있지만 떠날 수 없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타계하기 위해 ‘유명한 사람’을 예술 감독으로 세우기도 한다. 구조가 변하지 않는데, 감독만 세우면 결국 홍명보 꼴을 면하기 어렵다.
세 사례는 모두 같은 사실을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손흥민과 이강인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있고, 서울국제도서전을 사랑하는 독자와 출판사도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와 그들을 발굴하는 갤러리도 있다.
부족한 것은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조직이며, 사익 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이다.
조직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권력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이다. 건강한 조직은 스스로를 의심한다. 병든 조직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순간, 조직은 더 이상 구성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조직이 된다.
리더십은 유명한 누군가를 세워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한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책임지는 능력이며, 공익을 위해 사익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다.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대한축구협회, 대한출판문화협회, 그리고… 그 조직은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2026.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