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폐허, 아트페어
박준수

The Rose That Grew from Concrete, 2PAC SHAKUR
지난해 아트오앤오를 끝으로 더는 아트페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삼십대를 온통 쏟아부었던 키아프와 화랑미술제, 그리고 나이 마흔에 잠깐 떠났던 도피성 유학을 다녀와 다시 심기일전하고 도전했던 공예트렌드페어와 아트오앤오까지, 결국은 남의 입에 떡 넣어주는 일 같다는 회의가 밀려왔다.
아트페어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미술계에 도움이 되는 걸까. 많은 부스비를 치르고도 본전조차 못 건지는 갤러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참가자 모두가 웃으며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품 셀렉션이 잘못됐을 뿐, 내년엔 괜찮을 거야”라는 변명만 되풀이된다. 성과를 거둔 갤러리의 칭찬보다 손해 본 갤러리의 불평이 더 크게 남는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아트페어를 만들 수는 없는거겠지.
행사 기간에도 마찬가지다. 장사가 안 된 부스 앞을 지나칠 땐 시선이 불편하다. 갤러리 대표님의눈치가 보여, 조금이라도 아는 컬렉터가 있으면 일부러 그 갤러리로 데려가 인사라도 시켜주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오랫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 못하는 작품을 보는 일이 가장 마음 편하고 좋아하는 일이었어서, 요즘은 사람이 북적북적한 오프닝이나 파티에는 가지 않고, 조용한 날 조용히 전시만 보고 오는 일이 좋다. 아트페어 일을 그만두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그것도 인도까지 와서 아트페어 일을 돕고 있다. 작년부터 거듭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해오던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막판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부탁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준비 없이 나선 건 처음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오니 몸에 밴 습관처럼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십 년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야쇼부미 컨벤션 뒷마당
인도의 컨벤션은 그럴듯하게 지어졌지만, 코엑스 화물출입구로 나갈 때처럼 뒷문을 나가면 넓디 넓은 황량한 광야에 세워진 듯하다. 목공과 오래된 공구로 작업을 하는 인부들을 보니, 여기가 아트페어장인지, 폐허인지 모르겠다. 며칠 밤샘작업 끝에 그래도 겨우 시간에 맞춰 그럴듯하게 문을 열었다. 젊은 후배들이 나보다 두걸음, 세걸음 더 뛰어다닌 덕분이다. 오프닝을 마친 날 저녁에 저마다 휴대폰에 걸음수를 재면 항상 1, 2위를 놓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꼴등을 했다. 그래 이제는 자네들이 좀 더 뛰어다닐 때라네.

이거 한 병을 다 비웠으니 병날만도 했다.
어쨌든 무사히 문을 열었다는 기쁨에 수면 부족과 과로로 녹초가 된 몸으로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더니, 술병이 났다. 행사 기간 중에는 긴장을 놓치 않아서 그런지 아픈 적이 없었는데, 나이 탓인건지, 객식구라 조금은 긴장을 풀었는지, 탈이 났다. 급하게 잡힌 회식을 제끼고 호텔로 먼저 일찍 들어와 쉬었다. 아무래도 젊은 이들에게는 나이 먹은 객식구는 눈치껏 빠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행사를 어렵게 준비하여 마친 젊은이들은 서로 그동안의 노고와 서운함을 풀고, 철수를 준비하겠지. 끝까지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내년에는 자네들끼리 잘 만들어가면 된다네
며칠 전 다른 칼럼을 쓰려고 만들었던 ‘아트폐허, 아트페어’라는 제목을 가져다 가벼운 에세이를 쓴다. 최근 아트페어들이 폐허인지, 페어인지도 모르고, 제 살길만 찾으려는 것 같아 신랄한 비판을 할 요양이었다. 하지만 또 오래간만에 현장에서 나와 열심히 뛰어다니는 젊은 후배들을 보니, 지금 필요한 건 시어머니 잔소리 같은 비판이 아니라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PAC이 쓴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라는 책을 좋아했었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라는 걸그룹 노래도 수영을 하며 자주 듣는다. 이러느니 저러느니 페어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폐허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아트폐허에서도 아트페어는 피는구나 싶다.
2025.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아트폐허, 아트페어
박준수

The Rose That Grew from Concrete, 2PAC SHAKUR
지난해 아트오앤오를 끝으로 더는 아트페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삼십대를 온통 쏟아부었던 키아프와 화랑미술제, 그리고 나이 마흔에 잠깐 떠났던 도피성 유학을 다녀와 다시 심기일전하고 도전했던 공예트렌드페어와 아트오앤오까지, 결국은 남의 입에 떡 넣어주는 일 같다는 회의가 밀려왔다.
아트페어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미술계에 도움이 되는 걸까. 많은 부스비를 치르고도 본전조차 못 건지는 갤러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참가자 모두가 웃으며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품 셀렉션이 잘못됐을 뿐, 내년엔 괜찮을 거야”라는 변명만 되풀이된다. 성과를 거둔 갤러리의 칭찬보다 손해 본 갤러리의 불평이 더 크게 남는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아트페어를 만들 수는 없는거겠지.
행사 기간에도 마찬가지다. 장사가 안 된 부스 앞을 지나칠 땐 시선이 불편하다. 갤러리 대표님의눈치가 보여, 조금이라도 아는 컬렉터가 있으면 일부러 그 갤러리로 데려가 인사라도 시켜주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오랫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 못하는 작품을 보는 일이 가장 마음 편하고 좋아하는 일이었어서, 요즘은 사람이 북적북적한 오프닝이나 파티에는 가지 않고, 조용한 날 조용히 전시만 보고 오는 일이 좋다. 아트페어 일을 그만두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그것도 인도까지 와서 아트페어 일을 돕고 있다. 작년부터 거듭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해오던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막판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부탁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준비 없이 나선 건 처음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오니 몸에 밴 습관처럼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십 년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야쇼부미 컨벤션 뒷마당
인도의 컨벤션은 그럴듯하게 지어졌지만, 코엑스 화물출입구로 나갈 때처럼 뒷문을 나가면 넓디 넓은 황량한 광야에 세워진 듯하다. 목공과 오래된 공구로 작업을 하는 인부들을 보니, 여기가 아트페어장인지, 폐허인지 모르겠다. 며칠 밤샘작업 끝에 그래도 겨우 시간에 맞춰 그럴듯하게 문을 열었다. 젊은 후배들이 나보다 두걸음, 세걸음 더 뛰어다닌 덕분이다. 오프닝을 마친 날 저녁에 저마다 휴대폰에 걸음수를 재면 항상 1, 2위를 놓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꼴등을 했다. 그래 이제는 자네들이 좀 더 뛰어다닐 때라네.

이거 한 병을 다 비웠으니 병날만도 했다.
어쨌든 무사히 문을 열었다는 기쁨에 수면 부족과 과로로 녹초가 된 몸으로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더니, 술병이 났다. 행사 기간 중에는 긴장을 놓치 않아서 그런지 아픈 적이 없었는데, 나이 탓인건지, 객식구라 조금은 긴장을 풀었는지, 탈이 났다. 급하게 잡힌 회식을 제끼고 호텔로 먼저 일찍 들어와 쉬었다. 아무래도 젊은 이들에게는 나이 먹은 객식구는 눈치껏 빠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행사를 어렵게 준비하여 마친 젊은이들은 서로 그동안의 노고와 서운함을 풀고, 철수를 준비하겠지. 끝까지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내년에는 자네들끼리 잘 만들어가면 된다네
며칠 전 다른 칼럼을 쓰려고 만들었던 ‘아트폐허, 아트페어’라는 제목을 가져다 가벼운 에세이를 쓴다. 최근 아트페어들이 폐허인지, 페어인지도 모르고, 제 살길만 찾으려는 것 같아 신랄한 비판을 할 요양이었다. 하지만 또 오래간만에 현장에서 나와 열심히 뛰어다니는 젊은 후배들을 보니, 지금 필요한 건 시어머니 잔소리 같은 비판이 아니라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PAC이 쓴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라는 책을 좋아했었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라는 걸그룹 노래도 수영을 하며 자주 듣는다. 이러느니 저러느니 페어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폐허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아트폐허에서도 아트페어는 피는구나 싶다.
2025.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