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
1. 흔적, 시간
우리는 시간을 어제로부터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서양철학이 오늘날의 사고 체계에서 보편이라는 지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유 속에서 시간은 다르게 체험된다. 일출과 일몰, 계절의 순환처럼 반복되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시간은 단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고, 쌓이며, 때로는 엮여가는 존재로 경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시간은 직선적인 흐름으로 고정되지 않고, 모든 순간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와 얽혀있는 복합적인 그물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도 생명이 기억을 안고 이어지는 방식에 기초하여, 자연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었던 자리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이정민은 바로 이러한 다층적 시간의 경험을 작업의 상징체로써 담아낸다. 자연과 인간, 물질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표식을 관계의 새로운 층위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과거를 반추하거나 미래를 예견한다기보다는, 현재라는 순간 안에서 엮이고 변화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가는 동적 과정으로 드러내는 것에 있다. 물론 과거와 미래 사이의 관계성과 연속성 또한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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