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문화재단 웰컴레지던시 평론
위치 해방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현재는 ‘핵개인’[1]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개인성이 주목받는 시대이다. 그러나 부여된 소속의 무게를 거부하는 핵개인을 설명할 때조차도 ‘위치’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 누군가가 어떠한 제도권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그 개인의 통로가 정해진다. 이 통로는 내-외부 소통이 가능한 목소리의 반경을 뜻한다. 개인의 목소리가 닿는 이 반경을 유연하게 흔들기 위해 역사는 투쟁의 시간을 이어왔다. 사람들의 위치를 전환하여 그들의 활동 범주를 자유롭게 하려는 움직임은 예술에서도 발현된다. 그 어떤 영역보다 앞서기도 한다. 예술은 개인성에 자유를 주어 목소리를 갖게 한다.
임동현은 ‘바라본 사회’가 아닌 ‘겪은 사회’를 숨기지 않고 표면적으로 말한다. 그가 화자와 교환한 시간이 작업에 구체적으로 반영된다. 이때, 작품 속 화자는 실재하여 모호하지 않다. 이 화자들은 제도권의 밖인 주변부, 초점에서 벗어난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이 아닌 존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주변부라는 이 표현이 참으로 무색하다. 그렇기에 임동현은 작업에 등장하는 주변부를 ‘소외된’, ‘잘려 나간’, ‘꺾인’ 존재라 소개하면서도 작업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위치시켜 표현의 방향을 바꾼다.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와의 노동 교환을 하는 와중에 발언의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임동현은 특히 주변의 지나간 흔적에서 잘려 나간 존재들을 발견한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2024), <생존 풍경>(2023), <기생 흔적>(2022)과 같은 그림 작업 속 인물들의 흔적은 장소이며, 거칠게 긁힌 선들은 그들의 온전하지 않은 장소와 고단한 표정을 더욱 시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번 전시에 발표한 작품인, 작가가 레지던시에 머물며 만난 관리 직원이 선택한 신문 기사를 서로 주고받아 기록한 <소극적 저항>(2024)은 인물이 남긴 흔적을 쌓아 올린 것이다. 소비 영수증으로 인물의 존재를 남기고자 한 작업 <소비 생산 흔적>(2024) 역시 같은 방식을 취했다.
임동현, 생존풍경2,145.5×97.0cm,종이에 복합재료,2023
임동현, <우연·흔적·집적3>.캔버스에 복합재료,130.3×162.2cm.2023
임동현, <우연·흔적·집적1,2,3>, 캔버스에 복합재료, 130.3×162.2cm, 2023.
임동현, 생존질주 3, 144 × 75cm, 할머니 얼굴 부분 확대 , woodcut on paper, 2019.
그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카테고리는 <삶의 흔적>, <삶의 동작>, <삶의 장소, 공간>, <음식 계급>이다. 이 같은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개인의 한계를 열어내고 경계를 부드럽게 하는 임동현의 시선이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삶’이 아닌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작가는 사람들의 단단하고 거칠거칠한 껍질을 깨고 부수어, 그 안에 놓여 있는 말간 목소리를 찾아낸다.
전체 작업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검은 목판화 작업이다. 습관처럼 써 내려간 일기처럼 익숙해 보이는 이 판화 작업은 그 특유의 투박한 선과 인물의 표현이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연상시킨다. 민중 미술에서 판화는 비교적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표현 수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하여 시대의 흐름을 만들었던 매체였다. 임동현은 지난 작업 <시, 흔적, 집적>(2017), <생존 신호>(2022)에서 오윤의 작업을 오마주 했음을 부제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오윤은 80년대 한국 민중 미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반응하는 임동현은 오윤의 길에 따라나선다. 임동현은 이번 레지던시 전시에서도 누구나 쉽게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작업 매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함께한 기관 직원의 판화 작품 <무제>(2024)를 자신의 작업과 나란히 전시하였다.
임동현은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회화, 설치, 개념 미술 등 전방위로 작업한다. 설치 작업에서는 소외된 물체를 변형시킨다. 버려진 것들에 새 생명을 주는 업사이클의 개념은 아니다. 함께 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사람들처럼 한편에 버려졌던 물건들 또한 쓰임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갖게 하는 데 힘쓴다. <등등…등>(2022), <비빌 언덕>(2020)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물이 쓰임의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가능하도록 모양을 만들어 갔다. 그의 작업은 예술가의 개입이 그 주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과 물건의 고정된 위치가 변화하였다. 위치의 정의는 차지한 자리 또는 사회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지위나 역할을 뜻한다. 어떠한 것의 위치는 목적에 따른다. 우리는 머물러 있는 위치와 무관하게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곤 하지만 부여된 역할과 목적에 의해 타성에 젖고 순응하며 위치에 갇혀 버린다. 임동현의 작업은 한정된 위치에서 꿈쩍하지 않는, 꿈쩍할 수 없었던 존재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임동현은 그(것)들이 자신의 온전한 목소리를 갖도록 돕는다. 진정으로 알 길 없는 사연에 다가가기를 지레 포기하거나 모른 척하기 일쑤인 핵개인의 시대에 당신을, 당신의 존재를 알려고 하는 이가 있다. 알고자 하여 다가가는 이가 있다. 잘려 나간 존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개인성의 회복을 이루려는 이가 있다. 이렇게 임동현은 작업의 소재가 된 사람들과 물건들의 위치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전환하며 해방한다.
[1]송길영,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교보문고, 2023.
2025.0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anuar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김해문화재단 웰컴레지던시 평론
위치 해방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현재는 ‘핵개인’[1]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개인성이 주목받는 시대이다. 그러나 부여된 소속의 무게를 거부하는 핵개인을 설명할 때조차도 ‘위치’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 누군가가 어떠한 제도권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그 개인의 통로가 정해진다. 이 통로는 내-외부 소통이 가능한 목소리의 반경을 뜻한다. 개인의 목소리가 닿는 이 반경을 유연하게 흔들기 위해 역사는 투쟁의 시간을 이어왔다. 사람들의 위치를 전환하여 그들의 활동 범주를 자유롭게 하려는 움직임은 예술에서도 발현된다. 그 어떤 영역보다 앞서기도 한다. 예술은 개인성에 자유를 주어 목소리를 갖게 한다.
임동현은 ‘바라본 사회’가 아닌 ‘겪은 사회’를 숨기지 않고 표면적으로 말한다. 그가 화자와 교환한 시간이 작업에 구체적으로 반영된다. 이때, 작품 속 화자는 실재하여 모호하지 않다. 이 화자들은 제도권의 밖인 주변부, 초점에서 벗어난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이 아닌 존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주변부라는 이 표현이 참으로 무색하다. 그렇기에 임동현은 작업에 등장하는 주변부를 ‘소외된’, ‘잘려 나간’, ‘꺾인’ 존재라 소개하면서도 작업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위치시켜 표현의 방향을 바꾼다.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와의 노동 교환을 하는 와중에 발언의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임동현은 특히 주변의 지나간 흔적에서 잘려 나간 존재들을 발견한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2024), <생존 풍경>(2023), <기생 흔적>(2022)과 같은 그림 작업 속 인물들의 흔적은 장소이며, 거칠게 긁힌 선들은 그들의 온전하지 않은 장소와 고단한 표정을 더욱 시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번 전시에 발표한 작품인, 작가가 레지던시에 머물며 만난 관리 직원이 선택한 신문 기사를 서로 주고받아 기록한 <소극적 저항>(2024)은 인물이 남긴 흔적을 쌓아 올린 것이다. 소비 영수증으로 인물의 존재를 남기고자 한 작업 <소비 생산 흔적>(2024) 역시 같은 방식을 취했다.
임동현, 생존풍경2,145.5×97.0cm,종이에 복합재료,2023
임동현, <우연·흔적·집적3>.캔버스에 복합재료,130.3×162.2cm.2023
임동현, <우연·흔적·집적1,2,3>, 캔버스에 복합재료, 130.3×162.2cm, 2023.
임동현, 생존질주 3, 144 × 75cm, 할머니 얼굴 부분 확대 , woodcut on paper, 2019.
그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카테고리는 <삶의 흔적>, <삶의 동작>, <삶의 장소, 공간>, <음식 계급>이다. 이 같은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개인의 한계를 열어내고 경계를 부드럽게 하는 임동현의 시선이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삶’이 아닌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작가는 사람들의 단단하고 거칠거칠한 껍질을 깨고 부수어, 그 안에 놓여 있는 말간 목소리를 찾아낸다.
전체 작업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검은 목판화 작업이다. 습관처럼 써 내려간 일기처럼 익숙해 보이는 이 판화 작업은 그 특유의 투박한 선과 인물의 표현이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연상시킨다. 민중 미술에서 판화는 비교적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표현 수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하여 시대의 흐름을 만들었던 매체였다. 임동현은 지난 작업 <시, 흔적, 집적>(2017), <생존 신호>(2022)에서 오윤의 작업을 오마주 했음을 부제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오윤은 80년대 한국 민중 미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반응하는 임동현은 오윤의 길에 따라나선다. 임동현은 이번 레지던시 전시에서도 누구나 쉽게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작업 매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함께한 기관 직원의 판화 작품 <무제>(2024)를 자신의 작업과 나란히 전시하였다.
임동현은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회화, 설치, 개념 미술 등 전방위로 작업한다. 설치 작업에서는 소외된 물체를 변형시킨다. 버려진 것들에 새 생명을 주는 업사이클의 개념은 아니다. 함께 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사람들처럼 한편에 버려졌던 물건들 또한 쓰임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갖게 하는 데 힘쓴다. <등등…등>(2022), <비빌 언덕>(2020)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물이 쓰임의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가능하도록 모양을 만들어 갔다. 그의 작업은 예술가의 개입이 그 주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과 물건의 고정된 위치가 변화하였다. 위치의 정의는 차지한 자리 또는 사회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지위나 역할을 뜻한다. 어떠한 것의 위치는 목적에 따른다. 우리는 머물러 있는 위치와 무관하게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곤 하지만 부여된 역할과 목적에 의해 타성에 젖고 순응하며 위치에 갇혀 버린다. 임동현의 작업은 한정된 위치에서 꿈쩍하지 않는, 꿈쩍할 수 없었던 존재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임동현은 그(것)들이 자신의 온전한 목소리를 갖도록 돕는다. 진정으로 알 길 없는 사연에 다가가기를 지레 포기하거나 모른 척하기 일쑤인 핵개인의 시대에 당신을, 당신의 존재를 알려고 하는 이가 있다. 알고자 하여 다가가는 이가 있다. 잘려 나간 존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개인성의 회복을 이루려는 이가 있다. 이렇게 임동현은 작업의 소재가 된 사람들과 물건들의 위치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전환하며 해방한다.
[1]송길영,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교보문고, 2023.
2025.0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anuar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