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K - A VOICE, A SCENE>은 작가의 말에 주목합니다.
A VOICE, A SCENE #1: 이세준 Lee Sejun
화자: 이세준
대화자, 편집: 정희라
정희라(이하 정): 전시장에 놓인 ‘작가 노트[1]’ 잘 읽었어요.
이세준(이하 이): 제가 여기에 쓴 글들,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걸 쓰려고 노력했어요. 표면적인 것들도 나름의 역할이 있어요. 하지만, 제 작업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거운 것들은 일부러 제외하고 적게 되는 것 같아요.
정: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이: 저에게는 회화라는 오래된 미디어에 확장성을 부여한다든지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주목한다든지 아니면 그림 자체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것이 중요해요. 회화는 올드한 미디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탐구가 끝난 미디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생겨났을 시기에는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원초적인 행위였고, 그때의 그림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 템퍼러리(temporary)한 것을 고정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던 거죠. 얼마나 갈망했겠어요.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기억으로만 남아 있고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 순간을 고정하는 것이 완전 매직이었을 거예요. 회화는 이런 부분을 더 잘하기 위해서 방법적인 면에서 발전해 오다, 사진이 나오고 뉴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처음 본래의 그런 목적이 사라지고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봐요. 인상주의 회화가 근대 회화의 태동이라고 하지만, 결국 다 방황하는 회화라 생각해요. 그래서 방법을 궁리하며 뭔가를 찌그리다가 성공한 회화도 있고 안 된 회화도 있고 색에 개념적으로 다가가 성공했다가 나중에 다시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고, 사진기 발명 이후의 모든 회화는 저는 방황의 역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후에 회화의 종언을 고백하잖아요. 회화는 끝났어라고 하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 회화로 되돌아오는 것은 사실은 나쁘게 말하면 시장성 때문일 수 있죠. 그래서 그렇지 않은, 회화 본연의 것들에서 가질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궁극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 이런 부분이 어떤 경향으로 묶이는 것도 저는 좀 두렵거든요. 좀비포멀리즘, 뉴컨셉츄얼페인팅 이런 식으로 카테고라이징(범주화)을 해서 거기에서 전반적인 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이 작업을 이해했다고 믿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피하고 싶어요. 그래서 컨셉추얼한(개념적인) 회화를 하고 있고 실제로도 형식주의적인 부분이 많은 회화를 하고 있는데 그 형식에 대해서 잘 언급하지 않아요. 처음에 보신 작가 노트에서처럼 표면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죠.
저기서 언급한 형식에 관한 이야기는 ‘유기체처럼 변하는 그런 구조를 만들었어’ 이 정도인데, 단순히 말하면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림을 커다랗게 만든 거예요. 이 작품은 여기 있는 그림이 저기로 옮겨갔을 때도 이미지가 연결되거든요. 그리고 이 위에 있는 게 밑으로 내려가도 그 이미지가 연결되고. 그래서 9점의 그림인데 모두 가운데로 들어가는 포지션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9개의 형태로 바뀌는 그림이고, 어떤 부분이 가운데에 있는지에 따라서 전체 이미지가 많이 바뀌어 보여요.
이세준, 가능세계의 그림들, 2024,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91x291cm
이세준, 가능세계의 그림들, 설치 변경의 예시/ 총 9가지의 설치안이 존재
정: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되겠네요.
이: 완전히 다르게 보여요. 그래서 이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두 개가 다 바뀌는 그림인데 이런 포맷의 그림들을 작년에 계속해서 탐구했던 거고 제가 작년 말에 재작년, 벌써 재작년이네요. 2023년 말에 송은미술대상에 참여했었고, 그때 이런 스타일의 작업을 처음 보여드렸어요. 직사각형 4점으로 해서 이렇게도 연결되고 반대로도 연결되는 그림들을 선보였고, 조금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이 바뀌는 그림을 만든 것이죠.
이세준, Beyondscape, 2022-2023,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60.6x327cm, 사진 송은 제공
정: 이런 형식의 작업 이전에는 어떤 작업을 하셨었나요?
이: 확장되는 회화 같은 것들을 했어요. 한 점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해서 이어 붙여가면서 한 8m 정도 되는 그림들을 그렸어요. 2012년 이때가 첫 개인전이었는데 첫 개인전이 서울 시립미술관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된 거라서 되게 파격적이긴 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무런 경력이 없고, 대학원생이고, 20대였으니까요.
정: 그 조각난 피스들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이: 제가 이렇게 움직이는 시리즈 말고, 과거에 그렸던 그림 두 점에서 출발하는 작업, 브릿지 시리즈(Bridge project)라고 해서 이 양쪽의 그림에서 연결되어 와서 가운데 이미지를 만드는 그런 시리즈를 했었어요. 2020년경부터 그런 작업을 했었는데 19년도에 그렸던 그림 두 점을 가지고 와서, 그 두 점 사이에 새 캔버스를 띄워 놓고 양쪽에서 오는 이미지를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서 이미지가 섞여 나가게, 다른 방향에 있는 이미지를 쭉 추출해 와서 가운데 섞여 있는 이미지를 그리는 시리즈를 했어요.
이세준, 〈 계절의 사이에서 〉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130.3×130.3cm
정: 이 작품 안에서 말씀하신 예전 그림을 발견할 수 있나요?
이: 썼던 조각들이 완전히 다 바뀌었어요. 처음에 원래 여기 자리에 있던 그림이랑 여기 자리에 있던 그림 두 점의 그림이 2020년에 그린 그림이에요. 그 두 개의 그림을 놓고 사이에 다른 것을 끼워서 그림을 그린 다음에 그 작품으로부터 출발한 이미지로 6점을 만들었어요. 2022년에 여러 전시에서 선보였는데, 그 다음에 그 6점에서 하나씩 빼고 다시 새로운 걸 끼워 넣고, 다시 또 쭉 이어서 그림을 그린 거예요. 그래서 출발했던 이미지가 사라져 버리고 모든 6점의 그림들이 전부 바뀌어서 지금 여기 놓인 작업은 2024년에 그린 그림인거죠. 그러니까 원본 그림들이 다 사라지고 6점의 그림이 여러 차례 바뀐 거예요. 그래서 이미지의 유전자 같은 것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의 그림인 거죠.
원래는 숲이 있는 그림이었어요. 이미지가 있어요. 이미지가 갖고 있는 어떤 유전자라는 그런 비슷한 대체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원래 나무에서 출발해서 쭉 따라오면서 섞인 거잖아요. 그래서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 구체적인 형상들이 실제로는 무엇을 지시하고 있지 않은 구조가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상 자체가 그림이 되는 게 저한테 재미있는 요소였어요. 이런 작업들이 모두 브릿지 작업이고 다 연결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요.
이세준, 서클1-1 , 2020-2024, 리넨과 캔버스 페널위에 아크릴릭과 유채, 형광안료 D304cm(13)
정: 전체가 원의 형태를 이루고 있잖아요.
이: 중심이 되는 작은 그림들이 어떤 그림들에 브릿지로 붙었던 그림인데, 그런 브릿지 그림들만 그대로 따로 떼어온 거예요. 그 조각들을 둘러싸며 새로운 모양의 캔버스들이 새로 등장하며 전체 원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거죠.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 그림들의 이미지들도 다른 데서 온 그림들의 결과물로 볼 수 있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이미지들인 거여서 이미지의 파생물로 볼 수 있고, 잘게 쪼갠 이미지 유전자 같은 것들, 유전자라는 말이 적당한지 모르겠는데, 다른 말이 없네요. 언어를 좀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미지의 유전자, 이미진 같은 것. 그런 게 나와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는 그림이에요.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나중에는 물감으로 환원되기도 하고요.
정: 그렇다면 작가님은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 자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걸까요?
이: 크게 의미 없죠. 그렇지만, 사실은 계속 제가 주변에서 이렇게 보는 것들을 수집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근데 완전 의미가 없는 건 아니고 약간 맥거핀(MacGuffin)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것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얘네가 뭘 그린 거야라고 물으면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세준, 너를 떠올린 모든 순간들, 2024,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91×291cm
이: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제가 친한 친구들이나 연인이나 아니면 가족이 있잖아요. 가족이 여행을 갔는데 저는 같이 못 가면 멋진 풍경들을 찍어서 보내주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 SNS에서 주고받았던 사진들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에요. 약간 소재가 좀 메타적이긴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이죠. 왜냐하면 이게 제목이 ‘너를 떠올린 모든 순간들’인데 내가 그림을 찍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의 부재를 전제하고 있는 거잖아요.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하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을 너랑 공유하고 싶은데 넌 지금 내 옆에 없으니, 사진으로 내 이 감정을 전달하는 거야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어요. 이거 그릴 때 여자친구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한국에 있으면서 또 중간에 오키나와에 여행을 갔다 오면서 제가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저 노란 바지 입은 남자가 전데,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나... 저 로키산맥 같은 경우는 여자친구가 보내준 사진들 혹은 이웃에 같이 사는 분이 ‘오늘 저녁에 레몬 소주 먹을래? 나 레몬 몇 개나 사 가면 돼?’ 하고 찍어서 보냈던 것들이나 바닷가에서 뭘 찍어 보낸 거나 이런 것들이 모여서 그려진 그림이거든요. 그렇게 말하면 여기 그려진 그림 자체가 완전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는 또 어렵지만 사실 이게 뭐가 됐든 그렇게 상관없을 수도 있는 거죠.
정: 소재로서의 소재라고 해야 할까요.
이: 그렇죠.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맥거핀이 되는 거죠. 회화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오기 위해서. 그러면 또 질문들이 나와요. 제가 많이 받은 질문은 꼭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야 될 필요가 있나’라는 질문이에요.
정: 처음에 말씀하셨던 것들을 들으면 그런 질문이 나올 만한데... 그렇지만 지금 말씀하셨던 감각하는 소재들이 어쨌든 선택이 돼서 여기 들어가는 거니까 완전히 의미가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런데도 지금 저기에 놓인 작가 노트, 중요하지 않은 표면적인 내용들 쓴 거라고 하셨지만 작가 노트의 내용, 예를 들어 양가적인 부분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내용은 관람에 도움이 되었어요.
이: 저는 작가 노트가 취해야 할 역할이 그림을 재미있게, 흥미롭게 보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어렵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림이 최초에 발생했을 때 미디어로서의 한계와 지금 우리가 새로운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그림, 거기에 더해 그림을 그리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라고 쓸 수는 없죠. 당연히 그러면은 아무도 읽지 않을 거고...
정: 읽기도 할텐데...
이: 제가 시도 해봤어요. 정말 많이 해봤어요. 이런 저런 실험을.
정: 전시장의 작가 노트는 많은 시도의 결과인거군요.
이: 많이 써봤죠. 사실은. 그런 것들을 갖고 얘기하기도 하고 아니면 추상성과 구상성에 대한 것들, 아니면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것들, 아니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것들 여러 가지 썼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거는 결국 작가가 뭘 그렸냐를 가장 첫 번째로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뭘 그렸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거는 좀 주요하게 느껴져요. 특히 저는 더 뭘 그렸는지가 그림에서 잘 읽히지 않잖아요. 그리고 뭘 그렸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면 이걸 왜 이렇게 그렸냐는 것들을 전해 드리면 좋아하시는 것 같고. 그런데 비평가와 얘기할 때는 형식에 관해 주로 말하기도 해요.
정: 저는 작가님 그림에서 형식도 형식이지만, 회화성이 두드러지고 잘 그리기 때문에 그런 형식적인 부분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의 회화성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이: 그게 저는 레이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기의 지향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잖아요. 결국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이상향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쫓아가는 건데 그게 잘 그렸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오랫동안 배워온 것들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그런 것들이 ‘충돌’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저 혼자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화면을 구성할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충돌이에요.
그래서 커다란 이미지, 커다란 터치들이랑 아주 작은 터치들이나 그냥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 어떤 이미지들을 끌어오거든요. 이런 터치들이 물감, 유화 물감을 짠 다음에 쫙 밀어가지고 만들어낸 터치들이고,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이미지들 있죠. 이런 큰 터치들이에요. 얘네들을 먼저 던져놓고 그 다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건데, 그리고 다른 부분들은 되게 작은 세필로 하나하나 이렇게 따서 그린 거잖아요. 이 부분에 물감을 올릴 때의 감각이랑 이거를 세필로 따서 그릴 때의 감각은 완전히 다른 체인지되는(바뀌는) 감각인데 그런 것들이 두 개가 같이 붙어 있으면서 자아내는 이상한 감각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는 제가 생각하기엔 사진이 잘하지 못하는 어떤 회화가 갖고 있는 신체성적인(신체적인) 영역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림을 처음 배울 때 멀리서 그림을 보라고 시키거든요. 큰 이미지, 큰 형태를 잡아야 하니까 그리고 점점 그림을 완성할수록 연필을 짧게 잡고 그림에 가깝게 붙어서 이렇게 묘사를 해요. 이 두 가지의 체인징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잘 안되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형태를 잘 잡는 친구들은 디테일이 안 좋고 디테일을 잘 잡는 친구들은 형태가 안 좋고 그런 거죠. 그런 그림을 그리기와 배우기의 과정에서도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데 그거를 극대화해서 가시화하면 이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원하게 쫙 나오며 손 가는 대로 그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툭툭툭 멈추게 되는 디테일 같은 것들은 굉장히 파고드는 형태로 표현되어 나오는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정: 하나의 그림 안에 추상표현주의, 팝, 구상, 인상주의 모든 것이 섞여 있어 보여요.
이: 그렇죠. 그리고 회화 역사에 대한 회화이기도 한 거죠. 그러니까 미술사를 좀 더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그림을 쪼개서 볼 수도 있고 전체로 볼 수도 있고 아까 말한 형식적 구조로 볼 수도 있고 레이어라고도 생각하는데 자기가 이해한 만큼 보이게 되는 그림이니까 표면적으로만 보려면 그냥 어떤 풍경화라든지 이세준의 스타일대로 그려진 추상 풍경 같은 거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도 크게 문제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서 좀 더 들어가면 어떤 컨셉추얼한 풍경이라거나 컨셉추얼한 페인팅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넘어가는 거고. 더 깊게 들어가면은 미술사 전반을 다 집약해 놓은 어떤 미술사에 대한 은유라든지 좀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고요. 그게 이제 아주 크게 얘기하면은 결국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그림 같기도 해요. 이 자체를 회화로 나타내는 것이죠.
정: ‘이미지성’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원래 회화가 가졌던 그 본질적인 부분을 탐구하고 있구나로 이렇게 이어지는 걸까요.
이: 네, 그게 같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시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내가 그림을 그리게 하는 조건으로서 이 그림이 가치가 있는 거라고 자꾸 나를 채찍질하게 돼요. 그러니까 이게 청춘을 다 바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 않아요? 나는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이미지나 회화라는 매체 자체가, 이 미디어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정: 그럼에도... 다시 소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림에서 소재들이 눈에 들어와요. 눈사람도 있네요?
이: 여기 있는 모든 그림에 눈사람이 있어요. 눈사람은 태생적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근데 되게 아이러니하잖아요. 엄청 동심에 차 있고 다들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하고 볼 때마다 깔깔거리면 너무 친숙한 이미지인데 사실 너무 잔인한 이미지예요. 얘는 보면 바로 사라질 거고 얘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어요. 합의된 관계인 거잖아요. 그런 양면적인 것들을 좀 좋아해요.
정: 원처럼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느낌이에요. 형식과 소재 모두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래요. 저의 이런 복잡한 고민들이나 이런 것들은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이미지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이미지는 꽤나 직관적이고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잖아요. 저는 막 중언부언하면서 말해도 내가 어떤 아이디어가 있고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막 이렇게 뽑아내는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든 복잡하지 않든 상관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미지가 얘기하는 건 훨씬 심플하잖아요.
정: 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미지가 말하는 게 훨씬 심플하다는 말이 의미심장해요.
이: 사실 더 많은 얘기들이 있어요. 이 이미지에 관해 얘기하거나 그림에 관해 얘기하거나 이 각자 각자에 대한 그림에 관한 얘기들도 계속해서 할 수 있어요. 그 송은에 출품했던 그림 중에 하나가 페인티드 페인팅(Painted painting)이라는 제목이었어요. 커다란 그림이에요. 120호짜리 그림 4점을 붙여서 이렇게 한 건데, 이제 그 그림이 정말 제가 느끼기에 회화라는 매체를 그림의 소재로 삼을 순 없을까라는 아이디어였어요. 두 개의 그림을 같이 했는데 이때부터 회화 매체라는 걸 전면에 내세운 거예요. 아예 그 이전에는 이렇게 특히 이 작업이 더 심하게 그랬던 거고, 같이 선보인 그림이 풍경화에 대한 거였고, 그래서 풍경화에 대한 것부터 고민하면서 비욘드 스케이프(Beyond scape)라는 제목인데 풍경화라는 개념을 그림으로 그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Beyondscape >의 매주 변경되는 디스플레이 모습. 사진: 송은 제공
정: 풍경화라는 개념을 그린다고요.
이: 그래서 풍경화가 갖고 있는 여러 요소를 쪼개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풍경화가 많이 쓰는 소재가 있잖아요. 물, 강 그 다음에 나무, 하늘 그런 것들 소재들도 갖고 오고요. 그 다음에 구도, 그 다음에 픽쳐레스크라는 개념, 앞에 덤불이 있고 수레가 있고 노을이 지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 풍경화가 갖고 있는 어떤 소재도 있고 그리는 붓터치도 있고 색깔도 있고 그 다음에 많이 쓰이는 구도도 있고 이런 것들을 다 쪼개가지고 풍경화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로 만든 작업이에요. 이 작업을 한 다음에 저는 흡족했거든요. 내가 드디어 좀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을 쉽고 직관적인 작업으로 만들었어라고. 그래서 풍경화라는 장르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본다는 것에서 더 넘어가서 회화라는 매체 자체도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어요. 회화가 갖고 있는 아까 말한 것들 있잖아요. 재현성이라든지 아니면 몸이 움직여서 나오는 궤적 같은 신체성이라든지 장식성 같은 것들도 있고 상징성도 있고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것들 아니면 어떤 은유로서 작동하는 것, 알레고리로 작동하는 것, 뻗어나가는 그 가지가 많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회화가 여러 작동 방식을 갖고 있는데 그 작동 방식은 각각의 한 그림에서 유효한 거예요. 그러니까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그리트가 말하는 작동 방식으로 읽어야 되잖아요. 그리고 잭슨 폴록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갑자기 거기서 상징성을 찾아올 수 없는 거잖아요. 신체성을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 그림 안에 그렇게 다 다르게 읽어야 되는 요소들이 묶여 있는 걸 그리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거죠.
정: 작가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하는데 지금 언급하신 그런 것들을 설명 없이 어느 정도까지 시각적으로 보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드네요.
이: 저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어요. 이게 끌어들이기 어려워서 그렇지. 왜냐하면 우리가 그림을 쓱 보기 때문에. 조슬릿(David Joselit)이 말했잖아요. 너무 볼 게 많으니까 이 세상에는. 저는 그 조슬릿의 짧은 글을 좋아하는데 거기 딱 그렇게 시작하거든요. 회화는 시간 배터리라고, 그래서 하나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평생에 걸쳐서 볼 수도 있는 게 회화라는 매체인데 요즘에 너무 많은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으니까 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 회화의 숲을 지나간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시 영원히 찾아보지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말이죠. 그럼 이 시대에는 어떻게 회화가 작동해야 되는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저는 제 그림을 평생에 걸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냥 가볍게 봤을 때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간극이 엄청 크잖아요.
정: 작가님께서 심어놓은 그 레이어들을 보는 이들도 분명히 찾을 수 있겠죠?
이세준, Painted Painting , 2023,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60.6x394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이: 찾을 수 있죠. 100% 찾을 수 있죠. 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1] 작가 노트:
모든 순간들, 우리가 서로를 떠올렸던.
"어떤 이야기는 단어 하나, 개념 하나, 혹은 통일된 문장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전달될 수 없는 것 아닐까?" 나는 때때로 상반된 두 개념을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왜 우리는 두 단어를 한 번에 동시에 발성할 수 없을까? 나는 다양한 이야기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서로 충돌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보조적으로 작동하는 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이번에 출품한 대형 회화 작업은 여러 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은 독립적으로도, 동시에 함께 읽혀질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시 기간 동안 나는 전시장에 들러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그림들의 위치를 바꿀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시를 찾은 이들이 같은 그림을 각기 다르게 기억하도록 하고 싶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주의 탄생과 소멸, 삶과 죽음처럼 거대한 서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계절의 변화와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담아보려 했다. 친구들과 겨울 새벽에 새를 보러 갔던 일, 레몬 소주를 만들어 마시던 일상 같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포함했다. 이 작업이 단지 나만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그림을 마주하는 모두가 저마다의 내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 텍스트는 2025년 1월 24일 아람미술관 생생화화 전시장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토대로 편집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25.0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Februar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ACK - A VOICE, A SCENE>은 작가의 말에 주목합니다.
A VOICE, A SCENE #1: 이세준 Lee Sejun
화자: 이세준
대화자, 편집: 정희라
정희라(이하 정): 전시장에 놓인 ‘작가 노트[1]’ 잘 읽었어요.
이세준(이하 이): 제가 여기에 쓴 글들,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걸 쓰려고 노력했어요. 표면적인 것들도 나름의 역할이 있어요. 하지만, 제 작업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거운 것들은 일부러 제외하고 적게 되는 것 같아요.
정: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이: 저에게는 회화라는 오래된 미디어에 확장성을 부여한다든지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주목한다든지 아니면 그림 자체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것이 중요해요. 회화는 올드한 미디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탐구가 끝난 미디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생겨났을 시기에는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원초적인 행위였고, 그때의 그림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그 템퍼러리(temporary)한 것을 고정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던 거죠. 얼마나 갈망했겠어요.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기억으로만 남아 있고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 순간을 고정하는 것이 완전 매직이었을 거예요. 회화는 이런 부분을 더 잘하기 위해서 방법적인 면에서 발전해 오다, 사진이 나오고 뉴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처음 본래의 그런 목적이 사라지고 방황하기 시작했다고 봐요. 인상주의 회화가 근대 회화의 태동이라고 하지만, 결국 다 방황하는 회화라 생각해요. 그래서 방법을 궁리하며 뭔가를 찌그리다가 성공한 회화도 있고 안 된 회화도 있고 색에 개념적으로 다가가 성공했다가 나중에 다시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고, 사진기 발명 이후의 모든 회화는 저는 방황의 역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후에 회화의 종언을 고백하잖아요. 회화는 끝났어라고 하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 회화로 되돌아오는 것은 사실은 나쁘게 말하면 시장성 때문일 수 있죠. 그래서 그렇지 않은, 회화 본연의 것들에서 가질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궁극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 이런 부분이 어떤 경향으로 묶이는 것도 저는 좀 두렵거든요. 좀비포멀리즘, 뉴컨셉츄얼페인팅 이런 식으로 카테고라이징(범주화)을 해서 거기에서 전반적인 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이 작업을 이해했다고 믿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피하고 싶어요. 그래서 컨셉추얼한(개념적인) 회화를 하고 있고 실제로도 형식주의적인 부분이 많은 회화를 하고 있는데 그 형식에 대해서 잘 언급하지 않아요. 처음에 보신 작가 노트에서처럼 표면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죠.
저기서 언급한 형식에 관한 이야기는 ‘유기체처럼 변하는 그런 구조를 만들었어’ 이 정도인데, 단순히 말하면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그림을 커다랗게 만든 거예요. 이 작품은 여기 있는 그림이 저기로 옮겨갔을 때도 이미지가 연결되거든요. 그리고 이 위에 있는 게 밑으로 내려가도 그 이미지가 연결되고. 그래서 9점의 그림인데 모두 가운데로 들어가는 포지션이 있어요. 그래서 이게 9개의 형태로 바뀌는 그림이고, 어떤 부분이 가운데에 있는지에 따라서 전체 이미지가 많이 바뀌어 보여요.
이세준, 가능세계의 그림들, 2024,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91x291cm
이세준, 가능세계의 그림들, 설치 변경의 예시/ 총 9가지의 설치안이 존재
정: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되겠네요.
이: 완전히 다르게 보여요. 그래서 이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두 개가 다 바뀌는 그림인데 이런 포맷의 그림들을 작년에 계속해서 탐구했던 거고 제가 작년 말에 재작년, 벌써 재작년이네요. 2023년 말에 송은미술대상에 참여했었고, 그때 이런 스타일의 작업을 처음 보여드렸어요. 직사각형 4점으로 해서 이렇게도 연결되고 반대로도 연결되는 그림들을 선보였고, 조금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이 바뀌는 그림을 만든 것이죠.
이세준, Beyondscape, 2022-2023,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60.6x327cm, 사진 송은 제공
정: 이런 형식의 작업 이전에는 어떤 작업을 하셨었나요?
이: 확장되는 회화 같은 것들을 했어요. 한 점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해서 이어 붙여가면서 한 8m 정도 되는 그림들을 그렸어요. 2012년 이때가 첫 개인전이었는데 첫 개인전이 서울 시립미술관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된 거라서 되게 파격적이긴 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무런 경력이 없고, 대학원생이고, 20대였으니까요.
정: 그 조각난 피스들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이: 제가 이렇게 움직이는 시리즈 말고, 과거에 그렸던 그림 두 점에서 출발하는 작업, 브릿지 시리즈(Bridge project)라고 해서 이 양쪽의 그림에서 연결되어 와서 가운데 이미지를 만드는 그런 시리즈를 했었어요. 2020년경부터 그런 작업을 했었는데 19년도에 그렸던 그림 두 점을 가지고 와서, 그 두 점 사이에 새 캔버스를 띄워 놓고 양쪽에서 오는 이미지를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서 이미지가 섞여 나가게, 다른 방향에 있는 이미지를 쭉 추출해 와서 가운데 섞여 있는 이미지를 그리는 시리즈를 했어요.
이세준, 〈 계절의 사이에서 〉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130.3×130.3cm
정: 이 작품 안에서 말씀하신 예전 그림을 발견할 수 있나요?
이: 썼던 조각들이 완전히 다 바뀌었어요. 처음에 원래 여기 자리에 있던 그림이랑 여기 자리에 있던 그림 두 점의 그림이 2020년에 그린 그림이에요. 그 두 개의 그림을 놓고 사이에 다른 것을 끼워서 그림을 그린 다음에 그 작품으로부터 출발한 이미지로 6점을 만들었어요. 2022년에 여러 전시에서 선보였는데, 그 다음에 그 6점에서 하나씩 빼고 다시 새로운 걸 끼워 넣고, 다시 또 쭉 이어서 그림을 그린 거예요. 그래서 출발했던 이미지가 사라져 버리고 모든 6점의 그림들이 전부 바뀌어서 지금 여기 놓인 작업은 2024년에 그린 그림인거죠. 그러니까 원본 그림들이 다 사라지고 6점의 그림이 여러 차례 바뀐 거예요. 그래서 이미지의 유전자 같은 것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의 그림인 거죠.
원래는 숲이 있는 그림이었어요. 이미지가 있어요. 이미지가 갖고 있는 어떤 유전자라는 그런 비슷한 대체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원래 나무에서 출발해서 쭉 따라오면서 섞인 거잖아요. 그래서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 구체적인 형상들이 실제로는 무엇을 지시하고 있지 않은 구조가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상 자체가 그림이 되는 게 저한테 재미있는 요소였어요. 이런 작업들이 모두 브릿지 작업이고 다 연결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요.
이세준, 서클1-1 , 2020-2024, 리넨과 캔버스 페널위에 아크릴릭과 유채, 형광안료 D304cm(13)
정: 전체가 원의 형태를 이루고 있잖아요.
이: 중심이 되는 작은 그림들이 어떤 그림들에 브릿지로 붙었던 그림인데, 그런 브릿지 그림들만 그대로 따로 떼어온 거예요. 그 조각들을 둘러싸며 새로운 모양의 캔버스들이 새로 등장하며 전체 원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거죠.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 그림들의 이미지들도 다른 데서 온 그림들의 결과물로 볼 수 있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이미지들인 거여서 이미지의 파생물로 볼 수 있고, 잘게 쪼갠 이미지 유전자 같은 것들, 유전자라는 말이 적당한지 모르겠는데, 다른 말이 없네요. 언어를 좀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미지의 유전자, 이미진 같은 것. 그런 게 나와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는 그림이에요.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나중에는 물감으로 환원되기도 하고요.
정: 그렇다면 작가님은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 자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걸까요?
이: 크게 의미 없죠. 그렇지만, 사실은 계속 제가 주변에서 이렇게 보는 것들을 수집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근데 완전 의미가 없는 건 아니고 약간 맥거핀(MacGuffin)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것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얘네가 뭘 그린 거야라고 물으면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세준, 너를 떠올린 모든 순간들, 2024,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91×291cm
이: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제가 친한 친구들이나 연인이나 아니면 가족이 있잖아요. 가족이 여행을 갔는데 저는 같이 못 가면 멋진 풍경들을 찍어서 보내주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 SNS에서 주고받았던 사진들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에요. 약간 소재가 좀 메타적이긴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이죠. 왜냐하면 이게 제목이 ‘너를 떠올린 모든 순간들’인데 내가 그림을 찍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의 부재를 전제하고 있는 거잖아요.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하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을 너랑 공유하고 싶은데 넌 지금 내 옆에 없으니, 사진으로 내 이 감정을 전달하는 거야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어요. 이거 그릴 때 여자친구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한국에 있으면서 또 중간에 오키나와에 여행을 갔다 오면서 제가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저 노란 바지 입은 남자가 전데,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나... 저 로키산맥 같은 경우는 여자친구가 보내준 사진들 혹은 이웃에 같이 사는 분이 ‘오늘 저녁에 레몬 소주 먹을래? 나 레몬 몇 개나 사 가면 돼?’ 하고 찍어서 보냈던 것들이나 바닷가에서 뭘 찍어 보낸 거나 이런 것들이 모여서 그려진 그림이거든요. 그렇게 말하면 여기 그려진 그림 자체가 완전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는 또 어렵지만 사실 이게 뭐가 됐든 그렇게 상관없을 수도 있는 거죠.
정: 소재로서의 소재라고 해야 할까요.
이: 그렇죠.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맥거핀이 되는 거죠. 회화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오기 위해서. 그러면 또 질문들이 나와요. 제가 많이 받은 질문은 꼭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야 될 필요가 있나’라는 질문이에요.
정: 처음에 말씀하셨던 것들을 들으면 그런 질문이 나올 만한데... 그렇지만 지금 말씀하셨던 감각하는 소재들이 어쨌든 선택이 돼서 여기 들어가는 거니까 완전히 의미가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런데도 지금 저기에 놓인 작가 노트, 중요하지 않은 표면적인 내용들 쓴 거라고 하셨지만 작가 노트의 내용, 예를 들어 양가적인 부분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내용은 관람에 도움이 되었어요.
이: 저는 작가 노트가 취해야 할 역할이 그림을 재미있게, 흥미롭게 보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어렵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림이 최초에 발생했을 때 미디어로서의 한계와 지금 우리가 새로운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그림, 거기에 더해 그림을 그리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라고 쓸 수는 없죠. 당연히 그러면은 아무도 읽지 않을 거고...
정: 읽기도 할텐데...
이: 제가 시도 해봤어요. 정말 많이 해봤어요. 이런 저런 실험을.
정: 전시장의 작가 노트는 많은 시도의 결과인거군요.
이: 많이 써봤죠. 사실은. 그런 것들을 갖고 얘기하기도 하고 아니면 추상성과 구상성에 대한 것들, 아니면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것들, 아니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것들 여러 가지 썼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거는 결국 작가가 뭘 그렸냐를 가장 첫 번째로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뭘 그렸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는 거는 좀 주요하게 느껴져요. 특히 저는 더 뭘 그렸는지가 그림에서 잘 읽히지 않잖아요. 그리고 뭘 그렸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면 이걸 왜 이렇게 그렸냐는 것들을 전해 드리면 좋아하시는 것 같고. 그런데 비평가와 얘기할 때는 형식에 관해 주로 말하기도 해요.
정: 저는 작가님 그림에서 형식도 형식이지만, 회화성이 두드러지고 잘 그리기 때문에 그런 형식적인 부분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의 회화성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이: 그게 저는 레이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기의 지향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잖아요. 결국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이상향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쫓아가는 건데 그게 잘 그렸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오랫동안 배워온 것들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그런 것들이 ‘충돌’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저 혼자 그림을 그릴 때 내가 화면을 구성할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충돌이에요.
그래서 커다란 이미지, 커다란 터치들이랑 아주 작은 터치들이나 그냥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 어떤 이미지들을 끌어오거든요. 이런 터치들이 물감, 유화 물감을 짠 다음에 쫙 밀어가지고 만들어낸 터치들이고,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이미지들 있죠. 이런 큰 터치들이에요. 얘네들을 먼저 던져놓고 그 다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건데, 그리고 다른 부분들은 되게 작은 세필로 하나하나 이렇게 따서 그린 거잖아요. 이 부분에 물감을 올릴 때의 감각이랑 이거를 세필로 따서 그릴 때의 감각은 완전히 다른 체인지되는(바뀌는) 감각인데 그런 것들이 두 개가 같이 붙어 있으면서 자아내는 이상한 감각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거는 제가 생각하기엔 사진이 잘하지 못하는 어떤 회화가 갖고 있는 신체성적인(신체적인) 영역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림을 처음 배울 때 멀리서 그림을 보라고 시키거든요. 큰 이미지, 큰 형태를 잡아야 하니까 그리고 점점 그림을 완성할수록 연필을 짧게 잡고 그림에 가깝게 붙어서 이렇게 묘사를 해요. 이 두 가지의 체인징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잘 안되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형태를 잘 잡는 친구들은 디테일이 안 좋고 디테일을 잘 잡는 친구들은 형태가 안 좋고 그런 거죠. 그런 그림을 그리기와 배우기의 과정에서도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데 그거를 극대화해서 가시화하면 이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원하게 쫙 나오며 손 가는 대로 그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툭툭툭 멈추게 되는 디테일 같은 것들은 굉장히 파고드는 형태로 표현되어 나오는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정: 하나의 그림 안에 추상표현주의, 팝, 구상, 인상주의 모든 것이 섞여 있어 보여요.
이: 그렇죠. 그리고 회화 역사에 대한 회화이기도 한 거죠. 그러니까 미술사를 좀 더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그림을 쪼개서 볼 수도 있고 전체로 볼 수도 있고 아까 말한 형식적 구조로 볼 수도 있고 레이어라고도 생각하는데 자기가 이해한 만큼 보이게 되는 그림이니까 표면적으로만 보려면 그냥 어떤 풍경화라든지 이세준의 스타일대로 그려진 추상 풍경 같은 거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도 크게 문제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서 좀 더 들어가면 어떤 컨셉추얼한 풍경이라거나 컨셉추얼한 페인팅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넘어가는 거고. 더 깊게 들어가면은 미술사 전반을 다 집약해 놓은 어떤 미술사에 대한 은유라든지 좀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고요. 그게 이제 아주 크게 얘기하면은 결국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그림 같기도 해요. 이 자체를 회화로 나타내는 것이죠.
정: ‘이미지성’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원래 회화가 가졌던 그 본질적인 부분을 탐구하고 있구나로 이렇게 이어지는 걸까요.
이: 네, 그게 같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시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내가 그림을 그리게 하는 조건으로서 이 그림이 가치가 있는 거라고 자꾸 나를 채찍질하게 돼요. 그러니까 이게 청춘을 다 바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 않아요? 나는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이미지나 회화라는 매체 자체가, 이 미디어 자체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정: 그럼에도... 다시 소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림에서 소재들이 눈에 들어와요. 눈사람도 있네요?
이: 여기 있는 모든 그림에 눈사람이 있어요. 눈사람은 태생적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근데 되게 아이러니하잖아요. 엄청 동심에 차 있고 다들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하고 볼 때마다 깔깔거리면 너무 친숙한 이미지인데 사실 너무 잔인한 이미지예요. 얘는 보면 바로 사라질 거고 얘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어요. 합의된 관계인 거잖아요. 그런 양면적인 것들을 좀 좋아해요.
정: 원처럼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느낌이에요. 형식과 소재 모두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래요. 저의 이런 복잡한 고민들이나 이런 것들은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이미지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이미지는 꽤나 직관적이고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잖아요. 저는 막 중언부언하면서 말해도 내가 어떤 아이디어가 있고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막 이렇게 뽑아내는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든 복잡하지 않든 상관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미지가 얘기하는 건 훨씬 심플하잖아요.
정: 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미지가 말하는 게 훨씬 심플하다는 말이 의미심장해요.
이: 사실 더 많은 얘기들이 있어요. 이 이미지에 관해 얘기하거나 그림에 관해 얘기하거나 이 각자 각자에 대한 그림에 관한 얘기들도 계속해서 할 수 있어요. 그 송은에 출품했던 그림 중에 하나가 페인티드 페인팅(Painted painting)이라는 제목이었어요. 커다란 그림이에요. 120호짜리 그림 4점을 붙여서 이렇게 한 건데, 이제 그 그림이 정말 제가 느끼기에 회화라는 매체를 그림의 소재로 삼을 순 없을까라는 아이디어였어요. 두 개의 그림을 같이 했는데 이때부터 회화 매체라는 걸 전면에 내세운 거예요. 아예 그 이전에는 이렇게 특히 이 작업이 더 심하게 그랬던 거고, 같이 선보인 그림이 풍경화에 대한 거였고, 그래서 풍경화에 대한 것부터 고민하면서 비욘드 스케이프(Beyond scape)라는 제목인데 풍경화라는 개념을 그림으로 그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Beyondscape >의 매주 변경되는 디스플레이 모습. 사진: 송은 제공
정: 풍경화라는 개념을 그린다고요.
이: 그래서 풍경화가 갖고 있는 여러 요소를 쪼개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풍경화가 많이 쓰는 소재가 있잖아요. 물, 강 그 다음에 나무, 하늘 그런 것들 소재들도 갖고 오고요. 그 다음에 구도, 그 다음에 픽쳐레스크라는 개념, 앞에 덤불이 있고 수레가 있고 노을이 지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 풍경화가 갖고 있는 어떤 소재도 있고 그리는 붓터치도 있고 색깔도 있고 그 다음에 많이 쓰이는 구도도 있고 이런 것들을 다 쪼개가지고 풍경화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로 만든 작업이에요. 이 작업을 한 다음에 저는 흡족했거든요. 내가 드디어 좀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을 쉽고 직관적인 작업으로 만들었어라고. 그래서 풍경화라는 장르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본다는 것에서 더 넘어가서 회화라는 매체 자체도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어요. 회화가 갖고 있는 아까 말한 것들 있잖아요. 재현성이라든지 아니면 몸이 움직여서 나오는 궤적 같은 신체성이라든지 장식성 같은 것들도 있고 상징성도 있고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것들 아니면 어떤 은유로서 작동하는 것, 알레고리로 작동하는 것, 뻗어나가는 그 가지가 많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회화가 여러 작동 방식을 갖고 있는데 그 작동 방식은 각각의 한 그림에서 유효한 거예요. 그러니까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그리트가 말하는 작동 방식으로 읽어야 되잖아요. 그리고 잭슨 폴록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갑자기 거기서 상징성을 찾아올 수 없는 거잖아요. 신체성을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 그림 안에 그렇게 다 다르게 읽어야 되는 요소들이 묶여 있는 걸 그리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거죠.
정: 작가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하는데 지금 언급하신 그런 것들을 설명 없이 어느 정도까지 시각적으로 보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드네요.
이: 저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어요. 이게 끌어들이기 어려워서 그렇지. 왜냐하면 우리가 그림을 쓱 보기 때문에. 조슬릿(David Joselit)이 말했잖아요. 너무 볼 게 많으니까 이 세상에는. 저는 그 조슬릿의 짧은 글을 좋아하는데 거기 딱 그렇게 시작하거든요. 회화는 시간 배터리라고, 그래서 하나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평생에 걸쳐서 볼 수도 있는 게 회화라는 매체인데 요즘에 너무 많은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으니까 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 회화의 숲을 지나간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시 영원히 찾아보지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말이죠. 그럼 이 시대에는 어떻게 회화가 작동해야 되는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저는 제 그림을 평생에 걸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냥 가볍게 봤을 때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간극이 엄청 크잖아요.
정: 작가님께서 심어놓은 그 레이어들을 보는 이들도 분명히 찾을 수 있겠죠?
이세준, Painted Painting , 2023, 리넨에 아크릴릭, 유채, 형광안료, 260.6x394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이: 찾을 수 있죠. 100% 찾을 수 있죠. 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1] 작가 노트:
모든 순간들, 우리가 서로를 떠올렸던.
"어떤 이야기는 단어 하나, 개념 하나, 혹은 통일된 문장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전달될 수 없는 것 아닐까?" 나는 때때로 상반된 두 개념을 동시에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왜 우리는 두 단어를 한 번에 동시에 발성할 수 없을까? 나는 다양한 이야기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서로 충돌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보조적으로 작동하는 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이번에 출품한 대형 회화 작업은 여러 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그림은 독립적으로도, 동시에 함께 읽혀질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시 기간 동안 나는 전시장에 들러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그림들의 위치를 바꿀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시를 찾은 이들이 같은 그림을 각기 다르게 기억하도록 하고 싶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주의 탄생과 소멸, 삶과 죽음처럼 거대한 서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계절의 변화와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담아보려 했다. 친구들과 겨울 새벽에 새를 보러 갔던 일, 레몬 소주를 만들어 마시던 일상 같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포함했다. 이 작업이 단지 나만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그림을 마주하는 모두가 저마다의 내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 텍스트는 2025년 1월 24일 아람미술관 생생화화 전시장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토대로 편집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25.02.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Februar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