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시를 매일 보는 사람 #1
정희라
프롤로그
2층 학예실 창으로 뮤지엄 정원의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올라왔다. 늦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1막이 끝나고 다른 창과 향이 타자他者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5월, J는 꽃 내음이 배어있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규모가 크다고 하기도, 작다고 하기도 애매한 사립미술관에서 그녀가 7년 동안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며 꾸역꾸역 수석 큐레이터로 승진한 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이 그녀의 퇴사 이유를 궁금해했다. J는 원하는 답이 있는 그들에게 에둘러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고 했고, 평소 친근하게 대화하던 누군가는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진짜 왜 그러냐고 장난스레 그녀의 팔을 흔들며 다른 답을 채근했다. J는 회사 밖 지인을 만나서야 쏟아내듯이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려 해 보았지만, 그 무의미함에 이내 의지를 상실해 가벼운 말로 끝맺었다. 그녀는 내심, 말이 경력 12년이지 이렇게 조각난 이력으로 무얼 하지 싶다가도, 이것으로 그 무엇을 하려는 생각은 고이 접어두고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의 시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백수의 시대이니 행복한 백수가 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자신이 겪은 장면 장면들이 떠오를 때면, 미술계의 고사리 같은 자본이 그 안의 사람들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고 상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판타지라서 불협화음은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자신의 이런 짐작이 맞을 거라고 되뇌었다. 그나저나 이제 뭐하고 산담. 행복한 백수의 진정한 의미를 아직 알지 못했던 J는 퇴사 바로 다음 날부터 집 근처 도서관으로 출석했다. 직장을 다니며 외부에서 의뢰 들어온 글들을 쓸 때면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그때 못했던 리서치를 이참에 원 없이 할 참이었다. J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 글을 작성하면서, 하루에서 이틀 정도 어렵게 얻어낸 며칠이라는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을 근거 있게 글로 풀어내는 것은 수박 겉핥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J는 한 전시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매일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품을 보며 그제야 조금이나마 그것이 말하는 것에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전시의 2할
J에게는 막연하게 그린 표본으로 삼았던 학예사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일터에서 표본은 허상임을 알아챈 지 오래였다. 미술계가 돌아가는 방식은 매뉴얼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절대 룰이 있으니,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전시를 개막하는 것. 이 절대명령을 30여 차례 수행하는 사이 J는 알게 된다. 전시는 철저히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특정 전시는 외부 작용 8할, 내부 연구 2할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런 경우에 J는 자신이 온전히 할 수 있는 2할에 집중하곤 했는데, 이 2할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보이지 않을 때 고민이 깊어졌다. 반대로, 2할과 8할의 비중이 뒤바뀔 때도 있었다. 그 전시는 미술관의 모회사 격인 출판사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예술가와의 협업이 주제였다. J는 한 회사의 성과를 공공의 예술 주제로 다루기 위해 컨텍스트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섬세하게 살피며 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거시적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짚으며 접근하였다. 다른 출판사와 출판 디자인에 관한 서적을 읽고, 공통으로 말하는 지점들을 염두에 두었다.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협업을 담당했던 출판사 실무자들에게 예술가와 주고받은 서신, 그리고 데이터로 남아 있는 자료들을 요청하여 모두 그러모았다. 이 협업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중점으로 보여줄지, 어떤 카테고리로 묶어야 주제가 성립될지, 어떤 식으로 시각화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연구였다. 그 당시 이 전시에 대한 회사의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J는 자유롭게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기대가 없는 만큼 예산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예산을 줄이는 방법은 발로 뛰고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보통 이러지 않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겠지. 이렇게 기획자의 발의 한 땀, 손의 한 땀이 녹아 들어간 이 소장품 전시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기업과 교육 기관의 단체 관람이 몇 배 수로 늘었다. 어느 기관장은 모든 연수생에게 이 전시 관람을 권하며 여러 차례 함께 방문했다. 또, 관람객으로 방문한 기자의 개인적인 전시 리뷰가 주류 매체의 공식 기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이 전시는 대학 도서관과 다른 지역 예술 기관에 초청되었다. J는 지금도 그 결과가 연구와 기획의 힘으로 가능했다고 환기했다. 그러나 연구가 주가 되지 않는 전시의 경우, 관계자의 대부분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2할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몇몇 전시는 성과로 보일만한 그럴싸한 테마, 관람객을 모객할 수 있는 화제성, 그리고 인지도 혹은 시장성 있는 작가면 된다. 2할의 행방은 오롯이 학예사의 몫이다. J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2할을 기대받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는 평소 전시에 여러 성격의 전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 주최, 기획, 화제성, 이 중 어느 하나가 앞장서는 전시부터 각각의 것들이 조화롭게 함께 하는 아주 훌륭한 전시까지. 그리고 이 모든 전시의 핵심은 ‘작품’이라고 여겼다. 전시의 주제와 세부 주제 사이의 납득갈 만한 연결성은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공간의 맥락을 통해 미묘한 위치에 놓인 작품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움직임이 생긴다. J는 2할이 두드러지지 않는 전시를 기획하면서도 간혹 자신이 의도한 2할을 보물찾기에서 숨은 사탕을 찾듯 보아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그녀가 이 2할이 전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며 낙담하던 한 전시를 무사히 엮어냈다고 생각한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의도한 주제와 동선, 맥락을 알아채고 풍부하게 전해주는 비평가를 만났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 돌린 J는 같은 날 저녁, 또 다른 지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전시 잘 봤어요!”
“전시 봐주셔서 감사해요, 작품 너무 좋죠! 다른 부분은 어떠셨어요?”
“작가 세 명 소개하는 전시잖아요, 거기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2025.0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rch.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한 전시를 매일 보는 사람 #1
정희라
프롤로그
2층 학예실 창으로 뮤지엄 정원의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올라왔다. 늦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1막이 끝나고 다른 창과 향이 타자他者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5월, J는 꽃 내음이 배어있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규모가 크다고 하기도, 작다고 하기도 애매한 사립미술관에서 그녀가 7년 동안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하며 꾸역꾸역 수석 큐레이터로 승진한 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이 그녀의 퇴사 이유를 궁금해했다. J는 원하는 답이 있는 그들에게 에둘러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고 했고, 평소 친근하게 대화하던 누군가는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진짜 왜 그러냐고 장난스레 그녀의 팔을 흔들며 다른 답을 채근했다. J는 회사 밖 지인을 만나서야 쏟아내듯이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려 해 보았지만, 그 무의미함에 이내 의지를 상실해 가벼운 말로 끝맺었다. 그녀는 내심, 말이 경력 12년이지 이렇게 조각난 이력으로 무얼 하지 싶다가도, 이것으로 그 무엇을 하려는 생각은 고이 접어두고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의 시대는 여러 가지 의미로 백수의 시대이니 행복한 백수가 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자신이 겪은 장면 장면들이 떠오를 때면, 미술계의 고사리 같은 자본이 그 안의 사람들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고 상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판타지라서 불협화음은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자신의 이런 짐작이 맞을 거라고 되뇌었다. 그나저나 이제 뭐하고 산담. 행복한 백수의 진정한 의미를 아직 알지 못했던 J는 퇴사 바로 다음 날부터 집 근처 도서관으로 출석했다. 직장을 다니며 외부에서 의뢰 들어온 글들을 쓸 때면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그때 못했던 리서치를 이참에 원 없이 할 참이었다. J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 글을 작성하면서, 하루에서 이틀 정도 어렵게 얻어낸 며칠이라는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을 근거 있게 글로 풀어내는 것은 수박 겉핥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J는 한 전시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매일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품을 보며 그제야 조금이나마 그것이 말하는 것에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전시의 2할
J에게는 막연하게 그린 표본으로 삼았던 학예사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일터에서 표본은 허상임을 알아챈 지 오래였다. 미술계가 돌아가는 방식은 매뉴얼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절대 룰이 있으니,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전시를 개막하는 것. 이 절대명령을 30여 차례 수행하는 사이 J는 알게 된다. 전시는 철저히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특정 전시는 외부 작용 8할, 내부 연구 2할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런 경우에 J는 자신이 온전히 할 수 있는 2할에 집중하곤 했는데, 이 2할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보이지 않을 때 고민이 깊어졌다. 반대로, 2할과 8할의 비중이 뒤바뀔 때도 있었다. 그 전시는 미술관의 모회사 격인 출판사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예술가와의 협업이 주제였다. J는 한 회사의 성과를 공공의 예술 주제로 다루기 위해 컨텍스트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섬세하게 살피며 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거시적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짚으며 접근하였다. 다른 출판사와 출판 디자인에 관한 서적을 읽고, 공통으로 말하는 지점들을 염두에 두었다.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협업을 담당했던 출판사 실무자들에게 예술가와 주고받은 서신, 그리고 데이터로 남아 있는 자료들을 요청하여 모두 그러모았다. 이 협업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중점으로 보여줄지, 어떤 카테고리로 묶어야 주제가 성립될지, 어떤 식으로 시각화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연구였다. 그 당시 이 전시에 대한 회사의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J는 자유롭게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기대가 없는 만큼 예산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예산을 줄이는 방법은 발로 뛰고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보통 이러지 않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겠지. 이렇게 기획자의 발의 한 땀, 손의 한 땀이 녹아 들어간 이 소장품 전시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기업과 교육 기관의 단체 관람이 몇 배 수로 늘었다. 어느 기관장은 모든 연수생에게 이 전시 관람을 권하며 여러 차례 함께 방문했다. 또, 관람객으로 방문한 기자의 개인적인 전시 리뷰가 주류 매체의 공식 기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이 전시는 대학 도서관과 다른 지역 예술 기관에 초청되었다. J는 지금도 그 결과가 연구와 기획의 힘으로 가능했다고 환기했다. 그러나 연구가 주가 되지 않는 전시의 경우, 관계자의 대부분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2할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몇몇 전시는 성과로 보일만한 그럴싸한 테마, 관람객을 모객할 수 있는 화제성, 그리고 인지도 혹은 시장성 있는 작가면 된다. 2할의 행방은 오롯이 학예사의 몫이다. J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2할을 기대받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는 평소 전시에 여러 성격의 전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 주최, 기획, 화제성, 이 중 어느 하나가 앞장서는 전시부터 각각의 것들이 조화롭게 함께 하는 아주 훌륭한 전시까지. 그리고 이 모든 전시의 핵심은 ‘작품’이라고 여겼다. 전시의 주제와 세부 주제 사이의 납득갈 만한 연결성은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공간의 맥락을 통해 미묘한 위치에 놓인 작품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움직임이 생긴다. J는 2할이 두드러지지 않는 전시를 기획하면서도 간혹 자신이 의도한 2할을 보물찾기에서 숨은 사탕을 찾듯 보아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그녀가 이 2할이 전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며 낙담하던 한 전시를 무사히 엮어냈다고 생각한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의도한 주제와 동선, 맥락을 알아채고 풍부하게 전해주는 비평가를 만났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 돌린 J는 같은 날 저녁, 또 다른 지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전시 잘 봤어요!”
“전시 봐주셔서 감사해요, 작품 너무 좋죠! 다른 부분은 어떠셨어요?”
“작가 세 명 소개하는 전시잖아요, 거기 다른 부분이 있었나요?!”
2025.03.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rch.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