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의 일부는 필자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 일부를 재인용하였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박준수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꽃이 열흘 붉을 수 없다는 고사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12년간 미술시장 거래 규모 추이
자료출처 : 2023 미술시장 조사 예술경영지원센터
2022년, 거래액 1조 원에 육박하며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던 한국 미술 시장은,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순식간에 활기를 잃었다. 팬데믹 이후 유례없는 호황 속에 다수의 갤러리와 아트페어가 우후죽순 등장하였으나, 현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 속에서 존립을 고민하는 실정이다. 특히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은 경매 시장은 출품작 수와 낙찰률 모두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하였으며, 낙찰률은46%까지 하락하였다.
아시아 미술시장 캘린더
자료출처 : KOREA ART MARKET 2024 서울대학교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지난해 ‘아트인컬처’의 의뢰로 2024년 미술시장 전망에 관한 칼럼을 집필할 당시만 하더라도, 키아프, 프리즈의 동시개최와 아트오앤오, 셀렉션서울 등 신생 아트페어들이 불황을 타개할 새로운 동력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실제로 이들 행사들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여전히 시장에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을 완전히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트테크’를 내세운 폰지 사기 사건이 발생하여, 한국 미술 시장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워런 버핏의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알게 된다(When the tide goes out, you see who is swimming naked)”는 말처럼, 호황기 뒤에 감추어졌던 구조적 취약점들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불황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시장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면서 많은 컬렉터들이 한국 미술 시장으로부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시장의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시절이 다시 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우주를 향해 떠나며 되새겼던 딜런 토마스의 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처럼, 끝까지 의지를 잃지 않고 전진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야 하는가. 다행히도, 한국 미술계에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희망의 조각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트바젤 홍콩 기간 중 하우저앤워스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한 갤러리바톤 박이도 작품
상반기 동안 아트바젤 홍콩, 아트오앤오, 화랑미술제 등을 관람하였다. 팬데믹 이후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홍콩이지만, 전 세계에 가장 주요한 갤러리들인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화이트큐브 등이 여전한 건재함을 보였으며, 동남아시아, 중동, 인도 지역 갤러리들의 활발한 참여는 아시아 미술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확인 시켜주었다. 특히, 필리핀 마닐라의 Silverlens, 뉴델리의 Vadehra Art Gallery, 인사이트 섹터의 Anant Art Gallery와 Shrine Empire, 디스커버리 섹터의 Jhaveri Contemporary는 인도 현대미술의 신선한 면모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두바이의 Lawrie Shabibi와 터키의 Dirimart 역시 중동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아트오앤오에 참여한 갤러리2 전현선의 작품
화랑미술제 참여한 학고재 박광수의 작품
어려운 정치·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개최된 아트오앤오와 연희아트페어, 화랑미술제 또한, 많은 우려를 딛고 불황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비록 즉각적인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관람객들의 방문은 긴 겨울 같았던 미술계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조짐을 엿보게 하였다.
엑스포시카고 참여한 원앤제이 갤러리 윤향로의 작품
사진 제공 : (사)한국화랑협회
또 다른 희망은 한국 미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2024년 말 엑세스 방콕을 시작으로, 2025년부터는 국내 아트페어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 시작된다. 한국화랑협회는 시카고 엑스포와 협력하여 ‘Kiaf in Expo Chicago’를 출범시켰으며, 이는 과거 ‘코리안 아트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의 진면목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PLAS(조형아트서울)는 일본 Study와 협력하여2025년 오사카 엑스포 기간 동안 아트페어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아시아 지역 문화예술 교류의 미래를 밝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내 아트페어 해외 개최 지원사업 또한 한국 미술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갤러리에 설치된 송예환 작가의 ‘따개비들’, 기존 갤러리에서 자주 선보이기 힘들었던 설치작업 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 지갤러리
교토 츠타야 서점에서 선보인 디스위켄드룸의 전시
전면에 최근 전속이 된 이채원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제공 : 디스위켄드룸
이와 함께, 글로벌 감각을 갖춘 신생 갤러리와 체질을 견고히 다져온 중견 갤러리들의 약진 또한 주목할 만하다. 프리즈 서울 참가 이전부터 양질의 전시로 주목받아온 실린더, 에이라운지, 제이슨 함, 지갤러리, 휘슬, P21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디스위켄드룸은 런던, 베를린, 상하이, 교토 등지에서 젊은 한국 작가들의 전시를 연이어 성사시키며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상히읗, 을지로오브, FIM, IAH, XLARGE 갤러리 등 젊은 디렉터들이 이끄는 신생 갤러리들은 메이저 갤러리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전시를 선보이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언타이틀 아트 마이애미에 참여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남진우 작가의 작품들이 보인다.
사진제공 : 스페이스윌링앤딜링
아울러, 프리즈 서울의 개최와 한국 미술 시장 생태계 변화에 발맞추어 체질을 개선해온 중견 갤러리들의 역할 역시 기대를 모은다. 갤러리2, 갤러리조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등은 신진 작가 발굴과 육성에 힘쓰며 한국 미술 시장을 지탱해왔으며, 최근에는 해외 시장 진출과 국내외 작가와의 협업 전시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에 걸맞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들이 꾸준히 한국 작가들의 전시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덕분에,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한국 미술 시장은 다시금 폭발적인 성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나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고난 속에서도 한국 미술의 가능성을 믿고, 옥석을 가려내며, 다가올 푸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제 모두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별도 출처 표기 없는 사진은 필자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
2025.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본 글의 일부는 필자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 일부를 재인용하였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박준수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꽃이 열흘 붉을 수 없다는 고사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12년간 미술시장 거래 규모 추이
자료출처 : 2023 미술시장 조사 예술경영지원센터
2022년, 거래액 1조 원에 육박하며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던 한국 미술 시장은,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순식간에 활기를 잃었다. 팬데믹 이후 유례없는 호황 속에 다수의 갤러리와 아트페어가 우후죽순 등장하였으나, 현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 속에서 존립을 고민하는 실정이다. 특히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은 경매 시장은 출품작 수와 낙찰률 모두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하였으며, 낙찰률은46%까지 하락하였다.
아시아 미술시장 캘린더
자료출처 : KOREA ART MARKET 2024 서울대학교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지난해 ‘아트인컬처’의 의뢰로 2024년 미술시장 전망에 관한 칼럼을 집필할 당시만 하더라도, 키아프, 프리즈의 동시개최와 아트오앤오, 셀렉션서울 등 신생 아트페어들이 불황을 타개할 새로운 동력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실제로 이들 행사들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여전히 시장에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을 완전히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트테크’를 내세운 폰지 사기 사건이 발생하여, 한국 미술 시장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워런 버핏의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알게 된다(When the tide goes out, you see who is swimming naked)”는 말처럼, 호황기 뒤에 감추어졌던 구조적 취약점들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불황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시장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면서 많은 컬렉터들이 한국 미술 시장으로부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시장의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시절이 다시 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우주를 향해 떠나며 되새겼던 딜런 토마스의 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처럼, 끝까지 의지를 잃지 않고 전진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야 하는가. 다행히도, 한국 미술계에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희망의 조각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트바젤 홍콩 기간 중 하우저앤워스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한 갤러리바톤 박이도 작품
상반기 동안 아트바젤 홍콩, 아트오앤오, 화랑미술제 등을 관람하였다. 팬데믹 이후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홍콩이지만, 전 세계에 가장 주요한 갤러리들인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화이트큐브 등이 여전한 건재함을 보였으며, 동남아시아, 중동, 인도 지역 갤러리들의 활발한 참여는 아시아 미술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확인 시켜주었다. 특히, 필리핀 마닐라의 Silverlens, 뉴델리의 Vadehra Art Gallery, 인사이트 섹터의 Anant Art Gallery와 Shrine Empire, 디스커버리 섹터의 Jhaveri Contemporary는 인도 현대미술의 신선한 면모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두바이의 Lawrie Shabibi와 터키의 Dirimart 역시 중동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아트오앤오에 참여한 갤러리2 전현선의 작품
화랑미술제 참여한 학고재 박광수의 작품
어려운 정치·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개최된 아트오앤오와 연희아트페어, 화랑미술제 또한, 많은 우려를 딛고 불황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비록 즉각적인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관람객들의 방문은 긴 겨울 같았던 미술계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조짐을 엿보게 하였다.
엑스포시카고 참여한 원앤제이 갤러리 윤향로의 작품
사진 제공 : (사)한국화랑협회
또 다른 희망은 한국 미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2024년 말 엑세스 방콕을 시작으로, 2025년부터는 국내 아트페어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 시작된다. 한국화랑협회는 시카고 엑스포와 협력하여 ‘Kiaf in Expo Chicago’를 출범시켰으며, 이는 과거 ‘코리안 아트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의 진면목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PLAS(조형아트서울)는 일본 Study와 협력하여2025년 오사카 엑스포 기간 동안 아트페어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아시아 지역 문화예술 교류의 미래를 밝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내 아트페어 해외 개최 지원사업 또한 한국 미술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갤러리에 설치된 송예환 작가의 ‘따개비들’, 기존 갤러리에서 자주 선보이기 힘들었던 설치작업 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 지갤러리
교토 츠타야 서점에서 선보인 디스위켄드룸의 전시
전면에 최근 전속이 된 이채원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제공 : 디스위켄드룸
이와 함께, 글로벌 감각을 갖춘 신생 갤러리와 체질을 견고히 다져온 중견 갤러리들의 약진 또한 주목할 만하다. 프리즈 서울 참가 이전부터 양질의 전시로 주목받아온 실린더, 에이라운지, 제이슨 함, 지갤러리, 휘슬, P21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디스위켄드룸은 런던, 베를린, 상하이, 교토 등지에서 젊은 한국 작가들의 전시를 연이어 성사시키며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상히읗, 을지로오브, FIM, IAH, XLARGE 갤러리 등 젊은 디렉터들이 이끄는 신생 갤러리들은 메이저 갤러리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전시를 선보이며,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언타이틀 아트 마이애미에 참여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남진우 작가의 작품들이 보인다.
사진제공 : 스페이스윌링앤딜링
아울러, 프리즈 서울의 개최와 한국 미술 시장 생태계 변화에 발맞추어 체질을 개선해온 중견 갤러리들의 역할 역시 기대를 모은다. 갤러리2, 갤러리조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등은 신진 작가 발굴과 육성에 힘쓰며 한국 미술 시장을 지탱해왔으며, 최근에는 해외 시장 진출과 국내외 작가와의 협업 전시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에 걸맞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들이 꾸준히 한국 작가들의 전시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덕분에,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한국 미술 시장은 다시금 폭발적인 성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나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고난 속에서도 한국 미술의 가능성을 믿고, 옥석을 가려내며, 다가올 푸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제 모두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별도 출처 표기 없는 사진은 필자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
2025.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