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한 날, 우동집에서 쓰는 수필
우동 디자이너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우리 학교 교실 뒤쪽 벽면엔 ‘환경미화’ 타이틀 아래 학급마다 꾸미기 경쟁이었다. 담임들 고과에 영향이 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으나 기억에 나름 치열했다. 미술 시간에 그린 불조심, 쓰레기 줍기, 나무 심기 포스터 몇 장을 덕지덕지 발랐다. 버리기 마련인 1시간짜리 습작이 교실 환경미화로 부활하면 그것대로 자랑거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스텐 압정에 눌려 매달린 그 포스터가 어딘가 거룩하고 부러워 열심히도 그렸다.
“우동 디자이너”
그 옆 해바라기 꽃 도안에 아이들 사진을 붙이고, 장래 희망을 다는 게 기본이자 정석이자 국룰이었다. 그리고 장래 희망을 저리 적은 나는 선생님께 불려 갔다. 무슨 직업이냐고 이게, 장난치지 말라는 꾸중에도, 나는 오로지 진심이었다.
필통 속, 반쯤 닳아버린 민트색 내 지우개. 은회색 ‘디자이너’ 글씨가 박힌 그 지우개를 난 무척 아꼈다. 지우개 똥이 참 기가 막히게 잘 나와서. 반면 미술학원에서 많이 쓰는 톰보우 4B 지우개는 너무 무르고 비싸, ‘국딩’에겐 사치품이었다. ‘디자이너’는 제법 단단하면서도 찰기 적당한 끊김 없는 지우개 똥이 돋보이는, 게다가 몸값 또한 톰보우보다 훨씬 싼, 말하자면 육각형 능력치의 지우개, 지우개씬의 팔방미인이었다.
선생님의 눈초리를 피해 지우개를 굴리고 지우개똥을 모아 면발처럼 길게 빚는 스릴은 아는 사람만 안다. ‘수업 시간이 너무 짧다’는 느낌 아는가? 핀잔만 주던 짝꿍도 어느새 가스라이팅 당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장개업한 우동집 주인 내외처럼 신들린 듯 면을 뽑았다. 걔는 참 예뻤는데, 전통적으로 짝꿍 복이 좋았던 난 사실 얼굴보단 지우개 똥으로 우동 뽑는 솜씨에 반했던 것 같다. 라면을 넘어 우동처럼 굵어져 가는 그녀의 면발에, 다 큰 수제자를 보는 스승처럼 흐뭇한 얼굴로 끄덕이는 건, 당시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일과였다. ‘이걸로 우동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격렬한 부비부비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아 아직 따끈한 지우개 똥 면발을 심마니처럼 뽑아 들 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쫄깃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걸 직업으로 믿었다.
그 꿈도 어린 내 모습도, 지우개로 지우듯 시간에 곧 지워졌지만, 여전히 남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우동. 우리 집 냉장고엔 냉동 우동면이 한가득이다.
허전한 날엔 어김없이 냄비를 꺼낸다. 작은 생수 한 병 콸콸, 코인 육수 한 알 퐁당, 어묵 국물 티백 한 포. 우동 다시 세 큰술로 허전하니 조선간장 한 큰술, 라면수프도 미원도 한 꼬집. 큼직한 대파, 냉동 양파, 샤부샤부용 수입 쇠고기 한 쪽. 싹싹 비벼 빤 팽이버섯을 쭉쭉 찢어 넣고, 다시마 한 조각 척! 쿠팡에서 산 대용량 우동 건더기 한 숟갈 듬뿍, 붉은 눈송이 같은 고춧가루 살짝 얹으면, 비주얼부터 감동이다. 이건 혼밥이 아니다. 의식이자 의례이다. 어릴 적 지우개 똥 면발을 빚던 내 손끝과 지금 우동 국물 우리는 손길은, 아무리 세월을 맞아도 기실 같은 마음 같은 정성이다.
진한 국물 한 숟갈 뜨면, 맑고도 깊은 감칠맛이 주마등처럼 혀를 스치고 뇌리를 후려친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섬세하면서 귀여운 고집이 느껴진다. 제대로 우러난 날엔 김혜자가 빙의해 ‘그래, 이 맛이야’ 한 번 읊고, 어딘가 싱겁고 나사가 빠졌을 땐 ‘다음엔 고기를 좀 더 오래 우려야지’ 스스로를 다잡는다. 나를 비추고 다잡는 음식. 우동은 바로 그런 음식이다. 아니 거울이며 일기장이며 삶의 지표이다.
‘뇌가 우동 사리냐?’ 같은 비하 표현이 쓰일 때면, 참 속이 상한다. 우동 사리가 뭐 어때서? 기름 적게 부드럽고, 탱글탱글 자신감 넘치고, 그날그날 거울보다 정직하게 나를 보여주는 음식인데. 다르다. 그런 말을 주절대며, 텅 비어 흐물거리는 그런 자들의 뇌와는. 우동은 비고 나약하지 않다. 뚝심 있게 탱탱하고, 순하되 고집 있다. 누군가 우동 면발처럼 그렇게 산다면, 얼마나 탱글탱글 싱그러운 인생일까.
내 생각엔 아내가 우동 면발 같은 삶을 사는 듯싶다. 아내는 지금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생이별 중인 부부인 셈이다. 가끔 내가 미국에 찾아갈 때면 으레 어딘가에서 우동 한 그릇 먹어 본다. 이윽고 충격적인 맛에 늘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그 실망이 곧, 내가 끓인 우동이 그립고 애달픈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빼먹지 않고 그녀가 늘 묻는 말이 있다.
“오늘 뭐뭐 먹었어?”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인 나를 걱정한다. 나를 부르는 애칭도 ‘돼지야’이다. 돼지가 되라는 바람을 담은 것. 나는 뭔가 먹고 난 뒤, 후식 삼아 우동으로 피니시했다 자랑한다.
“돼지야~ 돼지는 우동 도사니?”
“어릴 때 꿈이 우동 디자이너였는데, 우동 잘 먹고 디자인 전공한 큐레이터가 됐나 봐.”
꿈보다 해몽. 나는 기획자답게 받아친다. 우동 한 그릇에도 유쾌한 애정이 담긴다. 화면 속 그녀는 한 가닥 맛도 보지 못하고 연신 군침만 흘린다. 괜한 미안함에 우동 면발을 한입 가득 문 채 마음 굳게 다짐한다. 언젠가 아내가 한국에 돌아오면, 내 손으로 꼭 우동을 끓여 먹이리라. 이토록 쫄깃하게 우리를 이어준 우동에게, 국물보다 깊고 진한 감사와 보답의 마음으로 말이다.
다짐과 감사, 보답. 그건 비싸지 않아도 값진 것들이다. 우동은 비싸지 않아도 좋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언 손 비비며 먹어도 천하일미, 편의점 전자레인지에서 뽀글뽀글 끓어오르는 소리도 사랑스럽다. 해물에 눅진한 중국집 우동도, 오마카세를 말끔히 마무리하는 마지막 국물 한 모금도,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우동’이다.
인생이 우동 같았으면 좋겠다. 간결하지만 깊고, 순한 가운데 뚝심 있고, 가깝고 정겨워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맛. 세상의 모든 비하와 저평가 속에서도 자기 맛을 지켜내는 존재. 지우개 똥 면발에서 탄생한, 우동이란 나만의 우주. 지금도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탱글탱글 쫄깃하고 감칠맛 나게, 살아간다.
2025.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뻘한 날, 우동집에서 쓰는 수필
우동 디자이너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우리 학교 교실 뒤쪽 벽면엔 ‘환경미화’ 타이틀 아래 학급마다 꾸미기 경쟁이었다. 담임들 고과에 영향이 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으나 기억에 나름 치열했다. 미술 시간에 그린 불조심, 쓰레기 줍기, 나무 심기 포스터 몇 장을 덕지덕지 발랐다. 버리기 마련인 1시간짜리 습작이 교실 환경미화로 부활하면 그것대로 자랑거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스텐 압정에 눌려 매달린 그 포스터가 어딘가 거룩하고 부러워 열심히도 그렸다.
“우동 디자이너”
그 옆 해바라기 꽃 도안에 아이들 사진을 붙이고, 장래 희망을 다는 게 기본이자 정석이자 국룰이었다. 그리고 장래 희망을 저리 적은 나는 선생님께 불려 갔다. 무슨 직업이냐고 이게, 장난치지 말라는 꾸중에도, 나는 오로지 진심이었다.
필통 속, 반쯤 닳아버린 민트색 내 지우개. 은회색 ‘디자이너’ 글씨가 박힌 그 지우개를 난 무척 아꼈다. 지우개 똥이 참 기가 막히게 잘 나와서. 반면 미술학원에서 많이 쓰는 톰보우 4B 지우개는 너무 무르고 비싸, ‘국딩’에겐 사치품이었다. ‘디자이너’는 제법 단단하면서도 찰기 적당한 끊김 없는 지우개 똥이 돋보이는, 게다가 몸값 또한 톰보우보다 훨씬 싼, 말하자면 육각형 능력치의 지우개, 지우개씬의 팔방미인이었다.
선생님의 눈초리를 피해 지우개를 굴리고 지우개똥을 모아 면발처럼 길게 빚는 스릴은 아는 사람만 안다. ‘수업 시간이 너무 짧다’는 느낌 아는가? 핀잔만 주던 짝꿍도 어느새 가스라이팅 당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장개업한 우동집 주인 내외처럼 신들린 듯 면을 뽑았다. 걔는 참 예뻤는데, 전통적으로 짝꿍 복이 좋았던 난 사실 얼굴보단 지우개 똥으로 우동 뽑는 솜씨에 반했던 것 같다. 라면을 넘어 우동처럼 굵어져 가는 그녀의 면발에, 다 큰 수제자를 보는 스승처럼 흐뭇한 얼굴로 끄덕이는 건, 당시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일과였다. ‘이걸로 우동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격렬한 부비부비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아 아직 따끈한 지우개 똥 면발을 심마니처럼 뽑아 들 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쫄깃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걸 직업으로 믿었다.
그 꿈도 어린 내 모습도, 지우개로 지우듯 시간에 곧 지워졌지만, 여전히 남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우동. 우리 집 냉장고엔 냉동 우동면이 한가득이다.
허전한 날엔 어김없이 냄비를 꺼낸다. 작은 생수 한 병 콸콸, 코인 육수 한 알 퐁당, 어묵 국물 티백 한 포. 우동 다시 세 큰술로 허전하니 조선간장 한 큰술, 라면수프도 미원도 한 꼬집. 큼직한 대파, 냉동 양파, 샤부샤부용 수입 쇠고기 한 쪽. 싹싹 비벼 빤 팽이버섯을 쭉쭉 찢어 넣고, 다시마 한 조각 척! 쿠팡에서 산 대용량 우동 건더기 한 숟갈 듬뿍, 붉은 눈송이 같은 고춧가루 살짝 얹으면, 비주얼부터 감동이다. 이건 혼밥이 아니다. 의식이자 의례이다. 어릴 적 지우개 똥 면발을 빚던 내 손끝과 지금 우동 국물 우리는 손길은, 아무리 세월을 맞아도 기실 같은 마음 같은 정성이다.
진한 국물 한 숟갈 뜨면, 맑고도 깊은 감칠맛이 주마등처럼 혀를 스치고 뇌리를 후려친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섬세하면서 귀여운 고집이 느껴진다. 제대로 우러난 날엔 김혜자가 빙의해 ‘그래, 이 맛이야’ 한 번 읊고, 어딘가 싱겁고 나사가 빠졌을 땐 ‘다음엔 고기를 좀 더 오래 우려야지’ 스스로를 다잡는다. 나를 비추고 다잡는 음식. 우동은 바로 그런 음식이다. 아니 거울이며 일기장이며 삶의 지표이다.
‘뇌가 우동 사리냐?’ 같은 비하 표현이 쓰일 때면, 참 속이 상한다. 우동 사리가 뭐 어때서? 기름 적게 부드럽고, 탱글탱글 자신감 넘치고, 그날그날 거울보다 정직하게 나를 보여주는 음식인데. 다르다. 그런 말을 주절대며, 텅 비어 흐물거리는 그런 자들의 뇌와는. 우동은 비고 나약하지 않다. 뚝심 있게 탱탱하고, 순하되 고집 있다. 누군가 우동 면발처럼 그렇게 산다면, 얼마나 탱글탱글 싱그러운 인생일까.
내 생각엔 아내가 우동 면발 같은 삶을 사는 듯싶다. 아내는 지금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생이별 중인 부부인 셈이다. 가끔 내가 미국에 찾아갈 때면 으레 어딘가에서 우동 한 그릇 먹어 본다. 이윽고 충격적인 맛에 늘 실망하고 만다. 하지만 그 실망이 곧, 내가 끓인 우동이 그립고 애달픈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빼먹지 않고 그녀가 늘 묻는 말이 있다.
“오늘 뭐뭐 먹었어?”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인 나를 걱정한다. 나를 부르는 애칭도 ‘돼지야’이다. 돼지가 되라는 바람을 담은 것. 나는 뭔가 먹고 난 뒤, 후식 삼아 우동으로 피니시했다 자랑한다.
“돼지야~ 돼지는 우동 도사니?”
“어릴 때 꿈이 우동 디자이너였는데, 우동 잘 먹고 디자인 전공한 큐레이터가 됐나 봐.”
꿈보다 해몽. 나는 기획자답게 받아친다. 우동 한 그릇에도 유쾌한 애정이 담긴다. 화면 속 그녀는 한 가닥 맛도 보지 못하고 연신 군침만 흘린다. 괜한 미안함에 우동 면발을 한입 가득 문 채 마음 굳게 다짐한다. 언젠가 아내가 한국에 돌아오면, 내 손으로 꼭 우동을 끓여 먹이리라. 이토록 쫄깃하게 우리를 이어준 우동에게, 국물보다 깊고 진한 감사와 보답의 마음으로 말이다.
다짐과 감사, 보답. 그건 비싸지 않아도 값진 것들이다. 우동은 비싸지 않아도 좋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언 손 비비며 먹어도 천하일미, 편의점 전자레인지에서 뽀글뽀글 끓어오르는 소리도 사랑스럽다. 해물에 눅진한 중국집 우동도, 오마카세를 말끔히 마무리하는 마지막 국물 한 모금도,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우동’이다.
인생이 우동 같았으면 좋겠다. 간결하지만 깊고, 순한 가운데 뚝심 있고, 가깝고 정겨워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맛. 세상의 모든 비하와 저평가 속에서도 자기 맛을 지켜내는 존재. 지우개 똥 면발에서 탄생한, 우동이란 나만의 우주. 지금도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탱글탱글 쫄깃하고 감칠맛 나게, 살아간다.
2025.05.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Ma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