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연희아트페어 이지영 작가 아티스트 토크
몽당연필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행사명 : 2025 연희아트페어 이지영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5. 04. 17.
장소 : 갤러리인 (서대문구 연희동)
참여인원 : 이지영 작가, 관객 20명 내외
김영기 : 동시대 미술 작가의 큰 고충 가운데 하나는, 작업 이외의 덕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잘 쓰고, 잘 보여주고, 잘 소통하고, 잘 소개하고, 잘 알리고, 잘 띄게 하고, 잘 껴야 한다. 불리함을 느끼거나, 실제로 불리한 작가가 분명 있다. 많다. 가혹하지만 피할 수 없다. 미술씬은 개개인, 작가 일인 중심적인 구도에서 이미 벗어나 시스템화하고 고도화한 지 오래니까. 어느 한 주체가 요구를 주도할 수 없다. 또한, 작가가 작업만 좋아서, 작업만 잘해서 될 시대가 아닌 건 부정할 수 없다. 오늘 자리는 별다른 사회자도 없이 덜렁 혼자 이끌어야 하는데, 부담감이 작지 않을 것이다. 작가 성향에 따라선 고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본인이 거부하지 않고 응해서 성사된 자리인데, 본인은 작가에게 요구되는 이런 새로운 덕목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지영 : 저는 여러 사람 모아놓고 말을 익숙하게 잘하는 타입도 아니고, 긴장이 너무 많이 된다. 그래도 이런 자리의 의미와 효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론 작가로서 해야 할 일에 명백히 들어가 버렸다.
김영기 : 이런 자리의 중요한 역할이나 효과 중 하나는, 해당 관객의 감상 연차와 숙련도에 따라서는 가장 중요한 몰입의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몰입은 곧 진입 장벽을 낮추고 해제하는 것이다. 그 작가의 전시나 저서를 여럿 접하는 것보다도 심적으로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정말 순식간에. 한두 시간 만에 말이다. 아트테인먼트 적인 면이 있는데, 이젠 거스를 수 없고 이용할 궁리를 할 시기이다.
이지영 : 말씀대로 동시대 작가에겐 이미 필수 과목 같은 것이다.
김영기 : 셀 수조차 없는 필선의 쌓아 올림이 돋보인다. 연필로 그렸다는 말에, 절로 다시금 작품을 되돌아 살피게 된다. 작가님의 작업은 보는 자체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수행적이고 구도자적인 장면일 수밖에. 그 전에, 아교반수를 거듭해 연필 선이 번지지 않게 만드는 사전 작업은, 옆에서 지켜보면 아마 그림을 그린다기보단 차라리 농사짓는 광경에 가까울 것이다.
이지영 : 집요하게 쌓아 올리는 표현 특성은 순전히 취향, 그전에 성향에서 비롯한 것 같다.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다.
미대생 : 즐겁지 않고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작가님이 너무 부럽다.
김영기 :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란엔 무얼 적었나?
이지영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쭉 화가를 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처음엔 반대하셨다. 고등학생이 되어 더는 미룰 수 없어, 작심하고 부모님께 사정했다. “그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간절한 얼굴로 무릎 꿇어앉고 몇 달을. 그래, 아마 ‘후회’란 단어에 꽂히신 것 같다. 간신히 얻어낸 허락에 힘입어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처음엔 디자인 계열을 준비했다. 나랑 도무지 안 맞는지, 잘 되진 않았고, 마침내 원래 하고 싶던 회화 계열로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다행일까? 회사도 다녀 보고 이것저것 해 봐도, 역시 내 천직은 작가인 듯하다.
김영기 : 모든 게 취향이나 성향에 요행히 맞아떨어진다 해도, 시장이나 전시장의 요구마저 나랑 다 맞을 순 없을 것이다. 균형을 잡는 일에 고민이 클 텐데?
이지영 : 미술씬의 요구와 작가로서의 균형/분배는 어려운 숙제이다. 매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진심으로 되묻고 싶다.
김영기 : 전형적인 모범 답안으로, ‘멀티 트랙’을 늘 말씀드린다. 팔 그림과 하고 싶은 그림. 일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런 논의가 있을 것이다. 사고팔기 좋고 소장하기 용이한 그림과, 그걸 벗어난 그림. 사실 작가님 작업에도 그런 작업과 덜 그런 작업이 있지 않나. 비율의 문제이고, 그걸 계획적/의도적/전략적으로 행하느냐, 설계 없이 어렴풋한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미대생 : 너무 아까워서 팔 수 없는, 혹은 꼭 가지고 싶은, 내 자식 같은 그림이 있을 텐데. 그럴 땐 어떡하시느냐?
이지영 : 맞다. 그런 그림 있다. 익숙해질 때까지 곁에 둔다 저는. 그리고 더 좋은 작업을 하려 늘 애쓴다. 그래서 더 좋은 작업에 애정이 많이 옮겨 가고, 놓아줄 수 있을 때가 되면 그제야 판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웃음).
김영기 : 여느 페어에서든, 신진급 작가들의 소품 그림이 기십만 원 정도의 가격표를 달고 걸린 걸 자주 본다. 나도 디자인을 전공했고 아주 가끔은 직접 그림을 그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소품 앞에서 종종, 신진 작가들에게 나를 대입할 때면, 난 도저히 팔 수 없을 것 같다. 그 가격 받고는 그림 그려주기도 난 곤란할 듯싶다. 그럴 때 작가들 심정이 십분 백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낳은 아이들을 놓아준다는 건, 남들이 몰라주는 큰 결단이다.
이지영 : 생존하고, 창작을 유지하려면 결단할 수밖에 없는 게, 또 작가의 운명이니까.
김영기 : 그래서 진정 아끼는 그림일수록 기관에 소장되는 게 결국 베스트 아닐까? 그림값 주지, 목록화하고 유지보수 관리하지, 출품이나 대여로 순환시켜 작품 생명력까지 유지하지. 그림이 쌓이면 대부분의 개인은 관리 자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사람보다도 빨리 늙는 게 그림이다.
이지영 : 맞다.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은, 기관에 소장되는 게 가장 좋다. 내가 안고 있는 것보다도.
김영기 : 또한, 아트페어의 취향과 미술관의 취향은 다른 차원이라 본다. 방이나 응접실, 사무실, 복도에 걸고 싶은 그림과, 미술관에서 누군가와 그 시간을 함께 몰입하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다. 이 점은 거의 모두가 그러하다 확신한다. 내가 내 돈 주고 사는 그림이라고 전부 미술관에 걸 만한 그림이라고는, 컬렉터 본인조차 그리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은 미술관에서 시야에 가득 차게 가까이 서서 그 빛 속의 몰입과 물아를 즐길 때 감동적이다. 대출이라도 당겨 집에 사다 걸면, 방문객들이 감동할까? 돈지랄에 감동할 순 있겠지.
관객들 : 페어 취향과 미술관 취향은 따로 봐야 한다는 말은 무척 공감이 간다.
김영기 : 전시를 잡고 작업하는 게 아니라, 작업을 쌓여 전시할 때가 되었기에 전시하고 싶은 게 작가의 마음일 텐데?
이지영 : 전시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망칠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순전히 그런 작업을 할 때면, 실험할 시간도, 망칠 시간도 있고, 그럴 때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전시 날짜가 잡히고 그에 맞추기 시작하면, 같은 작업도 그때부턴 숙제가 된다.
김영기 : 중견 이상의 작가들 가운데, 작업을 쌓으면서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분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멀티 트랙을 작업 쌓기에도 적용하는 셈인데, 작은 공간이나 갤러리/페어용 그림이 있고,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나 대작이 따로 있다. 찔끔찔끔 보여주면 이미지 소비일 뿐이다. 그래서 한방에 터뜨릴 크고 장엄한 공간을 늘 찾아 헤맨다. 살아있는 현역 작가가, 같은 작품을 여기저기 반복해 보이면, 돌려막기로 비칠 위험이 있다. 물론 모든 작품이, 노출될수록 이미지 소비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소위 ‘걸작’이나 ‘명화’의 반열에 들면 이는 역전한다. 호크니의 그림이 여기저기 보인다고 ‘이 양반 대충 사시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말년의 노익장으로 보면 모를까. 전설이 된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이미지 소비는커녕, 퍼낼수록 관심이 화수분처럼 차올라, 오히려 관람 시간 제한을 할 지경이지 않나. 모든 작가가 꿈꾸는 경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이지영 : 그땐 작가가 전전긍긍 할 필요도 없고, 한다고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
김영기 : 그림이 팔려서 전혀 뜻밖의 전시에, 작가도 의도치 않은 새로운 맥락으로 재조명되며, 알아서 미술씬을 돌아다니는 걸 나는 ‘시집 장가 잘 갔다’고 한다. 작가가 일일이 책임지고 밀고 끌지 않아도, 다 자란 그림은 알아서 스스로를 빛내고 작가를 멀리서 비출 수 있어야 한다. 장성한 자식처럼 내 통제를 벗어나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또한 대부분 작가의 구체적인 꿈 모델 중 하나일 것이다.
2025.0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2025 연희아트페어 이지영 작가 아티스트 토크
몽당연필
김영기
OCI미술관 부관장
Younggi Kim (Deputy Director, OCI Museum of Art)
행사명 : 2025 연희아트페어 이지영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5. 04. 17.
장소 : 갤러리인 (서대문구 연희동)
참여인원 : 이지영 작가, 관객 20명 내외
김영기 : 동시대 미술 작가의 큰 고충 가운데 하나는, 작업 이외의 덕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잘 쓰고, 잘 보여주고, 잘 소통하고, 잘 소개하고, 잘 알리고, 잘 띄게 하고, 잘 껴야 한다. 불리함을 느끼거나, 실제로 불리한 작가가 분명 있다. 많다. 가혹하지만 피할 수 없다. 미술씬은 개개인, 작가 일인 중심적인 구도에서 이미 벗어나 시스템화하고 고도화한 지 오래니까. 어느 한 주체가 요구를 주도할 수 없다. 또한, 작가가 작업만 좋아서, 작업만 잘해서 될 시대가 아닌 건 부정할 수 없다. 오늘 자리는 별다른 사회자도 없이 덜렁 혼자 이끌어야 하는데, 부담감이 작지 않을 것이다. 작가 성향에 따라선 고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본인이 거부하지 않고 응해서 성사된 자리인데, 본인은 작가에게 요구되는 이런 새로운 덕목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지영 : 저는 여러 사람 모아놓고 말을 익숙하게 잘하는 타입도 아니고, 긴장이 너무 많이 된다. 그래도 이런 자리의 의미와 효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론 작가로서 해야 할 일에 명백히 들어가 버렸다.
김영기 : 이런 자리의 중요한 역할이나 효과 중 하나는, 해당 관객의 감상 연차와 숙련도에 따라서는 가장 중요한 몰입의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몰입은 곧 진입 장벽을 낮추고 해제하는 것이다. 그 작가의 전시나 저서를 여럿 접하는 것보다도 심적으로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정말 순식간에. 한두 시간 만에 말이다. 아트테인먼트 적인 면이 있는데, 이젠 거스를 수 없고 이용할 궁리를 할 시기이다.
이지영 : 말씀대로 동시대 작가에겐 이미 필수 과목 같은 것이다.
김영기 : 셀 수조차 없는 필선의 쌓아 올림이 돋보인다. 연필로 그렸다는 말에, 절로 다시금 작품을 되돌아 살피게 된다. 작가님의 작업은 보는 자체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수행적이고 구도자적인 장면일 수밖에. 그 전에, 아교반수를 거듭해 연필 선이 번지지 않게 만드는 사전 작업은, 옆에서 지켜보면 아마 그림을 그린다기보단 차라리 농사짓는 광경에 가까울 것이다.
이지영 : 집요하게 쌓아 올리는 표현 특성은 순전히 취향, 그전에 성향에서 비롯한 것 같다.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다.
미대생 : 즐겁지 않고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작가님이 너무 부럽다.
김영기 :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란엔 무얼 적었나?
이지영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쭉 화가를 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처음엔 반대하셨다. 고등학생이 되어 더는 미룰 수 없어, 작심하고 부모님께 사정했다. “그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간절한 얼굴로 무릎 꿇어앉고 몇 달을. 그래, 아마 ‘후회’란 단어에 꽂히신 것 같다. 간신히 얻어낸 허락에 힘입어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처음엔 디자인 계열을 준비했다. 나랑 도무지 안 맞는지, 잘 되진 않았고, 마침내 원래 하고 싶던 회화 계열로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다행일까? 회사도 다녀 보고 이것저것 해 봐도, 역시 내 천직은 작가인 듯하다.
김영기 : 모든 게 취향이나 성향에 요행히 맞아떨어진다 해도, 시장이나 전시장의 요구마저 나랑 다 맞을 순 없을 것이다. 균형을 잡는 일에 고민이 클 텐데?
이지영 : 미술씬의 요구와 작가로서의 균형/분배는 어려운 숙제이다. 매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진심으로 되묻고 싶다.
김영기 : 전형적인 모범 답안으로, ‘멀티 트랙’을 늘 말씀드린다. 팔 그림과 하고 싶은 그림. 일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런 논의가 있을 것이다. 사고팔기 좋고 소장하기 용이한 그림과, 그걸 벗어난 그림. 사실 작가님 작업에도 그런 작업과 덜 그런 작업이 있지 않나. 비율의 문제이고, 그걸 계획적/의도적/전략적으로 행하느냐, 설계 없이 어렴풋한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미대생 : 너무 아까워서 팔 수 없는, 혹은 꼭 가지고 싶은, 내 자식 같은 그림이 있을 텐데. 그럴 땐 어떡하시느냐?
이지영 : 맞다. 그런 그림 있다. 익숙해질 때까지 곁에 둔다 저는. 그리고 더 좋은 작업을 하려 늘 애쓴다. 그래서 더 좋은 작업에 애정이 많이 옮겨 가고, 놓아줄 수 있을 때가 되면 그제야 판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웃음).
김영기 : 여느 페어에서든, 신진급 작가들의 소품 그림이 기십만 원 정도의 가격표를 달고 걸린 걸 자주 본다. 나도 디자인을 전공했고 아주 가끔은 직접 그림을 그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소품 앞에서 종종, 신진 작가들에게 나를 대입할 때면, 난 도저히 팔 수 없을 것 같다. 그 가격 받고는 그림 그려주기도 난 곤란할 듯싶다. 그럴 때 작가들 심정이 십분 백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낳은 아이들을 놓아준다는 건, 남들이 몰라주는 큰 결단이다.
이지영 : 생존하고, 창작을 유지하려면 결단할 수밖에 없는 게, 또 작가의 운명이니까.
김영기 : 그래서 진정 아끼는 그림일수록 기관에 소장되는 게 결국 베스트 아닐까? 그림값 주지, 목록화하고 유지보수 관리하지, 출품이나 대여로 순환시켜 작품 생명력까지 유지하지. 그림이 쌓이면 대부분의 개인은 관리 자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사람보다도 빨리 늙는 게 그림이다.
이지영 : 맞다.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은, 기관에 소장되는 게 가장 좋다. 내가 안고 있는 것보다도.
김영기 : 또한, 아트페어의 취향과 미술관의 취향은 다른 차원이라 본다. 방이나 응접실, 사무실, 복도에 걸고 싶은 그림과, 미술관에서 누군가와 그 시간을 함께 몰입하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다. 이 점은 거의 모두가 그러하다 확신한다. 내가 내 돈 주고 사는 그림이라고 전부 미술관에 걸 만한 그림이라고는, 컬렉터 본인조차 그리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은 미술관에서 시야에 가득 차게 가까이 서서 그 빛 속의 몰입과 물아를 즐길 때 감동적이다. 대출이라도 당겨 집에 사다 걸면, 방문객들이 감동할까? 돈지랄에 감동할 순 있겠지.
관객들 : 페어 취향과 미술관 취향은 따로 봐야 한다는 말은 무척 공감이 간다.
김영기 : 전시를 잡고 작업하는 게 아니라, 작업을 쌓여 전시할 때가 되었기에 전시하고 싶은 게 작가의 마음일 텐데?
이지영 : 전시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망칠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순전히 그런 작업을 할 때면, 실험할 시간도, 망칠 시간도 있고, 그럴 때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전시 날짜가 잡히고 그에 맞추기 시작하면, 같은 작업도 그때부턴 숙제가 된다.
김영기 : 중견 이상의 작가들 가운데, 작업을 쌓으면서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분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멀티 트랙을 작업 쌓기에도 적용하는 셈인데, 작은 공간이나 갤러리/페어용 그림이 있고,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나 대작이 따로 있다. 찔끔찔끔 보여주면 이미지 소비일 뿐이다. 그래서 한방에 터뜨릴 크고 장엄한 공간을 늘 찾아 헤맨다. 살아있는 현역 작가가, 같은 작품을 여기저기 반복해 보이면, 돌려막기로 비칠 위험이 있다. 물론 모든 작품이, 노출될수록 이미지 소비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소위 ‘걸작’이나 ‘명화’의 반열에 들면 이는 역전한다. 호크니의 그림이 여기저기 보인다고 ‘이 양반 대충 사시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말년의 노익장으로 보면 모를까. 전설이 된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이미지 소비는커녕, 퍼낼수록 관심이 화수분처럼 차올라, 오히려 관람 시간 제한을 할 지경이지 않나. 모든 작가가 꿈꾸는 경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이지영 : 그땐 작가가 전전긍긍 할 필요도 없고, 한다고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
김영기 : 그림이 팔려서 전혀 뜻밖의 전시에, 작가도 의도치 않은 새로운 맥락으로 재조명되며, 알아서 미술씬을 돌아다니는 걸 나는 ‘시집 장가 잘 갔다’고 한다. 작가가 일일이 책임지고 밀고 끌지 않아도, 다 자란 그림은 알아서 스스로를 빛내고 작가를 멀리서 비출 수 있어야 한다. 장성한 자식처럼 내 통제를 벗어나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또한 대부분 작가의 구체적인 꿈 모델 중 하나일 것이다.
2025.0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