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제국 순방과 정조의 수원화성행차
박준수
창덕궁 인근에 사는지라 돈화문로를 많이 오간다. 지금은 종묘 옆 서순라길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해져, 한가하던 돈화문로에도 사람이 부쩍 많아졌지만, 불과 4-5년 전만해도 돈화문로를 기준으로 익선동 방향은 시끌벅적하고 많은 젊은이들로 힙하지만, 와룡동 방향은 노후된 건물들과 금속과 의료기기 공장들, 국악과 관련된 악기상, 고미술상이 몇 몇 있었을 뿐이다. 이 길이 수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날이 있었는데, 날씨 좋은 10월, 창덕궁부터 수원화성까지 가는 정조대왕 능행을 재현하는 축제를 할 때 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수원 화성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직접 참배하였다. 이는 효심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노론 중심 정치에 맞선 탕평책의 상징이자,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중앙 권력의 독점을 경계하며,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제시하였다. 단순한 능행을 넘어 수원화성이라는 당시의 신도시 건설을 직접 기획하고, 정치·경제·군사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또한, 행차 중 백성과 직접 소통하고 민원을 청취하며, 지역 균형 발전과 현장에 대한 관리들에 감찰을 하였다. 민심을 기반으로 한 유연하고 열린 통치의 실현이었다.
정조대왕은 이 행사의 도설圖說을 김홍도에게 제작하게 하고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이 도설에 기초하여 김홍도를 따르던 김득신·최득현·이인문·이명규·장한종·허식 등에 의해 병풍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화성능행도》는 국왕의 친림, 호위하는 군사, 관료들과 구경나온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삼삼오오를 이룬 인물의 포즈를 다양하고 해학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시정을 리얼하게 묘사하여 당대 풍속적인 소재를 담은 기록화의 백미로 인정된다.[1]
화성능행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고, 전국 순방을 실행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 황제로서 위엄을 드러내고 제국 통치를 확립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순행의 주요 목적은 불로초를 찾기 위한 탐사였다. 이러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순방에 무리하게 행정력을 소모하며, 통치 리스크를 드러내어 민심을 크게 잃게 된다.
불로초를 찾기 위해 제국의 관리를 동원해 방사(方士)들과 함께 해안을 순회했고, 결국은 허무한 목표에 국력을 낭비하게 되었다. 행정 공백과 지방 불안정이 발생하며, 지방 호족 및 관리들의 부패가 심화되었다. 결국 다섯번째 순행중에 진시황은 사망했다. 환관들은 진시황의 사망을 숨기기 위해 부패한 시신의 냄새를 숨기려고 썪은 생선과 함께 수레에 싣고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서복동도상 제막식 장면, 멀고 먼 제주도에까지 서복(불로초를 찾아다닌 진시황의 사신)이 동남동녀 600명을 끌고 왔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미지 출처 : 제주투데이
전시가 성공하면 자연스레 ‘투어’가 따라붙는다. 지난 해부터 올해 봄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낸 반고흐 전은 대전시립미술관으로 내려가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의 유명 작품이나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열려면, 작품 임대료를 비롯한 흔히 이야기하는 전시를 개최하기 위한 론피(투자금?)가 많이 들고, 높아진 해외운송비로 인해 손임분기점를 고려하면, 기획자 입장에서 전국 순회를 통해 전시 기간을 늘리고, 성과를 확장시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또 서울 전시장을 찾기 어려운 이른바 ‘문화소외지역’의 관람객에게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공공적 명분도 얻게 된다.
하지만 이 논리가 아트페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전시와 아트페어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전시는 기획자와 작품, 관람객 사이의 일방향 구조지만, 아트페어는 작가-갤러리-컬렉터-운영주체 간의 다자적, 유동적인 생태계다. 따라서 단순한 ‘복제’나 ‘투어’로 성립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여러 아트페어 주최사들은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을 꾀한다. 아트페어의 정점이라고 하는 아트바젤은 마이애미, 홍콩, 파리에 이어 카타르로의 진출을 발표했다. 프리즈 역시 뉴욕, LA, 서울로의 확장을 이어갔다. 아트어셈블리 역시 아트바젤 홍콩의 디렉터였던 매그너스를 앞세워 타이페이, 싱가폴, 도쿄로 확장을 해갔다. 크고 작은 아트페어들 역시 앞다투어 이런 형태의 해외 진출,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 해부터 키아프가 아닌, 화랑미술제가 투어를 시작했다. 놀라운 건, 이 브랜치가 한국화랑협회의 대표 브랜드인 한국 최대 국제아트페어인 키아프(KIAF)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회원의 참여만 가능하며, 99만원이라는 저렴한 부스비라는 가격 경쟁력이 강조되어온 화랑미술제라는 점이다. 화랑미술제는 1979년 시작되어 43회를 개최한 역사를 지녔지만, 오늘날 그 고유한 특징을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키아프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고, 회원 화랑만 참여한다는 제약 때문에 해외 컬렉터나 기관의 적극적 참여는 쉽지 않다. 해외 갤러리의 참여도 없기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기 십상이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이미지 출처 : 화랑미술제 보도자료
그런 화랑미술제가 수원에서 ‘브랜치’를 열었다. 기존의 ‘서울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지역에서의 저변 확대와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수원컨벤션센터와 호수공원, 그리고 바로 앞에 갤러리아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소위 잘나가는 광교 일대에 돈 잘쓰는 (쓸 것 같은) IT·스타트업 기업 등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문을 열었다. 지난 해 수원컨벤션센터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도 한다. 덕분에 지난 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발표와 함께, 올해는 104개 갤러리가 참여하면서 규모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냈다. 언젠가 다른 아트페어를 운영해보았지만 40여개 갤러리를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불과 2회차만에 100개가 넘는 갤러리를 모은 것은 한국화랑협회의 저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모델은 지속 가능할까? 그리고, 아트페어의 본질은 지켜지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시의 전국 투어는 이해된다. 기획자는 하나의 전시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하고, 관람자는 접근성이 확대된다. 하지만 아트페어는 매번 참가 갤러리가 선보이는 작품이 달라져야 하고, 방문하는 고객층도 달라져야 한다. 같은 고객이 방문하더라도 적어도 매번 다른 작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두 달 전에 열린 화랑미술제 코엑스에 방문했던 고객이 수원까지 방문할지, 또는 그 때 서울을 방문하지 못한 수원 고객이 방문해서 작품을 구입할지 잘 따져보며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 복제 차원의 전시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유연한 지역 맞춤형 구조를 갖춰야만 한다.
100여개의 화랑이 참여하는 회원 교류전을 넘어, 제대로 된 아트페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과 기획 전문성이 필요하다. 저렴한 부스비와 지역 인프라에 대한 관계성만으로 운영을 이어가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역성과 상생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것이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 각 지역 문화재단, 지역 미협과 협력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도움과 발전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문화 향유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관람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회성 지방 축제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지역 작가 참여, 반려동물 동반 입장 등 서울에서 할 수 없던 다양한 기획과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 생태계 형성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시적 ‘명분’으로 끝나는가? 이건 운영 주체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갈린다.
이재준 수원특례시 시장과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비롯한 이선엽 AFW PARTNERS 대표이사, 이국진 화랑미술제 in 수원 조직위원장,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 등 주요 인사들
이미지 출처 : 화랑미술제 보도자료
결국 관건은, 전국 투어(확장)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그렇게 했을 때, 아트페어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이다.
화랑미술제의 수원 진출은 전국 투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중요한 사례다. 그리고 이 실험은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다. 단순히 서울 페어를 지방에 옮기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지역의 미술 시장, 컬렉터, 작가, 관객에 맞는 설계와 교류 구조가 필요하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유연한 변형, 기계적 재생산이 아닌 맥락 기반의 재구성을 해야 한다. 전국(혹은 해외)으로 확장을 꿈꾸는 아트페어는 그 자체가 기획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진시황의 전국 순방과 민생과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한 정조의 수원화성능행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1] 국립중앙박물관 화성능행도 소개글 차용
2025.0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진시황의 제국 순방과 정조의 수원화성행차
박준수
창덕궁 인근에 사는지라 돈화문로를 많이 오간다. 지금은 종묘 옆 서순라길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해져, 한가하던 돈화문로에도 사람이 부쩍 많아졌지만, 불과 4-5년 전만해도 돈화문로를 기준으로 익선동 방향은 시끌벅적하고 많은 젊은이들로 힙하지만, 와룡동 방향은 노후된 건물들과 금속과 의료기기 공장들, 국악과 관련된 악기상, 고미술상이 몇 몇 있었을 뿐이다. 이 길이 수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날이 있었는데, 날씨 좋은 10월, 창덕궁부터 수원화성까지 가는 정조대왕 능행을 재현하는 축제를 할 때 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수원 화성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직접 참배하였다. 이는 효심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노론 중심 정치에 맞선 탕평책의 상징이자,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중앙 권력의 독점을 경계하며,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제시하였다. 단순한 능행을 넘어 수원화성이라는 당시의 신도시 건설을 직접 기획하고, 정치·경제·군사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또한, 행차 중 백성과 직접 소통하고 민원을 청취하며, 지역 균형 발전과 현장에 대한 관리들에 감찰을 하였다. 민심을 기반으로 한 유연하고 열린 통치의 실현이었다.
정조대왕은 이 행사의 도설圖說을 김홍도에게 제작하게 하고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이 도설에 기초하여 김홍도를 따르던 김득신·최득현·이인문·이명규·장한종·허식 등에 의해 병풍으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화성능행도》는 국왕의 친림, 호위하는 군사, 관료들과 구경나온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삼삼오오를 이룬 인물의 포즈를 다양하고 해학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시정을 리얼하게 묘사하여 당대 풍속적인 소재를 담은 기록화의 백미로 인정된다.[1]
화성능행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고, 전국 순방을 실행한다. 중국 최초의 통일 황제로서 위엄을 드러내고 제국 통치를 확립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순행의 주요 목적은 불로초를 찾기 위한 탐사였다. 이러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순방에 무리하게 행정력을 소모하며, 통치 리스크를 드러내어 민심을 크게 잃게 된다.
불로초를 찾기 위해 제국의 관리를 동원해 방사(方士)들과 함께 해안을 순회했고, 결국은 허무한 목표에 국력을 낭비하게 되었다. 행정 공백과 지방 불안정이 발생하며, 지방 호족 및 관리들의 부패가 심화되었다. 결국 다섯번째 순행중에 진시황은 사망했다. 환관들은 진시황의 사망을 숨기기 위해 부패한 시신의 냄새를 숨기려고 썪은 생선과 함께 수레에 싣고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서복동도상 제막식 장면, 멀고 먼 제주도에까지 서복(불로초를 찾아다닌 진시황의 사신)이 동남동녀 600명을 끌고 왔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미지 출처 : 제주투데이
전시가 성공하면 자연스레 ‘투어’가 따라붙는다. 지난 해부터 올해 봄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낸 반고흐 전은 대전시립미술관으로 내려가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의 유명 작품이나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열려면, 작품 임대료를 비롯한 흔히 이야기하는 전시를 개최하기 위한 론피(투자금?)가 많이 들고, 높아진 해외운송비로 인해 손임분기점를 고려하면, 기획자 입장에서 전국 순회를 통해 전시 기간을 늘리고, 성과를 확장시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또 서울 전시장을 찾기 어려운 이른바 ‘문화소외지역’의 관람객에게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공공적 명분도 얻게 된다.
하지만 이 논리가 아트페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전시와 아트페어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전시는 기획자와 작품, 관람객 사이의 일방향 구조지만, 아트페어는 작가-갤러리-컬렉터-운영주체 간의 다자적, 유동적인 생태계다. 따라서 단순한 ‘복제’나 ‘투어’로 성립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여러 아트페어 주최사들은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을 꾀한다. 아트페어의 정점이라고 하는 아트바젤은 마이애미, 홍콩, 파리에 이어 카타르로의 진출을 발표했다. 프리즈 역시 뉴욕, LA, 서울로의 확장을 이어갔다. 아트어셈블리 역시 아트바젤 홍콩의 디렉터였던 매그너스를 앞세워 타이페이, 싱가폴, 도쿄로 확장을 해갔다. 크고 작은 아트페어들 역시 앞다투어 이런 형태의 해외 진출,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 해부터 키아프가 아닌, 화랑미술제가 투어를 시작했다. 놀라운 건, 이 브랜치가 한국화랑협회의 대표 브랜드인 한국 최대 국제아트페어인 키아프(KIAF)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회원의 참여만 가능하며, 99만원이라는 저렴한 부스비라는 가격 경쟁력이 강조되어온 화랑미술제라는 점이다. 화랑미술제는 1979년 시작되어 43회를 개최한 역사를 지녔지만, 오늘날 그 고유한 특징을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키아프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고, 회원 화랑만 참여한다는 제약 때문에 해외 컬렉터나 기관의 적극적 참여는 쉽지 않다. 해외 갤러리의 참여도 없기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기 십상이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이미지 출처 : 화랑미술제 보도자료
그런 화랑미술제가 수원에서 ‘브랜치’를 열었다. 기존의 ‘서울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지역에서의 저변 확대와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수원컨벤션센터와 호수공원, 그리고 바로 앞에 갤러리아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소위 잘나가는 광교 일대에 돈 잘쓰는 (쓸 것 같은) IT·스타트업 기업 등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문을 열었다. 지난 해 수원컨벤션센터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도 한다. 덕분에 지난 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발표와 함께, 올해는 104개 갤러리가 참여하면서 규모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냈다. 언젠가 다른 아트페어를 운영해보았지만 40여개 갤러리를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불과 2회차만에 100개가 넘는 갤러리를 모은 것은 한국화랑협회의 저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모델은 지속 가능할까? 그리고, 아트페어의 본질은 지켜지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시의 전국 투어는 이해된다. 기획자는 하나의 전시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하고, 관람자는 접근성이 확대된다. 하지만 아트페어는 매번 참가 갤러리가 선보이는 작품이 달라져야 하고, 방문하는 고객층도 달라져야 한다. 같은 고객이 방문하더라도 적어도 매번 다른 작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두 달 전에 열린 화랑미술제 코엑스에 방문했던 고객이 수원까지 방문할지, 또는 그 때 서울을 방문하지 못한 수원 고객이 방문해서 작품을 구입할지 잘 따져보며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 복제 차원의 전시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유연한 지역 맞춤형 구조를 갖춰야만 한다.
100여개의 화랑이 참여하는 회원 교류전을 넘어, 제대로 된 아트페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과 기획 전문성이 필요하다. 저렴한 부스비와 지역 인프라에 대한 관계성만으로 운영을 이어가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역성과 상생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것이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 각 지역 문화재단, 지역 미협과 협력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도움과 발전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문화 향유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관람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회성 지방 축제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지역 작가 참여, 반려동물 동반 입장 등 서울에서 할 수 없던 다양한 기획과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 생태계 형성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시적 ‘명분’으로 끝나는가? 이건 운영 주체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갈린다.
이재준 수원특례시 시장과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비롯한 이선엽 AFW PARTNERS 대표이사, 이국진 화랑미술제 in 수원 조직위원장,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 등 주요 인사들
이미지 출처 : 화랑미술제 보도자료
결국 관건은, 전국 투어(확장)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그렇게 했을 때, 아트페어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이다.
화랑미술제의 수원 진출은 전국 투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중요한 사례다. 그리고 이 실험은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다. 단순히 서울 페어를 지방에 옮기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지역의 미술 시장, 컬렉터, 작가, 관객에 맞는 설계와 교류 구조가 필요하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유연한 변형, 기계적 재생산이 아닌 맥락 기반의 재구성을 해야 한다. 전국(혹은 해외)으로 확장을 꿈꾸는 아트페어는 그 자체가 기획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진시황의 전국 순방과 민생과 지역 균등 발전을 위한 정조의 수원화성능행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1] 국립중앙박물관 화성능행도 소개글 차용
2025.07.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ly.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