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감각의 표본 집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식물은 제 자리에서 세계를 받아들인다. 가만히 빛을 감지하고, 조용히 공기를 더듬고, 미세하게 온기를 느낀다. 그들은 고요히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식물은 우리와는 다른 시간으로 반응하고, 언어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감지하며,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내밀하게 자란다. 이번 전시 <Herbarium 식물 표본 집>에서 식물의 유기적인 형태는 관찰의 대상이자 감각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장소연은 존재의 상태를 사유하는 틀로써 식물을 제안한다. 복잡한 감각의 뿌리들이 얽힌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숨, 선, 흔적의 유기성
흐르는 선은 누군가의 기억, 숨결, 혹은 몸의 흔적이 된다. <숨청사초>(2022)에서 인물의 행위는 우리가 겪은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숨을 불어넣는 모습은 그녀의 작업에서 생명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식물과 머리카락의 다듬어지지 않은 선들 역시 길들지 않는 생명력을 나타낸다. 장소연이 야생의 식물이 아닌 식물원 안 식물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식물원은 가상의 자연이다. 유리 벽 너머의 세계는 관리되고 배치된 질서이지만 그 안에서도 식물들은 자신만의 호흡으로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란다. 그러한 모습은 <담쟁이 유적>(2025)에서도 확인된다. 인공의 교각 아래 담쟁이의 자태는 끈질기게 움직이는 생명의 내밀한 흔적에 가까워 보인다. 주변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유기적인 형태를 감지하는 작가의 시선은 <부레옥잠>(2024)에서도 드러난다. 수영장 물에 둥둥 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뿌리내리지 않고 부유하는 수생 식물의 형상과 교차 된다. 그들은 서로를 감지하지만 결속하지 않으며, 부딪히지만 얽히지 않는다. 수면 위에 퍼져 있지만 깊은 뿌리는 없다. 다채로운 색으로 존재를 뽐내면서도 서로를 침범하지는 않는다.
식물 같은 회화
지금-여기의 감각들은 마치 건조된 표본처럼 회화 속에 눌러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감각들은 땅의 화초처럼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 물 위의 부레옥잠처럼, 교각 아래의 담쟁이처럼 미묘하고 끈질기게 움직인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회화의 예측할 수 없는 속성과 식물의 제어할 수 없는 생명력을 함께 겪는다. 투명한 액체로 그린 선들을 손으로 다시 떼어내는 과정이 있기에 작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선의 생성이 가능해진다. 그 안에서 불규칙한 리듬과 비정형의 패턴이 생성된다. 그렇기에 그림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식물의 모양은 뻗어가며 자연스레 형성된 회화적 창조성과도 맞닿는다. 이러한 자연 발생적인 유기적인 형태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를 탐색하는 회화적 실험이다.
장소연의 회화는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의 결을 닮아있다. 그의 시선으로 채집된 존재들의 유기적인 형상들은 느슨한 식물 표본 집 같다. 관리되지만 제어되지 않고 갇혀 있지만 항상 열려 있는 식물의 모습은 말려 있되 살아 있고 건조되었으나 여전히 감응하는 Herbarium의 속성처럼 비추어진다. 장소연만의 <Herbarium>은 현재의 당신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무엇에 기대어 감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 있지를 묻고 있다.
2025.0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
움직이는 감각의 표본 집
정희라(미술평론/미술사)
식물은 제 자리에서 세계를 받아들인다. 가만히 빛을 감지하고, 조용히 공기를 더듬고, 미세하게 온기를 느낀다. 그들은 고요히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식물은 우리와는 다른 시간으로 반응하고, 언어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감지하며,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내밀하게 자란다. 이번 전시 <Herbarium 식물 표본 집>에서 식물의 유기적인 형태는 관찰의 대상이자 감각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장소연은 존재의 상태를 사유하는 틀로써 식물을 제안한다. 복잡한 감각의 뿌리들이 얽힌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숨, 선, 흔적의 유기성
흐르는 선은 누군가의 기억, 숨결, 혹은 몸의 흔적이 된다. <숨청사초>(2022)에서 인물의 행위는 우리가 겪은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숨을 불어넣는 모습은 그녀의 작업에서 생명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식물과 머리카락의 다듬어지지 않은 선들 역시 길들지 않는 생명력을 나타낸다. 장소연이 야생의 식물이 아닌 식물원 안 식물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식물원은 가상의 자연이다. 유리 벽 너머의 세계는 관리되고 배치된 질서이지만 그 안에서도 식물들은 자신만의 호흡으로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란다. 그러한 모습은 <담쟁이 유적>(2025)에서도 확인된다. 인공의 교각 아래 담쟁이의 자태는 끈질기게 움직이는 생명의 내밀한 흔적에 가까워 보인다. 주변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유기적인 형태를 감지하는 작가의 시선은 <부레옥잠>(2024)에서도 드러난다. 수영장 물에 둥둥 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뿌리내리지 않고 부유하는 수생 식물의 형상과 교차 된다. 그들은 서로를 감지하지만 결속하지 않으며, 부딪히지만 얽히지 않는다. 수면 위에 퍼져 있지만 깊은 뿌리는 없다. 다채로운 색으로 존재를 뽐내면서도 서로를 침범하지는 않는다.
식물 같은 회화
지금-여기의 감각들은 마치 건조된 표본처럼 회화 속에 눌러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감각들은 땅의 화초처럼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 물 위의 부레옥잠처럼, 교각 아래의 담쟁이처럼 미묘하고 끈질기게 움직인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회화의 예측할 수 없는 속성과 식물의 제어할 수 없는 생명력을 함께 겪는다. 투명한 액체로 그린 선들을 손으로 다시 떼어내는 과정이 있기에 작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선의 생성이 가능해진다. 그 안에서 불규칙한 리듬과 비정형의 패턴이 생성된다. 그렇기에 그림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 식물의 모양은 뻗어가며 자연스레 형성된 회화적 창조성과도 맞닿는다. 이러한 자연 발생적인 유기적인 형태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를 탐색하는 회화적 실험이다.
장소연의 회화는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의 결을 닮아있다. 그의 시선으로 채집된 존재들의 유기적인 형상들은 느슨한 식물 표본 집 같다. 관리되지만 제어되지 않고 갇혀 있지만 항상 열려 있는 식물의 모습은 말려 있되 살아 있고 건조되었으나 여전히 감응하는 Herbarium의 속성처럼 비추어진다. 장소연만의 <Herbarium>은 현재의 당신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무엇에 기대어 감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 있지를 묻고 있다.
2025.06.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June. 2025.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