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후로 내 집은 타인의 방문을 거절하는 집이 되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성격인데, 그러지 못한 시기를 제법 오래 보내고 나니 그 구역을 지키는 데 예민해졌다. 혼자 사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방문마저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마음은 고맙지만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는 좀처럼 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지난달에는 다른 컬렉터의 집과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자신의 공간을 선뜻 열어준 컬렉터들과 작가들 덕분에 작품을 보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방문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미술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살아왔을까. 미술판에서 일한 시간도, 일을 하며 알게된 사람도, 소소하게 집에 들인 작품도 제법 늘었지만, 그만큼 깊이 보고 오래 관계를 이어왔는지는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얼마 전 후배에게 “형은 친한 사람 많으시잖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막상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손에 꼽는데, 밖에서는 다르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트페어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수많은 갤러리와 사람을 만났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서로 다른 요구를 조율하고, 다시 다음 사람을 만났다. 어느 행사장에 가든 인사할 사람이 생겼다.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다만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왔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작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에서 보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때로는 소장해서 집으로 가져온다. 그러나 익숙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부터 그랬다. 작은 집에 다 걸지도 못해 작품을 쌓아두고, 가끔 인스타그램에 일부만 잘라 올리며 ‘나도 이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작품을 들이는 데 쏟았던 관심이 들인 뒤에도 이어졌는지 돌아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김정선 컬렉터 소장품 노아 엘 하켐(Noah El Hachem)의 작품
김정선 컬렉터 소장품 노아 엘 하켐(Noah El Hachem)의 작품

인스타그램에서 한 친구가 컬렉터의 집에 다녀온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나도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선뜻 초대를 받았다. 김정선 컬렉터는 아트페어와 전시 오프닝, 해외 출장에서 몇 차례 인사를 나누던 분이었다. 집을 찾아가도 될 만큼 가까운 사이인지는 자신이 없었는데, 그녀는 선뜻 문을 열고 집 안 곳곳의 작품을 소개해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컬렉션을 함께 보며 나누는 이야기가 작가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작품을 자신의 생활 속에 들인 뒤에도 그 작품이 다른 사람과 만날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이현명 컬렉터의 집, 김진희 작가(좌측)와 수지 작가(우측)의 작품
이현명 컬렉터의 집, 김진희 작가(좌측)와 수지 작가(우측)의 작품

그 마음은 이현명 컬렉터의 집에서 들었던 “친한 작가”라는 말과도 이어졌다. 그는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그 말을 빼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언제 이렇게 많은 작품을 모았나 싶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품마다 함께 보낸 사람이 있었고 시간이 있었다. 그의 집에 모여 있는 것은 그가 미술과 관계를 맺어온 과정이기도 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거의 십 년 전 인사동의 어느 고갈비집이었다. 갤러리세줄 이준상실장과 사업 파트너였던 배우 조태관과 술을 마시던 중, 토론토 유학 시절 함께 지냈던 이현명을 불러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몇 번의 술자리로 이어졌고, 어느 날에는 그가 먼저 키아프 협찬에 관심이 있다고 말을 꺼냈다. 후원과 협찬을 구하러 뛰어다니던 내게는 귀인 같은 사람이었다. 이후 그의 발걸음은 다른 아트페어와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의 패트론 활동으로 이어졌다. 자신은 그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지만, 그 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꾸준히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는 작가와 친해지는 만큼 작품이 소개되고 전시되는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친분을 이유로 갤러리를 건너뛰어 직거래를 하는 편법을 찾지도 않았다. 작가를 향한 애정 안에 갤러리와 전시,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존중이 함께 있었다. 내가 두 컬렉터에게서 느낀 진정성도 그런 데서 비롯되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자신의 만족에 머물지 않고, 그 작품이 만들어지고 소개되고 다시 누군가에게 가닿는 과정까지 이어져 있었다.

소장이 그렇게 관계를 지속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면, 전시를 기획하는 일 역시 전시가 끝난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세 개의 전시 기획이 겹쳤다. 아트페어를 준비할 때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사람과 훨씬 긴 시간을 보냈다. 밤늦게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전시장에서는 함께 땀을 흘렸다.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지 결정하는 과정마다 작가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최서희 작가와 연누리 작가 부부의 작업실,
흡사 을지로의 전파사를 연상케하는 작품 소재인 스피커와 공구들
최서희 작가와 연누리 작가 부부의 작업실, 흡사 을지로의 전파사를 연상케하는 작품 소재인 스피커와 공구들

최서희 작가의 작업실에 간 것은 그렇게 함께 만든 전시가 끝난 뒤였다. 오프닝 케이터링에 쓰려고 빌린 식탁보를 돌려준다는 핑계가 있었다. 작가의 비평글을 썼던 정희라 큐레이터도 합류해 함께 반주를 하고 작업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작업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전시가 끝났는데도 다시 찾아갈 이유가 있고, 지난 일을 돌아보며 다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작품을 몇 번 보는 동안에는 생기지 않았던 궁금증이 함께 일하면서 생기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지, 무엇 앞에서 망설이는지, 설명으로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던 생각이 실제 작업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게 된다. 전시 하나를 함께했다고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뒤에 다시 작업실을 찾았을 때 나눌 이야기는 달라진다. “잘 지내시죠”라는 인사 다음에 이어갈 질문이 생긴다.

박소진 작가의 스튜디오
베를린에서부터 가져온 수많은 소품과 책이 함께 있다.
박소진 작가의 스튜디오 베를린에서부터 가져온 수많은 소품과 책이 함께 있다.

박소진 작가의 작업실에도 그런 질문을 가지고 갔다. 양자주 작가의 오픈스튜디오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지만, 작업을 본격적으로 알아가게 된 것은 강북문화재단 전시를 함께 준비하면서부터였다. 전시장에서 여러 번 보았던 작품이 작업실에도 있었다. 그런데 주변의 재료와 이전 작업 사이에서 마주하니 같은 작품이 다르게 보였다. 서로 다른 것들을 모으고 엮어 하나의 화면에 이르기까지의 선택이 조금씩 짐작되었다.

작가는 베를린에서 작품과 소품뿐 아니라 작업하던 테이블까지 컨테이너에 실어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공간에 놓인 것들이 오랜 작업의 시간을 품고 있는 듯했다. 전시장에서는 완성된 모습으로 만났던 작품 주변에, 그 모습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과정이 펼쳐져 있었다. 궁금했던 것들이 조금씩 연결되자 이번에는 다음 작업이 궁금해졌다. 이 재료와 생각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 전시는 끝났지만 작가는 여전히 그 질문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물론 작업실에 들어간다고 저절로 작가를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갤러리스트로 오래 일한 선배는 완성된 작품을 충분히 보지 않은 컬렉터를 작업실로 바로 데려가는 일을 걱정한 적이 있다. 수많은 재료와 미완성 작업 사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을 꺼내 어떤 맥락으로 보여줄지 판단하는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나 역시 키아프 VIP 프로그램으로 방문한 작업실에서 작가가 작품을 잔뜩 펼쳐놓고 직접 판매하려 해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작업실의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과의 깊은 만남이 보장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도 작품을 바라볼 시간과 적절한 매개가 필요했다. 그래서 요즘은 작업실에 가보라고 권할 때, 먼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작품을 충분히 보라는 말을 덧붙인다. 오래 보아야 자신의 질문이 생기고, 질문이 있어야 작업실에 남은 흔적도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연락처가 있고 몇 차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관계가 깊어지지는 않는다. 작품을 샀다고 작가의 세계를 다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현명이가 작품 앞에서 자연스럽게 꺼내던 “친한 작가”라는 말의 무게는 그 뒤에 이어지던 이야기들에 있었다. 최서희 작가에게 돌려줄 식탁보 한 장에는 함께 전시를 준비한 시간이 담겨 있었다. 박소진 작가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테이블도, 작품을 보여주며 작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던 컬렉터의 마음도 한 번의 만남보다 긴 시간을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 내게 “네 집에 있는 작품을 다 모아도 이우환 한 점 값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이다. 사원에서 시작해 대리, 과장, 차장, 팀장을 거치는 동안 월급은 미세하게 조금씩 올랐지만, 그 돈으로 고가의 작품을 살 수 있었을 리 없다. 다만 내 컬렉션에는 작품을 처음 샀을 때의 기쁨과 오랫동안 작가를 소개해온 갤러리에 대한 기억, 작품을 통해 이어진 만남들이 남아 있다. 다른 사람의 집에 걸린 작품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연이 많거나 작가와 가깝다는 이유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까지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작품을 성실하게 바라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친분에 기대어 무조건 좋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작가의 작업을 오래 지켜볼 수 없다. 이전 작품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시도가 설득력이 있고 무엇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지 묻는 관심이 필요하다. 작품을 아끼는 마음에는 판단을 이어가는 수고도 들어 있다.

이번 방문들을 통해 다시 믿게 된 것은 그런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다. 소장한 뒤에도 작품을 보고 이야기하며 작가와의 관계를 이어가는 컬렉터가 있다. 전시가 끝난 뒤 작업실로 돌아가 재료를 만지고 자신의 질문을 더 밀고 나가는 작가가 있다. 그들의 진정성은 스스로를 설명하는 말보다 거듭하는 선택 속에서 드러났다. 묵묵히 작업을 이어간다는 것도 결국 매일의 구체적인 일일 것이다. 이미 한 작업을 다시 보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을 붙들고, 다음 작품을 만들어가는 일.

닫힌 집에 살던 내가 다른 사람들의 열린 공간을 다녀와 얻은 것도 그 지속에 대한 감각이었다. 당장 누구에게나 내 집을 열 자신은 없다. 그래도 쌓아둔 작품을 다시 꺼내 걸고 오래 바라볼 수는 있다. 함께 일한 작가에게 다음 작업을 묻고, 전시가 없어도 작업실을 찾아갈 수는 있다. 미술을 오래 곁에 두는 일은 그렇게 내가 이미 맺은 관계에 다시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는 데서 시작될 것 같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현명 컬렉터의 집 화장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현명 컬렉터의 집 화장실)

2026.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