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걸림돌일까?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원서: Do Babies Matter: Gender and Family in the Ivory Tower, 2013)』1는 1978년 이후의 미국 내 박사학위 취득자와 UC의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교수 설문을 묶어 대학원부터 은퇴까지의 행보를 관찰하고, 출산과 육아가 그들의 커리어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연구한다. 2022년에는 한국어판으로 번역되며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조해 볼 수 있는 각주가 달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 이 조사는  자료를 통해 그간 미국 학계가 아이가 있는 여성 학자에게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드러낸다. 여성 학자가 자아실현과 모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안, 아이가 있는 남성 학자는 평소와 똑같이 연구를 진행하는데도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왜 출산을 망설이는지’를 설문했던 내용의 결과인데, 여성과 남성의 판단 기준이 고전적인 가정의 형태에 기인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2. 박사까지 하고 있는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주양육자가 되어야 하는 환경을 고려하게 되고, 남성은 연구자로서의 수입이 가정을 꾸리기엔 부족할 것이라는 고민을 한다. 똑같은 학자이고 가정이라는 한 개념에 대해 모색하면서, 은연중에 자신의 역할을 주입받은 역할로 단정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쓰인 목표는 성역할을 갈라치기하거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비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아를 직접 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와 정보에 기초하여, 비관에 그치지 않고 방법을 모색한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여성이 모성을 이유로 자아를 놓지 않을 방법을 고안한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육아휴직제도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을 통해 처음 도입되었다. 하지만 여성 근로자에 한정된 무급 휴직이었고, 남성 외벌이 가정을 표준으로 여기고 양육을 모성의 영역으로 간주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퇴사를 요구하는 관행도 만연했었다. 95년도에 육아휴직제도가 남성 근로자로도 확대됐지만, 한국 정서상 육아휴직을 택하는 남성은 드물었다. 그런 환경에서 기혼 여성이 출산 이후까지 커리어를 이어 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3. 이후로 수많은 기혼 여성들이 자신들의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여러 정책들이 등장하고 개선되며 지금에 이르렀다4. 이제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는 모습도 당연해진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일과 육아의 시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나만의 커리어를 갖는 것은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나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예술의 성취는 물질적인 결과보다 사유와 성찰과 같은 비물질적인 가치로 평가되기에, 가족의 인정과 도움 없이는 활동을 이어 나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이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커다란 사건이지만, 한 사람의 시작을 지켜보며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 주먹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포착의 시작을 목격할 수 있고, 아이가 던지는 엉뚱한 질문들은 근본적이면서도 꽤 철학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육아라는 변수로 가득한 생활을 이어 나가며 세상이 얼마나 입체적인 지도 깨달을 수 있다. 미술계는 아이 친화적이고 다른 업계에 비해 유연한 환경을 갖고 있다. 일단 아이를 동반하고 일터에 갔을 때 이해받을 수 있는 업계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감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보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지거나 아이를 동반하기 어려운 일정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난처해지는 일이 자주 생긴다. 나 대신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고, 미술을 그만둬야 하나 싶어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조금만 더 힘내면 손이 덜 가는 시간이 찾아오겠지. 그런데 왠지 그 시간엔 내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도 한다. 조부모님의 도움도 시터도 쓸 수 없는 입장에선 이런 생각이 정말 자주 드는데, 절망에 빠지지 말자. 나는 다 갖고 싶으니까 욕심껏 내 성질대로 해내자고 다짐하자.

사람들은 육아라고 하면 갓난아이를 돌보는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생각보다 육아의 기간은 훨씬 길다. 한 인간이 성숙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육아라면, 언제 혼자 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죽으면’이라고 말하는 양육인들의 자조적인 답변이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선배 부모님들께 늘 언제 편해지는지 물어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편해진다고 하는데, 그땐 또 사춘기가 온다고 한다. ‘육아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애 성인 될 때까지 키우고 말하라’는 이야기가 왠지 아득하게 들려온다. 양육자가 된 이상 아이와 심적으로 분리되기 어렵다. 담백하게 육아할 순 있어도 완전히 무심해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보다 아이는 작고 약하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존재를, 잘 재우고 먹여서 걷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경 안 써도 알아서 먹고살게 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정신이 소모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정말 느리고, 동시에 순식간이다. 모든 것을 느리게 하느라 나의 시간도 같이 느려지는데, 야속하게도 어른들끼리 약속하고 정한 시간들은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져 있지 않다. 출퇴근 시간과 맞지 않는 등하원 시간, 아이가 없다는 조건을 중심으로 잡히는 일정들. 일을 포기하면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것 같고, 애는 포기할 수 없고. 선택한 것들을 책임져 보려고 시간을 잘게 쪼개 최대한 보기 좋게 조립해 본다.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고 되뇌면서.

서론에 인용한 연구의 골자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기 힘들 때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둘이 쾌적하게 병행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자아와 커리어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결코 자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이로 인해 새로 배우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부모님 세대에 아이를 낳아 놓으면 자랐다는 말은 요즘만큼 손이 가지 않는다는 뜻이라기보단, 공동육아가 가능했던 시대였고 모두가 한 아이를 키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육아로 인해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면, 육아를 하는 예술인들끼리 모여 아이의 시간에 맞춘 시간대를 공유하며 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등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오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다. 육아는 걸림돌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한 디딤돌이다.

  1. 1메리 앤 메이슨·니컬러스 H. 울핑거·마크 굴든,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 임신 출산 양육이 공부하며 일하는 여성의 삶에 미치는 결정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에 관하여』 (E-BOOK), 안희경 옮김, 신하영 감수, 시공사, 2022. ↩
  2. 2“남학생의 68%, 여학생의 76%가 대학원에서의 업무량을 출산을 미루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대학원 생활과 육아를 근본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일로 인식할 확률도 여성이 남성 보다 훨씬 높았다.” 위의 책. p.52 ↩
  3. 3‘친정의 공동 헌신’, 시간과 노력을 대신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학계의 ‘2급 인력’에 머물거나, 그 주변을 맴돌다가 사라져갔습니다. (신하영, 감수자의 글 중 발췌) 위의 책. ↩
  4. 41987 여성 대상 무급 육아휴직 도입/ 1995 남성 근로자로 범위 확대./ 2001 고용보험을 통한 급여 지급/  2007 배우자 출산휴가/ 2008 근로시간 단축제/ 2011 정률제/ 2014 아빠의 달(출산시 첫달 급여 인상)/ 2019 가족 돌봄 휴가 도입/ 2020 부부 동시 휴직 급여/ 2025 상한 250만 원·사후지급금 폐지·최대 1년 6개월/ 2026 단기 육아휴직 신설 ↩

2026.10.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October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