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일상을 벗어나려 하고, 껌은 일상에 달라붙는다. 신용재의 《낭만껌》은 물질화된 낭만을 드러내며, 눌어붙은 시간과 만져지는 허공의 형상을 화면 위에 제시한다. 이 전시에서 낭만은 껌의 세속적인 성질과 뒤엉킨다. 단맛이 사라진 채 입 안에 남은 풍선껌 덩어리는 그림을 그리고 난 뒤 구석에 뭉쳐져 있는 물감과도 같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사라져가는 풍경 앞에서 느낀 감흥의 아름다움보다 그 감정이 휘발된 뒤 무엇이 어떤 상태로 잔존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신용재의 회화는 이렇게 남겨진 허공에 두께를 부여한다.

그의 화면 속 대상으로서의 하늘은 시선을 아득한 원경으로 이끄는 동시에, 시선의 전면으로 바짝 다가온다. 무한의 대기는 ‘윗면’과 ‘옆면’과 같이 ‘읽히는/보이는/만져지는’ 면들로 분절되고, 면과 면이 맞닿는 경계는 허공에 단단한 두께가 형성된 듯한 인상을 준다. 손으로 만져 가늠할 수 없던 대상에 바라볼 수 있는 면과 만질 수 있는 두께가 생기는 셈이다. 이러한 조형적 구성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관성적 시선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늘은 여전히 빛과 공기로 이루어진 풍경이면서도, 손끝으로 누르거나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실체로 다가온다.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926Sat. 50.0x60.6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926Sat. 50.0x60.6cm Oil on canvas 2026

‘만져지는 허공’은 이처럼 공간을 향해 뻗어 나가는 시각과 사물을 더듬는 촉각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화면의 구조가 허공에 부피를 부여한다면, 물감의 표면은 그 부피에 물질적 설득력을 더한다. 나이프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넓은 흔적, 화면 가장자리로 밀려난 유화 안료의 두께, 서로 다른 색채가 충돌하며 만들어 낸 불균질한 결은 풍경의 윤곽을 이루는 동시에 물감을 다룬 신체적 행위의 궤적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원경의 하늘빛으로 읽히던 부분 역시 화면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짓눌리고 끌린 물감의 물질적 표면으로 환원된다.

눌어붙은 시간.

스러진 순간이 온전한 형상으로 보존되는 대신, 찰나를 붙들고자 했던 행위의 압력이 물질의 상태로 응고되어 남는 것이다.

신용재의 이러한 태도는 2025년 《Maum》에서 2026년 《낭만껌》으로 이어지는 작업 속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내면의 문제는 장소의 경험과 맞물린다. 장소와 존재 사이 온갖 틈새에서 감지되던 정서적 파동은 작업실 주변의 풍경을 마주하는 태도에 스며든다. 매일 마주하는 하늘은 일상의 동선 안에서 거듭 새로워진다.

마주침의 장소.

빛과 공기는 매 순간 흩어지고,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 역시 늘 유동한다. 이러한 교차 속에서 장소와 감정은 서로의 윤곽을 바꾸어 놓는다. 노을은 작가의 심리를 일방적으로 투영하는 알레고리가 아니라, 내재해 있던 감정에 파동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외부 조건으로 기능한다. 화면은 바로 그 감응의 파동이 색과 형태로 머무는 자리다. 《Maum》과 《낭만껌》을 잇는 고리는 내면에서 외부로의 단순한 시선 이동에 있지 않고, 마음이 외부의 시간과 환경에 접촉하며 스스로의 상태를 변용해 가는 과정에 있다.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8Tue. II 45.5x37.9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8Tue. II 45.5x37.9cm Oil on canvas 2026

‘낭만껌’이라는 표제는 이 접촉의 끝에 남겨진 잔여물을 다소 익살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한다. 껌은 형태가 유연하게 변하면서도 한번 들러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단맛은 이내 사라지지만 끈적한 물질 자체는 끝내 남는다. 이러한 성질은 감흥의 찰나적인 지속과 그 뒤를 따르는 집요한 정서적 여운에 상응한다. 낭만 또한 일시적인 충만감으로 잊히지 않고, 지나간 뒤에도 기억과 감각의 틈새에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신용재의 화면에서 물감은 이러한 여운의 물성, 달라붙어 있으나 어느새 떨어져 나가는 감각을 촉각적으로 재연하는 매개체다.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906Sun. 112.1x145.5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906Sun. 112.1x145.5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9Wed. 130.3x162.2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9Wed. 130.3x162.2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8Tue. I 37.9x45.5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8Tue. I 37.9x45.5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6Sun. 130.3x162.2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726Sun. 130.3x162.2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817Mon. 112.1x145.5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817Mon. 112.1x145.5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913Sun. 50.0x60.6cm Oil on canvas 2026
신용재, 낭만껌Nangmangum_0913Sun. 50.0x60.6cm Oil on canvas 2026

2026.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