適

알맞을 적. 내 좌우명이다.

해가 가고,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또렷하다. 진정한 기량은 두서없이 영끌, 무지성 전력 질주 끝에 “하얗게 불태웠어!” 주억거리며 후미진 길바닥에 멋대로 고꾸라지는 게 아니라, 나와 엮인 곳곳을 골고루 잘 보살피게끔, 절충과 타협을 결행하는 것임을. 알맞고 적절해야 좋다. 역량을 직시하고, 한정된 자원을 쪼개며, 우선순위를 조율하여, 중도와 균형의 외줄을 타는 게 곧 실력이다.

욕심 좀 그만

내가 중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겉은 미려하나 읽어도 닿는 게 없어 괴이쩍은 글은 대개 ‘욕심’이 그 원인이다. 무얼 어디까지 이야기할는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리하니까. A부터 Z까지, 전말을 한 바구니에 몽땅 욱여넣으려 드니까.

폭주 기관차의 브레이크 – 김영기 씀 0.1.docx

그래서 나에게 글 다듬기는 곧, 욕심을 감지하고 제거하는 일이다. 그에 따라, 원고 파일명 끝에 ‘0.1’부터 버전이 붙어 오르기 시작한다. ‘버전업’은 결국 욕심 가지치기이다.

그런데 버전업이 또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회인이 본업도 내팽개치고 주야장천 검토만 거듭할 수는 없는 노릇. ‘어떤 작가가 좋은 작가라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언젠가 ‘붓을 잘 놓는 작가’라 답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전에, 그런 나는 정작 펜을 잘 놓는지부터 돌아보는 게 순서일 듯싶다. 살펴보니 이런, 손에서 도통 떨어질 줄 모른다. 무지성 직진이다. 안 된다. 바야흐로 ‘욕심을 쳐내는 욕심’을 쳐낼 때이다. 어떻게? 벗어날 여지가 도통 보이지 않는 이 버전업 폭주 기관차에도, 침착히 살피면 브레이크가 있다. ‘마감/박제’라는 브레이크. 마감에 기대어 글을 매조지고 박제하여 이 무한 버전업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콸콸 쏟아내는 시간과 노력의 수도꼭지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잠근다.

ACK는 박제 전시장이다. 아마 모든 필진이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글을 열면, 자동 문법 체크라도 켠 듯 울긋불긋, 고칠 곳만 그저 눈에 들어온다. 전개와 호흡, 제목이 영 눈에 튀고, 어딘가 표현이 아쉽고, 살짝이지만 더 적합한 단어가 불현듯 떠오르고, 얼마 전에야 비로소, 예시로 써먹을 만한 에피소드를 겪기도 하고… 버전업할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디버깅 지옥에서 허우적대는 건, 문과나 이과나 아무래도 매한가지인 모양. 아무리 다듬어도 끝이 없는 게 글이다. 그림과의 차이는 재료, 즉 음성언어의 객관적인 면, 특히 사회성과 시의성은 시각언어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예민하다는 점. 그 탓에 아무리 잘 다듬어도, 그래서 당시에 꽤 괜찮았어도, 언젠가 운명처럼, 아쉬운 순간이 찾아온다. 박제는 그 자잘한 비극을 도리 없이 수긍하고, 인정하고, 타협하게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읽을 글이라면 마감은 피할 수 없고, 펜을 놓음으로, 부메랑처럼 날아들 아쉬움을 각오하는 나날에 들어선다. 그게 박제이다.

위로를 덧붙이자면, 한편으론 타협의 구실, 면죄부, 변명거리가 되기도 한다. 박제는 ‘기고’의 거센소리이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을 나름의 균형으로 소화하는 와중 꾸준히 써 내린 업적 그 자체이다. ‘더 잘 쓸 수 있는데, 덜 잘 써 올림’ 같은 게 아니다. ‘최적이야말로 최고보다 더 큰 선善’이라는, 코가 석 자에 발등 활활 타는 현실 스웩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를 알아주는 독자가 종종 보여, 마음이 조금은 덜 무겁다. 무엇보다 지난 글 좀 그리 봐 주길 바란다.

2026.11. ACK 발행. ACK (artcritickorea)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November 2026. Published by ACK. The copyright of the article published by ACK is owned by its author.